우주와 세상이 구동되는 원리인 ‘도’는 우리의 상식과 반대로 움직이고, 멀리 가면 다시 돌아오고 극에 다다르면 뒤집힌다는 거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0월 7일)
노자 <<도덕경>>에서 가장 눈에 뛰는 단어가 나에게는 “반(反)”이다. 이 단어는 <<도덕경>>에서 4 번 밖에 나오지 않지만, 노자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단어이다. “반”의 사전적 정의는 ‘반대로’, ‘돌아오다’, ‘뒤집힌다’이다. 우주와 세상이 구동되는 원리인 ‘도’는 우리의 상식과 반대로 움직이고, 멀리 가면 다시 돌아오고 극에 다다르면 뒤집힌다는 거다. 그리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반대로 강하고 센 것을 이기고, 비우고 낮추는 것이 결국 채움과 높음으로 돌아온다. 군림과 강요는 결국 뒤집히게 되고, 섬김과 모심은 복종과 존경을 얻게 된다 노자의 역설이 모두 ‘반’의 역설이다. 아름 답다 뒤에는 추함이 있고, 행복 뒤에는 불행이 엎드려 있음은, 결국 ‘반’의 원리가 세상만사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절정이든, 최악이든, 천국이든, 지옥이든 결국 인생은 동그란 길을 돌아 나가는 것이다. 세상이 구동되는 원리는 결국 뒤집히고, 돌아오고, 반대로 돌아간다.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노자가 이런 세상에 대해 한 말들은 다음과 같다.
▪ 여물반의(與物反矣):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과 반대로 돌아간다. 나의 상식을 버리고 익숙하지 않은 반대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제65장에 나오는 말이다. “玄德深矣(현덕심의) 遠矣(원의) 與物反矣(여물반의) 然後乃至大順(연후내지대순)”이라는 거다. ‘현덕은 깊디깊고 멀어서, 사물의 이치에 반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큰 순리에 이르는 길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현덕”은 제51장에서도 나온다. 거기서 “현덕”은 “무엇을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무엇을 길러주고도 그것을 주재하려 들지 않는다”고 했다. 원문은 “生而不有(생이불유) 爲而不恃(위이불시) 長而不宰(장이불재) 是謂玄德(시위현덕)”이다. 다시 말하면, ‘낳았으나 소유하지 않고, 이루었으나 기대려 하지 않고 키웠으나 지배하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현덕’이라 한다. 좀 더 쉽게 번역하면, 낳았으나 소유하지 않고 주었으나 자랑하지 않고 길렀으나 주재하지 않으니 이것을 “현덕”이라 한다. 도올 김용옥교수는 ‘생하면서도 소유하지 아니하고, 되게 해주면서 거기에 기대지 아니하며, 자라게 하면서도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서 ‘가믈한 덕’이라 하는 것이다’라 번역했다. ‘도’와 ‘덕’은 그런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지시하지 않는다. 항상 스스로 자신의 존재 방식대로 살게 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창조하고 길러 주었음에도 간섭하거나 명령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지켜준다는 거다. 그냥 자연스레 되어 가는 자연의 원리에 맡겨 둘 뿐이라는 거다.
▪ 반자도지동(反者 道之動):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도의 운동 방식이다. 인생은 생각하고 의도한 것과는 반대로 움직일 경우가 많다. 제40장에 나온다. 원문은 이렇다. “反者 道之動(반자도지동) :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다. 弱者 道之用(약자도지용) : 약함이 도의 쓰임이다.” 반대편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운동력으로 해서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거다. 이 운동력은 바로 자연이 본래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노자는 보는 거다. 쉽게 말해서, 만사는 그저 한 쪽으로만 무한히 뻗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가다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게 우주의 리듬이라는 거다. 어떤 상황이 극에 이르면 반전(反轉)하여 거꾸로 전개 된다는 이런 우주의 존재 방식이 노자가 말하는 “반(反)”이라는 거다. 달이 가득 차면 어느 순간 ‘거꾸로’ 기울어지고, 작아진 달은 다시 ‘거꾸로’ 차오른다. 나를 낮추면 ‘거꾸로’ 올라가고, 뒤로 물러서면 ‘거꾸로’ 앞에 서게 된다. ‘거꾸로(反)’가 ‘도’의 운동 방식이라는 거다. 우주의 운행 원리는 ‘거꾸로’라는 거다. 인간도 이런 반전 원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거다. 같은 이야기지만, 약간의 뉘앙스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약(弱)한 것이 ‘도’의 운영 방식(用)"이라고 노자가 말하는 것은 강하고 센 것보다는 약한 것이 반전을 격발 시킨다는 것으로 본다. 강한 것은 결국 부러지고 고꾸라지니,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약”은 부드러움(柔), 비움(虛), 낮춤(下)을 총칭하는 말이라는 거다.
‘도’는 어디로 되돌아가는가? ‘도’는 모든 것이 되돌아가는 움직임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스스로 모든 것을 찾아가기도 한다. 모든 것을 찾아 감으로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고, 나아가 그 존재들로 하여금 각자의 특성을 가진 개체로 존재하게 해준다. ‘도’가 이렇게 만물에 찾아가 만물 속에서 작용할 때, 그리고 다시 만물과 더불어 그 원초의 자리로 돌아갈 때 그것은 부드럽고 은근한 모습으로 움직인다. 벼 이삭이 자라는 것을 보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이삭이 패고 열매가 영글어 가고 다시 누렇게 시드는 식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청천벽력처럼 갑작스럽고 요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쉼 없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도’의 작용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보이지 않고 뒤에서 은은하게 일하는 ‘약함’을 그 특성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약한 듯한 움직임의 작용에서 벗어날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어느 누구도 벼 이삭을 빨리 자라게 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이와 같이 약한 듯 은근하게 돌아가는 ‘도’의 리듬에 맞추어 함께 돌며 의연하고 늠름하게 살아 가는 거다.
박한표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문화원장을 하다가 와인을 공부하였습니다. 경희대 관광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또한 와인 및 글로벌 매너에 관심을 갖고 전국 여러 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운동가를 꿈꿉니다. 그리고 NGO단체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인문운동에 매진한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마을 활동가로 변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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