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교황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가 화제가 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난국의 혼란속에 잔뜩 우울해진 이탈리아인들에게 교황의 이같은 행보는 신자는 물론 비신자들에게까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난민들에게 휴대폰과 전화카드 선물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초에 있었던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의 처참한 아프리카 난민들의 익사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갔던 것을 비롯해, 바티칸으로 돌아와서는 구출된 생존난민 159명 전원에게 휴대전화와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전화카드를 함께 보내주었다.
교황 측 대변인 몬테네그로 신부의 발표에 따르면 생존 난민들이 고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과 직접 통화를 통해 생존을 알리고, 그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배려 차원에서 마련한 휴대폰이라고 한다.
그와 함께 이번에 알려진 또 다른 사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2년 7월 유럽의회에 제소되었던 람페두사의 열악한 난민수용소 개선을 위해 실질적으로 힘을 썼다는 점이다. 그는 아이를 위한 수유시설과 운동장, 놀이시설 마련을 제안하는 등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챙겨, 이를 개선시켰다. (그는 올 3월 교황취임이후 있었던 바티칸의 첫 공식외부 방문지로 람페두사 난민수용소를 정해 7월 8일 난민들을 방문, 어려움을 청취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지난 12일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황은 베네치아 근교인 메스트레에 사는 할머니에게 200유로(약30만원)를 송금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자신의 남편을 간호하러 가던 중 버스에서 넘어지면서 50유로(7만 5000원)가 들어있는 지갑을 분실했고 아무런 연고자가 없는 자신과 남편의 딱한 사정을 바티칸에 호소했다. 이에 교황이 즉시 자비로 할머니에게 돈을 송금하고, 콘라드 크라예스키(Konrad Krajewski) 추기경을 보내 할머니의 근황과 어려움을 점검하기도 했다.
올 여름 <라누오바> 신문에 게재돼 화제가 됐던 또 다른 소식은 베네치아 근교 파도바시의 한 대학생이 교황에게 보낸 진로상담편지에 대해 교황이 직접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 자상한 조언을 해준 것이다. 그 청년은 베네토 교구의 교황방문팀의 일원으로 바티칸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당장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교황에게 직접 털어놓는 편지를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름 없는 천주교 일반 평신도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깜짝 놀라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열심히 살아가는 평신도들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건의내용을 접수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범한 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경청함으로써 그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때로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행동을 보여주거나 혹은 재치있는 한마디로 큰 웃음을 주고 있다. 현실에서 항상 함께 하는 교황을 온몸으로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탓에 교황은 공식석상에서 고상하게 다듬어진 발표문을 제쳐놓고, 즉석에서 자신의 진심을 담은 연설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회내 성직자들을 향한 파격적인 조치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월 교황은 모든 주교좌 성당의 교구장급 신부들의 특별직함(monsignore)의 사용을 금했다. 행정직 신부들에게 그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직함을 금하며, 모두가 똑같이 '신부'로만 호칭받도록 지시했다. 직함이 아닌,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당부한 조치다.
이달 중순 <코리에르> 신문은 교황의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강론 어록들을 모은 내용을 책으로 펴내 구독자들에게 배부하기도 했다.
종교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지식인을 주독자층으로 가진 <코리에르>의 이러한 시도 역시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교황에 대한 어록 출판이 비판성향이 강한 언론사에서 제일 처음 시도됐다는 것은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자와 비신자들 모두에게 두터운 신뢰와 존경을 얻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이탈리아인들에게 교황은 더 이상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곳의 그분'이 아니다. 따뜻하고 친근하게 내 문제를 함께 염려해주는 친구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교황의 행보는 지극히 성서에 충실한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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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 교황인 베네딕스 16세와 베네토교구 신학원 루치오 칠리아 총장신부가 다른 신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 베네딕스 16세(가운데) 오른쪽 옆이 인터뷰를 진행한 루치오 칠리아 총장신부. |
ⓒ 신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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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현상과 교황의 면모에 대해, 바티칸을 빈번하게 방문해 교황을 자주 접하는 베네토교구 신학원 루치오 칠리아(L.Cilia) 총장신부를 이달 초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베네토지방은 마가복음을 쓴 마가성인의 첫 복음전파 사역지였던 '아퀼레이아'(Acquileia)가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성당에는 마가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2011년 베네딕토16세 교황은 베네치아를 방문해 '세계로의 말씀파송의 도시'로 선포하기도 했다. 그는 차기교황이 유력했던 스콜라 추기경과 함께 필자의 어머니에게 세례와 축성을 베풀어 언론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개혁이 시작되었다고 환영하는 세력이 있는 반면에, 기존의 바티칸 전례를 깨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교황은 실천하는 신앙, 생활 속에서 함께 하는 신앙을 외치며 천주교가 더이상 형식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에 얽매여 본질적인 소중한 것들에 대해 소홀함이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황의 행보는 모든 게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행동들입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보는 건 현 세태가 그만큼 비상식적이기 때문이겠죠. 또한 교황의 행동들은 개혁과 전통 혹은 진보와 보수 등으로 구분할 성질도 아닙니다. 지극히 기독교적인, 성서에 충실한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늘 군중들과 함께 계셨고,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아픔을 함께 해주셨으니까요. 이제는 삶속에서, 일상 생활에서 함께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 개인적으로는 두손 두발 들어 기꺼이 환영하는 바입니다. 천주교에 있어서 늘 필요했던 부분이기도 하거든요."
- <가톨릭시민사회(Civilta Cattolica)> 예수회신문과의 공식인터뷰에서 대담자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A.Spadaro)에게 교황은 "신이 동성애자, 낙태, 이혼자들을 본다면 과연 신은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으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할까 아니면 그들을 거부하고 내쫓으며 비난, 정죄만을 하겠는가, 우리는 '긍휼함'(misericordia)을 갖고 그들과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죠. 이것에 대해 어떤 의견이신가요? 이것이 확대해석되는 면도 있는 것 같은데요.
"물론 천주교 교리에 있어서는 낙태, 피임, 동성결혼 등은 허용치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딱히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피를 철철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다면 교회는 병원처럼 그들을 살려주고 회복시켜주는 것이 우선이죠.
고통속에 신음하는 자에게 왜 건강수칙,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아 이 지경이 된거냐고 마냥 꾸짖고 정죄만 한 채 외면하는 게 과연 맞을까요? 사회의 온갖 편견과 종교의 잣대로 이미 아픔을 겪는 그들을 교회와 신앙인들마저 내치고 비판만 하게 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요? 신앙인들이 그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믿음을 배반한 것이고 안 믿는 자들보다도 더 악한 행위라는 것이죠.
성서에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강간하다 잡혀온 여인을 데려오자 '너희 중 죄없어서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말에 모두들 슬금슬금 자리를 떴고, 그렇게 여인을 구하신 후에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교황은 모든 것에 우선해서 긍휼함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신앙인들은 상대를 향해 정죄해대던 손가락질의 방향을 우리 자신에게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죄인일뿐입니다. 정죄함을 멈춰야 합니다. 그건 교만이고 그게 더 무서운 죄악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종교를 빙자한 정죄를 멈춰야 합니다. 아고스티노 성인의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타입의 죄인이 존재할 뿐이라고. 하나는 자신의 실수와 연약함을 인정하는 죄인이 있고, 또다른 하나는 자신이 전혀 죄인이 아니라면서 강퍅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죄인.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일뿐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교황의 모습 특히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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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프란치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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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장신부님은 바티칸을 자주 방문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교황에 대해 감명을 받았거나 인상 깊은 부분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
"감명 받은 점은 교황이 바티칸의 교황 전용 아파트와 전용 리무진 자동차를 사양하고 바티칸의 다른 일반 방문자들이 머무는 싼타 마르타 수도원 건물에서 다른 사제들, 수도사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공동생활을 선택한 부분입니다. 바티칸의 교황 아파트는 외부와 차단된 구중궁궐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외부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기 힘든 곳으로 자칫하면 교황 스스로 외부와 차단될 소지가 있어요. 이런 폐단을 고치기 위해서 교황 스스로 일반수도원에서 기거하며 그들과 똑같이 먹고 생활하는 등 일체의 특별대우를 사양하고 있지요. 교황이 그렇게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제로서 인상 깊은 부분은 그의 겸손함입니다. 특히 전임교황에 대한 겸손함이 인상적입니다. 이번 7월 5일 발표한 교황의 첫 신앙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이 그렇습니다. 신앙의 중요성과 의미를 일깨우는 회칙으로 역대 모든 교황들이 자신의 회칙을 발표했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자신만의 생각을 드러내는 회칙을 발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사임을 하느라고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던 전임 교황의 회칙, 영원히 미완성으로 폐기될 뻔했던 전임자의 회칙을 과감하게 수용해 자신의 것과 함께 세상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전임 교황에 대한 배려와 예우가 깃든 겸손함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교황은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이고, 어느 것이 전임교황의 것인지를 굳이 따로 나누지 않고, 함께 발표해 똑같이 존중 받도록 했습니다. 그의 겸손함이 더 돋보이는 부분이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직자, 사제들은 다른 이들을 '섬기는 자들'이어야지, 그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자가 되어선 안 된다고. 그리고 그 점을 자신이 몸소 실천하고 계십니다. ('신앙의 빛' 회칙은 80여쪽 분량의 4개장 60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교황이 재임기간 중에 신자들에게 전하는 신앙의 회칙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회칙에서 우리를 사랑으로 변화시켜서 세상에 대해 눈뜨게 하는 신앙의 힘과 가정의 존중, 겸손한 신앙, 타종교의 존중을 강조했다. )
- 독일에 있는 <오마이뉴스> 최서우 해외통신원이 질문한 내용입니다. 그간에 구설에 올랐던 바티칸의 '검은 돈' 연루사건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신지요. 물론 총장 신부님은 사제양성과 신학출판 담당 사역이시고, 행정과 무관해 대답이 곤란하시다는 걸 이해합니다만.
"곤란할 건 없습니다.(웃음) 바티칸에서 이 문제에 대해 솔직히 인정했고, 그 부분의 명확한 수사를 교황이 지시한 것으로 압니다.
물론 저는 사제양성과 성서해석과 출판담당인지라 깊이 알지는 못합니다. 단지 제가 아는 선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해외선교자금을 해외선교지에 송금하는 부분에 있어서 출처가 불분명한 돈들이 바티칸 계좌에 흘러들어온 것으로 압니다.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으면서 묵인한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알지만 어떤 이유가 있어서 진상규명을 할 수 없었던 것인지, 혹은 관련된 성직자들이 있었는지 등등 모든 부분에 대한 조사를 교황이 요청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미스런 일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드러나는 건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교회나 바티칸에 있어서도 당장은 곤혹스럽고 수치스런 일일 수 있지만, 되레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계기로 더욱 새롭고 건강한 모습의 개인, 교회, 바티칸이 될 수 있으니까요. 빛이 환한 곳으로 갈수록 미세한 먼지들이 속속 잘 드러나듯이, 어둠에 있으면 먼지는 잘 보이지 않잖아요. 문제를 문제로만 두지 않고, 그것을 교훈으로 다시 일어서는 자세가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끝무렵 총장신부님은 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 이번엔 제가 질문해보고 싶은데요. 한국은 어떤가요? 개신교 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한국은 특정종교만이 아닌, 여러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그러자 이런 이야기가 돌아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신앙의 빛' 회칙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록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포괄) 신자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능력과 힘을 넘어선 그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막연히나마 인정한다면 그는 이미 신앙인이라고 봅니다. 각자가 믿는 그 어떤 존재에 대해 추구하는 건 결국 진리이고 공동선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긴 시간 허심탄회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교황전화 받으셨어요?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는거 아시죠? '여보세요? 안녕? 저, 교황이에요'하고 말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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