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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주한미군 딜레마? ‘더 큰 대한민국’으로 풀어야

방위비 분담금부터 역할 변경까지, 차기 정부의 난제로 떠오를 주한미군

수동적인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도할 수 있는 능동적 자세 가져야

일방적 두려움은 적대감을 낳지만, 공유된 두려움은 공감을 만들 수 있어

수정 2025-06-02 07:05등록 2025-06-02 07:05

6월 4일 취임할 한국의 차기 정부가 마주할 가장 큰 딜레마 가운데 하나는 주한미군이 될 것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요구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한 미국의 한국 방어 비용 증액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지론이다. 둘째는 주한미군 감축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28,500명 가운데 4,500명을 괌을 비롯해 인도 태평양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셋째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2000년대 초반 이래 미국이 꾸준히 추구해온 것인데, 최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을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 혹은 고정된 항공모함”이라고 부르면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 감축과 역할 변경은 어울리는 짝은 아니다. 이는 미국 내부의 이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엘브릿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감축해 괌 등으로 이전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브런슨은 대중 견제에 있어서도 중국과 가장 가까이 있는 주한미군의 전력을 유지·강화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전방에 배치되어 있음으로써, 사실상 적의 접근거부·지역거부(A2/AD) 영역 안에서, 그리고 그들의 심리적 공간 안에서 작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으로서 감축 논의를 무마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대중 견제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이러한 미국 내부의 이견이 어떻게 조율될지는 콜비 주도로 작성 중인 ‘국방전략지침’이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미국 내에선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핵심 전략이 중국, 특히 양안 분쟁 대비에 맞춰져야 한다는 데에 모이지고 있고, 감축이든 유지·강화든 주한미군의 변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차기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물론이고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 카드를 동시에 꺼내들면서 양자택일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우리에게 큰 딜레마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면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우려도 커지고 윤석열 정부 때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중관계 회복에도 큰 걸림돌이 되고 만다. 반대로 미국이 감축을 추진하면, ‘안보 공백론’과 더불어 보수 진영에선 그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면서 정쟁의 수단으로 삼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익 중심의 판단이 중요하다. 주한미군의 규모·역할·분담금을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게 그나마 낫다고 여길 순 있지만, 현실적으론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감축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본다. 감축을 막기 위해 분담금을 올려주고 미군의 역할 변경도 수용하는 게 막대한 국익 손실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와 시야는 ‘더 큰 한국’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발 의제에 갇혀 있었다. 21세기 이래 모든 미국 행정부들이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한 데에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 옵션을 갖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한국은 이를 인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고심해왔다. 이렇게 ‘미국의 범위’에 갇힐수록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길은 더더욱 좁아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첫째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시도는 미국의 대중 봉쇄 전략의 일부라는 것이다. 둘째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 여부와 그 수준에 영향을 받겠지만 한국 역시 중대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큰 한국’은 대만 해협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이 더 나은지를 놓고 ‘큰 틀’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진지하고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추구하려는 방향은 군비증강과 동맹 강화를 통한 ‘대중 억제 일변도’이다. 억제의 취지는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 통일을 시도할 경우 중국이 치르게 될 대가의 크기를 깨닫게 해 이를 저지하겠다는 데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크다. 중국은 이를 대만의 독립을 부추기는 의도로 보고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곤 한다. 대만을 향해서 무력시위를 일상화하는 한편, 외부세력을 향해서도 개입의 대가가 매우 클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 결과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이 격화되면서 대만 해협의 위기지수도 계속 높아져왔다. 이는 한편으론 민생과 기후변화 대응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다른 한편으론 우발적 충돌과 확전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악순환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한국도 역할을 찾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만 해협의 미래에 대해서 경고와 우려와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대안적인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에 논의를 제안할 수 있는 의제는 다양하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주문하고 싶은 것은 ‘두려움의 공유’이다. 대만 해협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현상은 ‘일방적 두려움’의 산물이다. 일방적 두려움은 상대를 위협으로 인식해 적대적 언사와 군사 태세를 강화하는 사유로 작용한다. 그런데 두려움 역시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어느 일방의 공포가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되면 그 상대 역시 적대적 언행으로 응수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유된 두려움’은 공감과 연대를 낳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나도 두렵지만 상대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제의 미덕과 의사소통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의 공유를 ‘동맹의 체인’의 대항적인 담론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어떤 사유로든 양안 전쟁이 발생해 미국이 개입하면, 1차 세계대전과 유사하게 관련국들이 동맹의 사슬에 엮여 전화(戰火)가 ‘동맹의 바람’을 타고 동아시아 전체로 번질 수 있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일본·호주·필리핀이, 중국의 동맹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과 조선의 동맹인 러시아가 개입·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끔찍한 시나리오는 두려움의 방정식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냉전 시대에서도 그 함의를 찾을 수 있다. 적대적 경쟁심에 도취되어 군비경쟁에 몰두했던 미국과 소련이 각종 군비통제·군축 조약에 합의하고 냉전 종식에 합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핵전쟁이 모두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의 공유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양안 관계의 제3자이니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니 미국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천만하다. 양안 전쟁 발생시 조선의 도발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시각은, 정작 조선이 느끼는 두려움을 외면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만 문제를 둘러싼 ‘적대적이고 불안한 현상유지’를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현상유지’로 바꾸자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군비통제와 신뢰구축을 통해 군사적·전략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해야 한다. 두려움의 자각과 공유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i나@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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