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만한 것은 ‘친윤 핵심’들도 필요성을 인정한 이 해법에 대한 당시 윤석열의 반응이다. 양상훈 주필의 앞서 칼럼은 윤석열의 ‘격노’를 뒷받침한다. 실제 당시 뉴스1은 윤석열이 ‘격노’했다고 보도했는데, 이후 ‘불쾌감’으로 톤을 조절해 여러 의문을 낳았다. 이는 명백한 ‘이상 현상’이었다.
이런 현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한동훈 장관이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한 직후인 그 해 12월 24일 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이례적으로 정책이 아닌 현안인 김건희 특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 마디로 하자면 특검에 반대한다는 거였다. 다음 날인 12월 25일, 여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총리 공관에서 당정협의를 열어 ‘조건부 수용을 포함한 김건희 특검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날은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의 취임 하루 전이었다. 즉,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취임하기 전에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김건희 특검과 관련한 조건부 수용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취임 직후인 12월 28일에는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사임하고 이 자리를 이관섭 정책실장이 메꾸는 일도 있었다. 이관섭 정책실장은 국정기획수석에서 정책실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JTBC는 대통령실의 비서관급 인사가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하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익히 알려져 있는, 눈발 속 ‘폴더 인사’(2024년 1월 23일)를 통해 갈등이 봉합된 사퇴 압박 시기(2024년 1월 21일)보다도 이른 시점이다. JTBC는 당시를 취임 1주일이 되지 않은 때였다고 했는데, 적어도 2024년 1월 3일 이전에 이미 사퇴 압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른바 ‘김건희 문자 무응답’ 사건은 이로부터 일정 시간이 흐른 후 김건희 씨가 사태 수습을 위해 한 시도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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