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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패러다임 바꾼 '일문일답식 대통령 업무보고'



장정수 편집위원

jsjang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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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 입력 2025.12.19 23:00

  • 수정 2025.12.20 09:01

  • 댓글 1

질책 받고, 칭찬 듣고, 긴장하는 관료 사회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촉발시킨 성과

 

직접 민주주의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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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 편집위원

윤석열 3년 간 망가진 정부 기능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의 일문일답식 부처별 업무보고가 유튜브로 국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껏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이 문답식 보고는 크고 작은 국정 현안들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각 부처 장관들 및 공기업 기관장들의 의식구조와 업무 수행 능력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순한 소통 방식의 변화를 넘어, 국정 운영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대담한 실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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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외교부(재외동포청)·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19. 연합뉴스

이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이 방식을 도입한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망가진 행정부의 기능을 조속히 되살리지 않고서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지난 3년 동안 공직사회는 복지부동이 만연하고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매일 폭탄주 마시느라 직무 수행을 소홀히 하는 분위기에서 관료사회는 활력을 잃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주요 부처 장관들이 내란에 연루돼 구속되거나 수사 대상이 되면서 행정부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공무원들의 생리를 체득한 이재명 대통령은 이러한 붕괴 직전의 관료집단을 바로 세우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취임 준비를 위한 시간적 여유도 없이 대통령 선거 다음날부터 직무를 수행해야 했던 이 대통령은 빠른 시간 내에 행정부와 공기업을 '일하는 조직'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고강도의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그 해법으로 등장한 것이 실시간 생중계 문답식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였다.

 

이 새로운 방식은 기관장이 보고서를 읽어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존의 보고 방식을 과감하게 거부한다. 대신에 각 부처와 기관의 핵심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세밀하게 파고드는 질문을 던진다. 관료는 소관 업무를 완벽히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진땀을 흘리며 곤경에 빠지고, 반면 업무에 정통한 관료는 전 국민 앞에서 자신의 역량을 과시할 기회를 얻는다.

 

질책 받는 기관장, 칭찬 받는 공무원, 긴장하는 관료사회

 

이로 인해 관료사회에는 전례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특히 윤석열 정부 말기 '알박기'나 '낙하산' 인사로 임명된 기관장들이 준비 없이 보고석에 앉았다가 호된 질책을 받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책갈피 달러 밀반출 사건‘에 대해 동문서답식 답변을 하다가 직격탄을 맞은 것은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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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기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 2025. 12. 12 KTV 유튜브 갈무리

가장 중요한 성과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관료들의 진면모를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표방하는 국민주권정부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지지기반이 필요한데, 문답식 생중계 국무회의역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공직자들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밀실 행정에 익숙했던 고위 공직자들은 이제 국민적 평가를 의식하며 자신들의 업무 수행에 한층 분발하게 되었다.

 

업무보고는 질책과 추궁의 자리만은 아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능력 있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는 공직자들에게 심리적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건설기술교육원이 연간 240억 원의 운영비를 자체 조달한 성과를 낸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이 "조직의 내공과 저력이 있다"고 직접 칭찬했고, 농림축산식품부의 식량정책관은 상세한 '콩GPT' 스타일 답변으로 큰 점수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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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답변하는 변상문 식량국장. 연합뉴스 화면캡쳐

반면에 기획재정부와 노동부의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약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의 보안관리 실패에 대해 "법을 어겨도 처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니 손해를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그러자 곧바로 국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매출액 10% 과징금 법안이 신속히 처리되기도 했다.

 

관료사회 내부 혁신 메커니즘으로 업무보고 성과 받쳐줘야

 

국민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많은 시민들에게 이 생중계는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는 정치 드라마'이자 흥미진진한 정치 이벤트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고위 공직자의 진면목과 업무 능력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며, 부실한 답변에 대한 대통령의 직설적인 질책은 일종의 사회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누가 일하고 누가 직무를 유기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반면, 보수 진영과 일부 언론은 이를 '망신주기', '갑질', '정치 쇼'로 폄하한다. 대통령의 직설적이고 때로는 거친 언어,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자르는 태도 등이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은 업무보고의 본질적 가치를 호도하는 것이지만, 지나친 공격적 질책이나 맥락을 벗어난 질문공세는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 실험은 위험한 측면도 있고 보완할 점도 있다. 우선 '책갈피 달러'나 '환단고기' 언급과 같은 지엽적 논란이 업무의 본질적 쟁점을 가리는 경우가 있다. 또한 이 대통령의 직설적인 톤이 공직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거나, 조직 내의 사기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관료사회는 공포와 긴장만으로 지속적인 쇄신과 개혁이 어렵다. 이 시스템을 통해 발굴된 유능한 인재를 중용하고, 그들이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한과 동기를 부여하는 내부 혁신 메커니즘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업무보고가 일방적 질문-답변에 머물지 않도록 국민의 실시간 질문을 국정에 반영하는 장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고려사항은 이 보고 방식의 지속 가능성 여부다. 대통령이 모든 보고회의에서 수백 페이지의 자료를 완벽히 숙지하며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 소모가 따른다. 장기적으로는 핵심 쟁점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숙한 비판 필수적

 

그러나 이 대통령의 새로운 문답식 생중계 업무보고는 '국민주권정부'에 걸맞은 새로운 국정 운영 스타일임은 틀림없다.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시민 검증을 결합한 파격적인 실험이며, 국정이 더 이상 밀실에서 진행될 수 없다는 원칙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행정 과정을 시민에게 직접 공개하는 이 방식은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완전히 실현하지 못했던 길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토론식 국정 운영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했고, 문재인 정부가 넘지 못한 국정 공개의 장벽을 돌파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난 극단적 국정 난맥을 단시일 내에 바로잡으려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이를 계속 발전시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새로운 국정운영의 패턴으로 정착되도록 하고, 업무보고 때 제기된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 실제 행정 시스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국민에게 알리는 '피드백 시스템'도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생중계 업무보고를 보면서 그가 공공성의 원칙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이같은 철학은 모든 질문에 짙게 배어 있다. 남산 케이블카 장기 독점 문제 지적,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추궁, 지역대학 예산 불평등 질타 등에는 특정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은 자신의 실용 정치의 근간이 공공성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있음을 국정의 현장에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업무보고가 민주주의의 내실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려면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숙한 비판이 필수적이다. 또한, 단순한 '질문-답변'을 넘어 진정한 '국민 대화'의 공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주요 안건을 사전 공개하여 국민 의견을 수렴하거나, 실시간으로 핵심 질문을 선별하여 소통하는 방식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이 시스템은 국민이 정책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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