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역사의 결정적인 장면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했던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퇴한 것은 북베트남의 화력이 미군보다 우세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베트남 민중의 끈질긴 항쟁, 미국 내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반전 운동, 그리고 전쟁의 부당함을 깨달은 미군 내부의 불복종이 결합한 결과였다.
군사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도적 군사력과 맞서는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 역시 승산이 없는 싸움이 된다. 그러나 라시드 칼리디(Rashid Khalidi), 질베르 아슈카르(Gilbert Achcar) 같은 역사가와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팔레스타인 해방의 미래는 민족해방 투쟁, 아랍 민중의 지원, 국제적 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
물론, 아랍의 봄(Arab Spring) 이후 중동이 처해 있는 처참한 현실이 현실주의적 힘의 논리를 부추긴 것이 사실이다.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에서는 잔인한 독재 정부가 세워졌거나, 끝없는 내전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남긴 트라우마는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에도 불구하고 중동에서 기대만큼의 연대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지옥을 만들었다'고 절망하거나 '이란 정권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원인과 결과를 심각하게 혼동한 것이다. 현재 중동의 비극적 상황은 ‘아랍의 봄’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 아랍의 봄을 짓밟은 ‘반혁명’이 낳은 결과다.
'아랍의 봄'은 친미 독재 정권들과 전제 왕정들을 뒤흔든 역사적인 민중 저항이었다. 그 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역사를 바꾸며, '아랍인과 무슬림은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오랜 편견을 뒤집고, 희망을 가져온 순간이었다. 당시에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 독재 정권들, 전제 왕정들은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패권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아랍 혁명의 승리와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반혁명은 쿠데타로, 내전으로, 제국주의 개입으로 나타났다. 결국 아랍 혁명은 납치됐고 패배했고, 지금의 끔찍한 중동 상황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아랍의 봄이 지금의 끔찍한 상황을 낳았다'는 것은 마치 '4.19가 5.16을 낳았다'거나 '광주 항쟁이 전두환을 낳았다'는 말처럼 틀린 말이다.
지금, 하메네이 정권은 바로 이런 인식을 이용해서 이란 민중 앞에 기만적 함정을 파놓고 '혼란과 내전, 외세의 개입을 원하냐? 아니면 나를 지지하라'고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거짓된 양자택일을 거부하고, 혁명이 왜 납치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진정한 승리를 일굴 수 있을지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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