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각서의 투자 구조만 놓고 보면, 한일 양국의 조건은 대동소이하다. 양쪽 모두 투자가 실패하면 미국 정부는 법적·재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익 배분도 기준 배분액까지 50 대 50, 초과분은 미국 90% 대 투자국 10%로 동일하다. 투자를 거부하면 관세 인상이라는 사실상의 페널티가 작동하는 것도 같은 구조다.
오히려 세부 조건에서는 한국 측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 몇 가지 있다. 한국 양해각서에만 '상업적으로 합리적(Commercially Reasonable)' 기준이 명시됐다. 미국의 자의적 투자 결정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다.
수익률 산정 기준도 한국은 20년 만기 미 국채를 사용하는 반면 일본은 6개월 단기금리를 쓴다. 장기금리 적용이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구조다.
투자 원금을 20년에 걸쳐 분할 회수할 수 있는 안전망 조항도 한국에만 있다. 협상단이 일본의 선례를 교훈 삼아 세부 조건에서 유리한 조건을 받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문제는 투자 구조 밖에 있다. 전략적 반대급부의 질적 차이다.
일본이 대미 투자의 대가로 받으려는 것은 헌법 개정에 대한 미국의 묵인이다. 이번에 자민당이 316석을 확보하면서 평화헌법 9조 개정이 현실적 의제로 떠올랐다. 개정되면 자위대는 정식 군대로 전환되고 집단자위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다. 일본 국회의 발의와 국민투표로 완성되기에 미국의 동의가 아니라 묵인만 있으면 된다. 한 번 달성되면 어떤 미국 대통령도 이를 되돌릴 수 없다. 비가역적 주권 회복이 된다.
한국이 받기로 한 것은 성격이 다르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 명시된 핵잠수함 건조 승인과 123 협정 개정을 통한 농축·재처리 권한이 핵심이다. 실현된다면 한국의 전략적 위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다.
그러나 실현 경로의 구조적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핵잠수함 하나만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국 원자력법 91조 c항에 따른 대통령 결정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의회 입법도 거쳐야 한다. 오커스(AUKUS) 선례가 있지만, 2021년 발표 후 국방수권법(NDAA)에 수권 조항이 삽입되기까지만 2년이 넘게 걸렸고, 첫 잠수함 인도는 2032년 이후로 예정돼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핵잠수함의 연료는 미국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하더라도 연료 공급이라는 고리를 통해 미국의 레버리지는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일본의 헌법 개정이 미국의 사후 간섭을 원천 차단하는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123 협정 개정은 더 까다롭다. 공동 팩트시트에는 '개정'이라는 단어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농축·재처리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지한다"는 표현에 그쳤다. 지지(support)와 개정(amendment)은 다른 차원의 약속이다. 약속의 구속력이 약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반기 동북아 전략 지형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3월 하순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방위력 확대나 미일 군사 협력 심화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나올 수 있다. 헌법 개정 자체는 2028년 참의원 선거까지 시간이 필요한 중기 과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미일간 안보 협력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한국의 상대적 협상 지위는 좁아진다. 미국이 한국에도 일본에 준하는 파격적 투자 이행을 압박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4월에는 시진핑-트럼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미중 관계의 방향이 재설정될 수 있다. 미중일 삼각 구도가 재편되는 와중에 한국이 명확한 전략적 성과 없이 투자금만 집행하게 된다면, 협상 지위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에게도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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