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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일본...이 대통령에게 남은 9개월, 세 가지가 필요하다

[강명구의 뉴욕 직설] 미국 중간선거 전이 유일한 기회...대미 투자, 안보 연계 없이는 선불 투자에 불과

26.02.11 06:58최종 업데이트 26.02.11 06:58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25년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 도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8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일본 자민당이 하원 316석을 확보했다. 전후 단일 정당 최다 의석이다. 헌법 개정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310석)를 넘겼다. 전후 80년간 미국이 씌운 평화헌법의 족쇄를 벗을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이다.

이 압승이 동북아 전략 환경을 뒤흔들 변수로 떠올랐다. 316석을 손에 쥔 지금, 일본의 대미 투자 전략은 헌법 개정에 대한 미국의 묵인 확보로 급선회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가 이를 곧바로 용인하지는 않겠지만, 3월 하순 예정된 다카이치 총리의 방미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더 파격적인 투자 이행을 약속하고, 트럼프가 방위 협력 심화라는 가시적 안보 양보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에선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미투자특별법 특위가 찬성 160, 반대 3으로 출범했다. 국회는 이 법을 25% 관세를 막기 위한 방어책으로 본다. 그러나 이 법이 진짜로 결정하는 것은 관세가 아니다. 통과 시점과 조건이 한국의 핵잠수함, 우라늄 농축권, 그리고 향후 50년의 전략적 자율성을 좌우한다.

대동소이한 투자 구조, 다른 전략적 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0월 28일 도쿄 영빈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양자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일본 총리실/UPI=연합뉴스

양해각서의 투자 구조만 놓고 보면, 한일 양국의 조건은 대동소이하다. 양쪽 모두 투자가 실패하면 미국 정부는 법적·재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익 배분도 기준 배분액까지 50 대 50, 초과분은 미국 90% 대 투자국 10%로 동일하다. 투자를 거부하면 관세 인상이라는 사실상의 페널티가 작동하는 것도 같은 구조다.

오히려 세부 조건에서는 한국 측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 몇 가지 있다. 한국 양해각서에만 '상업적으로 합리적(Commercially Reasonable)' 기준이 명시됐다. 미국의 자의적 투자 결정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다.

수익률 산정 기준도 한국은 20년 만기 미 국채를 사용하는 반면 일본은 6개월 단기금리를 쓴다. 장기금리 적용이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구조다.

투자 원금을 20년에 걸쳐 분할 회수할 수 있는 안전망 조항도 한국에만 있다. 협상단이 일본의 선례를 교훈 삼아 세부 조건에서 유리한 조건을 받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문제는 투자 구조 밖에 있다. 전략적 반대급부의 질적 차이다.

일본이 대미 투자의 대가로 받으려는 것은 헌법 개정에 대한 미국의 묵인이다. 이번에 자민당이 316석을 확보하면서 평화헌법 9조 개정이 현실적 의제로 떠올랐다. 개정되면 자위대는 정식 군대로 전환되고 집단자위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다. 일본 국회의 발의와 국민투표로 완성되기에 미국의 동의가 아니라 묵인만 있으면 된다. 한 번 달성되면 어떤 미국 대통령도 이를 되돌릴 수 없다. 비가역적 주권 회복이 된다.

한국이 받기로 한 것은 성격이 다르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 명시된 핵잠수함 건조 승인과 123 협정 개정을 통한 농축·재처리 권한이 핵심이다. 실현된다면 한국의 전략적 위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다.

그러나 실현 경로의 구조적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핵잠수함 하나만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국 원자력법 91조 c항에 따른 대통령 결정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의회 입법도 거쳐야 한다. 오커스(AUKUS) 선례가 있지만, 2021년 발표 후 국방수권법(NDAA)에 수권 조항이 삽입되기까지만 2년이 넘게 걸렸고, 첫 잠수함 인도는 2032년 이후로 예정돼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핵잠수함의 연료는 미국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하더라도 연료 공급이라는 고리를 통해 미국의 레버리지는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일본의 헌법 개정이 미국의 사후 간섭을 원천 차단하는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123 협정 개정은 더 까다롭다. 공동 팩트시트에는 '개정'이라는 단어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농축·재처리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지한다"는 표현에 그쳤다. 지지(support)와 개정(amendment)은 다른 차원의 약속이다. 약속의 구속력이 약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반기 동북아 전략 지형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3월 하순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방위력 확대나 미일 군사 협력 심화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나올 수 있다. 헌법 개정 자체는 2028년 참의원 선거까지 시간이 필요한 중기 과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미일간 안보 협력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한국의 상대적 협상 지위는 좁아진다. 미국이 한국에도 일본에 준하는 파격적 투자 이행을 압박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4월에는 시진핑-트럼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미중 관계의 방향이 재설정될 수 있다. 미중일 삼각 구도가 재편되는 와중에 한국이 명확한 전략적 성과 없이 투자금만 집행하게 된다면, 협상 지위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에게도 시간이 없다

지난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평화위원회'를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연합뉴스/AFP

시간은 한국에만 불리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이 점을 한국은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있다. 역사적으로 집권당은 중간선거에서 하원 의석을 잃는다. 지난 40년간 예외는 두 번뿐이었다. 현재 공화당 하원 의석은 220석으로 과반(218석)을 겨우 2석 초과한다. 민주당이 3석만 더 확보하면 하원이 뒤집힌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하원 상실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원을 잃으면 트럼프 정부의 입법 능력은 사실상 마비된다. 예산안, 세제 개편, 국방수권법 모두 하원 통과가 필수다. 두 번째 임기 대통령이 의회 장악력을 잃으면 레임덕은 가속화된다. 트럼프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 중간선거 전까지 가시적 성과를 최대한 쌓아야 하는 것이 트럼프의 정치적 절박함이다.

여기서 한국의 3500억 달러가 트럼프에게 갖는 의미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의 대규모 투자 이행은 트럼프에게도 핵심 성과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1월 30일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에서 한국과의 관세 협상을 '역사적 무역 합의'로 꼽으며, "한국기업들이 미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15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직접 거론했다.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트럼프의 간판 공약에 한국의 투자가 핵심 근거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특별법이 통과되고 첫 투자금 집행이 중간선거 전에 가시화되면, 트럼프는 이를 유권자에게 보여줄 구체적 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이 내는 돈은 트럼프의 정치적 자산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곧 한국에 협상 레버리지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안보 분야의 전략적 양보를 원하고, 트럼프는 눈에 보이는 투자 집행성과를 원한다.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지는 시점은 2026년 상반기가 사실상 유일하다. 트럼프가 중간선거 전에 한국의 투자 성과를 원하는 만큼, 한국은 투자 집행의 속도와 규모를 조절함으로써 안보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의 동시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불과 권리를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5년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대미 투자가 전략적 자산이 되느냐, 대가 없는 선불투자로 끝나느냐는 향후 9개월에 달렸다.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투자와 안보의 동시 진행이다. 특별법 통과와 첫 투자금 집행을 안보 협상의 구체적 진전과 연동시켜야 한다. 관세만 먼저 풀리고 안보가 뒤로 밀리면 한국의 협상력은 더 약화된다.

둘째, 일정의 명문화다. 핵잠수함 추진 기술 이전을 승인하는 대통령 결정(Presidential Determination)은 국무부, 에너지부, 국방부, 원자력규제위원회(NRC) 간 부처 조율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하는 행정 조치로,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수개월 내 가능하다. 올해 상반기 안에 발동 시한을 협상에서 못 박아야 한다. 2027년도 국방수권법(NDAA)은 6~7월 상하원 군사위원회 세부 심의가 사실상의 마감이다. 그때까지 수권 조항 포함을 합의해야 한다.

셋째, 단계별 이정표 설정이다. 투자금이 분할 집행될 때마다 안보 협상의 이정표를 맞물리게 설계해, 지불만 앞서가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부는 대미 안보 협상에서 구체적 일정과 이정표를 확보하고, 국회는 특별법에 투자와 안보의 연계 구조를 담아야 한다.

일본은 5500억 달러로 영구적 주권을 확보하려 한다. 한국이 3500억 달러를 내고 조건부 약속만 안고 갈 수는 없다.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 정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다. 향후 9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대미 투자를 안보 양보로 이끌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대미투자특별법 #핵잠수함 #관세협상 #일본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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