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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견디거나, 아니면 떠나거나

오동진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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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참상 담은 다큐 '노 어더 랜드'

살아남으려는 팔 청년, 그를 돕는 이스라엘 청년

오동진 영화평론가

다큐멘터리 <노 어더 랜드>는 처음엔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결국엔 두 젊은이의 얘기라는 걸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남부의 한 마을을 지키려는 팔레스타인 청년 바젤 아드라와 그를 돕는 이스라엘 기자 유발 아브라함이 그들이다. 다큐가 하려는 얘기가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이 둘을 찍는’ 영상과 ‘이 둘이 각각 찍어 내는’ 영상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장편 다큐멘터리의 감독 명단에는 바젤과 유발 두 사람이 포함돼 있다. 또 다른 감독 둘은 이들과 함께 마을의 시위와 반이스라엘 운동을 조직하고 함께 활동하는 함단 발랄과 레이철 졸이다. <노 어더 랜드>는 이스라엘 극우 네타냐후 정권이 서안 지구를 사실상 점령하기 위해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나가는 한편, 백 년 넘게 살아 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그들의 마을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참극을 기록한 작품이다. 기록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가 중심을 이루지만 다큐의 서사는 유발의 어린 시절과도 연결되면서 그 이전의 기록도 종종 오간다. 무엇보다 이 기록은 2026년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60년 넘은, 그러나 현재진행형인 2019년~2023년 이야기

(요르단강) 서안 지구란 지도상으로 이스라엘 우측과 요르단 국경 사이의 땅을 말한다. 제주도의 약 세 배에 이르는 면적으로 3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해 왔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현재 60만 명 정도이며 이 지역의 모든 차별과 갈등 분쟁을 일으키는 장본인들이다. 이슬람의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이 여기 서안에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소위 ‘6일 전쟁’이라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의 전과로 이 땅을 점령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유럽 대다수의 나라들은 서안을 팔레스타인의 독립 영토로 주장하고 인정했으며 30여 년의 갈등과 분쟁, 곧 인티파다(intifada, 레지스탕스, 봉기란 뜻) 운동 끝에 1993년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 사이에 오슬로 협정(빌 클린턴이 중재 외교를 펼쳤다)이 맺어졌다. 양측은 가자 지구와 서안의 일부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치권 인정과 향후 5년 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에 합의했다. 이 협정으로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이었던 시몬 페레스, 아라파트 의장 세 명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라빈은 그 직후 이스라엘 극우파 청년에 의해 암살된다.

오슬로 협정에도 불구하고 라빈 암살 후 이스라엘은 가자·서안 지구 내에 유대인 정착촌 및 군사 훈련장을 건설한다는 미명으로 군을 동원한 불법적인 강제 철거 작업을 벌이고 해당 유대인 촌락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장벽을 설치하는 등 의도적으로 갈등을 유발해 왔다. 특히 유대인 정착민들은 스스로 무장하고 비무장 상태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 폭력 사태를 일으켜 왔다. 2023년 레바논에 기지를 둔 무장단체 하마스가 대대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외견상 가자 지구 때문인 것 같지만 실상은 서안 지구에서 자행되는 이스라엘군과 유대인 정착민들의 폭력 사태가 누적된 결과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모든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고,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서안을 전부 장악하고 유대인 주민으로 이곳을 채우려는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 <노 어더 랜드>는 지난 6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서안 지구의 영토 갈등을 서안 남부의 한 마을, ‘마사페르 야타’에서 벌어지는 강체 철거 반대 싸움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대를 이은 팔레스타인 투쟁가와 그를 돕는 이스라엘 청년 기자

다큐를 이끌어 가는 팔레스타인 청년 바젤 아드라는 아버지 대부터 활동가로 살아 온 집안의 인물이다. 원래는 법대를 다녔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하급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 뻔한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학업을 중단하고 활동가가 됐다. 그의 아버지 나세르 아드라 역시 철거 반대 투쟁에 앞장서 왔으며 몇 번의 투옥을 경험했고 지금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작은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빈번하게 수색과 체포를 벌이는 이스라엘군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실제로 나세르는 다큐 중간에 또 한 번 체포되기도 한다.

<노 어더 랜드>의 특이점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치 투쟁 및 인권 운동에 이스라엘 청년 기자 유발 아브라함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유발은 마사페르 야타에 들어 온 유대인들에게 사진을 찍히는 등 위협을 받기 일쑤다. 어떤 유대인은 그를 폰 카메라로 찍으며 이렇게 협박한다. “팔레스타인을 돕는다는 유대 놈이군. 네 얼굴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너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유발 아브라함은 바젤이 사는 마사페르 야타 옆 동네인 베르셰바에 거주하며 양쪽을 자유롭게 오간다. 서안에서 이스라엘인들은 노란색 번호판과 신분증을 갖고 다니며 어떤 곳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차 번호판은 초록색이며 이동이 제한된다. 도로도 이스라엘 차가 다닐 수 있는 곳과 팔레스타인인들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분리돼 있다.

 

이스라엘인들의 집을 짓는 팔레스타인인들 집을 부수는 이스라엘인들

유발은 이스라엘 방송이나 이스라엘에 지사를 둔 미국 방송사에 출연해 마사페르 야타 지역의 폭력 사태를 고발한다. 그의 활동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인 유발을 바라보는 팔레스타인 바젤의 시선은 때론 매우 회의적이다. 바젤은 유발에게 말한다. “넌 언제나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가려고만 해. 그런데 여기 사태는 빨리 끝날 수 있는 게 아니야. 오랫동안 싸울 수밖에 없어. 인내가 필요한 일이야.” 바젤은 지속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비폭력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바젤은 중간중간 매우 지치고 힘들어한다. 바젤은 어느 날 유발에게 같이 몰디브 같은 곳으로 도망가자고 말한다. 바젤의 아버지 나세르는 유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을 위해 집을 짓지.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파괴하지.” 유대인 정착촌을 늘리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이 폭력 행사를 멈추지 않는 한 서안 지구에 평화는 오지 않을 것임을 명쾌하게 짚는 대목이다.

영화 <노 어더 랜드>는 서안 지구의 평화라는 이슈를 넘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영구적 분쟁 종식, 더 나아가 중동지역 전체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돼야 하는지를 자각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 청년 바젤과 이스라엘 청년 유발처럼 ‘시대적 고민’을 공유하는 양측의 ‘시대적 인물’들이 결합해야 함을 보여 준다. 유발 아브라함처럼 이스라엘 내에서 정치적으로 자각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하며 이스라엘 사회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선돼야 함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철거된 마을의 비품을 옮기면서 유발은 마을의 누군가에게 이런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까지 한다. ‘이스라엘인인 너를 우리가 언제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럼에도 그 마을 사람조차 유발과 같은 젊은이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는 집기 나르는 일을 같이 가자고 하면서 유발과 계속 토론해보자고 말한다. 그 대목은 이 다큐에서 아무 장면도 아닌 척, 사실은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다.

 

이 참담하고 어이없는 이야기에 쏟아진 수많은 상들

바젤과 유발의 철거 반대 투쟁, 그 투쟁을 기록하는 취재·촬영 중간에 마을 청년 하룬 아부 아람은 이스라엘 군대가 마을 발전기까지 가져가려 하자 거기에 맞서다 총을 맞는다. 하룬은 전신마비가 되고 투병하다 고통 끝에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하룬 아부 아람의 죽음은 이스라엘 정부의 야만성, 잔혹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 다큐의 제목 ‘노 어더 랜드’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돌아갈) 다른 땅은 없다 (오직 여기 서안 땅뿐이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바젤은 말한다. “결국 우리에게 선택은 두 가지이다. 땅에서 떠나거나, 땅에서 견디거나.” 이 다큐를 보고 있으면 점점 분노가 치밀어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2024년 제7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부문(신인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다) 관객상을 탄 이후 2025년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LA와 시카고 비평가협회는 다큐멘터리상을, 전미비평가협회에서는 다큐멘터리상과 특별상을 수여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3월 4일 개봉했지만, 총 관객 수는 2천 명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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