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세계 질서를 대개 무질서, 다극화, 대전환으로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북에서는 혼란과 격변이라고 표현하는데요. 다시 한번 우리 사회 진보의 과제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 문제는 식민지체제에 경제는 몇십년간 종속된 조건에서 답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 거죠. 해명도 안되고...
진보의 과제는 대체로 주권과 평화, 평등과 민생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평등과 민생문제 해결은 해방 이후 계속 이어져 온 문제이기도 하죠.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워도 계속 설득하고 개조하는 과정이 수반되는 장기적 과제가 될 공산이 클겁니다.
우리의 경우 자본주의가 전일화된 기간도 오래되었고 워낙 이해관계의 충돌이 큰 일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주권이 없으니까 그 자체가 불가능하잖아요.
결국 평등사회로 가려고 해도 주권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정치권력의 성격에 관한 문제라고 봐야겠죠. 정권의 힘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아직은 거기까지 못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지금 전 세계가 극심한 혼돈의 시대라고 하죠. 우리 내부도 그렇구요. 5년전의 세계와도 완전히 다른건데, 정치적 역량이나 전망을 포함해서 진보가 많이 부족합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한 정치집단이 대중을 묶어 세우고 그 힘을 발휘해서 전진해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부재하고 모색하는 중이라고 봐야겠죠.
거칠게 분류하면, 주권과 평화를 고민해 온 진보의 한 흐름은 제도권으로 들어가서 중도 보수화됐고, 평등과 민생을 강조하던 세력은 다원주의, 서구식 사민주의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애요.
□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위기라고 볼 수 있겠군요.
■ 위기라는 생각까지 하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낙관합니다. 지금 대중들은 예전보다 아주 빠르게,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도 파악하고 있어요. 아무튼 운동 주체 세력도 혼란을 겪고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해결의 방향과 방법을 찾아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안에 해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중들은 엄청나게 지혜롭습니다. 남은 건 운동 주체세력의 역할이겠죠. 사회운동에서 진보의 재정립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연 진보가 뭐냐?라는 거죠.
□ '진보의 재정립'이라는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요?
■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어서 예전 박정희 시절에는 '유신독재 철폐'가 진보였다면, 지금 진보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주권과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중 핵심은 주권문제인데, 국가·정치·군사영역 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까지도 실제로 좌우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조선소같은 건 아주 중요한 우리의 재부이잖아요. 이 산업이 잘돼야 되는데, 그렇다고 전부 중소기업으로 하자고 해서는 안되거든요. 투자도 해야 되기 때문에 개별기업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국가차원의 결정이 있어야죠. 그런데 지금 우리 경제는 이런 자립적 경제능력과 재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주권 영역에서 가로막혀 있는 거죠. 삼성이나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반도체산업을 발전시키는 건 맞는데 미국이 아니라 우리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중도보수의 이념과 가치는 한계 봉착할 것
□ 민주당은 중도 보수를 표방하고 나머지 거대 정당 중 한 곳은 극우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진보의 자리가 공백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 공백을 메워야 할까요?
■ 진보가 더 크게 역량을 강화하려면 세 축이 있겠다, 먼저 정당으로 표현되는 정치역량입니다. 그 다음은 대중조직과 전선역량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제일 중요한 게 정치역량이죠.
특별한 왕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보기에 대중들이 지금 이재명 정권에 환호를 보내는 건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윤석열 잔존세력이 버티고 있으니까 더욱 그런거에요. 뒤집어보면 드디어 오래된 식민지체제의 뿌리가 다 밝혀지고 있는 거죠.
사법부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대충 고상한 척하면서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서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제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내고 있어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히 국제규범이다 뭐다해서 체면도 차렸는데, 지금은 그렇게 감당이 안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완강한 식민지체제의 기득권 뿌리와 그에 부역하는 세력들이 아직 남아있는 조건에서 그것들과 대항하는 현 정권에 대중들이 환호를 보내고 지지하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100% 만족하느냐고 물어보면 '뭐 한계가 있지,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 거든요.
그런데 진보진영이 부족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줄기차게 투쟁하고 의식화하며 힘을 키우는 과정은 아주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봅니다. 먼저, 지금의 현 정권이 표방하는 중도보수의 이념과 가치로는 경제와 안보를 다루는데서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안보문제만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정책이 시행되고, 그에 대해 미국의 압박은 더 강해질 것 아닙니까. 미국의 이란 공격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미국 입장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사정을 봐 줄 여유가 없잖아요. 더 강압적이고 노골적으로, 아주 폭력적으로 나올 거애요.
경제문제는 더 말할 게 없죠. 주식시장이 6천을 향해 곡선을 그리든 말든 이미 기초가 허물어지고 있잖아요. 이럴 때 현 정부의 한계가 보이면 수구보수세력이 틈을 노리고 역전시키려고 나오겠죠. 그렇게 돼서는 안될 일이잖아요. 그게 좀 어려운 대목이긴 합니다.
□ 전국민중행동에서 대전환의 시대를 대비하는 연구활동같은 걸 준비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노동자, 농민에 비견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데 이들이 몸담고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연구가 정말 필요합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우리의 힘이 못미치네요.
□ 2년 전부터 시작해서 작년 1년과 지금까지 내란 청산, 사회대개혁이라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달려왔는데요. 그동안 어떻게 진행됐는지 평가해 주신다면요.
■ 지금도 진행형이죠. 내란청산 과제는 워낙 많고, 사회대개혁도 각 영역이 있잖아요. 광장의 요구에 비해서는 많이 미흡한 내용이고 속도도 느립니다.
결국 내란청산과 사회대개혁 과제는 진보진영의 투쟁과 힘만큼 가게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기성 정치권은 광장에서는 다 약속하거든요. 그러다 나중엔 달라지죠.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힘이 그 수준을 좌우할 겁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사회대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부, 시민사회단체, 정당들이 모여서 각 영역별로 한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조금 진척을 보이는 일도 있고 어떤 일은 속도가 안나거나 수위가 낮아지는 것도 있어요. 곧 지방선거인데, 그런 건 아직 손도 못대고 있죠.
정부 산하에 민관위원회를 만들었고, 그러면 정부 입장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 그 추운 겨울에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간절하게 희망과 연대를 이야기했는데, 눈녹듯 사라져 버린 느낌도 있는 것 같습니다.
■ 결국은 조직화된 역량이 돼야 된다는 걸 절감하죠. 광장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아주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예외이겠지만요. 노동자들 중에서도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에 취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취업할 곳이 없거나 불안정합니다. 기껏 월급 3백만원을 받아도 집세 내고 밥 사먹고 하면 남는게 없어요. 희망이 절벽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게 아니에요.
희망이 절벽이라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조직화된 힘이 없으면 울분을 토로하는 것밖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조직화된 힘이 정말 필요합니다.
북, '적대적 두 국가론'...'자주권'이 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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