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의 기억 조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집회 불허로 웅성거리던 노조사무실, 사복 경찰의 사찰 채증과 발각, 광부 무리를 향해 그대로 돌진한 경찰 지프, 바퀴에 깔리고 튕겨나간 광부들, 초죽음이 된 광부들을 버려두고 달아난 경찰들, 그 뒤를 쫓아 사북 지서로 몰려갔던 수백 명의 광부들. 이것은 절대로 '교통사고'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국가폭력의 가학적인 장면이자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그런데 이것이 교통사고로 기록되는 순간, 광부 원일오에 대한 기억과 사건의 운명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2020년 미니애폴리스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의 이름과 가해자 데릭 쇼빈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었지만, 1980년 사북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이름도, 가해자 경찰의 이름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왜 어떤 사회에서는 공권력이 저지른 폭압을 분명히 단죄하고 희생자의 이름을 기록하는데, 왜 우리는 공권력의 폭압과 비열한 도주 행위를 '교통사고'로 취급하며 아무도 단죄하지 않는가?
1980년 4월 21일 사북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해 신군부는 많은 진실을 감추어 왔다.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첫 장면이자 아직 복원되지 않은 진실 중 하나는, 바로 경찰 지프차에 깔려 초죽음에 몰린 광부 원일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첫 장면을 온전히 복원하지 않는 한, 사북사건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여전히 신군부가 조작해 낸 허상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사북사태"만이 신군부의 언어가 아니다. 사북사건을 설명하면서 계속 등장하는 "교통사고", "역상사고"라는 말도 결국은 신군부의 언어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눌려 희생당한 검은 약자 조지 플로이드를 기억하는 당신이, 경찰 지프차에 깔려 시름시름 앓다 죽어간 사북의 검은 광부 원일오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결국 아픈 질문으로 이렇게 돌아온다.
"우리는 무엇을 잊도록 길들여졌는가?"
많은 사람들이 사북 사건의 첫 장면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과거사 조사관들에게 그 장면이 여전히 교통사고의 순간으로 남아 있는 한, 이 사건은 진실이 규명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왜곡된 역사는 언제든 진실을 짓누를 것이며, 기억되지 않은 폭력은 언젠가 더 잔혹한 형태로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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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www.jcrc.kr(정선지역사회연구소 1980사북 특별페이지)에도 실립니다. 저자는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사북항쟁과 국가폭력>(지식공작소, 2021)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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