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행정 DNA는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취임 직후 전임 정부 장관들을 모두 소집해 3시간 40분에 걸친 국무회의를 열고 각 부처 현안을 일문일답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국무회의를 유튜브로 생중계해 국민에게 정부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 실험도 단행했다. 전국을 돌며 타운홀 미팅을 열어 지역 현안에 대한 시민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은 경기도지사 시절 체득한 현장 중심 행정의 연장선이다. 그 결과 국정 지지도는 취임 이후 꾸준히 상승해 현재 65%~70%를 상회하고 있다. 행정 경험이 단순한 이력이 아닌 국정 운영의 핵심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작은 주의 성과를 전국화 하겠다“ 주지사 출신 미국 대통령들
자치단체장 출신이 지방 행정 경험을 발판으로 대권을 거머쥔 사례는 미국 정치사에서도 흔하다. 역대 45명의 미국 대통령 중 17명이 주지사 출신이다. 주지사 경력이 대통령직으로 가는 가장 유력한 경로 중 하나였음을 숫자가 분명히 말해준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조지아 주지사 시절 인종차별 철폐와 행정 개혁을 단호하게 추진하며 ‘청렴한 개혁가’ 이미지를 구축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강한 반발에도 주 정부 내 흑인 인사 발탁을 주저하지 않았고, 행정 시스템의 투명성을 크게 높였다. 이러한 개혁 이미지는 워터게이트 이후 도덕성 회복을 갈망하던 미국 사회의 시대정신과 정확히 맞물리며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뉴욕 주지사 시절 대공황에 맞서 공공사업과 실업 구제 정책을 과감히 시행하며 ‘뉴딜’의 초기 모델을 실험했다. 주지사 시절의 정책은 대선 공약으로 발전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토대가 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아칸소 주지사로서 교육 개혁과 친기업적 경제 정책으로 ‘신민주당(New Democrat)’ 이미지를 만들었고, “작은 주에서 성과를 낸 사람이 이제 전국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메시지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성공 보다 실패 많은 한국의 단체장 출신들 대선 가도
그러나 광역단체장 경력이 대권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는 결코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도 이명박·이재명이라는 두 성공 사례 뒤에는 수많은 좌절의 역사가 존재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환승 체계 구축 등 가시적 성과로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광역단체장 성공 모델’의 원형이었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 역시 이 모델을 벤치마킹해 용산 국제업무센터, 한강버스 등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시대 흐름과 어긋나는 대형 토목 사업에 매몰되며 지지율이 급락했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에서 민주당 후보들에게 밀리는 처지가 됐다.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한때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꼽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성범죄로 구속되는 비극으로 마침표를 찍었고, 조순 전 서울시장, 이인제·손학규·남경필 등 경기지사 출신들과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한때 대권 주자로 주목받았으나 퇴임 후 정치적 존재감이 빠르게 희미해지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 역시 행정 경험만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그는 성남시장이라는 ‘지방 정치의 변방’에 있었다. 그러나 청계천 광장 규탄집회에 직접 나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사자후를 외치며 정치적 격동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정치권에서 대통령 탄핵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었다. 그의 주장은 촛불 집회가 대규모 탄핵 시위로 번지는 도화선이 됐고, 이재명은 단숨에 대선 주자 대열에 합류했다. 행정 역량에 시대를 읽는 정치적 감각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그의 서사가 완성된 것이다.
조직력과 계파 정치 대체한 후보의 실제 역량과 정책 성과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은 한국 정치의 대권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조직력과 계파 정치가 승패를 좌우했다면, 이제는 후보의 실제 역량과 정책 성과에 대한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가 더욱 강력한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한국 정치의 체질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 변화는 이번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민 중심의 구청 행정’으로 성동구 주민 9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유력 서울시장 후보로 부상한 그는, 화려한 슬로건보다 구체적 성과를 앞세우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산물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민주당 중량급 인사들은 당선 후 각자의 방식으로 이재명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하며, 임기 중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크게 늘어난 중도 성향의 ‘뉴이재명’ 지지층은 정책 성과를 최우선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광역단체장들은 취임 첫날부터 ‘성과 시계’를 돌려야 하는 압박에 놓이게 됐다.
민주당의 광역단체장 러시는 향후 정치 일정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는 2030년 3월, 지방선거는 같은 해 6월이다.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에 당선돼 이재명 대통령처럼 뚜렷한 성과를 쌓는다면, 자연스럽게 대권 경쟁의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여기에 정청래 민주당 대표, 김민석 총리, 송영길 전 대표, 조국 혁신당 대표 등까지 가세할 태세여서, 범여권 대권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최종 성공 여부는 당선 자체 아닌 당선 후의 성과에 달려
그러나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더라도 진짜 시험은 그 이후부터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을 석권했음에도 4년 뒤 참패를 자초했던 아픈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당시 참패는 문재인 정부 말기 부동산 폭등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 대선에서 패배한 데 기인한 바 크지만, 압승 이후 지방자치단체와 중앙당·중앙정부 간 유기적 협력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지역 주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끝내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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