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서 배달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유류비 폭탄은 온전히 기사 몫
두부, 감자, 채소 등이 소비자에게 가려면 한 단계가 더 남았다. 물류회사의 트럭에 실려 서울로 가야 한다. 1톤(t) 탑차를 모는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F씨는 매일 길 위에서 전쟁의 여파를 실감한다. 그의 집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 배송 구역은 인근의 하계동이다. 하지만 매일 35㎞ 떨어진 경기 포천의 CJ대한통운 서브(Sub)터미널로 가서 그곳에서 택배 물건을 싣고, 다시 36㎞를 되돌아와 하계동 집마다 배달한다. 일주일이면 어김없이 F씨의 탑차에 주유 경고등이 켜지고, 그때마다 50ℓ씩 연료를 가득 채워야 한다.
전쟁 직전 8만원(ℓ당 1600원대)이던 주유비는 지난 3월 중순 9만~9만1000원(ℓ당 1820원대)으로 뛰더니, 4월 2일에는 약 9만6000원(ℓ당 1910원대)이 됐다. “기름값이 무섭게 오른다”는 그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정부의 2차 최고가격제(경유는 ℓ당 1923원)로 가격이 묶이지 않았다면 부담은 더 컸을 것이다. F씨는 “충북 옥천이나 대전 등 CJ대한통운의 허브(Hub)터미널까지 장거리를 이동하는 기사들의 기름값 부담은 더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F씨는 원청(CJ대한통운)과 하청업체 지시를 받지만, 법제도상으로는 개인사업자 성격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된다. 원청이 지급한 배달료에서 하청업체가 10%의 수수료를 떼고 남은 금액이 그의 몫이 된다. F씨는 “수수료율을 10%에서 9%로 조금이라도 낮춰주거나, 원청이 유류비를 보전해주거나, 20년간 동결된 택배비를 인상하는 식의 분담을 원하지만 그런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식료품이 담긴 택배가 서울의 가정집에 도착해 식탁에 오른다. 두부와 감자, 채소 가격은 아직 그대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누군가의 월급이 줄었고, 누군가는 다가올 농사를 걱정하거나 공장 가동 중단을 고민하고 있다. 이란 전쟁 한 달. 먼 곳에서 발송된 전쟁의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청구서는 가장 약한 곳부터 들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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