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책에서 마지막 제언이 지금 정부가 말하는 생산적 금융과 닿아 있다"라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축은 많은데 국내에서 그 돈을 받아 생산적으로 투자할 곳이 부족한 게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라는 진단이었다. 그래서 돈이 부동산에 머물거나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부동산 문제도 단순히 집값의 문제가 아니라, 자금이 어디로 흐르느냐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그의 말도 귀에 걸렸다. 현직에 있을 때는 "말 한마디가 곧 시장 개입으로 읽힐 수 있어서 뻔한 얘기밖에 못 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시장이 과열된 해석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환율이 오르면 곧바로 위기론, 투기론이 쏟아지고, 유튜브와 정치권이 이를 증폭하는 상황에서, 전직 중앙은행 인사로서 구조적 배경을 설명하는 게 오히려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 방향? "민생중심으로 정책 설계는 맞다"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웠다. 특정 정책의 디테일까지 평하는 것은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거시적 방향에 대해서는 비교적 분명했다.
"지금 정부 경제팀이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매크로적(거시경제적)으로 단단하고, 마이크로적(미시경제적)으로도 잘 아는 분들이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이제는 부동산 중심에서 금융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고, 국민들도 직접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시대죠. 또 재정을 확대하고 민생 중심으로 정책 자체를 설계하는 방향도 맞다고 봐요."
책에서 강조했던 생산적 투자, 미래 산업으로의 자금 이동, 환율 변동성에 대한 시장 구조 보완 같은 제언이 지금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그는 끝까지 신중했다. "디테일은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라면서도, "큰 방향 자체는 맞다"고 평가했다.
인터뷰 말미,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왔다. <돈의 변신>은 단순히 화폐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돈이 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한국 경제의 위기와 기회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숭실대 연구실에서의 긴 대화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환율도, 부동산도, 중앙은행도 결국은 같은 질문으로 모였다. "돈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라고.
이승헌 전 부총재는 그 질문 앞에서 "서둘러 '위기'와 '공포'를 말하지 말자"라고 했다. 위기라는 말보다 먼저 구조를 보자고 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지금 한국 경제를 읽는 가장 차분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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