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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2주기, 아이들은 노란 리본에 '트럼프 OUT'이라 썼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4/17 09:48
  • 수정일
    2026/04/17 09:5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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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적어 매단 노란 리본에는 '잊지 않겠다'는,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란 전쟁을 떠올리며 반전의 메시지를 적은 것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 서부원

어느덧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았다. 올해 우리 학교의 추모 행사 주제는 '하느님은 전쟁을 축복하지 않는다'로 정했다. 교황 레오 14세가 최근 X(엑스, 옛 트위터)를 통해 올린 이 짧은 '선언문'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당면한 현실적 상황에 가장 부합한다고 여겨서다.

이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촉발한 이란 전쟁에 대한 전 세계 가톨릭 수장의 반전 선언이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바티칸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돈에 대한 우상숭배도, 권력 과시도 이제 그만하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란 문명을 멸망시키겠다"라는 트럼프를 향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척점에 섰다.

잠자코 있을 트럼프가 아니다. 교황을 향해 "정신을 차리라"고 발끈하며 "급진좌파에 영합하는 걸 멈추라"고 몰아붙였다. 심지어 그가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았을 거라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급기야 같은 국가 출신인 교황과 정치권력이 정면충돌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맞는 세월호 참사 12주기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기억에 한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돈 보다 생명'이라는 구호의 범위를 세계로 넓혔다

세월호 참사 12주기 이틀 전날 저녁, 학생자치회 친구들이 학생자치회실에 모여 각 학급에 나눠줄 리본을 자르고 배분하고 있다. ⓒ 서부원

세월호 참사로 절실하게 깨닫게 된 '돈보다 생명'이라는 구호의 범위를 세계로 넓히기로 했다. 참사와 전쟁의 차이일 뿐,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 당했다는 점에선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번 전쟁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떠안기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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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미국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란의 민주화를 돕겠다고 했다가,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젠 '승전국'으로서 전리품을 챙겨야겠다며, 전쟁의 대가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란이 징수하겠다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세를 나누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왔다.

전쟁을 일으킨 목적조차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뇌리에 남은 건, 호르무즈 해협으로 상징되는 석유의 위력뿐이다. 폭격으로 희생 당한 숱한 사람들의 주검조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시나브로 희미해지고 있다. 이란과 미국 등의 당사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주판알만 퉁기는 상황이 참담하다.

이 와중에 나온 교황의 일갈은 '돈보다 생명'이라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맥락이 맞닿아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당시 공감 능력이 거세된 무능한 지도자의 실상을 마주하며 가슴을 쳐야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물욕과 권력 과시욕에 취한 한 지도자의 난동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두 달째 모든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한 이란 전쟁으로 학교에서 잊힌 채 지나칠 뻔했던 12주기 추모 행사를 교황의 일갈이 되살려낸 셈이다. '잊지 않겠다'는,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추모의 대상이 이란 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들로 확대됐다. 얼마 전 미군의 오폭으로 17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희생된 참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작년엔 학생자치회에서 교정 곳곳에 노란 바람개비를 꽂고 노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기억을 되살렸다. 올해는 기억과 추모의 대상이 늘어난 만큼 아이들 각자의 다짐과 바람의 글을 노란 리본에 적어 끈에 묶어 걸기로 했다. 수업 교실을 오가며 '노란 리본의 물결'을 볼 수 있도록 복도에 공간을 마련했다.

리본에 적힌 글귀는 이란 전쟁과 관련된 내용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옆으로 '전쟁 NO, 평화 YES', '이란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나의 기도가 이란에 닿기를', '트럼프 OUT' 등의 바람을 적었다. 자연스럽게 '반전(反戰)'이 올해 추모 행사의 키워드가 됐다.

세월호 참사 되새기며, 이란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하느님은 그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는 교황 레오 14세의 일갈이 올해 세월호 참사 12주기 추모 행사 주제가 됐다. 학생자치회 친구들이 교문에서 캠페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서부원

학생자치회 주도로 아침 등굣길 캠페인 활동부터 시작했다. 올해 추모 행사의 주제를 홍보하고 친구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사전에 제작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언제부턴가 그들의 손목에 채워진 노란 고무링이 학생자치회 임원임을 알리는 '신분증'이 됐다.

청소 시간과 점심시간에 트는 교내 방송도 세월호 참사 추모곡으로 채워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우리 학교의 전통이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려주는 것처럼, 4월 16일엔 '천 개의 바람 되어'와 '아직, 있다', '노란 리본' 등의 노래가 오늘의 '주크박스'다.

점심시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번개 음악회'도 추모 행사의 일환이다. 이번엔 교사가 아닌, 아이들이 나섰다. '천 개의 바람 되어'와 '네버 엔딩 스토리' 등 그들에게 익숙한 곡으로 정했다.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데 노래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다. 함께 듣고 노래하면 추모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계기 수업도 빠질 수 없다. 여러 추모 행사로 '동기 부여'가 됐다면, 수업을 통해 '살'을 붙이고 배움이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예년의 경우엔 안전 교육 일색이었는데, 올해는 나눌 이야기가 훨씬 다채로워졌다. 참고로,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은 국가가 공식 지정한 '국민 안전의 날'이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 주를 '안전 주간'으로 설정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당장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 이란의 역사 등에 대해 질문하는 아이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추모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정확하게 답해 줄 깜냥이 못 되어 전자 칠판에 중동 지역의 지도를 띄워놓고 AI의 도움을 받으며 수업을 이어 나갔다. 어설펐지만, 아이들의 눈은 그 어떤 수업보다 초롱초롱 빛났다.

이란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기, 승, 전, 트럼프'로 귀결됐다. 대화가 오갈수록 전쟁조차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트럼프를 향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신정 국가인 이란에 대해 호의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이란 공습을 두둔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이들 대다수는 핵 개발을 막는다는 건 허울일 뿐, 트럼프가 석유를 약탈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 여겼다.

트럼프를 향한 증오심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몰래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납치해 가고,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종주국이 맞는지 반문했다. 이 와중에도 탄핵하지 못하는 미국의 정치 제도가 우리보다 후진적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이란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건 다 석유 때문이라며, 이참에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조그만 나라 이란이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것도 다 석유 때문 아니냐는 거다.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조차 산유국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도 했다.

해마다 해오던 계기 수업이었지만, 올해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매조지게 됐다. 석유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동차를 덜 타고, 플라스틱 제품을 덜 쓰는 습관을 갖자고 서로 다짐했다. 2026년 4월은 세월호 참사보다 이란 전쟁으로 기억될 성싶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란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고 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운해하실 것 같진 않다.

#세월호참사12주기#이란전쟁#국민안전의날#계기수업#번개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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