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회 주도로 아침 등굣길 캠페인 활동부터 시작했다. 올해 추모 행사의 주제를 홍보하고 친구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사전에 제작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언제부턴가 그들의 손목에 채워진 노란 고무링이 학생자치회 임원임을 알리는 '신분증'이 됐다.
청소 시간과 점심시간에 트는 교내 방송도 세월호 참사 추모곡으로 채워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우리 학교의 전통이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려주는 것처럼, 4월 16일엔 '천 개의 바람 되어'와 '아직, 있다', '노란 리본' 등의 노래가 오늘의 '주크박스'다.
점심시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번개 음악회'도 추모 행사의 일환이다. 이번엔 교사가 아닌, 아이들이 나섰다. '천 개의 바람 되어'와 '네버 엔딩 스토리' 등 그들에게 익숙한 곡으로 정했다.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데 노래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다. 함께 듣고 노래하면 추모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계기 수업도 빠질 수 없다. 여러 추모 행사로 '동기 부여'가 됐다면, 수업을 통해 '살'을 붙이고 배움이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예년의 경우엔 안전 교육 일색이었는데, 올해는 나눌 이야기가 훨씬 다채로워졌다. 참고로,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은 국가가 공식 지정한 '국민 안전의 날'이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 주를 '안전 주간'으로 설정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당장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 이란의 역사 등에 대해 질문하는 아이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추모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정확하게 답해 줄 깜냥이 못 되어 전자 칠판에 중동 지역의 지도를 띄워놓고 AI의 도움을 받으며 수업을 이어 나갔다. 어설펐지만, 아이들의 눈은 그 어떤 수업보다 초롱초롱 빛났다.
이란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기, 승, 전, 트럼프'로 귀결됐다. 대화가 오갈수록 전쟁조차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트럼프를 향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신정 국가인 이란에 대해 호의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이란 공습을 두둔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이들 대다수는 핵 개발을 막는다는 건 허울일 뿐, 트럼프가 석유를 약탈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 여겼다.
트럼프를 향한 증오심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몰래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납치해 가고,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종주국이 맞는지 반문했다. 이 와중에도 탄핵하지 못하는 미국의 정치 제도가 우리보다 후진적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이란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건 다 석유 때문이라며, 이참에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조그만 나라 이란이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것도 다 석유 때문 아니냐는 거다.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조차 산유국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도 했다.
해마다 해오던 계기 수업이었지만, 올해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매조지게 됐다. 석유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동차를 덜 타고, 플라스틱 제품을 덜 쓰는 습관을 갖자고 서로 다짐했다. 2026년 4월은 세월호 참사보다 이란 전쟁으로 기억될 성싶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란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고 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운해하실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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