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합리한 비극이 관철된 이유는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있었다. 아랍인들의 의문에 대한 답은, 서방의 강대국들이 중동에서 석유를 빼앗아가고, 아랍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같은 자신들의 전초기지(경비견) 국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에 있다. 결국, 서방 강대국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도운 것은 '속죄'가 아니라 '범죄'였다.
이스라엘 정부가 비판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 가장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는 세 번째 신화는 '반시온주의는 곧 반유대주의'라는 거짓말이다. 이들은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민족 전체에 대한 증오로 치환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 시온주의는 극단적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전쟁과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시온주의는 1930년대 나치에서 이어진 새로운 파시즘의 대표적인 갈래라고 할 수 있다. 나치가 '게르만족의 사명'을 내세워 타 민족을 절멸시키려 했듯, 오늘날의 시온주의는 '성서적 권리'를 내세워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하고 말살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국제 극우 네트워크의 핵심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배타적 민족주의, 소수자 혐오, 그리고 폭력에 의한 통치를 공유하며 서로를 돕는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혐오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그 구조는 동일하다는 점에 있다. 30년대의 파시즘이 희생양 삼았던 것이 유대인이라면, 오늘날의 신파시즘이 희생양 삼는 것은 무슬림이다. 유대인 혐오는 이슬람 혐오로 변화하고 발전해 있다.
1930년대 파시즘의 피해자였던 유대인의 이름을 빌려서, 오늘날 새로운 파시즘의 피해자인 아랍인과 무슬림들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대공황의 위기가 1930년대에는 '유대인 피해자'를 필요로 했다면, 오늘날은 '유대인 가해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극우 인종주의와 파시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유대주의만큼이나 시온주의에도 철저히 반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유대인 학살'과 비교한 것은 시의적절했고, '홀로코스트를 경시'한 것이긴커녕 이러한 역사의 비극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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