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빅터 차가 빅터 차를 반박한다
국제정치학에 '동맹 안보 딜레마'라는 개념이 있다. 1984년 글렌 스나이더가 《세계정치》에 발표한 이론이다. 핵심은 이렇다. 동맹 안에서 약소국은 두 가지 공포를 동시에 안고 산다. 하나는 방기이다. 강대국 동맹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 다른 하나는 연루인데, 강대국의 전쟁이나 전략적 선택에 원치 않게 끌려들어갈 것이라는 공포다. 스나이더는 "연루는 통상 강대국보다 약소 동맹국에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명시했다.
이 이론을 한미동맹에 적용한 유명한 학자가 누구였을까? 바로 빅터 차 자신이다.
빅터 차는 2000년 《국제연구 계간》에 발표한 논문 「아시아에서의 방기, 연루, 그리고 신고전적 현실주의」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역학을 스나이더 프레임으로 분석했다. 이 논문은 그의 핵심 저작 중 하나다.
바로 그 프레임으로 2026년 현재 상황을 분석하면 어떻게 되는가. 미국은 이란전쟁으로 전략자산을 중동에 집중하면서 한반도에서 빠지고 있다. 이것은 방기의 신호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에게 "킬체인을 폐기하라"고 요구한다. 미국 본토를 향한 ICBM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한국의 억제 수단을 제한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연루인데, 미국의 리스크 계산에 한국이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방기와 연루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떠나면서(방기) 한국의 창을 뺏는다(연루). 빅터 차가 2000년에 정립한 이론적 틀이 2026년 자신의 정책 제안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셈이다.
2024년 로런 수킨과 서우혁의 연구(《평화와 핵군축 저널》)는 한국인 다수가 방기와 연루를 동시에 우려한다는 실증 결과를 보여주었다. 2025년 이도영의 연구(《국제관계》, Sage)는 미국의 확장억제에서 모호성이 커질수록 동맹국의 '안심'이 체계적으로 약화된다는 점을 실증했다. 킬체인을 폐기하고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에만 의존하게 되면, 그 모호성은 극대화된다.
셋. 트럼프 행정부는 영원하지 않다
빅터 차의 논거를 뒷받침하는 조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전부 일시적이다. 이란전쟁은 끝나거나 축소된다. 지금도 위태위태하지만 휴전이 진행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도 영구적이지 않다.
한반도 배치 전략자산의 중동 이전은 행정부가 바뀌면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이다. 트럼프가 3월 17일 한국·일본·호주를 이란전 참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공개 비난한 것? 이건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2기 임기는 2029년 1월 20일에 끝난다. 다음 대통령은 민주당일 수도 있고, 다른 노선의 공화당 후보일 수도 있다. 지금의 전략적 과부하, 지금의 동맹 압박, 지금의 중동 전쟁까지 전부 현 행정부의 선택에서 비롯된 일시적 조건이다.
반면 킬체인은 한번 해체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탐지-결심-타격을 잇는 통합 시스템이라, 정보자산 배치, 지휘체계, 타격 플랫폼의 연동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한다. 복원에 몇 년이 걸린다.
한국 국방부가 연간 5조 2700억 원(2024년 기준)의 예산을 투입해 57개 3축 체계 프로젝트를 동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 체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루아침에 복원할 수도 없다.
토머스 셸링은 《무기와 영향력》에 이렇게 썼다.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협상력이다.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외교다." 셸링이 1960~70년대에 정립한 군축 협상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협상 전에 자신의 역량을 일방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협상 기반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역사적 선례도 명확하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리셋'을 추진하면서 동유럽 미사일 방어 계획을 일방적으로 철회했다. 푸틴이 선의의 양보로 화답했을까? 결과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이었다. 레이건은 1986년 레이캬비크에서 전략방위구상(SDI)를 양보하라는 고르바초프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소련은 결국 더 미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 테이블에 돌아왔다.
군축 협상의 기본 원칙이 있다. 되돌릴 수 있는 조건에 근거해 되돌릴 수 없는 양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빅터 차는 4년짜리 문제에 10년짜리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넷. 방패만 들고 싸울 수 있는가?
비용교환비의 냉정한 산수를 해보자. 빅터 차의 대안은 이렇다. 킬체인(선제타격)을 폐기하고, KAMD와 미국 전략자산의 정기적 전개로 대체하라. 이것이 실현 가능한지 숫자로 따져 보면 어떨까?
군사 경제학에 '비용교환비'라는 개념이 있다. 공격 미사일 1기를 추가하는 비용 대비, 그것을 요격하기 위해 방어 측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비율이다. 이 비율이 1보다 크면 공격 측이 유리하고, 방어 측은 군비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모리츠와 카디셰프가 2024년 《국방평화경제학》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요격 확률 50%, 디코이(기만체) 미식별 조건에서 비용교환비는 70:1에서 85:1에 달한다. 방어 측이 1달러 상당의 위협을 막으려면 70~85달러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2025년 6월 분석은 대규모 미사일 방어 체계가 실효적으로 작동하려면 약 3000기의 요격미사일이 필요하며, 단가를 4000만 달러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추산했다.
구체적인 숫자를 대보자. 패트리엇 PAC-3 MSE 요격미사일 1발의 가격은 약 400만 달러(2024~2025년 미 국방예산 기준)다. THAAD 요격미사일은 1발에 1200만~1500만 달러다. 반면 이란의 파테-110 계열 탄도미사일 가격은 수십만 달러 수준이고, 샤히드-136 자폭드론은 2~5만 달러다. 북한의 화성-11 라(KN-23, 이스칸데르 파생형) 같은 단거리 전술미사일은 러시아 원형 대비 저렴하게 대량 생산되고 있다. 2023년 대성기계공장 위성사진에서 화성-12 미사일 28기가 동시에 포착됐다는 미 북한위원회(NCNK)의 분석이 말해주듯, 북한은 이미 산업적 규모의 미사일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론만이 아니라 실전 데이터도 있다. 2025년 6월 미-이란 12일 전쟁에서 미군은 11일 만에 THAAD 요격미사일 재고의 25% 이상을 소진했다. 5일 만에 24억 달러 이상의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소모했다. 패트리엇 재고가 국방부 요구 수준의 약 25%까지 떨어졌다. 이란이라는 단일 상대와의 제한 전쟁에서 이 정도다.
방사포나 미사일, 자폭 드론 등 다수의 발사체를 동시에 또는 아주 짧은 간격으로 집중 사격하여 목표물을 타격하는 전술을 살보(Salvo) 공격이라고 한다. 만약 북한이 화성-11 라, 화성-12, 화성-15, 화성-18의 살보 공격을 감행한다면? KAMD만으로 막는다는 것은 어렵다.
바로 이것이 3축 체계가 존재하는 이유다. 킬체인(위협 원점 타격), KAMD(요격 방어), 대량응징보복(KMPR, 보복 타격), 이 세 축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을 한다. 킬체인이 발사 전 위협을 제거하면 KAMD의 부담이 줄어든다. KAMD를 뚫은 미사일이 있어도 KMPR이 보복 억제력을 제공한다. 세 축이 함께 돌아가야 억제가 작동한다. 한 축을 빼면 나머지 두 축의 부담이 급증하고, 체계 전체의 신뢰성이 무너진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빅터 차의 제안에 대해 코리아 헤럴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킬체인이 정말 문제의 본질인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 문제는 양측의 깊은 적대감과 상호 불신에 있다. 억제 체계의 존재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군비 통제의 핵심 개념은 억제 체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판을 최소화하고 위협과 공격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한국의 킬체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거나 비핵화를 달성하지는 않는다."
방패만 들고 수백 발의 미사일 소나기를 막으라는 이야기가 왜 안 되는지, 이보다 더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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