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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부자들만의 교회인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2/04 14:32
  • 수정일
    2013/12/04 14: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주장] 염수정 대주교의 사회 참여 독려... 정진석 추기경도 변해야

13.12.04 12:05l최종 업데이트 13.12.04 12:45l
지요하(sim-o)

 

 

지난달 22일 군산 수송동 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불법부정선거 규탄·대통령사퇴촉구 시국미사'에서 행한 박창신 원로 사제의 강론 중 '연평도 포격사건' 관련 부분 한 마디가 큰 파문을 일으켰을 때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의 발언이 또 한 번 보수언론의 지면을 크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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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축성미사 지난 3월 28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 대주교를 비롯한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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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대주교는 24일 거행된 '신앙의 해' 폐막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치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 나서 "직접 정치개입은 사제들이 할 일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치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 자가 할 일이 아니며,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나는 염수정 대주교의 이 말을 접하면서 "정치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한 말에 더욱 주목했다. 천주교 사제들이 정당이나 노조에 가입하거나 각종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직접 개입한 바가 없기 때문에 염 대주교가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발언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방송들과 보수언론들이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치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한 부분만 싹둑 잘라 대대적으로 활용하는 보도행태를 보면서 염 대주교가 곤혹스러운 심정일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지난달 25일 <오마이뉴스>에 올린 '대통령 사퇴촉구 미사'에 참석한 신자입니다'라는 글에서 염 대주교를 두둔했다.

또 지난달 28일 <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가 올린 '사제의 정치참여는 안 된다? 이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라는 글을 읽고 공감하면서도 염수정 대주교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염 대주교가 26일 광주에서 열린 천주교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한 평신도 참석자로부터 시국 관련 질문을 받고 선뜩 대답을 하지 못해 다른 주교가 대신 답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후일 어떤 자리에서든 염 대주교가 확실한 답변을 하리라고 예상했다.

염수정 대주교의 분명한 발언

염수정 대주교의 확실한 답변은 자신의 영명축일인 11월 29일 안드레아 사도축일 축하미사에서 나왔다. 염 대주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영명축일 축하미사의 강론에서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용감하게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또, "교황께서는 11월 26일 발표한 첫 번째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교회의 방향을 분명하게 가르치셨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전 안에만 안주하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하셨다. 오늘의 교회가 물질주의 영향을 받아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하신 말씀"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교황님은 그리스도 공동체가 폐쇄적이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공동체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 밖의 불쌍하고 힘없는 이웃을 위해 행동하고, 보살피라고 하십니다. 교회가 사랑과 나눔을 구호나 이론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와 사제들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 소외받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또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의 구조에 짓눌리지 말고 용감하게 개선하고 변화시키는 일에 주저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철저하게 복음적인 길을 택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사제들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징표를 읽지 못하고 변화되지 않으면 교회는 신자들과 세상 속에서 외면당할 것입니다."

염 대주교의 이날 강론은 "철저하게 복음적인 길"을 택해야 한다고 전제했으나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용감하게 개선하고 변화시키는 일에 주저하지 말라"며 사제들에게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지시하고 독려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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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성당의 염수정 주교 태안 앞바다 원유유출사고로 '기름과의 전쟁'이 전개되던 2007년 12월 23일 당시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였던 염수정 주교가 명동성당 신자들과 함께 와서 기름 제거 자원봉사를 하고, 태안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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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염 대주교의 발언을 정의구현사제단 등의 사회·정치 참여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해온 보수언론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강론이기도 했다. 염 대주교의 이런 강도 높은 발언에 대해 교회 일각에서는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박창신 원로신부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려는 상황 속에서 천주교의 전반적인 우려와 분노를 염 대주교가 표출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고도 기이한 것은 방송들과 보수언론들이 염수정 대주교의 영명축일 축하미사 강론 내용을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염 대주교의 발언 한 마디를 가지고 대서특필하며 제멋대로 찧고 까불고 했던 보수언론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보도행태에 연민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서울대교구의 변화, 가능할까?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모진 박해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신앙 선조들의 피땀으로 기초를 닦았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 1945년 해방 당시 신자 수가 6만5795명이었던 서울대교구는 한국전쟁 이후 신자 수가 급증했으며, 1970년대 어두운 시대에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면서 급성장했다.

서울대교구의 관할 지역의 총 인구는 1052만8774명이고, 신자 수는 143만4894명이다. 따라서 신자 비율은 10.3%이며, 주민 100명당 10명이 천주교 신자인 셈이다. 성직자 현황은 추기경 1명, 대주교 1명, 주교 1명, 몬시뇰(Monsignor.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敬稱)) 8명, 신부 741명, 신학생은 280명이며, 본당 수는 현재 229개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관할하고 있는 서울대교구는 한국 천주교회의 중심 교구라 할 수 있다. 신자 수와 성직자 수, 본당 수 등 모든 면에서 으뜸 교구이며 당연히 대표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나는 서울대교구를 생각할 때마다 '서울대교구는 부자들만의 교회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곤 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매일 저녁 거행되었던 미사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꼬박 1년 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 거행되었던 4대강 파괴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 또 지난해 7월 2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에 봉헌되다가 올해 4월 8일부터는 매일 저녁 거행된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면서 계속적으로 그런 의문에 시달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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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미사에 참여 중인 신부들의 모습.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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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 기업이 회계조작으로 적자 기업인양 국민을 속이고 2672명을 집단 해고한 후 노동자들의 농성을 무자비한 공권력으로 해산함으로써 빚어진 '쌍용자동차사태'는 세계에 부끄러운 일이었다. 4년 동안 해고 노동자와 가족 2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혹한 상황 속에서 해고노동자들을 위로하며 바른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천주교 사제들이 매일같이 대한문 앞에서 미사를 지낸 것은 '하느님의 소명' 때문이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거행되는 미사는 외롭고 썰렁한 모습이기도 했다. 서울대교구의 750명이 넘는 사제 중에서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는 사제는 10명이 넘지 않았다. 다른 교구들에서 오는 사제들과 수도회 사제들이 훨씬 많았다. 또 신자들도 수도자들을 빼면 얼마 되지 않았다. 140만 명이 넘는 신자 중에서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는 서울대교구의 신자들은 극소수였고, 꾸준히 다른 교구들에서 오는 신자들이 있어 그런대로 '대한문교회'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언젠가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려고 또 한 번 서울을 가서 지하철을 탔을 때 섭섭한 일을 겪었다. 내가 좌석에 앉아 묵주기도를 하고 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말쑥한 신사가 내 옆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그도 손에 묵주를 쥐고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서로 소속 본당도 밝혔다.

그런데 그가 내게 서울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러 가는 중이라고 하니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다음 역에 서 인사도 없이 내려버렸다.

나는 그의 돌변한 태도, 무례한 행동을 보면서 불현듯 각 교구 사제와 수도자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던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7월 25일 부산교구를 시작으로 군종교구를 제외한 16개 모든 교구에서 사제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질 때 대구대교구와 서울대교구도 참여할지 의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대구대교구는 8월 14일 103명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을 했고, 서울대교구는 8월 21일 270명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구대교구는 103명의 명단을 발표했지만, 서울대교구는 270명이라는 숫자만 발표하고 명단은 발표하지 않았다. 서울대교구가 시국선언 사제 명단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16개 교구 가운데 유일하다. 이를 두고 서울대교구 신자들이 확실히 무섭긴 무서운가보다는 말도 나돌았다.

서울대교구의 반성적 성찰을 기대한다

서울대교구 신자들의 보수화 성향은 오래 전부터 익히 알려진 일이다. '서울대교구는 부자들만의 교회인가?'라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서울대교구 신자들의 보수적 성향은 최고 지도자인 정진석 추기경의 성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말도 늘 있어왔다. 조·중·동 신문만 본다는 정 추기경이 주교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이명박 정권의 4대강 파괴공사를 옹호했던 사실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현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정진석 추기경 밑에서 오래 보좌주교를 했던 '애제자'로 정 추기경과 비슷한 성향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서울대교구의 보수화는 탈피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리라는 예견도 교회 내에 있었다.

그런 만큼 염수정 대주교가 지난달 29일 자신의 영명축일 축하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권고 '복음의 기쁨'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의 구조에 짓눌리지 말고 용감하게 개선하며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천명한 것은 획기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대로, 또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의 명확한 태도에 따라 서울대교구가 점차 변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진석 추기경에 대해서 안타까운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분이 살아계시는 동안 4대강의 참혹한 파괴상황을 몸소 들러보시고, 과거 자신의 잘못된 방향을 돌아보시며 반성을 피력하시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반성이 서울대교구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나는 대전교구 신자다. 충남 태안에서 1년 동안 '용산미사'를 다니고, 또 1년 동안 4대강 파괴공사 중단을 위한 '생명·평화미사'에 참례하고, 그리고 1년이 훨씬 넘는 동안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면서 서울대교구의 한복판에서 느꼈던 스산한 기운이 앞으로 점차 해소되면서 따뜻한 온기로 채워지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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