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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도 철도 때문에 망했다…2013년 대한민국은?

[기고] 국가 기간 산업 '철도', 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03 오후 7:01:12

 

 

국토부가 4대강에 이어 한국 철도를 망가뜨리려고 나섰다. 국토부는 오는 10일 철도공사 이사회를 개최해 수서발 KTX를 운영할 '신설 법인 설립안'을 통과시킬 것을 예고했다. 이명박 정권 때 추진된 '수서발 KTX 민간 경쟁 체제'라는 민영화 계획에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민간이란 글자만 빼 버린 민영화 로드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국토부는 시민사회, 국회, 철도 노사, 철도 전문가들과 해야 할 협의나 소통은 무시하고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철도에 대한 대수술을 시도 하고 있다. 눈앞에 진행되는 비극적 사태를 보면서 이 사회가 합리적 양식이 통하고 민주적 소통이 가능한 사회인지 의문이 커져만 간다.

철도노조는 국토부의 수서발 KTX 신설 법인 설립 추진이 철도 민영화의 빗장을 여는 것이라 간주하고 철도공사의 이사회 개최 하루 전인 9일에 총파업에 돌입할 것을 예고한 상태다. 노조가 파업을 예고하면 노`사`정 문제가 아니라 공안 문제로 치환되어 엄중 대처 및 관련자 엄벌이라는 파업 무력화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노조의 파업을 죄악시하는 언론 보도도 반복될 것이다.

이번만큼은 철도노조가 파업으로 치닫지 않고, 진정한 철도 발전을 위해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국토부가 '속전속결'식으로 민영화 로드맵에 쐐기를 박겠다는 방침을 유보해야 한다. 국토부가 이성을 찾는다면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10일 열릴 철도공사 이사회에서 반드시 KTX 신설 법인 설립안을 처리해야 할 매우 급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이어야 할 이유, 하나도 없다

지난해에도 국토부는 4월에 민간 사업자 선정 절차를 돌입하지 않으면 2015년으로 예정된 수서발 KTX 경쟁 체제 도입에 큰 탈 날 것처럼 일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수서발 KTX의 개통은 2016년으로 미루어졌고 굳이 올해 안에 신설 법인 설립을 못 박을 필요가 없게 됐다.

더구나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을 추진하면서 애초에 국토부가 밝힌 여러 가지 계획들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연기금을 동원해 출자 지분을 채우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연금 등은 투자에 난색을 보였고 당장 어떤 자금을 어떻게 동원해서 신설 고속철도 회사의 지분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최근까지 일단 철도공사의 출자분으로 회사 설립을 하도록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에 문제없을 것이라던 국토부 관료들의 장담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런 예만 보아도 국토부의 철도 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이고 땜질 처방식인지 알 수 있다.

수서발 KTX가 설립되는 순간, 한국 철도의 공공성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게 되어있다. 경쟁이 효율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국토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고속선만 다니는 수익이 보장된 신설 회사와 경쟁하는 철도공사는 더욱더 수익 창출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당장 철도 공사는 신설 법인의 등장과 동시에 수천억 원의 매출 손실에 직면해야 한다. 별다른 수익 구조가 없는 상황에서 효율화는 '마른 수건 짜기'가 되고 결과적으로 피해는 이용 시민에게 전가된다.
 

ⓒ연합뉴스


수서발 KTX, '이용자 혜택' 위해 철도공사에 맡겨라

수서발 KTX의 개통으로 한국 철도의 전체 선로 용량이 늘어난다. 이 늘어난 용량만큼 열차 공급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효율성 경쟁에 매달려야 하는 경쟁사들은 수익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철도공사가 수익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일반 열차 운행 시간의 재조정이나 확대에 나설 리가 없다. 더 나아가 일반 열차의 고속화나 현대화를 통한 철도 이용 환경 개선에 나설 여지도 적어진다. 수서발 KTX로 전이되는 수익만큼 만성적인 경영 악화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철도공사를 만성 적자 기업으로 전락시켜 철도공사가 관할하는 지방 적자 선들에 대한 민간 개방 가능성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이것은 국토부가 지난 6월 '철도산업발전방안'이라며 내놓은 정책에 포함되어 있다. 협소한 한국 철도 간선망에다 두 운영사가 동일 노선을 공유하는 경쟁이 가져올 결과는 눈에 선하다. 경쟁 체제를 도입한 나라가 여럿 있지만 주간선 노선 대부분을 공유하는 한국 같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수서발 KTX를 처음 계획대로 철도공사가 운영하게 될 때 생기는 사회적 이득은 한둘이 아니다. 일단 신설 회사 설립에 필요한 초기 자금 수천억을 줄일 수 있다. 투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기금에 손을 벌릴 일도 없다. 연기금도 국민이 모아준 기금인데 이것을 쌈짓돈 갖다 쓰듯 하는 것은 행정권 남용이다.

또한 회사를 분리하면 별도로 갖춰야 하는 발권 시스템이나 경정비, 기타 운영에 필요한 비용도 아낄 수 있다. 불피요한 중복 낭비가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수서발 KTX로 생길 수익으로 철도공사 적자 감소 폭을 더욱 키우고, 지방 적자 선을 보조하며, 이용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를 늘릴 수도 있다.

굳이 무리한 수익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 선로 용량도 늘어난다. 그러면 늘어난 용량만큼 일반 열차 공급을 확대해 KTX와 일반 열차를 기능과 특성에 따라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열차 이용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다.

 

 

▲ 지난해 3월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린 KTX 경쟁 도입 관련 설명회. 이 자리에는 교통·물류·건설업계가 참석해 수서발 KTX 신규 운영사 선정을 위한 사업제안요청서를 받고 업계 의견을 나눴다. ⓒ연합뉴스

 


경쟁 체제 도입 + GPA = 되돌릴 수 없는 '민영화'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에 따른 철도 시장 개방 문제이다. 철도공사가 수서발 KTX를 운영하게 되면 정부조달협정에 따른 개방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대를 자동으로 확보하게 된다. 만약 국토부가 추진하는 대로 수서발 KTX 신설 법인이 설립되고 경영 자율성이란 명분 아래 통제받지 않는 신설 법인이 분야별 아웃소싱을 실시할 경우, 국내외 자본의 진출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 소유권 이전의 전통적인 민영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민영화, 사업 단위별 침투를 통한 은밀한 민영화가 진행된다.

투자 지분이 모두 공적 자금인 공기업인데 어째서 민영화냐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이런 전례가 있다. 지분 소유 기업과 운영 기업이 다른 선례를 보인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이중적 기업 체계가 그것이다.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 시장은 메트로 9호선 주식회사와 실시 협약을 체결한다. 이 메트로 9호선 주식회사는 현대건설을 비롯한 여러 민간 기업들이 지분을 가지고 참여했다. 메트로 9호선 주식회사는 이후 메트로 9호선 운영 주식회사와 9호선의 운영과 유지보수 협약을 맺고 운영에 관한 업무를 전담시킨다. 이 운영 주식회사는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 베올리아사가 주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 시 도시 철도 개방을 약속했을 때 프랑스 경제인들이 환호했던 것은 베올리아의 한국 진출을 고무적인 성공 사례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서발 KTX는 공적 자금이 투자된 공기업의 성격을 갖고 있으나 9호선 주식회사처럼 운영권이나 역사 관리, 또는 역세권 개발이나 기타 여러 사업에서 협약을 맺고 사업을 분야별로 아웃소싱할 경우 민영화가 자동으로 진행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9호선 운영 주식회사인 베올리아가 9호선 주식회사의 지분을 하나도 갖지 않고 단지 사업협약을 통해서 진출하였듯이 수서발 KTX의 지분을 하나도 갖지 않고도 수서발 KTX의 여러 사업 단위에 국내외 민간 자본이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WTO GPA 협정은 이를 전면화 하거나 최소한 이미 진행된 것을 되돌리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2013년 대한민국, 몰락한 청나라 '반면교사' 삼아야

많은 이들이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경제 환경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국가 기간 산업의 위상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선 사회적 고민이 부족하다. 신자유주의 세례를 듬뿍 받은 엘리트 관료들의 무조건적인 시장화와 경쟁 논리로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주변 열강들의 영토 분쟁이 심화하고 자존심 없는 정부는 철도 부설권을 어느 나라에 넘겨줄지 고민하는 구한말 대한제국 시대가 재연되는 형국이다.

청나라가 몰락한 원인은 철도 때문이었다. 청은 세수입 등을 담보로 외국 자본을 도입해 철도를 부설했다. 1911년 청조는 재정난을 타개하고자, 민영이었던 철도에 국유령을 내리고, 이를 담보로 열강으로부터 차관을 얻었다. 그러나 민영 철도에 투자한 주주들이 우선 반발했고, 곧이어 철도를 담보로 열강에 기대는 왕조에 반발한 이들이 광범위한 반대 운동을 벌였다.

이는 마침내 대규모의 무장 투쟁인 '쓰촨 항쟁'으로 발전했다. 결국 지방 군대가 봉기를 일으켰고 후난 성을 비롯해 남방의 여러 성이 독립을 선언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신해혁명'이다. 열강의 자본으로 건설된 중국 철도와 식민지 철도로 점철된 과거의 한국 철도를 보면, 철도가 거대 외국 자본에 휘둘릴 때 얼마나 큰 사회적 고통이 생기는 지가 엿보인다. 이를 역사가 충분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철도는 근대 국가의 기간 교통망이었다. 그런 철도의 중요성이 현대에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철도가 사회 통합의 견인차가 된다. 통일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도 건실하고 투명한 공기업 육성은 중요하다. 그 중요도가 새삼 다시 부각되고 있는 산업이자 교통수단, 철도를 어떻게든 쪼개 외국 자본이나 민간 자본의 수익창출 대상으로 만들려는 국토부. 국토부가 섬기는 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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