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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남쪽과 김정은의 북쪽은 닮았다

[편집국에서] 다시, 표현의 자유를 생각한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12 오전 8:23:22

 

 

지난 9일 북한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을 관영 매체 등을 통해 잇따라 공식 확인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장성택 부위원장이 실각한 이유를 짐작케 하는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다. 국내의 한 언론은 평양 고위 소식통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근거로 "이번 숙청은 장성택의 술자리 말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언론과 전화 통화한 평양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 부위원장은 지난달 15일 평양 보통각 구역 모처에서 부하와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장성택 부위원장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김정일 지도자 동무에 이어서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것은 정당성이 없다""김정은은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양 고위 소식통은 "일부 부하의 만류에도 장성택 부위원장은 '김정일 지도자 동무도 자신이 대를 이어서 인민에게 독재자라고 비판을 받을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지도자 동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텐데 그 독재자 전철을 밟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평양 고위 소식통은 "이 술자리 발언은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을 통해서 곧바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위원장에게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발언을 접하자마자 "당의 사기를 꺾고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에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평양 고위 소식통의 전언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대책 회의에서도 북한 고위 인사들은 "위대한 영도자 위해(危害)를 선동 조장하는 테러", "언어 살인이자 국기문란", "국가 원수에 대한 저주 섞인 발언" 등의 강도 높은 발언이 나왔다. 결국 술자리 발언은 최측근의 처형과 장성택 부위원장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한편, 이 언론이 평양 고위 소식통과 어떻게 전화 통화를 했는지, 또 얼마나 자주 접촉을 하는지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관계 당국은 이 언론이 평양 고위 소식통과 접촉한 것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봐야 하는지 검토 중이다. 국가보안법은 "신고 없이 북한 주민과 회합, 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는 북한 장성택 부위원장의 실각 소식을 앞장서 전하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거의 그대로 따와서 내용만 약간 수정한 것이다. 물론 "평양 고위 소식통" 역시 가공의 인물이다. 실제로 이 "평양 고위 소식통"이 한 명인지, 두 명인지 혹은 날조된 인물인지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겠지만, 장성택 부위원장이 술자리에서 했다는 발언은 민주당 장하나, 양승조 의원의 발언을 약간만 수정한 것이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반응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 미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이다. 또 북한 고위 인사의 반응은 청와대 대변인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장하나, 양승조 의원의 발언을 비난하며 나온 것이다.

굳이 이렇게 <조선일보> 흉내를 내본 것은 지난 1주일간 남쪽과 북쪽의 정치 뉴스가 놀랍도록 똑같다는 사실을 한 번쯤 돌아보고 싶어서다.

아니, 북쪽에서는 순식간에 몇 사람이 총살을 당했는데 어찌 남쪽과 북쪽의 정치 뉴스를 비교하느냐고? 당장 남쪽에서도 한나라당 의원이 만장일치로 장하나, 양승조 의원을 '정치 살해'하는 의원 제명안을 내놓지 않았나? 할 수만 있다면, 국회 앞에서 공개 처형이라도 할 기세 아닌가?

아직 우리나라가 독재 국가였던 30년 전쯤의 일이다.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이런 일화를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핀 영국의 런던에서는 중심가 공원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시민을 선동해도 경찰이 잡아가는 일 따위는 없단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영국 정부와 런던 시민이 그렇게 공산주의자들이 마음대로 떠들 수 있도록 놓아둔 것은 결코 그들의 주장에 찬성해서가 아니야.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이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대다수의 시민들은 결코 그 말에 승복당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지. 즉, 공산주의자들은 역설적으로 소련이 아닌 영국이 얼마나 자유로운 사회인지를 온몸으로 증명한 거란다."

철없을 때 들었던 일화지만, 그 때 선생님께서 해준 이 말씀은 아직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중에 철이 들고 나서야, 그 때 선생님께서 해준 얘기의 핵심은 (영국이 좋은 나라라는 뜻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고, 또 표현의 자유야말로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에 새긴 가장 긍정적인 요소임을 알았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가 근대 민주주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데 큰 역할을 한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표현의 자유는 100%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옳은 주장이라면 당연히 표현의 자유는 보장이 되어야 한다. 즉,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라거나 "김정은은 독재자의 아들 또 손자"라는 주장처럼 옳은 주장을 통해서 인류는 오류 대신 진리를 얻을 기회를 가진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표현의 자유는 100%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놓고서 사형, 구금 혹은 명예 훼손 형사 처벌 따위를 거론하면 그 사회는 죽는다.

그런데 밀은 설사 그른 주장이라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다"거나 "박정희도 측근의 총에 맞아 죽었으니 그 딸도 그런 비극적인 운명을 맞을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은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이라면 눈살을 찌푸릴 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밀은 이런 그른 주장이 바로 옳은 주장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리라고 역설했다. 당장 저런 얼토당토않은 주장조차도 박근혜 대통령이 "내가 비록 독재자의 딸 소리를 들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나중에는 복지 국가 대한민국의 초석을 닦은 대통령으로 기억되리라" 하는 다짐의 계기가 된다면 의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권력 투쟁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목이 날아가고,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발언에 대통령, 청와대, 여당까지 나서서 조진다. 어째, 남쪽과 북쪽이 자꾸 닮아가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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