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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지 않는 박정희 씨의 명예

[오홍근의 ‘그레샴법칙의 나라’] <94> 박근혜 대통령의 오산(誤算)

오홍근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21 07:29:17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 한 사람이 2012년 대선 전, “박근혜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사실 여부를 놓고 말들도 있었으나, 그간의 대통령 행적을 살펴보면 ‘그건 맞는 말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 생각으로는 ‘좋은 5·16 쿠데타’나 ‘좋은 유신’이나 ‘좋은 긴급조치’는 아닐지라도, 아버지는 ‘온 몸을 바쳐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신 분’이라고 온 국민들에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불명예를 씻어내고 싶을 것이다. 물론 사적(私的)인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였다고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듯싶다. 그 때문에도 그녀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 조짐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엿보였다. 그렇게 판을 짜 갔다. ‘박정희 신봉자’인 윤창중 씨를 기용하더니, 유신헌법을 기초하고, 아버지와 공안통치에 손발을 맞추던 김기춘 씨를 비서실장에 앉혔다.

 

아버지의 부하였던 4성장군의 아들을 장관에 임명했고,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승만 씨와 박정희 씨에 대한 ‘보는 시각’을 확실히 ‘손질’할 수 있는 인사를 국사편찬위원장에 등용했다. 난데없는 새마을 예산이 등장하더니, 경제개발 3개년 계획까지 나왔다. 박정희 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키는 조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지 세력들이 10년 동안의 민주정부 기간을 ‘종북좌빨 통치기간’이라 나팔을 불어댔다. 박정희 씨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들 생각한 것 같다. 대통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사정없이 거꾸로 돌렸다. “1970년대 유신시대로 가는 거 아니냐”는 투덜거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으스스하다”는 소리에 이어 “안녕하십니까”라는 절실한 문안 인사가 사회에 만연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식 통치방식’이 고개를 들었다. ‘문제’가 생기면 억눌러 해결하고자 했다. 술수까지 동원했다. 심각한 양상으로 떠오른 대선 부정사건도 NLL 논란을 일으켜 덮어보려 하다가, 검찰총장 목 자르고 수사검사 찍어내기로 호도해 갔다. 소통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불통 일변도 속에 장관들은 지시를 수첩에 받아 적기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 비정상 속에서, “정상화 하자”는 공허한 목소리가 나온 데 대해서도 정상과 비정상을 분간 못하는 정권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대통령은 길을 잘못 접어든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 지금 가는 길은 아버지의 명예회복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길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박정희 씨의 불명예를 구체적으로 부각시키며 명예를 훼손하는 길로 보인다. 첫 단추부터 그랬다. 사람들은 일찍 알아 차렸다. 윤창중 씨와 김기춘 씨의 임명을 보면서 사람들은 쿠데타와 유신과 긴급조치와 인혁당 사건을 떠올렸다. 다 박정희 씨의 불명예였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전인 2010년 9월 5·16 쿠데타와 유신과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까지 했던 터였다. 국사편찬위원장과 국정교과서 문제도 그렇게 고집스럽게 밀어 붙일 일이 아니었다. 박정희 씨의 친일 행적, 특히 혈서를 쓰면서까지 일왕에게 충성 맹세를 했던 사실과, 그렇게 일본군대에 입대했던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 이야기를 찾아내 네티즌들은 SNS를 통해 부지런히 퍼 날랐다. 그의 과오를 덮기 위해 역사 교과서 물 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부각시켰다.

 

교학사 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전국에 단 한군데도 없다는 사실도, 박정희 씨의 친일 행적을 덮어 보려는 이 정권의 역사적 사실 ‘왜곡시도’에 대한 반발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여당은 시민단체 등의 ‘외압’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그게 움직일 수 없는 도도한 민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른바 종북좌빨 논란도 박정희 씨에게는 엄청난 ‘명예 실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공약으로 4대국 보장론을 역설한다. 미국·일본·중국·소련 등 4대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케 하자는 탁월한 논리였다. 김 후보의 인기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추격하고 있었다. 이때에 박정희 후보가 하나의 카드를 꺼내든다. 김대중 후보를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빨갱이”로 몰아대기 시작했다.

 

중국과 소련의 도움을 받는 발상은 빨갱이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논리였다. 그때부터 DJ는 죽는 날까지 빨갱이가 되었다. 유명을 달리한 지금도 DJ는 일부 계층 인사들에게는 빨갱이로 남아있다. 그러나 1971년 DJ의 4대국 보장론은 40년이 지난 오늘날 남북한까지 합석하는 6자회담이 되어 우리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진짜 ‘빨갱이’는 박정희 씨였다. 박정희 씨는 해방 직후 남로당의 군부 책임자였다. 육군 소령으로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분명한 적색분자’가 그의 전력이었다. 체포된 뒤 남로당에 가입한 동료들의 명단을 밀고하며 전향한 대가로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복직도 되었다.

 

그런 그가 사상문제로 체포된 적도 없고, 유죄판결 받은 적도, 따라서 전향한 적도 없는 DJ를 빨갱이로 밀어 붙이는 파렴치한 종북몰이를 했다. 그는 집권기간 중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했다. 1970년대 초 〈크리스쳔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엘리자베스 폰드(Elizabeth Pond) 특파원은 박정희 씨의 과거를 언급한 ‘죄’로 남한 입국을 금지 당하기도 했다.

 

그가 원조가 된 종북좌빨 타령에 신물이 난 사람들 중 누군가 어느 날 박정희 씨가 빨갱이였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기록을 찾아내 세상에 까발렸다. 1963년 대통령 선거 이틀 전인 10월13일 민정당 윤보선 후보 측이 폭로한 내용을 보도한 동아일보 호외 사진이었다. 문제의 호외는 발행되자마자 당시 군부에 의해 압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당시 동아일보 호외ⓒ프레시안

▲ 당시 동아일보 호외ⓒ프레시안

 

 

호외에는 1949년 2월18일 군법회의에서 박정희 씨가 무기징역을 언도받은 내용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과도한 종북몰이가 부메랑이 되어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이야 그 호외 사진 보도 못하게 할 수도 없다. 구체적인 사실이 부각된 참혹한 명예훼손이었다. 요컨대 박정희 씨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다. 진실이 감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이번에는 바다 건너 미국에서 박정희 씨 부녀의 명예가 미국인들에게도 훼손돼 강조되는 사실보도가 나왔다. 유력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뒤틀린 역사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NYT>는 우선 아베 총리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지우길 원하고 난징 대학살도 축소해 기술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친일파 인사들의 친일 행각이 물 타기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곁들여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류인사들은 다수가 일제 때 친일하던 사람들의 후예라고 강조한 <NYT>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씨가 식민통치 기간 중 일본군의 장교였으며, 1962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의 독재자였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적 사실 축소 기술’ 희망이 아버지 때문임을 짙게 암시했다.

 

사설은 “교과서를 개정하기위한 두 나라 정상의 위태로운 시도는 역사의 교훈을 훼손하려는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대통령 아버지에 대한 비판인 만큼 정부는 발끈했다. 이례적으로 외교부와 교육부 등 복수의 정부부처가 나서 “사실과 다르다”고 목청을 높였다. 여당의 실세 의원까지 해당 언론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 땅의 기자들은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남의 나라 언론이 예리하게 분석해 냈다고 말들을 한다.

 

 

▲ 지난 13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정치인과 교과서' 사설 ⓒ뉴욕타임스 갈무리

▲ 지난 13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정치인과 교과서' 사설 ⓒ뉴욕타임스 갈무리

 

 

대통령은 아버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그토록 노심초사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훼손돼 가고 있는 까닭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진실은 덮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명예회복’이라는 ‘의도’에 맞게 역사 교과서 내용까지 어찌어찌 해보려하는 지 모르지만, 이념에 맞도록 진실을 조작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무리한 명예회복 시도는 과욕일 뿐이다. 부작용이 나오게 되어있다.

 

대통령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제 와서 박정희 씨가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고, 적색분자였으며, 독재자였다는 역사적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힘들겠지만 정치인 박정희 씨와는 작별을 하는 게 좋다. 지금 주변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박정희 씨의 냄새도 과감히 제거하는 게 옳다. 뒤돌아보는 정치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멀리 미래를 보는 당당한 정치에 매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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