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노회찬은 TV 토론장에서 이렇게 외쳤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새까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고, 두 차례의 촛불혁명을 일으켰으며,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까지 탄핵했다. 고기는 수없이 바뀌었다. 그런데 불판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젠 '불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왜인가.
답은 간단하다. 불판을 바꿀 권한을 가진 자들이 그 새까매진 불판이 그래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단 이유로 바꿀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을 선수가 직접 정하는 구조, 이것이 바로 '셀프 입법 특권'이다. 선거법도, 공천 규칙도, 의원 세비도, 국회의원 자신들이 스스로 정한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게 아니라,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이유가 없는 구조다.
이번 공천 파동을 보라. 시민들은 분노한다. 그런데 그 분노가 향하는 곳은 언제나 '사람'이다. 저 후보가 나쁘다, 저 당이 문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진짜 문제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이 반복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천 룰을 국회의원이 직접 정하는 한, 공천 파동은 4년마다 반드시 되풀이된다. 불판이 바뀌지 않는 한, 고기는 계속 새까매진다. 세계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제를 먼저 겪은 나라들이 이미 해법을 찾았다는 점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1996년 선거에서 BC자유당은 득표율 1위를 하고도 의석 2위로 패배했다. 소선거구제의 구조적 왜곡 때문이었다. 4년 뒤 집권한 고든 캠벨 주지사는 선거제 개혁을 약속했지만, 국회의원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대신 160명의 시민을 무작위 추첨으로 뽑아 11개월 동안 학습하고 토론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찬성률 91%. "일반 시민이 바보가 아닙니다. 정확하게 본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봐요." 선거제 개혁이라는 난제를,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이 훨씬 더 현명하게 풀어낸 것이다.
아일랜드는 낙태권과 동성결혼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시민의회에 넘겼다. 수십 년간 정치인들이 건드리지 못한 문제들이었다. 종교적 갈등, 선거 부담, 진영 논리—어느 쪽을 선택해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었다. 시민의회는 9개월간 숙의 끝에 결론을 냈고,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사회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정치인이 책임을 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수용이었다.
벨기에는 다민족·다언어 사회의 만성적 교착 상태를 시민의회로 돌파했다. 정당 정치로는 타협이 불가능한 의제들을, 이념과 지역색을 뺀 일반 시민들의 숙의로 풀어냈다. 특히 오스트벨기엔 모델은 시민의회를 일회성이 아닌 상설 기구로 제도화했다. 대의제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의제가 실패하는 영역을 책임지는 독립적 장치로 만든 것이다.
프랑스는 노란 조끼 시위라는 사회적 폭발 뒤에 기후시민의회(CCC)를 소집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50명의 시민에게 "수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파격적인 약속을 했다. 시민들은 9개월간 149개의 구체적 제안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상당수를 희석시키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그 한계마저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시민의 숙의에는 제도적 구속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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