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한국사회와 민족주의'

 

"박정희에게 민족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통일뉴스> 창간 12주년 심포지엄, '한국사회와 민족주의'
 
 
2012년 11월 07일 (수) 17:57:56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 6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사회와 민족주의'를 주제로 <통일뉴스> 창간 12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사진-류경완 통신원]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는 무엇인가?"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에서 '구식', '보수주의'라며 비판받는 가운데, 민족주의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됐다.

6일 오후 3시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21세기 민족주의 포럼'이 주최하고 <통일뉴스>와 '민족미래연구소'가 공동주관 한 <통일뉴스> 창간 12주년 기념 '한국사회와 민족주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박정희식 민족주의', '한국사회의 민족주의', '대선후보들의 통일정책' 등 우리사회의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 마련됐다.

"박정희식 민족주의는 일제 천황제 파시즘"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가 비판받는 대표적인 이유는 박정희 정권이 '민족'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이다. 이에 민주화를 거쳐 '민족'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한국 민족주의의 과제는 자주 독립과 통일, 민주화, 자립경제의 완성이었으며, '박정희식 민족주의'는 '일제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준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준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박정희는 일제 천황제 파시즘의 적자"라며 "천황제를 내면화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한국의 천황이 되어 작은 일본을 만들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과거 사범학교와 군관.사관학교 교육을 통해 일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 그 가운데 식민사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천황주의자인 야스오카(安岡正篤)과의 관계도 박정희식 민족주의와 관련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야스오카는 △유학(儒學)을 이용한 국가통치, △농본주의를 통한 정신부흥을 주장한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와의 관계를 통해 '충효를 강조한 교육', '새마을운동'을 전개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는 일제 강점기의 국민총력운동과 5.16직후의 '국가재건범국민운동'으로 재현됐으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주도하던 새마음운동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통제했다는 점에서 일제가 강조하던 정신주의와 궤를 같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에 대한 박정희의 생각은 안보 이데올로기로서의 국난극복, 총화단결 주장과 직결된다"며 "박정희에게 민족은 자신의 권력 연장, 나아가 영구 집권을 위한 동원의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족에 대한 생각은 1973년 1월 연두기자회견에 밝혀져있다.

그는 "민족과 국가라는 것은 영생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체이다. 따라서 민족의 안태와 번영을 위해서는 그 민족의 후견인으로서 국가가 반드시 있어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준식 교수는 "박정희에게 민족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이다. 국가야 말로 '박정희식 민족주의'의 핵심"이라며 "'박정희식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의 변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민족의 독립, 통일, 자주적인 발전을 추구한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며 "오히려 개인과 전체를 동일시하고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한 국가주의자였다"라며 '박정희식 민족주의'의 실체가 일제 천황제 파시즘과 궤를 같이 한다고 비판했다.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이 중요하다"

강철구 민족미래연구 고문은 최근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비판 상황을 두고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철구 고문은 "민족주의는 원래 대외적으로 자주와 대내적으로는 민족의 통합을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라며 "한국사회에서도 국제정치나 경제적인 면에서 자주나 자족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하고 국내의 지역적, 계급적 분열을 치유하게 할 수 있으며, 통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강철구 '민족미래연구소' 고문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즉, 한국의 민족주의는 성장과 분배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하고 사회를 전체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형태이고 통일문제나 역사인식 문제 등을 두고도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가져올 수 있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에서의 민족주의를 통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이념이 바로 서고 그 위에서 민족주의 세력이 강력한 구심점을 갖는 세력으로 결집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강 고문은 "한국의 민족주의가 구태의연하게 단군이나 찾고, 또 만주나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자는 등의 회고적인 이야기만 해서는 안된다"며 "한국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앞날의 비전을 제시하는 현실적인 이념으로서 민족주의의 지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은 "민족주의 세력 결집에 상당히 공감을 가진다"며 "우리가 재생해서 이기자면 힘을 모아야 한다. '민족'에서 '민'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을 다 모으자. 이 기회에 흩어진 힘을 모으고 견해를 조율하면서 힘을 결집하자는게 심포지엄의 취지"라고 말했다.

정수일 소장은 "민족주의의 결집이 우리민족 견해의 결집"이라며 "민족세력들은 당당해야 하는데 주눅이 들었다. 공격 앞에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론을 개발하면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고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족주의란 개념은 매도되는 개념이 아니라 떳떴해야 할 보편적 의미가 있는 개념"이라며 "이를 위해서 여러 연구기관들이 연대하고 가능하면 전국적인 통일기구를 만들어서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권상실 이후 100 만의 첫 대선"

이날 심포지엄에는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통일정책에 대한 검증의 자리도 마련됐다.

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은 "국권상실 이후 100년 만에 처음 맞는 대선"이라며 여야 대선후보들의 통일.외교.안보정책을 비교 분석했다.

이번 검증은 각 후보들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이뤄졌으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 등 세 후보만 답변을 보내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은 '시간이 촉박해서 응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안철수 후보측은 시한 내에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 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오른쪽)이 여야 대선후보들의 통일외교안보정책을 분석,발표했다. [사진-류경완 통신원]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후보의 통일외교안보정책에 대해 김치관 국장은 "박 후보는 기존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정책 중간 정도로 '원칙은 지키되 교류는 하겠다'라는 것"이라며 "통일정책에 있어 전반적으로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계적 로드맵이라기 보다는 큰 틀에서 약간의 제안들은 있지만 오랫동안 거론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내용이) 빈약하다"며 "자신의 정책을 명백하게 밝히기 보다는 말하지 않는 것이 플러스 되는, 말하는 순간 마이너스 되는 행보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역사관이나 민족관이라기 보다는 지금 제시되는 공약, 정책은 대체로 대선용일 가능성이 높다"며 "박 후보의 정책을 살피는데 큰 전제는 사실상 이명박 정부와 공동정부를 형성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실패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다. 그런 점에서 박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통일외교안보정책에 대해 김치관 국장은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햇볕 또는 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점에서 공통점"이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후보의 '30-80시대'(1인당 소득 3만불, 인구 8천만)와 안철수 후보의 '119프로젝트'(1만개 중소기업이 북한에 진출, 1%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9만개 일자리를 창출)가 남북경제를 중심으로 하기에,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의 '한반도평화구상'에 대해 김치관 국장은 "상당히 진전된 구상이다. 그러나 구상만으로 될 것이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첫번째 문제는 북한에서 이런 구상에 호응할 것이냐는 것이다. 북한이 차기정부와 어떤 그림을 갖고 접근할 것이냐"며 "북한이 북중관계를 강화해서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데 북핵 포기 프로세스가 작동될 것인가의 변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와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에 대해서는 "정책에 있어서 문재인-안철수 후보보다 훨씬 진보적"이라며 "이들은 참여정부가 경제협력에 치중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힘을 통한 억지정책의 한계점에 문제를 지적한다"고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공통점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야 후보들의 통일외교안보정책에 대해 김치관 국장은 "이들의 정책이 겉으로는 균형 외교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실제로 박근혜 후보와 문제인-안철수 라는 두개의 축으로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참여정부의 통일외교안보정책의 실패를 얼마만큼 제대로 극복하고 더 진전된 역사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과제"라며 "참여정부의 연장선에서 조금더 진전된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진보진영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서 견인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국권상실 100년만의 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1971년, 그 시절에도 획기적인 정책들을 제시했다고 한다면, 문재인, 안철수, 이정희, 심상정 후보들이 얼만큼 비중이고 근본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심포지엄에는 통일원로와 민족단체 관계자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류경완 통신원]

 

이날 심포지엄은 '4.9평화통일재단', '민족문제연구소', '6.15언론본부' 후원으로 마련됐으며,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가 인사말을,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 축사를 했으며,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정운현 <진실의길> 편집국장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그리고 조용준 '민족일보 조용수 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유영래 민주화기념사업회 부이사장, 강정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장은기 우사연구회 사무국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 심포지엄 발표자와 토론자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류경완 통신원]

 


 

박정희와 일본정계의 '흑막' 야스오카

“역대 일본 수상의 스승이라고 평가받는, 일본 역대 수상이 수상으로 지명되면 천왕한테 가서 인사를 하기 전에 야스오카에게 가서 인사했다고 할 정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흑막이다.”

이준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6일 <통일뉴스>가 주최한 ‘한국사회와 민족주의’ 심포지엄에서 ‘박정희식 민족주의’를 주제로 발표에 나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야스오카 세이도쿠(安岡正篤)와의 관계를 상세히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인맥에서 수상을 지낸 기시(岸信介)를 중심으로 한 만주인맥이 널리 알려진데 비해 야스오카는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과의 인연 외에는 제대로 조명이 되지 않았다.

이준식 교수는 “천황제를 염두에 두고 있던 박정희가 주목한 것은 천황제의 이데올로그였다. 그리고 그가 찾아낸 것이 야스오카”라며 “야스오카는 일제가 패전하기 직전에 대동아성이라는 식민지와 점령지를 관할하는 부서가 있는데 대동아성 고문을 지낸 것 외에는 한 번도 공직을 맡은 적이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주요 공직을 맡지도 않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알려진 인물”로 ‘역대 수상의 지혜 주머니(知慧袋)’로 불리는 대표적인 ‘흑막(黑幕)’이라는 것.

“유명한 천왕주의자 일본주의자이자 아시아주의자”인 야스오카에 주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 직후 박태준 비서실장을 통해 연락을 취했고,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이용희를 특사로 일본에 보내 야스오카를 만나게 해 야스오카를 통해 일본 정계인물들과 박정희 일본 방문을 사전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교수가 발표한 야스오카와 한국과의 인연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스오카는 1932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이케다(池田淸)의 초청으로 조선을 방문해 조선의 대표적인 친일파들과 회합을 가졌다.

이 자리에 최린도 참석했고 이후 최린은 본격적인 친일활동을 벌이게 된다. 야스오카의 최측근이던 야기(八木信雄)라는 사람의 회고에 의하면 최린이 시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친일활동을 하게 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야스오카라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야스오카는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전한 이후에도 한국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자졌고 “식민지가 아니니까 일한친선이라는 이름아래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하면 다시 예전과 같은 유대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데, 이때 야스오카가 중시한 것은 반공”이라며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박정희 군사정권이 반공만 내세운다면 군사정권이든 민간정권이든 우리는 상관 안한다’고 해서 박정희가 적극적으로 교섭을 했다”고 전했다.

야스오카는 1976년 5월 경북대가 주최한 퇴계학 국제학술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고, 박정희는 ‘국빈대우’를 지시했으며, 야스오카는 “한국인은 유교의 덕목을 알고,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다.

이 교수는 “박정희는 야스오카가 발언을 한 직후에 당시 문교부 순시에서 충효가 중요하다는 발언을 한다”며 “야스오카가 한국을 방문해서 충효 윤리가 유신체제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수 가르쳐주자마자 박정희가 충효교육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지적했다.

 

 

 
조정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