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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학자 1074명 세월호 참사 성명 발표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문제”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입력 : 2014-05-14 10:23:59수정 : 2014-05-14 11:16:46

 

해외 학자 1074명이 세월호 참사 관련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 문제”라며 철저한 진상 조사와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요구했다. 이번 성명은 해외에서 한국 문제와 관련해 발표한 성명 중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남태현 솔즈베리대 정치학과 교수, 김선미 뉴저지 라마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5명의 학자는 13일 오후 워싱턴 내셔널프레스 클럽에서 1074명의 해외 학자들을 대표해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울리는 경종’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세월호 참사가 단순히 비도덕적인 선장과 선원들의 개인적 일탈 행위의 결과일뿐만 아니라 최근 진행되고 있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에서 비롯된 미비한 구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다섯가지 요구사항을 밝혔다.
 

남태현 솔즈베리대 정치학과 교수 등 5명의 학자가 13일 오후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해외 학자 1074명이 서명한 세월호 참사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현진 매릴랜드대 박사과정, 신용윤 버지니아커먼웰스대 생물통계학과 교수, 남태현 교수, 김선미 뉴저지 라마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재은 조지메이슨대 사회학과 교수.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5가지 요구사항은 ▲생존자, 희생자와 이들 가족에 대한 적극적 치유와 정당한 배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가장 기본적 의무임을 인식하고 세월호 비극에 책임질 것 ▲세월호 비극의 원인을 정확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독립적 특검 및 특별법 도입 ▲최근 진행되는 무분별한 공적 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철폐하고 안전 등 공익에 관한 규제 강화 ▲방송 장악과 언론 통제를 위한 일체의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언론 자유를 보장할 것 등이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는 국민 모두의 공익과 안전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기업의 이윤 극대화만 추구하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경제적 이윤과 효율이라는 명분 하에 사람 자체를 수단시하는 이익집단이라면 그것은 기업들 간의 카르텔일 뿐이지 정부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 와중에 정부는 잦은 고장으로 말이 많았던 고리 원전을 재가동했다”며 “국가 전체 전력생산의 1%만 차지하는 고리 원전 재가동을 온국민과 동북아 주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은 청해진해운의 이익을 위해 승객의 목숨을 희생시킨 것보다 더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혹시나 정부의 책임론이 확산될까봐 비판적인 언론을 통제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면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재난 상황반을 설치해 방송 및 인터넷을 모니터링하고 방송사를 ‘조정통제’(이후 ‘협조요청’으로 수정)하는 등 사실상 언론 검열과 여론조작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또 “손석희 앵커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조 작업에 한가닥 희망을 준 이종인 다이빙 벨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뉴스에서 방영했다고 하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징계를 추진 중인 사실은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방송 장악과 인터넷 통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더이상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일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남윤주 뉴욕 버펄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유종성 UC샌디에고 정치학과 교수 등 6명의 교수가 최초 발의자이며 이들은 본인의 활동 영역에서 e메일 등을 통해 해외에 있는 다른 동료 학자들에게 성명 참여를 호소했다. 이들은 지난 7일 미국 업체인 위블리에 서명 웹사이트(http://sewolscholars.weebly.com/)를 개설해 청원을 받기 시작했다. 엿새만인 12일 서명한 학자가 미국, 캐나다, 에티오피아, 싱가포르, 대만, 벨기에 등에서 10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배포한 서명자 명단을 보면 해외 대학에 교수직을 가진 사람은 577명, 박사후 과정 또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 등 연구기관 연구원들이 163명, 박사 과정 중이거나 박사를 마치고 아직 취업하지 못한 사람이 334명이다. 

이들 중에는 세계적 문화인류학자인 노마 필드 시카고대 명예교수와 영국의 한국학 연구자 케빈 그레이 영국 서섹스대 교수 등 외국인 교수들도 동참했다. 노마 필드 교수는 “나는 이 성명서가 이번 참사의 배경과 관련해 신자유주의의 인간 비용을 지적한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리처드 행콕스 콩코르디아대 교수는 “만약 이 참사가 한국 정부 관료들의 자식들이 수학여핵 중 당한 일이었다면 그들은 어떤 감정일지 상상하면서 관료들이 이 이슈를 인지하기 바란다”고 했다. 신라 슈 싱가포르국립대 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안전에 대한 기본적 인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내 친구들에게 한국을 가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 안전이 결핍됐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며 한국 여행을 할 10대 친척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는 중차대한 문제다”고 말했다.
 


이 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재은 교수는 “우리가 이 성명을 발표하고 나면 어딘가에서 또 국가적 비극과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얘기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서 “이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대한민국의 시민이자 사회학자로서 구조적 문제가 무엇이고 정치적 책임을 끈질기게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신용윤 버지니아커먼웰스대 생물통계학과 교수는 “통계학자가 무슨 정치적 견해가 그렇게 많이 있느냐. 하지만 이것은 상식에 관한 문제”라며 동참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한국과 관련해서 해외 학자들이 성명을 낸 적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가 성명에 동참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글린 데이비스 6자회담 대표 등을 초청해 이뤄진 ‘남북한 그 다음은?’ 세미나에서도 세월호 문제가 중요하게 등장했다. 이 자리는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주로 논하는 자리였지만 미국 PBS 기자가 첫 질문을 “한국은 저런 참사를 겪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전의 그 모습(business as usaul)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나?”라고 던진데서 비롯됐다. 패널리스트 중 한 명으로 나온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한국은 금융위기 때도 개혁을 하고 넘어갔듯이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개혁을 해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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