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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준 두 가지 숙제, 박근혜의 선택은?

[정세현의 정세토크] 한국이 미중 간 '중재자'되지 않으면 동북아 평화 없어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14 10:22:59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이틀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시 주석은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전략에 한국이 일본처럼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역사 문제를 고리로 일본을 강하게 비난하는 한편, 한국에 두 가지 숙제를 던져주고 갔다. 
 
시 주석이 던진 숙제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하라는 것, 그리고 CICA(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AIIB는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의 ADB(아시아개발은행)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기획한 것으로,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정 전 장관은 "AIIB는 겉으로는 경제 문제 같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문제"라며 "미국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한국이 참여하라는 요청"이라고 분석했다. 
 
CICA 역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동북아 역내 외교안보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정 전 장관은 CICA에 대해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끼리 해결하자는 것"이라면서 "이는 곧 아시아 지역안보 문제에 미국은 손을 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결국 중국은 AIIB를 통해 우리에게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제 질서에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고, CICA를 통해 중국 중심의 아시아 국제정치 및 안보질서에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기도, 그렇다고 뿌리칠 수도 없는 한국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이번 정세토크에 함께한 황재옥 원광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초빙교수 겸 (사) 평화협력원 부원장은 "한국이 미‧중 간 협조가 불가피한 틈새를 파고 들어가 양자의 협조를 촉진시키는 이른바 '촉진자(facilitato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우리에게 미국과 동맹관계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고, 중국과 동반자 관계도 중요하다"며 "이를 가장 절묘하게 조합하는 것이 시 주석이 던진 과제를 국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촉진자'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잘해낼 수 있는지에 따라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날 대담은 지난 10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김대중 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의 사회로 이뤄졌다. 다음은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대담을 나누고 있는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황재옥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대담을 나누고 있는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황재옥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시 주석이 이른바 '혈맹'이라는 북한이 아니라 한국을 먼저 찾았습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중국을 방문하지 않은 상황이구요. 시 주석이 이처럼 한국을 먼저 찾고 김정은 제1위원장보다 박 대통령을 더 자주 만나면서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한 것 아닌가, 중국이 북한과 거리 두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있습니다. 
 
황재옥 : 중국의 대북 정책이 바뀌었다거나 북한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과대평가된 것 같습니다. 중국은 6.25 이후부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북한이 미‧중 사이에 완충 국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가끔 북한 '길들이기'는 하지만, 북한을 완전히 버릴 수 없습니다. 거리를 두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시진핑의 이번 방한 목적은 북‧중 관계보다는 중국의 대미, 대일 전략 차원에서 분석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 주석이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한미일 관계가 중국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반미 한중 통일전선'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일 간 역사 문제 등을 활용해서 한국 국민들의 정서에 호소하면 최소한 '반일 한중 통일전선'은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작심하고 한국을 찾은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에는 중국이 다른 차원에서 반대급부를 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정세현 :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미·중 대결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한국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떼어 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봅니다. 
 
<중앙일보> 박보균 논설위원이 10일 칼럼을 통해 이번 시진핑 방한을 보며 '신 조선책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던데. 저도 그 점에 동의합니다. <조선책략>은 19세기 말 청나라 외교관인 황준헌이 쓴 책으로, 러시아의 진출을 막기 위해 조선은 중국과 친해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의 한국 방문도 이와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역사 문제를 매개로 한국과 중국이 손을 잡고 일본을 견제하고, 나아가서는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미국 편에 있지 말고 "우리와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시 주석은 일본 우경화에 공동대처하자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일본의 우경화를 밀어주고 집단적 자위권까지 인정하면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자는 내용이 은연중에 담겨 있습니다. 
 
양국이 이번 만남을 통해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됐다고 했는데, 중국은 그 용어를 쓸 때 한국을 확실하게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적어도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에 한국이 일본과 같이 하수인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만들어야겠다는 계산이 있었다고 봅니다. 
 
프레시안 :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중 간 경제 분야는 진전이 있었던 반면, 지역 안보 문제는 별다른 합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균형 잡힌 결과라고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지역 안보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황재옥 :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 그 후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북핵 문제가 접점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남북 대화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북‧미 대화, 그리고 북핵을 위한 6자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그 기본 틀을 견지한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가 먼저 있어야한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했던 것 같아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입장 차이가 조율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정세현 : 이번 회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된 북핵 문제와 관련된 합의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또 우리 쪽 발표문에는 들어가 있지만, 중국 측 발표문에는 빠져있는 내용이 있는데요.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표현을 언급하며 중국이 이전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는데 정작 중국 외교부의 발표문에는 이 부분이 빠졌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말을 끌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 단어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는데, 그 말 속에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도 없애라는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미국이 북핵 때문에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그 핵우산은 중국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한중 간 경제 분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한중 FTA 연내 타결에 합의했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정세현 : 일단 중국이 우리에게 가입을 공식 제안한 AIIB 문제가 우리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사안이 될 것 같습니다. AIIB는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의 ADB(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에 대응하기 위해 만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국의 아시아지역 금융패권에 대한 도전의 성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IIB는 겉으로는 경제 문제 같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미국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한국이 참여하라는 요청인 만큼 이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미국 측은 사실상 반대 의사를 우리 쪽에 밝히지 않았습니까. 
 
또한 중국은 지난 6월 CICA(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에도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CICA가 뭡니까.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끼리 해결하자는 것 아닙니까. 아시아 지역안보 문제에 미국은 손 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 CICA에 참여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미국과의 안보 관계 약화를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중국은 결국 AIIB를 통해 우리에게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제 질서에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고, CICA를 통해 중국 중심의 아시아 국제정치 및 안보질서에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결국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시 주석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 과제를 던지고 간 것입니다.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제질서와 지역 안보 질서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한 것이죠. 우리 정부가 앞으로 굉장히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원화와 위안화 직거래 문제도 있는데 이것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미·중 간 위안화 절상문제로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직거래를 시작하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우리한테까지 전달될 수 있습니다. 원화와 위안화의 직거래로 우리가 경제적 이득을 보는 측면도 있지만, 미·중간 경제 갈등의 파급효과가 우리한테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황재옥 : 양국은 한중 FTA를 올해 안에 마무리하자고 합의했는데, 이것이 예정대로 타결되면  우리가 중국의 내수시장으로 많이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수년 동안 한국의 연간 GDP 성장률이 3% 정도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3% 중후반대로 잡았는데 여기에 3%가 더해지면 6% 후반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죠. 하지만 공산품 팔려다가 저가의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는 문제도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농촌이 어렵습니다. 중국 농산물이 지금도 시장에 많이 있는 상황에서 FTA까지 체결되면 우리 농민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책을 미리미리 마련해가면서 FTA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중 FTA가 타결되면 한국경제의 대중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지난해 한중간 교역액은 미국, 일본과의 교역액을 합친 것보다도 많습니다. 한중 교역액이 2300억 달러이고 한미는 1100억 달러, 한일은 950억 달러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대중 무역에서 600억 달러의 흑자를 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FTA까지 타결된다면 한국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는 더욱 커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중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교역을 무기로 한국에 엄청난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 역할론' 벗어나 '한국 역할론'으로 
 
프레시안 : 북핵 문제는 여전히 답보상태입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기존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구요. 그런데 일본이 납치문제로 북한 제재를 일정 부분 해제하고 북일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면서 대북 공조가 흐트러진 측면도 있습니다. 이 마당에 우리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한의 성의 있는 선(先)조치만 요구하면서, 이와 관련된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을 중국에 요구하면 북핵 문제 풀 수 있을까요? 기존의 북핵 문제 해법을 재고해야 할 상황 아닙니까? 
 
정세현 : 재고해야 할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습니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 다른 입장을 취할 배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9, 10일 미국과 중국은 베이징에서 전략경제대화를 가졌는데. 중국이 6자회담 빨리 열자고 이야기했지만 미국은 북한의 성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미·중 간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이 주장하고 한국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른바 '중국 역할론', 즉 중국이 나서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장은 결국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런 주장이나 요구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제하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른바 '대비책'을 덧붙입니다. 북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주한 미군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이것은  북한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드는 고고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본심이 이렇다면 우리는 중국 역할론을 이야기하는 미국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오히려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북한과 대화를 통해 북의 진짜 속내를 파악하고 설득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미국도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이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는 하고 있지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훈련대로 하면서 남북대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중국더러 끌어내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끌어내야 합니다. 즉 '중국 역할론'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의 입장을 갖고 문제 해결에 임해야 합니다.
 
황재옥 : 북핵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부 입장은 미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런 입장을 고수할 경우 6자회담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핵 한미공조를 당연히 재고해야 합니다. 압박과 제재, 선행동 요구만으로는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협상밖에 없는데,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이 없는 협상 개시의 조건을 제시해 놓고 그것이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북한은 최근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면서 적극적인 대남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30일 국방위원회 특별제안에 이어 지난 7일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인천 아시안게임에 응원단까지 보낸다면서 남북 교류와 화해를 위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걸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남은 임기 중에도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 대북 정책을 끌고 간다면 요동치는 동북아에서 우리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질지 우려스럽습니다. 
 
아시안게임과 시 주석 방한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미·중 간 6자회담에 대한 입장 차이를 절충할 수 있는 중개자(mediator)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북핵 문제 해법도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6자회담에 대한 미‧중 간 입장의 차이도 조율하지 못하고 간극도 메우지 못한다면 6자회담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6자회담을 재개시키고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남북대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대남 대화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인도적 지원부터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 대로 한국이 인도적인 문제를 내세워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제스처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제안 중에 안보적인 측면만 강조해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북한이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국내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국내 정치적으로 입지가 어려워지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지지마저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유연한 대북 조치를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핵무기를 '민족의 보검'이라고 주장하고,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중지하라고 했다는 걸 이유로 북한의 대남제안이 비현실적이라고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북한이 으레 하는 말입니다. 북한 내부를 다지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이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처럼, 북한도 그런 행태를 보입니다.
 
물론 북한이 좀 헷갈리게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잘 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 동해로 방사포와 미사일을 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북한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미국의 항모나 비행기가 서해나 동해로 들어온다든지 훈련을 한다든지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겁니다. 이런 측면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북한도 군사적인 차원과 남북관계 차원이 완전히 표리의 관계로 연결된 것은 아닌데, 우리가 이런 것들을 밀접히 연관돼있다고 해석하니까 북한의 진짜 의도를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미·중 간 중재자 역할 하지 않으면 동북아 평화 없어 
 
프레시안 : 지난 1일 일본이 해석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같은 날 한미일 3국의 합참의장이 하와이에 모여 안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세 나라 합참의장의 회동은 사상 처음이죠. 또 한미일 정보공유 양해각서 체결도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정황들을 봤을 때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은 이미 사실상 완성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우리는 말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해야한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한미일 동맹의 강화인 것 같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면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좋은 취지였는데 이후에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우리가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 상황은 한미일 군사동맹이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미‧일 군사동맹에 한일 군사동맹까지 추진되면서 한국이 일본의 하위체계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외교 안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조율해주는 곳이 국가안보실인데, 지금 안보실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안보 상황을 동북아라는 너무 좁고 한정된 곳에서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국가 안보는 미국과 직접적으로 연결돼있기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유럽 등의 문제에 얼마나 개입하고 있고, 역량을 얼마나 쏟아 붓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의 대외안보 역량 중에서 우리가 미국과 얼마나 협조할 수 있으며, 따라서 중국과는 어느 정도 협력을 할 수 있는지를 계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은 미국에 의존하면서 우리는 주로 군사적인 판단만 하는 것 같습니다. 머리는 미국 것을 빌리고 우리는 팔다리만 쓰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과학장비에만 의존하고 대증요법만 쓰는 것 같습니다. 위성사진 판독해서 문제 있는 곳에만 신경 쓰는 이른바 '대증요법'으로만 접근하고 있는데, 국가 안보는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체력이 어느 정도이고 어디가 나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식의 한의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외과적 접근이 아니라 내과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미국과 협조하면서도 우리 독자적 판단과 전략수립을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역할과 위상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머리를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으니 '말 따로 실제 행동 따로' 움직이는 형국이 된 겁니다. 저는 우리 정부더러 한미동맹 깨라는 게 아닙니다. 일본과 군사정보공유까지 하면서 일본 밑으로까지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우리 경제에 막중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결과적으로 불편하게 만들면 어떡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미국에게 쓴소리 한 번 안 하면서 무슨 재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걱정됩니다. 외교에서는 진짜 자기 나라 입장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호불호를 결정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앞으로 미‧중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장기적으로 안보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지향해 나갈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황재옥 :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은 결국 자신들의 국익 추구에 매진할 것입니다. 한국도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를 직시해야 할 전환의 시기를 맞았다고 봅니다. 시 주석이 AIIB 가입 요구를 비롯해 우리한테 곤란한 과제를 여럿 주고 갔는데, 오히려 이 과제를 풀어 나가는 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국익은 국민의 행복과 안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나아가 통일입니다. 좀 더 큰 그림을 보아야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도 찾을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국익을 달성할 것인지 손 놓고 있을 것인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에게 미국과 동맹관계는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과 동반자 관계도 중요합니다. 이를 가장 절묘하게 조합하는 것이 시 주석이 던진 과제를 국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이 미‧중 간 협조가 불가피한 틈새를 파고 들어가 양자의 협조를 촉진시키는 이른바 '촉진자'(facilitator)가 돼야 합니다. 이를 통해 동북아 평화를 조성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미·중 간 동아시아의 패권, 지배권을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속셈은 다를지언정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은 갖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미·중이 대화하고 협조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 황재옥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황재옥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다만 이 과정에서 기존의 동맹인 미국에 우리의 행보를 잘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과 가까워지더라도 미국과 적대하려는 것이 아니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미국에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납득시켜 나가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우리의 국익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끈질기게 미·중을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도 필요합니다.
 
정세현 : 쉽게 이야기하면 이쪽 편도, 저쪽 편도 아닌 외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미·중간에 촉진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지만, 이와 더불어 북미 간에도 대화가 가능하도록 촉진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미·북 간에 촉진자 역할을 해서 2005년 9.19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 내는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 편에 서서 확실하게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 혹은 중국 편에 서서 중국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동북아 평화가 흔들립니다. 반면 어느 한쪽에 확실히 서지 않은 상태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촉진자'(facilitator)나 '중재자'(mediator) 역할을 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중국이 떠오르고 있고 경제 문제가 중요하다면서 중국이 섭섭해할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섭섭해할 정도로 중국에 가까워지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프레시안 : 우리가 촉진자 또는 중재자 역할을 하려면 최소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레버리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돼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바꿔야 할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도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지난 7일 성 김 대사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전작권 전환 시기를 불필요하게 지연시킬 필요는 없다, 미국도 바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전작권 환수를 계속 연기해야만 하는지 우리가 재고해야 할 중요한 사안 아닌가요? 
 
정세현 : 우리가 전작권을 지금처럼 계속 미국이 가지고 있도록 하면 대북 협상 면에서도 우위에 설 수 없습니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을 감행할 수 있는 이유도 한국에 전작권이 없기 때문에, 즉 한국의 전면적 보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968년 1.21사태나 1983년 10월 9일 랑군 사태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은 남북 간의 보복공격을 통한 확전을 바라지 않거든요. 전작권이 우리에게 있으면 북한이 이렇게까지 맘놓고 우리를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보복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지금은 우리가 전작권이 없어서 단독으로 북한에 대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이 마음 놓고 연평도를 포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작권 환수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 전작권이 우리한테 돌아오면 북한이 핵을 마음 놓고 개발하기도 어려워집니다. 북한의 핵능력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가 독자적으로, 국방부가 즐겨 쓰는 말로, 원점을 때리는 방식으로 북한의 핵 능력과 대응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작권은 미국이 우리에게 넘겨주고 싶어합니다.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化)를 위해서입니다. 미국의 국방예산이 점점 감소되는 상황에서 많은 곳에 군을 주둔시킬 수 없는 미국이 현재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현재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이동 반경을 넓혀야 합니다. 주한미군도 예외가 아니죠. 
 
그런데 주한미군이 전작권을 가지고 있으면 한국 밖으로 나가기가 힘듭니다. 만약에 미군이 주변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기 위해서 잠시 주둔지를 떠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공격을 하면 미군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미군의 신속기동화와는 이런 문제점 때문에 부시 정부 때 추진된 겁니다.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해달란다고 해서 된 게 아닙니다. 그것도 북한에 대해서 가장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던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추진한 겁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 미국은 확전을 싫어합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예산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판이 커지면 책임 못 진다고 말하는 것이 미국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작권을 갖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 겁니다. 한국이 대북억지 능력은 물론이고 대북협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전작권 환수를 더 이상 연기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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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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