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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료원 직장폐쇄…"가난한 환자는 어디로"

[현장] 흑자 강요당하는 공공병원, 쥐어짜이는 병원 직원

김윤나영 기자(=속초)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06 09:05:54

 

 

 

 

 

 

 

'직장 폐쇄' 6일 차였던 지난 4일, 강원도의 공공병원인 속초의료원은 한산했다. 환자들 발걸음이 뚝 끊겼다. 의료원 측은 입원 환자를 내보내고 초진 환자를 받지 않았다. 재진을 받는 환자들 몇몇만이 드문드문 접수했다.

 
별관에 있는 물리(재활)치료실 문도 잠겼다. 업무에 복귀하려고 대기하던 간호사들은 굳게 잠긴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속초 인근에서 재활치료를 하는 곳은 공공병원인 속초의료원밖에 없다고 했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의료원은 5일부터 소아 재활치료에 한해 치료를 재개하기로 했다.
 
의료원에 남은 입원 환자와 보호자들도 불안감을 호소했다. 다리 수술을 마친 한 50대 환자는 "나를 수술한 과장은 있으라고 하고 원장은 나가라고 하고, 입원은 해야 하는데 쫓겨날까 봐 불안하다"며 "도지사나 시장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데 보이지 않고, 서민들만 죽어난다"고 토로했다.
 
▲ 직장 폐쇄로 한산한 강원도 속초의료원 로비. ⓒ프레시안(김윤나영)

▲ 직장 폐쇄로 한산한 강원도 속초의료원 로비. ⓒ프레시안(김윤나영)

 
중증질환을 앓는 75세 노모를 모시는 지모(남·45) 씨는 "이미 퇴원하신 분들이 많고, 남더라도 끝까지 버텨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어머니가 전혀 못 움직이시는데, 재활 치료하는 데가 속초의료원밖에 없어서 우리는 계속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 씨에게 속초의료원은 재활 치료도 제공하고 쾌적하며 병원비도 싼 고마운 병원이다. "여기는 그나마 국가의료원이라 한 달 입원비가 100만 원 정도 드는데, 민간병원은 150만 원 정도 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의료원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지 씨는 "노조가 요구하는 부분을 전부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병원이 어느 정도 받아줘야지, 안 그러면 환자만 피해 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업무 복귀 하루 앞두고 직장 폐쇄
 
속초의료원 노사관계는 지난달 30일부터 파국으로 치달았다. 파업 중이었던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이하 속초의료원 노동조합)가 31일 업무 복귀를 선언하고 막바지 집중 교섭을 벌일 예정이었는데, 의료원 측이 복귀 하루를 앞두고 직장 폐쇄에 들어갔다.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은 단체협약 이행, 체불 임금 해결, 인력 충원, 노사합의 파기 철회 등이었다. 반면 의료원 측은 이전 원장이 합의한 단체협약을 인정할 수 없고, 경영 적자를 이유로 임금 체불, 인력 충원 등에도 난색을 보였다. 급기야 의료원은 150명이었던 입원 환자에게 '노조 파업'을 이유로 퇴원을 유도해 20여 명만 남겼다. (☞관련 기사 :속초의료원, 환자 쫓아내고 직장폐쇄…제2 진주의료원?)
   
박승우 원장에게 직장 폐쇄와 휴업권 등을 위임한 속초의료원 이사회 9명 가운데는 강원도 의료원경영개선팀장도 포함돼 있다. 강원도가 직장 폐쇄를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병원 안팎으로는 노사가 내건 현수막이 노사 갈등 상황을 가늠케 했다. 병원 측은 병원 노동자들이 최대 연봉 5000만 원을 받는다고 노동조합을 비방했다. 노동조합은 박승우 원장의 공격적인 '직장 폐쇄'를 비판했다.
 
▲ 속초의료원 앞에 내걸린 현수막. ⓒ프레시안(김윤나영)

▲ 속초의료원 앞에 내걸린 현수막. ⓒ프레시안(김윤나영)

 
"연봉 4000만 원? 15년 차 간호사 기본급 158만"
 
병원 로비에 농성하고 있는 몇몇 간호사들에게 '연봉 4000만~5000만 원'의 진실을 물었다. 15년 차 간호사인 원은주 속초의료원 노조 사무국장은 "시간 외 수당, 야근 수당, 휴일 수당, 식대, 학자금까지 다 합쳐서 20년차쯤 돼야 그 정도 받을까 말까이지, 그런 걸 빼면 15년 차인 내가 158만 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의료원 측이 계산한 평균 연봉은 직원 173명 가운데, 계약직 노동자 초단기 시간제 노동자 42명을 제외한 연봉이라고 했다.
 
15년 차 간호사의 임금 명세표를 보니, 야간·휴일 근무에 따라 들쑥날쑥했지만 시간 외 수당 등 모든 수당을 포함해 대체로 220만~260만 원대였다. 적은 기본급을 밤샘 근무, 초과 근무로 채우는 식이었다. 1~2년 차 간호사의 기본급은 80만~90만 원대인데, 야간근무와 초과근무 등으로 180만 원을 받아가는 식이었다. 
 
간호사들은 박봉보다 더 힘든 점은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노동 강도라고 했다. 한 15년 차 간호사(37)는 "2012년 의료원을 신축한 다음부터 환자들이 두 배 가까이 늘었는데, 직원 수가 그대로였다"며 "젊은 간호사들이 힘드니까 못 버티고 자꾸 나간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한 지 하루 만에 나간 간호사도 있다고 했다.
 
아이도 있고 집이 가까워서 15년간 속초의료원에 눌러 있다는 이른바 '아줌마' 간호사들은 농성장에서 한 젊은 후배 간호사에게 "어차피 150만 원 받을 거라면, 몸 망치지 말고 젊을 때 밤샘 없는 로컬(개인병원)로 가라"고 권했다. 젊은 간호사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 단체협약에 결혼 휴가 7일이 명시돼 있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단체협약에 결혼 휴가 7일이 명시돼 있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한국 간호사의 노동 강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다. 간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낮 근무 기준으로 평균 17.7명이다. 미국의 5.7명보다 3배 정도 많다. 그러니 자주 그만둔다. 한국 상황이 이미 지옥 같은데, 속초의료원은 그보다 더 심하다. '나 홀로' 환자 30명을 본 간호사도 있었다.
 
"30명을 맡다 보면, 처치 이상의 것을 못해요. 아무리 숙련된 간호사라도 30명을 커버하다 보면, 분명히 환자 상태를 놓치는 게 있을 거예요. 인수인계도 제대로 못 할까 봐 뛰어다녀요. 환자들이 저한테 '왜 뛰느냐'고 물어봐요. (환자에게) 제대로 못 해주니까 스트레스 받죠. 친절도 시간이 있어야 하지…."
 
'경영 성과' 내몰린 공공병원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도에서는 '경영 수지 개선'을 쪼고, 의료원은 노동자들을 다시 쪼는 구조라고 했다. 강원도는 지난 2월 '의료원 발전 방안 연구 용역' 공청회를 열고, 강릉의료원과 원주의료원에는 매각·축소 이전 검토를, 경영난에 처한 속초의료원에는 "건강검진센터 및 장례식장 증축을 통한 부가 수익 창출"을 주문한 바 있다. 강원도는 지난해부터 경영 수지가 부진한 의료원장에 대해 '경고 3진 아웃제'를 도입한 바 있다.
 
도가 채찍질한 결과인지, 실제로 속초의료원의 경영성과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신축 이전한 이후인 2013년 속초의료원은 전년도와 비교해 지난해 입원 환자는 13%, 외래 환자는 51%, 기타 환자가 57% 증가했다고 밝혔다. 의료 수익 역시 16억 원 늘어나 39% 늘었다고 밝혔다.
 
의료원 직원들은 "도에서는 경영 수지만 강조하지만, 흑자도 어떻게 냈는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속초의료원 노동자들의 기본급이 2008년부터 무려 7년째 동결된 상태이고, 일이 힘들어서 나간 사람이 있으면 빈자리를 안 채워준 결과라는 것이다.
 
▲ 2012년 신축 이전한 속초의료원 전경. ⓒ프레시안(김윤나영)

▲ 2012년 신축 이전한 속초의료원 전경. ⓒ프레시안(김윤나영)

 
의료원 측도 이런 사정을 안다. 의료원 관계자는 자연감소분 인력을 충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수익이 증가했지만 비용도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년째 동결된 임금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노조는 2008년 임금 테이블을 2011년도 테이블로 인정해달라고 하는데, 그러면 임금 6.8% 인상 효과가 생기고, 매년 5억 원 이상 인건비가 지출된다"고 난색을 보였다.
 
노사는 오는 7일 교섭을 벌일 예정이다. 환자들은 속초의료원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랐다. 다리 깁스를 한 아들과 의료원을 찾은 엄선화(40) 씨는 "임금이 체불됐다는데도 병원 직원들이 친절해서 속초의료원을 자주 찾는다"며 "책임자인 원장이 직장 폐쇄를 풀고, 대화로 해결했으면 한다"고 했다.
 
간질성 폐 질환과 협심증 등으로 산소 호흡기를 달아야 하는 이순자(69) 씨는 "병원에서 파업한다고 환자들을 퇴원시켜서야 되겠느냐"며 "힘들다.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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