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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떠나 “정당정치 위축·사회 우경화 우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12/21 09:56
  • 수정일
    2014/12/21 09: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 2014.12.19 20:01수정 : 2014.12.2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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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사건 선고에서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는 주문을 읽고 있다. 왼쪽은 주심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 오른쪽은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 학계 전문가 진단과 전망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학계 전문가들은 진보·보수를 떠나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통합진보당이라는 정치조직의 해산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인 정당정치를 위축시키고 정치적 기본권의 심각한 제약을 초래할 수 있는 결정이란 이유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6 대 3’ 정도로 예상했는데 ‘8 대 1’이라는 충격적 판결이 나왔다”며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법원의 최종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헌재가 이렇게 결정한 것은 매끄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보수 인사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해산 결정이 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8 대 1’이란 압도적 결정이 나올지는 몰랐다”며 “헌재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법리적 판단이 아닌, 보수적 관점을 대변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려 최고 사법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정당해산 같은 기본권의 제한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 위협이 입증되는 경우에 한해 ‘최후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헌재 결정이 헌법이 규정한 정당해산 제도의 취지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내려졌는지 심각한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헌재가 중세 종교재판의 대심문관처럼 비뚤어진 소명의식에 사로잡혀 정치적으로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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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이 낳을 정치적 후폭풍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종북몰이가 한국 사회 전반에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며 “선거와 공안 말고는 잘하는 게 없는 박근혜 정권으로선 2016년 총선까지 필요한 순간마다 공안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고 했다. 통합진보당 재건을 시도한다는 것을 빌미로 진보세력의 정치활동에 대한 공안당국의 개입이 수시로 이뤄지고, 결국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진보적 목소리가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석기’ 최종판결 전 압도적 결정
헌재에도 적지않은 부담 될 것

 

‘진보당 재건’ 빌미 종북몰이 우려
“이참에 북한문제 정리를” 지적도

 

‘사법의 정치화’ 정치권 책임론
“여야 국면전환용 활용해선 안돼”

 

신진욱 교수는 독일·스페인 등 정당해산 경험이 있는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근거로 정치적 자유의 위축과 사회 전반의 우경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헌재 결정을 법적 근거로 삼아 당 지도부와 당직자, 당원들에 대한 포괄적 수사와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며 “심지어 공직에 있는 당원들을 솎아내 해고하고, (공직) 재진입을 막는 하위법령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대체정당 금지’와 관련해선 “진보당 강령과 유사한 정치적 주장이 발붙일 여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우파만 있는 반쪽짜리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헌재 결정에 의한 정당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치닫기까지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비판적이었다. 박상훈 대표는 “정치권 스스로 해결해야 할 갈등을 위헌소송이나 헌법소원으로 가져간 탓에 헌재에 이상한 직업의식이 생긴 듯하다. 헌재 판결에서 드러난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권이 만든 ‘정치의 사법화’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꼬집었다. 김형준 교수 역시 “이번 사태는 정치가 무능하고 정치가 실종됐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여야 모두 이 상황에 책임이 있는 만큼 헌재 결정을 정쟁화해서도,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북한 문제를 이 기회에 명쾌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정치학계의 한 인사는 “냉전시기 유럽 정당사를 봐도 ‘모스크바’(소련 공산당)와 관계를 절연하지 않은 좌파 정당들은 대부분 몰락했다”며 “핵·인권탄압·정권세습 등 북한체제의 문제점들에 대해 엄정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한국 진보 정당들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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