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좌파를 ‘박물관’에만 모셔두면 세상은 삭막하다

 
 
[서평] <The left> 유럽좌파의 역사
 
耽讀  | 등록:2015-01-10 09:21:42 | 최종:2015-01-10 09:38: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한민국은 과연 진보시대를 경험했던 적이 있는가? 보수세력은 김대중 ·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이라 몰아붙였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이름붙인 김대중 · 노무현 정부가 정말 좌파정권인가?

두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좌파’라 명명한 것은 실로 좌파를 모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정부는 자유주의정부에 가까웠고, 개혁주의를 더 시행했을 뿐이다. 이제 개혁주의 정부가 끝나고 보수정권이 들어섰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방의회뿐만 아니라 국회까지 보수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보수주의 시대에 ‘좌파’를 떠올린다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다양성 사회다. 사상과 이념이 획일화된 민주주의는 진보할 수 없다. 정치지형이 보수주의로 획일화될 때 사회진영과 시민진영은 더욱 더 보수와 반대되는 좌파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진보진영 몰락과 좌파종식을 외치는 이 때에 제프 일리가 쓴 <The left>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준다. 방대한 분량(1010쪽), 엄청난 책값(50,000원)이라는 무게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특히 인민, 사회학이 힘을 잃어버린 이때 단순하고, 표피적인 책 읽기가 유행 하는 이때 이런 두깨와 책값은 1980년대 치열한 사상 싸움과 정치투쟁을 경험했던 이들도 접하기 버거운 책이다.

하지만 진정 민주주의와 인민주권, 다양성이 지배하는 사회구성을 원한다면 긴 호흡을 가지고 <The left>를 한 장씩 음미하면서 읽어보자. 이 책을 통해 1848년 혁명 실패 이후부터 2003년에 이르는 유럽 좌파를 만남으로써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정죄받는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에릭 홉스봄 <The left>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의 학식과 분석을 1968년 학생 급진파의 참여의식과 결합하면서 제프 일리는 민주주의 희망 선언이자, 150년 동안 민주주의에 현실성을 부여해온 좌파운동을 상대로 기나긴 애도의 작별인사를 했다. 1848년 이후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숙고와 열정을 두루 담아 집필한,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이 개괄서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The left> - 추천평)
 
사상서 중에 이토록 오랜 시기와 광범위한 분량, 여러 나라를 두루 아우른 책은 별로 없다. 그래도 좌파를 정치지형 안에 뿌리내리게 한 지역은 유럽 외에는 별로 없다.

150년 유럽 사상과 정치 지형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말이다. <The left>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1848년 혁명이 패배한 직후인 1860년대부터 1차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로 산업자본주의가 유럽 경제에 뿌리 내리고 팽창하는 가운데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여 정치조직을 만들어가는 좌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는 1914~23년이다. 역사 이래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인 1차 대전은 새로운 공산주의 운동의 등장을 요구한다. 3부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56년까지로 대공황과 파시즘 및 레지스탕스가 남긴 유산을 통하여 의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세워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4부는 좌파의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자 했던 신사회운동을 다루는데 이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저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에 대하여 이렇게 평한다.
 
이 책은 묘비명이 아니며 지난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의 몸짓도 아니다. 이 책은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들이 잘못 전달될 때일수록 역사가 중요하다는 확신의 소산이다.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라는 말은 요즘 글쟁이들의 상투적인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의 힘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1990년대 동안 새로운 기억상실증들로 인해 몇 가지 없어서는 안 될 역사가 지워져버렸다. 모름지기 좌파의 역사는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왜곡하며, 공격하고 억압하고, 때로는 심지어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는 불평등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 역사는 분명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본문 14-15쪽)
 
그는 좌파의 종식과 몰락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좌파 탄생을 원하고 있으며 화석화된 좌파가 아니라 인민과 인간을 위한 진정한 좌파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좌파는 국왕 거부권 폐지, 단원제 입법부, 선출에 의한 사법부 구성, 권력분립을 주장했다. 행정부보다 입법부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실현을 위하여 1인 1표의 민주적 참정권 등을 채택하는 강력한 민주주의적 입장을 쟁취하기를 원했다. 한 인민이 민주질서 중심에 자리 잡기를 원했다.
 
하지만 좌파는 현실사회주의 몰락에서 보여주듯이 스스로 권력집단이 되었고, 인민을 그 계급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사회주의의 종언을 고한다. 특히 '여성문제'에 관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자체의 핵심인 참정권과 관련하여 최악의 모습을 드러냈다. 노동계급 남성들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주의 정당들은 여성의 투표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1968년이 남긴 다른 두 가지 유산은 좌파의 미래에 대해 훨씬 더 중요했다. 하나는 의회 외부 정치의 부활이다 ― 직접행동, 공동체 조직화, 참여의 이상, 소규모 비관료적 형태들, 풀뿌리에 대한 강조, 일상생활과 정치의 일치. 다른 하나는 1970년대 동안 가장 창조적인 의회 외부 저항이었던 페미니즘과 새로운 여성운동의 부상이다.(본문 661)
 
대한민국 정치지형에도 보수시대가 열렸다. 아직도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영역에서 보수화를 꿈꾸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진보와 좌파라는 정치지형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10년은 결코 진보와 좌파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좌파정권'이라는 단 하나의 말로 좌파가 꿈꾸는 직접행동, 공동체성 회복, 참여정치, 여성주의, 분배를 통한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가기를 거부한다.

평등 자유 연대라는 이상을 완전히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이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특히 획일화된 사상을 강요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좌파는 몰락했다고 박물관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사상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담지 못하는 영역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중요한 사상이다.

<THE left> 이런 의미에서 좌파에 대한 심층서는 아니지만 화석화 위기에 빠져버린 우리 사회의 사상에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는 책임은 분명하다. 좌파를 박물관에만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그 순간 우리 사회는 삭막함을 넘어 호흡할 수 없기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는 결국 죽은 사회가 아닌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589&table=byple_new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