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우유가 몸에 좋다는데 왜 엄마만 나쁘다고 해?"

[민들레] 돌봄·① 금쪽같은 내 새끼

이현주 주부 2015.03.06 18:07:38
 
올해 여덟 살이 된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는 공교육에서 학교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아이의 공교육 경험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됐다. 다섯 살이 끝날 무렵까지 집에 있다가, 그 이후 집 앞에 새로 생긴 병설유치원에 다녔다.  
 
애초에 아이를 기관에 일찍, 오래 맡기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내 아이'가 다닐 '더 좋은 기관'에 대한 궁리는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세 살이 됐을 무렵, 내 나름 대안이라고 할 만한 기관들을 그나마 집 가까운 곳으로 어렵게 찾아내 전화를 했는데 무척 비쌌다. 우리 경제 상황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정도였다. 그런데도 욕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데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이야기는 참 차가웠다.  
 
"어차피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다니실 수 없습니다. 지금은 대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전화로 접근했던 몇몇 기관들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영어유치원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내 자식만 위하는 부모의 욕망'을 이용해서 장사하는 곳들이었다. 당시 세상을 보는 내 빈약한 가치 척도에 걸맞게 찾아낸 곳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참 아쉬웠다. 아이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주지 못하니,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기가 어려웠다. 한창 예쁜 아이의 모습을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날들이었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데도 쉽게 대안 유아기관들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지 못하니,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 지난 2일 부산의 한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연합뉴스

▲ 지난 2일 부산의 한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연합뉴스

 
 
그런데 그런 걱정들로 시간을 오래 낭비하지 않고 내가 '지금 여기'로 다시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아이 덕분이었다.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둘은 언제나 웃었고 함께 있는 것에 만족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위해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평생 부모라는 역할을 내 정체성의 일부로 삼으면서도 한편 극복해야 할 욕망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는 내게 '내 새끼를 위하는 마음'은 사실 참 불편한 내면의 자아이기도 하다. 
 
이때부터였나 보다. 내 자식을 위한 욕망이 아닐까 염려될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기준으로 '이것이 주변의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인가?' 묻기로 한 것이. 그렇게 생각하니 주변의 일반 어린이집도 치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그곳에서는 온갖 사교육 프로그램을 '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원비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의 삶을 결정한 후 우리 부부는 선택이 조금 쉬워졌다. 가족이 최대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아이도 가장 친근한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어서 즐거워했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자 함께 사는 시부모님이 손자의 기관 생활(공교육)이 늦어진다고 염려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공동 보호자인 어른들의 손자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의 충족에 따른 행복도 충분히 고려해야 했다. 마침 그해 봄에 첫아이는 형이 됐고 나름대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동생 맞이도 잘 해나갔던 터라, 유치원에 갈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 운이 좋게도 집 앞 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생겼고 아이는 첫 기관 생활을 그곳에서 시작했다.  
 
우리 가족에겐 병설유치원이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교육비가 안 들었고, 게다가 일찍 끝났다. 오후 1시가 되면 모든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한 날도 많았고, 유치원 문 앞에서 엄마와 떨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는 천천히 적응해 나갔고,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질 때면 엄마인 내가 아이를 잘 돕고 있는 건지 고민했다. 공교육 내 초등학교와 연계되어 있어서 아이들에 대한 통제와 훈계의 강도가 높고 때론 부당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와 부모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아이에게서 경쟁심과 복종의 흔적을 확인할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다양한 어른들과 친구들을 경험하는 것이 다른 지적 학습보다 더 큰 배움'일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걱정의 한복판에서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그나마 다른 기관 보다 일찍 끝난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엄마가 늘 제 곁에 있고 외부 기관에는 짧게 노출되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고 서둘러 고민을 접어버렸다. 너무 내 아이 생각만 하는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부모 모두 일을 다니는 경우도 많고 엄마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가정도 많은데, 대가족 속에서 여러 어른들의 돌봄을 받는 우리 아이에 대한 고민을 오래 하는 내가 너무 욕심쟁이 같이 느껴졌다.   
 
학원에 보내 달라 조르는 아이  
 
아이는 일곱 살이 된 어느 날부터 친구들이 유치원 끝나자마자 태권도 차를 타고 사라지자, "엄마, 태권도 보내줘!"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친구들이 없어서 학원에 따라 간다더니, 내 아이도 그랬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다. 자꾸만 조르는 아이를 보며 흔들리던 찰나, 미용실 건물에 있던 태권도장을 지나치다가 깜짝 놀랐다. 학원 앞에 커다란 장난감을 전시해 놨는데, 그걸 가져갈 자격은 '태권도장 선생님 말을 잘 들으면 나눠주는 스티커 개수로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유치원의 영향으로 집에서도 칭찬 스티커를 달라고 조르던 참이었다. 자기가 말 잘 들으면 보상으로 스티커를 주고 그게 다 모아지면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는 걸 당치도 않은 이야기라고 못 박아 뒀는데, 태권도장에서도 똑같은 교육을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고민은 사라졌다. 보내지 않는 걸로. 게다가 다달이 들어갈 십여만 원의 학원비도 부담스러웠다. 비용도 부담스러운데다 아이의 가치관에 혼란을 줄 문화도 탐탁지 않았고 무엇보다 또 다른 복종관계를 맺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언가 시간에 얽매이는 것은 유치원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었다. 
 
▲ 할아버지 손은 약손. 어른들의 돌봄을 받고 자라는 아이. ⓒ민들레

▲ 할아버지 손은 약손. 어른들의 돌봄을 받고 자라는 아이. ⓒ민들레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유혹이 찾아왔다. 아이가 자기는 그림을 못 그려서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는 월요일엔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썼다. 선생님 말씀으론 또래보다 유난히 못 그리는 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아이 욕심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유치원을 오가며 다른 엄마들 조언을 들으니, "학원을 보내서 자기가 잘 그린다고 생각하는 수준으로 올려주라"고 했다. 마침 동네에 놀이처럼 미술을 즐기게 한다는 학원이 생겨서 상담을 해보니, 선생님도 마음에 들었다.  
 
'어쩌나….' 또 생각했다. 남편과 상의하자 "못하면 다 학원에서 배우게 할 거야? 그냥 둬"라고 했다. "그러네." 이렇게 나는 자주 흔들린다. 다행히도 남편이 중심을 잡아줘서 아이에게 "잘 못해도 되고 조금 더 기다리면 잘 그릴 수도 있게 될 거다"라고 설명하며 기다리자고 했다. 유치원 선생님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격려를 많이 받았다. 그 사이에 발달과정을 훌쩍 뛰어넘은 것인지, 아이는 한두 주 사이에 갑자기 스스로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하게 됐다. 그 일로 사교육의 도움을 받고 싶은 욕구는 아이의 보챔과 자연스런 발달을 기다리지 못하는 부모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유치원 아이에게 수십만 원씩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건 어느 특별한 집 이야기가 아니다. 한 가지를 시작하게 되면 그 다음은 쉽다. 태권도로 시작해서 미술·피아노·글짓기로 이어지는데, 이렇게만 해도 적게 잡아 한 달에 삼십만 원 남짓이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크지만, 과연 돈으로 산 그 시간이 정말 아이의 필요에 의한 것인지 물어야 될 것 같았다. 적어도 내게는 아이의 시간을 지켜주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요즘에도 여전히 아이는 따지듯 묻는다.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이랑 달라?" 처음엔 당황스러웠다가 점차 이 질문이 아이와 나를 아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에겐 무언가에 대해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니 건강한 질문이고, 나에겐 끊임없이 '내가 사람들과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묻게 하는 질문이어서 건강하다. 미완의 존재인 우리는 모두 나의 생각이 진짜 나의 생각인지 의심하며 진리를 찾기 위해 애쓰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우유가 몸에 좋다고 하는데 왜 엄마만 나쁘다고 해?"라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책에서 우유가 몸에 나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고, 우유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판단을 선택했어. 지금은 네가 엄마 보살핌 아래 있기 때문에 엄마의 방식을 따르겠지만, 너도 책을 읽게 되면 두 가지 이야기를 잘 읽어보고 네가 선택하면 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대답을 마련하는 동안 나 스스로도 한걸음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집 근처에 혁신초등학교가 있다. 오랜 시간 대안교육에 대한 짝사랑으로 살아온 내겐 마음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으니, 아이를 그곳에 보내고 싶어 마음이 흔들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니, 그 역시 '내 아이를 특별히 키우고 싶은 욕망'이라는 이야기가 내면에서 들려왔다. 게다가 주소 이전 을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위장전입'이라는 사실에 다다르자 혁신학교에 대한 욕망이 깨끗이 사라졌다. 
  
다시 떠올려 봤다. '어떤 아이들이나 다 선택할 수 있는 곳에서 평화로워지는 방법을 찾아보자던 예전 나만의 약속을. 단순하지만 잘 잊게 되는 기준을 잊지 말아야지. 돈으로 아이의 시간을 빼앗지 말기를, 지루하게 기다리는 배움의 과정을 돈으로 생략하지 않기를. 아이는 돈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어른들의 사랑으로 키워진 다는 고루하고 따분한 진리를 잊지 않기'를 나 스스로 다짐해본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방학은 길다. 아이는 내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었다. 텔레비전 못 보게 하는 엄마를 견디면서, 어린 동생과 티격태격하면서, 할머니께서 엄마 몰래 주시는 단 간식들을 먹으면서, 그림 그리고 글자 쓰고 색칠 놀이도 하고, 도서관에도 가며 느리고 심심하게 지내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도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 더 일찍 끝날 것이고 우리는 모두의 시간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도록 애쓸 것이며, 그 안에서 갈등과 화해와 배움이 일어날 것이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