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년 전 태고 모습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적 희귀동물, DMZ 등서 500여 마리 생존
경계심 많지만 놀라지 않는 의연한 모습…체계적 보전대책 시급
» 느긋하게 마른풀을 씹고 있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 산양의 의연한 모습.
지난 1월8일 설레는 마음으로 산양을 보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으로 향했다. 고성은 금강산을 품은 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을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김포에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었다.
군부대에서 운영하는 율곡회관에 여장을 풀고 내일 건봉산 산양을 만날 기대감 속에 밤을 보냈다. 날이 밝았다. 춥기는 하지만 아주 쾌청한 날씨다.
»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서 바라본 건봉산과 주변 산줄기.
오전 9시 건봉산 들머리 주차장에서 안내를 맡은 정훈장교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늦는다더니 아예 10시쯤 도착한단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옷깃을 여미고 건봉사에 들렀다. 푸르른 소나무가 방문객을 맞는다.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건봉사가 불타고 500년 된 팽나무와 불이문만 남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롭게 건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옛 흔적이 사라졌지만 설악산의 신흥사, 낙산사, 화암사, 백담사와 갈은 절들이 모두 건봉사의 말사였다니 절에 규모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 건봉사 들머리의 늘름한 소나무 숲.
» 건봉사 전경. 설악산 신흥사, 낙산사 등을 말사로 거느린 큰 절이었다.
안내를 맡은 정훈장교가 도착했다. 검문소에서 간단한 출입신고를 마치고 정훈장교의 안내를 받아 건봉산으로 향했다. 해발 910m가 조금 넘는 건봉산은 민간인통제구역이 곳곳에 있었다.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최전방 능선을 따라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철책이 이어져 있다.
» 철책선에 가로막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봉산.
급한 경사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구불구불 좁은 길은 차가 교차하면 한쪽에서 서야 한다. 지프로 이런 길을 운전하는 경험도 처음이다.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낭떠러지는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었다. 산 전체가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천연림으로 덮혀 있는데 그 위에 하얗게 눈이 쌓여 산 전체가 온통 은빛이다. 발아래 보이는 능선이 청량제처럼 시원스럽게 다가온다.
» 건봉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고성의 모습.
» 백두대간 중 금강산의 정맥을 잇고 있는 건봉산 연봉.
차량이 힘겹게 30분 정도 움직여 건봉산 꼭대기에 이르자 바다와 맞닿은 고성 땅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제부터 산양을 보려면 타래난초 꽃처럼 타래를 튼 고진동 계곡의 물굽이로 난 작전도로를 따라 30분 더 가 건봉산 북쪽 끝자락에 가야 한다.
고진동 계곡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신비로운 하얀 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태고의 화석동물 산양을 품고 있어 그런가.
» 잎 떨군 활엽수들이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는 건봉산 능선.
» 고진동 계곡. 추위와 눈으로 하얗게 얼어붙었다.
북쪽으로 흐르던 고진동계곡의 물줄기는 동장군의 기세로 지금은 멈추었다.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다시 비무장지대의 계곡을 거치면서 금강산 남쪽 자락을 휘감아 돌면서 남강과 만나 동해로 빠진다.
산양이 자주 목격되는 계곡에 도착했다. 현재 이곳에 서식하는 산양의 수는 알 수가 없다. 사전 지식이 없어 경계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초병에게 물어봤다. 봄, 여름, 가을엔 자주 목격되지만 겨울엔 가끔씩 나타난다는 답이 돌아온다. 이제부터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동물에게 피난처와 서식지를 제공하는 가파른 고갯마루.
» 산양이 자주 목격되는 철책선.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다. 계곡물이 얼어 너무 조용해 적막감마저 드는 계곡에서의 춥고 지루한 기다림. 철책선 안과 비무장지대의 계곡을 좌우로 바둑판처럼 나누어 쌍안경으로 샅샅이 훑어 나갔다. 나뭇잎이 떨어진 회색빛 가지는 산양 색과 비슷해 산양이 나타나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나중엔 검은 물체가 산양으로 착각될 정도로 어른거린다.
해가 기울고 산 그림자가 계곡에서부터 정상을 향해 올라가며 그늘을 드리운다. 결국 기다리던 산양은 관찰할 수 없었다.
7시간의 기다림과 허탈한 마음, 그래서인지 추위가 더 엄습해 온다. 2박 3일의 기회, 내일 이곳을 다시 찾아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산양을 만날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고진동 계곡에 남겨 두고 철수했다.
» 건봉산에서 바라본 동해.
1월9일, 어제보다 기온이 내려갔지만 날씨는 더 좋다. 오전 9시 검문소 주차장에서 정훈장교와 다시 만나 고진동 계곡을 향해 출발했다. 산양과 만날 수 있다는 간절한 희망을 마음속에 되새겼다. 건봉산 능선과 발 아래 펼쳐진 동해 아침 햇살을 받아 유리알처럼 빛난다.
» 사람을 보고 경계하는 산양.
오소동 계곡을 지날 때쯤 검은 물체가 움직인다. 처음엔 멧돼지인줄 알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른풀을 뜯고 있는 산양이었다. 절벽과 나무가 없는 볕이 잘 드는 개방된 장소다. 생전 처음 보는 산양이다. 숨을 죽이고 차에서 내려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꺼내들고 셔터를 눌렀다.
» 얼어붙은 땅을 헤짚어 먹이를 찾는 산양.
바람에 꼬리의 흰 털이 휘날리고 비단 같은 질감의 몸털이 잔잔하게 물결을 이룬다. 소처럼 큰 눈과 얼굴, 귀는 당나귀와 비슷하고 짧은 듯 간결하게 살짝 활처럼 휜 뿔은 나이테 무늬 가 있고 끝부분으로 올라 갈수록 검은색이다. 완벽한 방어 무기로 손색이 없다.
»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산양의 위엄.
» 예상치 못한 불청객의 출현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산양.
다리는 말과 같이 튼튼하고 등과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은 군더더기가 없이 매끈하다. 소와 말 그리고 여러 동물의 형상을 조합해 놓은 듯 보인다.
머리 뒤쪽으로부터 등을 따라 꼬리까지 검은색 줄이 나 있으며 뿔에서 코 로 이어지는 이마는 검은색 털로 덮여있다.
몸통의 바탕 털은 전체적으로 솜 느낌의 두텁고 노란색이 감도는 회색 그 위에 검은 털이 거칠게 솟아올라 조금 길게 분포 돼 있다. 목에는 큰 흰무늬 반점이 보인다.
» 어렵게 구한 먹이를 먹으면서도 불청객의 동태에 눈길을 멈추지 못하는 산양.
어쩐 일인지 오른쪽 귀 상단부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산양 귀에 상처가 난 것이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큰 귀를 지닌 산양이 어릴 때 험준한 기암절벽과 무성한 나무 숲 사이를 오가며 부상을 입었을 수 있고, 비무장지대에 산재해 있는 철조망이나 영역다툼, 발정기 때 싸움으로 인한 상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뿔에 새겨진 나이테나 윤기가 있는 진한 회갈색 털, 균형 잡힌 체격, 단독 생활을 하는 것으로 봐 8~10년 생 수컷으로 보인다.
» 배를 채우기엔 부족한 먹이활동 후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산양.
암컷은 수컷보다 색이 흐리고 콧등에 회색이 돈다. 아주 잘 생긴 산양이다. 오소동 계곡의 왕자답다.
비무장지대에서 살아서인지 경계심은 강해도 화들짝 놀라는 기색 없이 의연하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유롭다.
30분이 지났을까? 여러 행동을 보이지 않고 마른풀을 뜯던 산양이 즐기던 식사를 멈추고 능선을 따라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진다. 산양은 200m 밖 낙엽 밟는 소리를 듣고 도망갈 정도로 청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실제 관찰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 먹이 활동 후 나무를 위장막 삼아 능선을 따라 안식처로 향한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강원도 양구, 고성, 화천과 삼척, 충북 제천, 경북 울진 봉화 등지에서 산양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967년 설악산의 자연생태를 조사한 학술 보고서에는 산양이 해마다 수백 마리씩 잡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냥과 폭설 피해 등으로 인해 현재 설악산에는 100여 마리의 산양이 남아 있을 뿐이다.
» 나무색과 흡사해 식별이 어려운 산양.
야생 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번식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개체수가 통상 100여 마리이기 때문에 설악산 지역의 산양은 생존의 마지막 기로에서 있다.
산양은 200만 년 전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일반인들에게 산양은 그림책이나 만화 속에 등장하는 낯선 동물로 여겨지지만 2013년 현재 한반도에도 산양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 산양과 같은 종인 아무르산양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키 내륙 오지와 연해주의 바위가 많은 지역에 폭넓게 분포 하였지만 이제는 개발에 밀려 숫자가 크게 줄었다. 이제 러시아 전 지역에 산양은 시호테알린과 라조브스키 두 개 연해주 자연 보호구에 집중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생존해 있는 산양은 약 600여 마리로 추정된다.
■ 산양의 형태와 생태
산양은 몸의 길이가 115~130㎝, 몸무게 22~42㎏, 귀는 12~13㎝, 겉면은 엷은 쥐색이며, 밑 부분은 어두운 초록색을 띤 갈색이고, 안쪽은 흰색이다. 긴 털이 난 꼬리 길이는 11~15㎝이고, 꼬리의 윗면은 갈색이고 아랫면은 백색이다. 어깨높이는 65~75㎝ 정도이다.
산양은 암수 모두 뿔이 있다. 뿔 길이는 나이에 따라 다르나 어른이 되면 12∼17㎝ 정도로 자란다. 뿔은 가지를 치지 않고 일생 동안 갈지 않는다.
» 얼어붙은 산 속에도 청초록의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겨울에 몸 전체의 바탕은 회색을 띤 노란색이고 솜과 같은 털 위에 검은색의 거친 털이 몸 전체에 솟아 있다. 등 면의 정중선은 검은 색이며, 주둥이에서 머리 뒤에 이르는 부분은 검은색을 띠고, 머리 옆과 입술은 회색을 띤 갈색에 검은색이 섞여 있다. 입술의 다른 부분은 희고, 뺨은 검은색이며, 목에는 흰색의 큰 반점이 있다. 몸 뒤에는 짧은 갈기가 있으며 흑색을 띤다.
» 산양이 다니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거친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 어미 멧돼지 뒤로는 얼굴을 빼꼼히 내민 아기 돼지의 모습도 보인다.
» 산양의 모습을 담던 중 슬며시 나타난 멧돼지 가족.
절벽과 바위 위를 잘 걸어 다니기 위하여 다리가 굵고 발통은 둥글며 발끝이 뾰쪽하다. 발굽의 가장자리는 날카롭고 밑바닥에서는 끈적끈적한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산양은 벼랑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어깨로부터 무릎에 이르는 곳에 검은색의 띠가 이어져 있다. 아래 배의 양측과 허벅 다리 사이는 흰색이다. 가슴과 윗배는 검은색이다.
» 정수리 뒤로 이어진 산양의 갈기가 건봉산의 능선과 닮았다.
외국의 종이 다른 산양과는 얼굴에 분비선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발굽 사이의 분비샘에서 냄새 나는 분비액이 나오며 산양은 뿔을 나뭇가지에 문질러 분비액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며 영역을 침범하는 산양이 있으면 짧고 날카로운 뿔로 싸워서 쫓아낸다.
높이 600m 이상 되는 높은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림지대의 꼭대기에서 활동하고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험준한 바위와 바위 사이 또는 동굴에 2∼5마리가 모여 군집생활을 하는데, 겨울에는 폭설을 피해 다소 낮은 산림지대로 내려오기도 하지만 활동지역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 바람에 나부끼는 산양의 흰털꼬리.
한번 선택한 지역에서 영구히 살며 이동하는 성질이 없다. 이른 아침과 저녁에 가까운 숲속으로 이동해 초본류 식물을 먹기도 하지만 주로 연한 신갈나무, 피나무 등을 주식으로 하며 계절에 따라 열매와 도토리 바위이끼, 진달래와 철쭉의 잎도 잘 먹는다.
넓은잎외쑥, 산새풀 등을 간식으로 먹는다. 한낮에는 보통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을 택한다. 안전한 바위 벼랑에서 쉬면서 되새김질을 한다. 거의 같은 곳을 쉼터로 쓰고 똥도 같은 곳에 싸는 버릇이 있다. 밤에는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가 잠을 잔다.
보통 10~12월에 짝짓기를 하며 임신 기간은 180~240일로 이듬해 5~6월에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산양의 목소리는 염소와 비슷하며 다쳤을 때에는 까치의 울음과 같이 찢어지는 듯 애처로운 소리로 강하게 운다.
» 자세히 보니 녀석의 귀가 찢어져 있다. 다음에 만나면 다른 산양과 구별이 가능할 것 같다.
1968년 11월 20일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되었고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이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보호대상 목록인 적색보호목록에 올라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단 5종만이 분포하고 있어 국제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희귀 동물이다.
아직도 밀렵과 올무에 의해 산양이 죽는 사례가 많이 있고 폭설 때 굶주림에 주검으로 발견된다고 한국산양보호협회 관계자는 말한다. 비무장지대인 만큼 정부와 시·군에서 군부대와 협조하여 체계적으로 겨울철 먹이 터를 마련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강구했으면 한다.
복원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양 연구도 전무하다시피 하고 겨울 동안 비무장지대 안 산양 먹이 주기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체계적인 보전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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