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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오랫동안 보아야, 노력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독후감> 겨레하나 주최 ‘개성공단사람들 공모전’ 우수상

장연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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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11  14: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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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순 (주부)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가 지난 12월 7일 ‘개성공단사람들 독후감공모전’을 빌표, 시상식을 진행하였다. 이번 공모전은 지난 8월부터 두 달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겨레하나 주최로 진행되었다.

공 모전 수상작으로는 최우수상에 ‘모순을 넘어-주미경’, 우수상에 ‘자세히 보아야, 오랫동안 보아야, 노력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장연순’, 장려상에 ‘엄마라서 더 간절한 평화, 통일-박보람’, ‘무지에서 조금씩 벗어나기-정민혁’이 각각 선정되었다.

수상작들을 <통일뉴스>가 연재한다. / 편집자 주

 

1. ‘북맹(北懜)’에서 눈을 뜨다

  나에게는 자꾸만 공부를 강요하는 귀찮은 신랑이 있다. 신랑이 한 사람이기 망정이지, 이런 사람이 둘만 곁에 있었더라면 내 삶은 참으로 대략난감이었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100번의 사랑을 꿈꾸었던 나이지만, 지금은 이 사람과의 한 번의 사랑으로도 족하다.(신랑과 나는 서로에게 첫사랑의 상대이다)

  이 사람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랑은 우리 사회가 바로 잡아야 할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매일 저녁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기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9월 어느 날 통일 골든벨에 커플로 참가하자고 한다. 참가비도 2만원 입금해두었으니 열심히 공부를 해보라며.

 자극을 받은 나는 출제 범위에 해당되는 모든 것들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보란 듯이 골든벨을 울려서 신랑한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내 마음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던 것일 게다. 주교재는 ‘통일을 보는 눈’(이종석 著)과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공동선언’ 그리고 예상문제 100개.

  나는 한 달여에 걸쳐 열심히 공부를 했다. 아주 열심히 했다. 주교재는 2번씩 읽으며 노트에 요약정리를 했고, 각종 선언문들과 합의서는 외웠다. 예상문제도 완벽히 외웠다. 골든벨 직전에 내 머릿속은, 북한과 통일에 대한 각종 지식들이 일사분란하게 헤매 다니는 상태였다. 마치 내 자신이 북한 전문가라도 된 것만 같았다. 고등학생 때까지 만해도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의 날짜와 연도를 외우는 게 싫어서 역사라는 과목 자체를 싫어했던 나였다. 그런데, 골든벨을 울려보자는 욕심이 생기니, 어느새 나는 스스로 연표를 그려가면서 까지 북측과 남측,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과의 정세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통일 골든벨이 개최된 당일, 나는 골든벨을 울리기는커녕 순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남편 덕에 본선에 간신히 들어갔지만, 본선부터는 개별로 문제를 풀어야하는지라,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나는, 본선 1번 문제에서 바로 탈락을 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무척 신기한 일이지만 스스로의 무지에 대해 눈을 뜨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대해 뭐라고 딱 집어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나의 인식체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 우수상을 받은 장연순 씨

  대회를 치르다 보니 통일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젖먹이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 청소년, 대학생, 흰머리가 뚜렷한 노인네들까지, 너무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북한과 관련된 소소한 사실들 까지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통일에 관한 한 보통사람(?) 수준 정도의 지식과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그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 자신에게 꽤 괜찮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실, 나라는 사람은 통일과 북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눈 뜬 장님과 같았던 것이다.

 대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아쉬움이 많았던 나는 신랑에게 통일 골든벨에 내년에 다시 도전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에 관한 뉴스와 신문기사들을 열심히 공부하여 좀 더 많은 지식을 쌓아오겠다며. 내 말을 듣던 신랑이 이것부터 읽어보라며 권한 책이 바로 ‘개성공단 사람들’이었다.

  훗날 나는, ‘개성공단 사람들’을 읽다가 그때 나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기가 막힌 표현을 발견했다. ‘북맹(北懜)’. 통일 골든벨을 치르면서 내가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것은, 나 자신이 북한과 통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북맹(北懜)’ 그 자체였다는 것. 그리고 그 무지를 깨닫는 순간, 나는 내가 더 이상은 그 ‘무지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지 않을 것을 예감할 수 있었던가 보다. 공자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때가 진정한 앎의 시작이라고.
 
2. 거부감, 불신, 그리고......

  북한에 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난 나는 주저 없이 ‘개성공단 사람들’의 책장을 열었다. 프롤로그를 읽다보니 각자 놓인 자리에 따라 ‘연평도 포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인데도 개성공단에서 생활을 하면서 그 사건을 대하는 지, 뉴스를 통해 그 사건을 대하는 지에 따라 생각의 스펙트럼도 한참이나 달라지니 말이다.

  이제껏 내가 언론을 통해 접했던 북한에 관한 이미지가 사실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에 살짝 동요가 일었다. 항상 나에게 북한은 그저 일사불란한 군대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집단명사였을 뿐, 그 안에도 개성이 살아 숨 쉬는 개인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었다. 대북정책이니, 통일정책이니 하는 이야기들만 듣고 읽다가, 갑자기 남측 사람과 북측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를 읽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개성공단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1장 ‘개성공단에 대한 기본 이해 : 오해와 진실’을 읽는 동안, 한껏 고양(高揚)되었던 나의 기분과 감동은 급격히 추락하여 동결(凍結)되어 갔다. 북한과 통일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룬 딱딱한 이야기들만 듣다가, 이 책의 프롤로그를 접하게 되니,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통일에 대해 조망해 볼 수 있겠구나 싶은 기대에 마음이 부풀었었나 보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직면한 현실은 한 편의 강도 높은 비평문을 읽고 있는 것만 같은 나였다.

  1장을 읽는 내내 무엇인가 생각하고 깨달을 것을 요구당하고, 비난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저자의 선언적인 요구와 종용의 반복 앞에 ‘내가 개성공단에 대해 오해할 만큼이나, 알고 있는 게 있기는 했었나?’라고 반성할 사이도 없었다. 일방적으로 책망당하는 기분에 당황스러움과 함께 거부감이 일었다. 개성공단의 진실이라고 표현된 것들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것은 반감(反感)이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될지라도, 가슴으로는 단 한 조각도 용납되지 않는 그것 말이다. ‘개성공단 사람들’을 권유했던 신랑의 요구에 부응하고 싶었던 나는, 사실 좀 많이 당황했다. 저자의 주장, 주장, 주장의 나열..... 독자의 판단과 생각이 들어설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런 마음으로 2장을 열게 되었다. 아무리 통일이 대박이라고 열심히 이야기 해줘도 이미 내 마음은 서서히 책에서 떠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이 닫힌 나는 긴장감과 거부감을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개성공단에는 사람이 산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 잘 알고 보면 이 사실은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고, 새 역사의 위대한 서막이라 평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 건만 미련한 마음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2장을 다 읽고 덮는 동안 내 마음 속에 쌓여 있는 불신은 바로 이것이었다.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경험자로 취재에 응했던 사람들의 의견이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은가?

 첫째,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둘째, 개성공단은 남한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셋째, 현 정부는 개성공단과 관련된 협의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넷째, 통일은 오랜 시간을 들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남과 북은 엄연히 다른 체제의 사회이므로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여섯째,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는 갈등을 유발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충돌은 사라진다. 여섯째, 언론은 개성공단에 대한 진실을 알려 일반인들의 오해를 종식시켜야 한다.

  2장에서 다루어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뭐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구구절절 다 옳은 말들이다. 정책 결정권자도 아니오, 자신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해 목소리 높여야 할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경제활동의 주체로서의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실체를 맞대고 살면서 얻어낸 통찰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은 내용들이건만, 3장과 에필로그를 읽기 전에 내 마음은 여전히 의심이 가득하였다.

  과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관된 얘기를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한 두 사람이라도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이지 않은가? 애초에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인터뷰 대상자로 섭외한 것인가? 취재 기자들이 사전에 모여 합의를 통해 취재의 방향을 정하고서는 같은 답변을 유도해내었던 것은 아닌가? 진실은 항상 한 방향을 향하고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서로 다른 사람일지라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내용은 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편견에 눈이 멀었던 나는 이 평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신은 거듭 불신을 낳았고, 불편한 마음의 나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3장을 향해 마구 달려가고 있었다. 3장은 취재기자의 대담과 이 책을 기획했던 김진향 씨가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던 시절 써 두었던 일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분이 내 정서와 감성에 맞았던 것 같다. 1장과 2장을 읽는 동안 굳어졌던 마음의 얼음이 풀리면서 내 자신이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에 돌 하나를 놓는 심정으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개성공단의 기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난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지금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이유는 바로 3장에서 얻은 마음의 울림 때문이다. 3장에서 나는 진심으로 통일의 징검다리에 돌 하나라도 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회의 어느 곳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통일이라는 역사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실천적 지성인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개성공단 사람들’을 읽는 동안, 이 책이 내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진심은 또 다른 사람의 진심을 울리는 법이다. 진심이 담겨 있는 책은 비록 그 표현 방식이 세련되지 못할 지라도, 읽는 독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법이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 그리고 취재 기자들의 바람처럼 제 2의 개성공단 사람들, 제 3의 개성공단 사람들이 나오기를 바랐다.

 비록 나는 평범한 개인이지만 개성공단에서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기적들과 통일 한반도가 이루어져 가는 역사적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고 싶어졌다.

3. ‘존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개성공단 사람들’을 읽으면서 내가 깨닫게 된 사실들이 있다. 통일이라는 것은 정책결정자들이 만나서 ‘지금부터 통일’이라고 외치는 순간부터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남과 북 서로에게 부작용을 주지 않으려면 자연스럽게 남과 북의 문화와 경제와 사회와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 이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개성공단이 몇 개만 더 있으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껏 내가 통일에 대해서 들어온 이야기들은 정책이나 대책과 같은 거시적인 관점들이었다. 이러한 거시적인 담론들은 주로 탁상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큰 울림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개성공단 사람들’은 조금 더 다른 시각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탁상공론과 같은 거시적인 시각이 아니라, 개성공단이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미시적인 이야기를 통해 통일이 그렇게 거창하기만 한 담론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정책결정자나 이론가들만이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통일에 대해 언급하고 소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개성공단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도 우리는 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 아닐까? 나 같은 보통 사람도 이 책을 통해, 전문가의 의견이나 정책에만 기대지 않고 통일을 준비하는 나만의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오랫동안 보아야, 또 자세히 살펴보아야,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야만 보이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제2의 개성공단 사람들’, ‘제3의 개성공단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집필되고 출판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것이 통일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역사의 과정 속에 독자들 또한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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