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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당의 우클릭과 기회주의자들 / 홍세화

등록 :2016-05-05 19:58수정 :2016-05-06 13:29

 

진보정당이 약화된 현실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은 다시금 보수 주도 정치인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번 총선 결과에서 ‘다행’은 잠깐이고 ‘우려’가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으로 4년, 국회가 기회주의자들의 기득권 주고받기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나는 공산주의에 찬성이오. 사회주의도 찬성이오. 그리고 자본주의도 찬성이오. 왜냐하면, 나는 기회주의자이므로.” 프랑스 가수 자크 뒤트롱의 노래 ‘기회주의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공산당에서부터 극우정당인 ‘국민전선’까지 좌우로 펼쳐진 정당 분포를 가진 프랑스에 어울리는 노랫말인데, 그다음부터는 우리에게도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반대하는 사람들, 요구하는 사람들,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다만 한 가지 제스처만 하지요. 저고리를 뒤집어 입는 것, 항상 좋은 쪽으로.”

 

먼저 차별금지법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가 스스로 뒤집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떠오른다. 박 의원은 지난 2월29일 ‘나라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3당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서 “특히 동성애법, 이것은 자연의 섭리와 하나님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법”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이 자리에 계신 한기총의 모든 목사님과 기독교 성도들과 정말로 뜻을 같이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하기야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뒤트롱의 기회주의자처럼, “나는 착취자도 두렵지 않고 선동자도 두렵지 않아요. 나는 유권자들을 믿어요. 내 이익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지요.” 그래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미국의 대법관들이 경악할 만하고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도 부러워할 만한 무지의 용기를 보여준 그 박 의원은 다시 일주일 전에 김진표 의원과 함께 부패 사학의 상징적 인물인 김문기 상지대 설립자와 나란히 꽃다발을 들고 사진 찍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찍이 루소가 말했듯이, 유권자들을 4년에 하루만 자유롭게 하는 선거가 끝났으니 이젠 누구의 눈치도 볼 이유가 없어진 탓일까.

 

“깜짝 놀라게 한 남한의 여론.” <르몽드>의 기사 제목처럼 4·13 총선의 결과는 ‘새누리당 압승’을 우려했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하지만 안도하기에 앞서, “파도를 보지 말고 그 밑에 흐르는 조류를 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총선 결과를 오만과 불통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앞장서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그 뒤를 따라 우클릭 경쟁을 함으로써 모든 정당이 ‘국민의 의식 지형’보다 위치를 훨씬 오른쪽으로 옮긴 것의 반영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총선을 통해 “4·16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시대의 정언명령에 응답했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수준’을 실제보다 높이 평가하는 잘못이 된다면, 가령 박근혜 정권의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 정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이념과 북한 겨레를 바라보는 국민의 정서의 차이를 간과한 최악수였을 것이다. ‘극성지패’(몹시 왕성하면 머잖아 패망한다)라는 말이 아주 적절한. 한편, 더불어민주당 우클릭의 으뜸가는 수혜자이면서 지휘자인 김종인 대표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공격은 전두환 밑에서 국보위원을 지낸 사람의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적반하장이다. 수구기득권 세력조차 대부분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을 구분하여 자기들이 산업화에 공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머물지 민주화 세력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이번 총선에 대해 <르몽드> 기자는 박 대통령에게 “한방 먹인” 선거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이 “새누리당의 완패, 더불어민주당의 선전, 국민의당의 승리”라는 평가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당선자들은 유권자들의 지지투표가 아닌, 반대투표의 수혜자들에 가깝다. 새누리당에 반대하려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더불어민주당을 반대하려고 국민의당 후보를 찍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지가 아닌 반대의 방향이지만, 깃발을 꽂으면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존 선거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기회주의자들을 걸러낼 수 없는 선거였다는 뜻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기회주의자들인지 아닌지의 가늠자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클릭으로 경제주의에 매몰된 탓일까, 이른바 정당 지도부일수록 세월호 참사와 민생 문제를 분리시킨 뒤 민생을 강조하는 발상을 드러내곤 한다. 도대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민생 문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그 민생에는 지금도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새누리당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에서 거리 농성을 벌이는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 노조파괴 공작에 자결로 맞선 유성기업의 한광호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은 포함되지 않는다. 진보정당의 약세가 눈에 밟히고, 을지로위원회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투쟁에 관심을 갖고 연대를 해온 민주당의 은수미·장하나 의원의 낙선이 안타까운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진보정치 진영의 현실논리를 강화시켜온 ‘삼분지계’라는 말을 나는 기억한다. 진보정치 진영은 정책보다는 지역에 기반한 ‘수구적 보수정당’(한나라당-새누리당)과 ‘자유주의 보수정당’(민주당)으로 이루어진 보수 양당 구도를 깨뜨리는 제3당이면서 지역이 아닌 노동자, 서민의 삶에 기반한 정책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의 긴요성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에게 진보정당의 제3당 진입의 기대와 희망이며 표현으로서 ‘삼분지계’는 ‘민중이 주인 되는’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교두보로 인식되었으며 그것을 위해 많은 노력과 실천을 기울여왔다. 또 그것을 위해서도 지역주의 해소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역 기반의 양당 구도에 흔들림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이번 총선에서 그 흔들림의 열매를 차지한 정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의 정체성은 아직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는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 어디쯤을 정치적 지향으로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쨌거나 민주당의 왼쪽에 자리 잡아야 할 진보정당 대신 민주당보다 더 오른쪽인 정당이 제3당으로 정립된 것이다.

 

정의당은 지역 2석을 포함해 6석을 획득하여 나름 선전했다고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정당투표에서 13%를 획득하여 지역의 2석을 포함하여 10석을 차지했던 2004년에 비해 줄어들었다.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이 얻은 7.23%에 원외인 녹색당, 민중연합당, 노동당의 몫을 모두 합해도 9%에 머물렀다. 돌아온 노회찬과 발군의 국방전문가 김종대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국민의 비판과 견제 이전에 당원의 비판과 견제를 받는 진보정당이 약화된 현실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은 다시금 보수 주도 정치인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구체제로의 지속된 퇴행-통합진보당의 해산, 전교조의 법외노조화 등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제한, 노동법 개악, 교과서의 국정화, 국가정보원 강화와 테러방지법, 남북관계의 끝없는 악화와 한-일 간 위안부 합의, 언론의 추락상 등-을 멈추거나 되돌리는 일은 물론, 세월호 참사가 엄중하게 요구한 ‘전혀 다른 국가의 상’을 만드는 일까지. 여기에 점점 더 강화되는 재벌기업의 힘과 전횡을 고려할 때, 이번 총선 결과에서 ‘다행’은 잠깐이고 ‘우려’가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으로 4년, 국회가 기회주의자들의 기득권 주고받기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장발장은행장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장발장은행장
뒤트롱의 노래 ‘기회주의자’는 이렇게 끝난다. “저고리를 너무 뒤집어 입어서 이젠 양쪽이 모두 해어졌다오. 다음 혁명에는 바지를 뒤집어 입을 거요.” (혁명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한국의 기회주의자들은 그럴 염려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장발장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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