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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은 쫓겨 가지만" 유품정리 마지막 날, 슬픈 단체사진

 

[현장] 단원고 2학년 교무실 교사 유품도 정리... "정권교체 해서라도 진상규명 할 것"

16.08.13 20:36l최종 업데이트 16.08.13 20:52l

 

416기억교실의 유품 정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기억교실(10개 교실, 1개 교무실)은 희생 학생들의 부모와 뭇 시민들이 새로운 교육의 지표로 기리고자 했던 '교육과 추모의 현장'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먼저 떠난 아이들의 후배들만큼은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기억교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기억과 약속의 길' 순례에 나섰던 시민들의 염원은 물거품이 됐다. 또한 교사 두 명과 네 명의 아이들은 아직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이들이 수습될 때까지 만이라도 기억교실 이전을 미뤄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46명이 생전에 선생님과 꿈을 나누며 키워가던 교실은 이제 더이상 그들의 공간이 아니다.

기억교실 유품 정리 마지막 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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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교실에서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과 정성욱 인양분과장이 416기억교실 이전을 앞두고 아들 고 전찬호군과 고 정동수군의 유품과 추모물품을 보존상자에 옮기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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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단원고 2학년 3반 교실에서 ‘예은 엄마’ 박은희씨와 할머니가 딸 고 유예은양의 유품과 추모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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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예은이를 못 본 지 844일째. 이제 너와 친구들이 공부하고 뛰어 놀고 웃고 또 웃으며 꿈을 키워나가던 이곳, 이 자리 비워줘야만 하는구나. 미안해, 예은아. 정말 미안해." -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오늘 찬호 의자에서 엄마 아빠가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구나. 엄마아빠가 찬호와 친구들에게 미안해. 찬호의 자리와 학교와 교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앞으로 진정한 안전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약속을 반드시 지킬게. 사랑한다, 찬호. 우리 집 막내. 귀염둥이…" -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희생 학생들의 유품 정리 마지막 날인 13일. 2학년 3반, 4반, 5반, 7반, 10반과 교무실 유품을 정리하는 날이다. 이날 오후 2학년 7반 교실에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과 정성욱 인양분과장이 나란히 들어섰다. 


두 아빠는 약속이나 한 듯 1분단 맨 마지막 줄 짝꿍인 동수와 찬호 의자에 앉아 시민들이 방명록에 남긴 글을 읽었다. 두 아이의 책상 위에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과 방명록, '꽃미남 사랑해'라고 만든 폼아트 이름표, 세월호 리본과 팔찌, 양초, 국화 등이 놓여 있었다. 

전 위원장은 아들 찬호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 분과장은 충혈된 눈을 붉히며 자리를 피했다. 동수와 찬호 그리고 2분단 맨 뒤 이준우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단원고까지 한 반에서 생활한 단짝 불알친구였다. 

한 명 두 명 교실에 들어선 엄마들은 자녀의 책상 앞에 다가서자 털썩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들은 자식들의 사진을 어루만지거나, 방명록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을 글을 남겼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참여한 가운데 2학년 7반 교실은 2년 전 그날처럼 또다시 오열로 가득 찼다. 

'영석 아빠' 오병환씨는 "2학년 7반 부모님들이 마지막으로 다 모여 아이들 교실에 앉아 보기 위해 모두에게 연락을 드렸다"며 "결국 우리는 쫓겨 가는 것이지만 교실을 이전한 후 다시 싸울 것이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말자"며 다독였다. 

오씨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2학년 7반이다"라며 "유품 정리 후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기 전 단체사진을 찍은 벚꽃나무 아래에서 우리도 단체사진을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들은 작렬하는 8월의 태양 아래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단체사진을 찍었다. 

같은 시간 2학년 3반에서는 '예은 엄마' 박은희씨와 할머니가 예은이 유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유경근 위원장의 쌍둥이 딸인 예은이가 짧은 고교 시절을 보냈던 책상 위에는 사진과 인형, 십자가와 국화꽃, 볼펜과 과자 등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예은이의 유품을 보존상자에 하나씩 옮겨 놓으며 "예은아, 미안해. 할머니가 미안해"라는 말을 끝없이 되뇌며 눈물을 쏟았다. 박은희씨는 텅 빈 책상에 앉아 속울음을 삼키느라 쉼 없이 어깨가 흔들렸다. 

정성욱 인양분과장은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하는 학교에 왜 다녔을까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울 뿐"이라며 "힘없어서 구해주지도 못했고, 힘없어서 쫓겨나고… 언젠가 만났을 때 아이들에게 엄마아빠들이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수밖에…"라고 채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현 정권에서 진상규명 못하면 대선에서 정권교체 통해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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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과 정성욱 인양분과장이 416기억교실 이전을 앞두고 아들 고 전찬호군과 고 정동수군의 책상에 앉아 방명록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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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원한 2학년 7반” 단원고 2학년 7반 엄마아빠들이 유품을 정리한 후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이 단체사진을 찍은 벚꽃나무 아래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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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선 위원장은 "참사 이후에 참교육과 안전교육, 학교의 학습관 등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고 모두가 얘기했음에도 기억교실을 정리해야 한다는 게 여전히 납득이 되질 않는다"며 "교실 이전이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가족협의회와 교육청, 지자체 등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안전교육의 장을 만들어 참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안산교육청과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 등은 기억교실을 영구히 보존하지 못하고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기억교실의 이전을 요구한 이들은 말로만 안전교육을 되풀이 할 뿐 진정한 교육의 길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을 언젠가 발견하고 역사 앞에서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위원장은 12일 여야 3당 원내대표의 세월호 현안 관련 합의와 관련 "국회의장이 합의에 참석해 사인한 것은 없다. 또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과 특별법 개정과 특검은 언급이 안됐다"며 "무엇을 협의한다는 주어조차 명시 안 된 합의에 대해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받아들이겠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416안산시민연대는 13일 오후 성명서를 통해 "여야 간에 다시 모여 추가 합의를 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며 "합의 내용은 '특조위의 실질적인 조사활동 1년 6개월 보장, 인양 후 6개월간의 정밀 선체조사 보장, 조사활동에 필수적인 인력과 예산 지원' 등이며, 또한 8월 임시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즉각 개정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전 위원장은 "사학연금공단이 대관료까지 미리 받고 청문회 계약을 취소한 것도 정부의 입김 때문일 것"이라며 "특조위 위원들이 조사관과 함께 준비하는 마당에 세월호 청문회는 반드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역사를 역행하며 왕조처럼 군림하는 정권이지만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며 "현 정권에서 설사 진상규명이 안 되더라도 다음 대선이나 정권교체를 통해 반드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도록 엄마아빠들이 절대 흩어지지 않고 힘을 다시 모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416가족협의회와 자원봉사자들은 오는 15~18일 책상·의자·교탁 등을 포장한 후 19일 추모행사인 '기억과 약속의 밤'을 진행한다. 이어 20~21일에는 유품, 기록물, 책상 등을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임시 이전한다.

희생 학생들과 교사들의 유품은 2018년 9월 영구 추모관인 '(가칭)416안전교육시설'이 준공되면 그곳으로 옮겨진다. 추모관은 단원고 교정 옆 도로부지에 건립될 예정이다.

2학년 교무실 유품 정리 "다시는 이런 참사 일어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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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교사들의 교무실 이전을 앞두고 2학년 교무실 앞에 유품을 정리할 보존상자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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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단원고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교사들의 교무실 이전을 앞두고 고 전수영 교사의 어머니 최숙란씨와 아버지 전제구씨가 유품과 추모물품 등을 보존상자에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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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에는 제자들을 지키다 함께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교무실 유품 정리도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교사는 모두 10명이다. 이 중 고창석, 양승진 교사는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교무실 입구에는 교사들의 유품을 정리할 보존상자가 놓였다. 교무실 게시판에는 '4월중 행사'가 또렷이 적혀있고 그 아래에 매직으로 쓴 '4월 15일~18일 수학여행'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오전 9시 30분께 시작된 유품 정리는 교사들의 부모와 형제가 직접 했다. 김종천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은 "책같이 무게가 있는 유품은 별도로 정리할 테니 가벼운 유품을 중심으로 보존상자에 정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2학년 2반 담임을 맡았던 고 전수영 교사의 어머니 최숙란씨와 아버지 전제구씨는 딸의 유품을 하나씩 챙겼다. 책상 위에 있던 수능기출문제집 등 참고서는 상자에서 꺼내 다시 책꽂이에 꽂았다. 상자 안에는 추모 메시지, 방명록, 서류 뭉치, 조화, 이름표, 수첩, 필기류, 솔방울 등이 가지런히 정리됐다. 그리고 어머니는 생전의 딸이 사용했던 작은 칠판을 닦고 또 닦았다. 

전 교사는 2013년 임용고시에 합격해 단원고 교사로 재직했다. 세월호 참사를 접한 어머니가 전화를 걸었을 때 "학생들과 통화를 위해 배터리를 아껴야 한다"며 끊은 것이 딸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이윽고 어머니에게 "아이들 구명조끼 입혔어. 미안해"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34일 만에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전 교사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였다.

최숙란씨는 지난 4월 딸의 이야기를 담은 <4월이구나, 수영아>를 출간했다. 이 책은 세월호 희생교사 유가족의 심정을 담은 첫 책이다. 또한 엄마의 이름으로 겪은 그날 그 아침과 아이들, 수영이를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그리고 아직 모든 곳에 존재하는 딸, '수영이'에 관한 이야기다. 

최씨는 "이 책(<4월이구나, 수영아>)을 낸 것도 딸을 기억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쓴 거예요. 혹시나 먼 훗날 딸과의 추억을 잊어버릴까 봐"라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그 곁에서 아버지는 교무실 복도만 하염없이 내려다봤다. 

"어제 꿈에 딸이 나타났어요. 간식을 만들어 딸에게 먹여주는 꿈…(울음) 수영이와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그리워 견디기 힘들어요. 가슴이 답답한 게 터질 것 같았는데 그걸 억누르고 오늘 딸을 다시 찾았어요. 천사 같은 내 딸의 마지막 흔적이 남은 이곳을…

아이들 교실과 교무실 이전을 앞두고 있는데, 틈나는 대로 수영이 자리나 교실을 보고 갔어요. 마지막 정리를 하니까 너무 슬퍼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고 아껴주는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아이들과 마지막 함께 한 선생님들 마음 되새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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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단원고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교사들의 교무실 이전을 앞두고 고 남윤철 교사의 어머니 송경옥씨와 아버지 남수현 충청대 교수가 유품과 추모물품을 정리한 후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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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로 제자들과 함께 희생당한 단원고 2학년 교사들의 교무실 이전을 앞두고 유품을 정리한 보존상자가 책상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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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유품을 정리한 고 남윤철 단원고 교사(2학년 6반 담임)의 아버지 남수현 충청대 교수와 어머니 송경옥씨는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교무실을 떠날 아들에게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남 교수는 "마지막으로 아들 유품을 정리하는데 무슨 말이 또 있겠냐"며 "아직 돌아오지 못한 선생님이 계시다"며 짧게 말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교사'들도 교무실을 찾았다. 이들 교사들은 '찾아가는 전국 진실마중대'라는 모임을 만들어 지난 8일 목포에서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세월호 특별법 개정 서명운동을 진행하다 12일 안산에 도착했다. 

정태연 교사(안양공고)는 "보통 돌아가시면 좋은 데 가시라고 하는데, 지금은 실상 쫓겨나는 거다. 선배, 동료 교사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착잡한데, 제일 안타까운 건 (기억교실 보존과 관련해) 재학생들에게 물어보지 않은 것"이라며 "단원고 선생님들이 부모 같은 마음이었기에 두려웠지만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 마음을 항상 되새기며 아이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선생님들을 만나 뵙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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