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5년이 지났다. 경기도 김포시 홍도평야에서 재두루미 7마리를 발견한 지가. 1991년 처음 재두루미와 마주했던 순간은 오늘처럼 생생하다. 반갑고, 정겨웠다. 그때부터 꾸준하게 먹이를 주었고 관찰을 했다. 10년 뒤인 2001년에는 개체수가 120마리로 늘어났다. 

 

q2.jpg» 2001년 홍도평야에 재두루미 120여 마리가 날아와 월동하던 모습.

 

 기뻤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다. 홍도평야를 가로지르는 우회도로가 생기며 농경지는 두 동강이 났고, 그나마 있던 농경지마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농경지에 영농창고의 이름을 달고 물류창고로 이용되는 불법창고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q3.jpg» 재두루미 뒤로 보이는 홍도평야엔 불법창고들이 즐비하게 보인다.q4.jpg» 농경지매립이 지속되고 있지만 홍도평야야를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q5.jpg» 홍도평야에 들어선 전봇대와 전깃줄이 재두루미가 이동하는데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q11.jpg» 농경지를 매립하는 공사 차량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q12.jpg» 매립된 농경지 위에 내려앉는 재두루미. 이곳은 재두루미가 좋아하는 자리였다.q19.jpg» 재두루미의 먹이 터였던 농경지는 매립되어 빛바랜 잡풀들이 수북하게 보인다.

 

재두루미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새다. 시베리아, 우수리, 몽골, 중국 북동부 등에서 번식하고 한국, 일본, 중국 남동부에서 겨울을 난다. 조급함이 없고 가족 사랑이 지극하며 동물 중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소통하는 새다.

 

q6.jpg» 매립되지 않은 농경지를 찾는 재두루미.q7.jpg» 몸을 슬쩍 숨기고 비상시 빨리 피할 수 있는 온전한 농경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q8.jpg» 한참동안 홍도평야을 선회하다 어렵사리 내려앉는 재두루미가족.q9.jpg» 재두루미가 홍도평야에서 겨울나기는 옛날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먹이터가 훼손되며 재두루미 개체수는 줄고 있다. 올해 36마리가 장항습지에 잠자리를 잡고 월동한다. 그런데 농경지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눈칫밥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q10.jpg» 먹이는 부족한데 볏짚마저 곤포 사일로에 포장되어 재두루미 옆에 서있다.

 

주된 먹이터였던 홍도평야에는 이제 서너 마리의 재두루미만이 찾아온다. 재두루미가 한번 떠나면 그 자리를 다시 찾아오기란 쉽지 않다. 재두루미는 필사적으로 자리를 지키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가로막는다.

 

q13.jpg» 아파트를 울타리 삼아 평야로 날아드는 재두루미.q14.jpg» 재두루미에게는 아파트와 도심이 이제는 낯익은 풍경이다.

 

홍도평야에서 아파트단지 옆을 날아가는 재두루미를 쉽게 볼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관찰하고 사진촬영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리고 6년 전에 바로 그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는 한강을 마주하고 있어 장항습지에서 잠을 자고 홍도평야로 날아드는 재두루미의 일상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됐다.

 

q15.jpg» 세계적으로도 도심에 날아드는 재두루미는 홍도평야 한 곳이다.q16.jpg» 재두루미 가족이 주변을 살펴본다. 예민하고 조심성 있는 본능을 감출 수 없어 늘상 있는 일이다.

 

씨가 남아 있어야 싹이 트고 번성하는데 씨가 사라지면 현재 남아 있는 재두루미를 다시 불러들일 수 없게 된다. 

 

q17.jpg» 김포시 북변동 홍도평야 전경, 저 멀리 재두루미 부부가 우두커니 서있다.q18.jpg» 위에서 내려다본 재두루미의 비상모습.

 

우리는 그 흔적을 그저 역사 속의 이야기로만 만나게 된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며 사진을 촬영하고 관찰하는 일들은 과거로 묻힐 수밖에 없다. 

 

q20.jpg» 재두루미 뒤로 마을의 정겨운 모습이 보인다. 보호하지 못하면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된다.q21.jpg» 서리가 내린 이른 아침 홍도평야 보리밭 위를 날고 있는 재두루미.

 

요즘도 날마다 재두루미 3~6마리가 홍도평야로 꾸준히 날아든다. 지난 24일에는 15마리가 날아들었다. 

 

q22.jpg» 아침마다 사라진 농경지 때문에 재두루미는 먹이 터를 찾기 위해 선회를 하는 일이 반복된다.q23.jpg» 어렵사리 먹이 터를 찾아 내려앉는 재두루미 무리.

 

넓은 평야를 재두루미가 꽉 채운 듯했다. 아파트 근처를 나는 재두루미를 볼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q24.jpg» 홍도평야의 재두루미는 이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재두루미는 아직 홍도평야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을 찾아온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지만 우리가 외면하고 있다. 2000㎞ 머나먼 길을 날아와 해마다 변해가는 터전에서 이리저리 쫓기는 재두루미의 모습이 가련하기만 하다.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