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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가 만난 사람] 택시 운전사가 된 정창윤 전 울산시당 위원장

“40대, 진정 행복한 삶 살렵니다”
[진보정치가 만난 사람] 택시 운전사가 된 정창윤 전 울산시당 위원장
   오삼언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나 자신이 억압하고 살았구나. 설움과 이유모를 원망 등이 밀려왔습니다”

“울산 터미널에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제가 터미널에 있는데요, 뭐”
택시 운전사를 만나기 쉬운 곳, 터미널에서 택시 노동자가 된 정창윤 전 울산시당 위원장 을 만났다.

 

정 당원은 지난 해 9월부터 영업택시를 몰고 있다. 택시 운전 4개월에 접어들어서야 평균 수입이 맞춰지고 있다는 초보 택시 운전사다. 딱히 ‘운전’과 인연이 없는 그가 택시를 몰게 된 이유는 뭘까.

“‘오래된 정원’이라는 영화, 혹시 봤습니까?” 정 당원은 영화 얘기를 먼저 꺼냈다. 영화를 보며 눈물이 징 솟아올랐다는 정 당원은 82학번이다. 80년대 한국사회의 초상을 그려낸 영화는 정 당원의 삶 또한 묻어나 있었다.

“주인공이 상상 속에서나마 자신의 딸을 치켜올리며 껴안는 장면이 있습니다.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나 자신이 억압하고 살았구나, 설움과 이유모를 원망 등이 밀려왔습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것이 미안한 시대였죠”

암흑의 시절 건너온 40대, ‘행복’을 모르다

아내, 아이들과 대화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붕어빵 하나 사갈 줄 몰랐다. 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지를 못했다. 세상을 바꾸자 마음먹었으면서도 사람들과 진정 어울리지 못했다. 정 당원은 “운동을 기계처럼 해왔구나” 청천벽력과 같은 인식에 대면해야 했다.

한편으로 억울했다. 청춘의 삶을 바쳐온 지난 시절이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이 나이가 되도록 운동하는 길에 자신을 바쳐왔다’는 자부심은 어느새 ‘보상 심리’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판단과 잣대를 내리먹이게 되고, ‘권력욕’으로 추해질 수 밖에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듯 했다.

“1절만 들으면 뻔한 잔소리까지 하는 완고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는 변화된 시대를 읽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3, 40대, 50대에 대해 말했다. 지금까지 ‘80년대처럼’ 살아왔던 자신에 대해 말했다.

 

집사람 고생시키며 가족, 친지를 챙기지 못하고 살아온 삶은 ‘결국 뭐라도 돼야지’라는 욕구를 만들었다. “보상심리는 성과가 안 나오는 것에 마음만 급해지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패거리를 만들게 됩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며 가졌던 순수한 자부심은 사라지는 겁니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있는 보상심리와 마주했던 그는 “너도 어차피 한 자리 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물음과도 대면했다. 부인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이 어물거리게 됐다. 내면에 남아있던 보상심리는 정 당원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다. 즐겁고 기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보상심리 벗어나 '새시대' 적응해야

정 당원은 80년대 암흑의 시대를 함께 겪어온 선후배들도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요즘 시대에 안맞을 것 같은 것”이다.
정 당원은 ‘행복한 것이 미안했던 시절’을 헤쳐온 ‘자신같은 사람이 활동을 계속 해야한다’는 ‘강박’이 보수가 되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며 진보진영 내 보수의 면면을 본다고 한다.

“후대가 커서 올라오고 자신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상심리에 휘둘리면서 자기 자신을 놓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당원은 “민주화의 시대에서 진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해요. 과거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 등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라면서 40대와 자신이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과거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주도해나가는 진보운동이 돼야합니다. 진보가 대중의 상식이 되고 진보의 테두리를 넓히자면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진보운동에 대한 고민은 괴로움에 앓았던 나날에 싹텄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자신과 대면한 경험

그는 2005년 10. 26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패배를 책임지며 울산시당 위원장을 사임했다. 그는 “그 때 심정은 그야말로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어느 순간 평당원, 남편, 아버지인 자기 자신은 처량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에 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기도 했습니다”

정 당원이 자신 스스로와 대면할 수 있게 용기를 부어준 사람은 그의 아내다. 생계를 책임지며 두 아들을 혼자서 키워온 그의 아내는 “잘한 일”이라며 명쾌하게 격려해주기도 하고 “보양식인 줄 알고 ‘쥐약’을 먹고 있다”면서 자신이 못 보고 있는 점을 보게 해줬다. “집사람은 내게 ‘안내자’입니다. 집사람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몰랐을 겁니다” 정 당원에게 아내는 ‘스승’이자 ‘길 벗’과도 같다.

“너무나 진지했습니다. 나와 함께 하고자 했던 당원분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힘들어했겠다 싶습니다. 서로 교감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강변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점을 알려준 아내의 가르침이 고맙다.
밤길 가로수 옆에 택시를 탈 손님이 서 있었다. 페달을 밟아 앞에 서니 사람이 아니라 ‘네온사인 광고판’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보려고 하는 것을 보는 거더라구요. 돈을 벌자하니 광고판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봤던 것이 옳은 것, 객관적인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정 당원은 이렇게 택시 운전을 하며 순간 순간 번뜩 뜨인다고 한다. “택시 운전사는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게 되는 사람입니다. 떠들기만 하다가 많이 듣게 되니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삶에 뿌리내리는 운동 배운다"

노인분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노인문제를 실제 체감하고, 부부싸움의 얘기를 들으며 여성문제와 경제문제를 새삼 느끼며 배우고 있다는 정 당원은 “삶에 뿌리를 내리는 운동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부부싸움을 하고 새벽에 택시를 탄 손님이 차에서 내릴 때, “기사 아저씨, 돈을 두배로 드리고 싶은 심정이네요”라고 상담료를 말할 때도 있다.

정 당원은 운전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몇 초간을 깜박 졸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여기가 어디지?’하는 섬뜩한 경험을 했단다. 택시 운전이 고달파도 달갑다. “몸은 힘들어도 머리는 맑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을 치르듯 삶을 살고 있는 민중들을 만나며 배우고 깨우치지 않았다면 머리만 무거워졌을 것 같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처량했을 테지요”

그러나 정 당원은 여전히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갈까 두렵다. “새로운 사고, 방식으로 거듭나야하는데 나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을 잊어버릴까 경계심이 듭니다” 달콤하고 치명적인 보상심리, 참담한 좌절감과 자괴감 속을 건너온 정 당원은 아직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과거 암흑과 같았던 시절을 살아 오늘을 열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는 오늘을 살아 내일을 열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또다른 교훈이 돼야한다. 영화속에서 “행복한 사람이었어요?”라는 묻는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는 정 당원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 자신, 세상과 계속해서 화해하고 또 싸워나갈 것 같다.

 


[진보정치 307호] 오삼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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