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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해산을 보며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해산을 보며


김 정 호 / 사) 미래를 준비하는 노동사회교육원 소장


어수선한 세밑이다. 비정규악법과 로드맵 국회 통과의 쓰라린 기억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민주노총은 나름대로 총파업으로 저항했지만, 그 힘으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었다. 더구나 지난 12월22일 로드맵이 국회를 통과할 때는 이렇다 할 투쟁도 조직하지 못하고 울분만 삭이면서 지켜보아야 했다. 올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하중근 열사 투쟁’에서도 민주노조운동은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 노동운동의 기억 중 가장 가슴 뿌듯한 것으로는 금속산별노조의 출범을 중심축으로 공공, 운수 부문 등에서 산별노조 시대가 활짝 열린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금속산별노조의 출범으로 금속연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금속연맹의 해산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발전적 해산이라는 점에서 ‘아픈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알려진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해산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1994년에 문을 연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이하 연구소)는 그동안 기업별노조 체제의 극복과 산별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다.

연구소가 발간한 산별노조와 관련된 각종 자료와 책자는 산별노조운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 노동운동의 척박한 토양 속에서 금속산별노조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연구소가 발간한 『산별노조 100문 100답』은 많은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이 산별노조의 교과서로 활용했다. 내 경우에도 금속산업연맹과 금속노조에서 교육 선전 일을 하면서 연구소의 연구 성과물들을 엄청나게 ‘도용’해서 써먹었다. 외국의 산별노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요즘 고려대 이필상 교수의 논문 표절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내가 연구소의 자료들을 우려먹은 것과 견주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나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도둑질’을 하면서도 “배워서 남 주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당당’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이 도둑질해 가라”는 것이 연구소가 바람이었으니까. 김석준 이사장이 말했듯이 영남노동운동연구소는 하도 ‘산별노조’를 부르짖는 바람에 ‘산별 만능주의자’로 딱지가 붙여지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딱지가 아닌 듯하다. 되레 연구소의 활동에 대한 ‘찬사’로 후대에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소는 해산의 주요 배경으로 현장활동가들의 참여가 갈수록 떨어지고 연구 역량을 재생산하는 것이 어렵게 된 점을 들고 있다. 두 가지 중에서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현장활동가들의 결합력 저하와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연구소의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 노동조합운동의 풍토에서 비롯된 탓이 크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노조운동이 90년대 후반 제도권으로 들어간 이후 상당한 수준으로 ‘권력화’되면서 제도권 밖의 각종 연구소나 단체를 대상화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결합력이 더 떨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자신부터 그랬던 것 같다. 앞서 밝혔듯이 아무 거리낌 없이 연구소의 연구 성과물들을 도둑질하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연구소의 본연의 기능이라고 생각했기에, 연구자들의 노력과 헌신에 대해서 별로  고마워할 줄 몰랐고, 그들의 남모르는 고충에 대해서도 헤아릴 줄 몰랐던 것이다. 과연 나만 그랬을까. 내가 보기엔 예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군’에 대해 ‘이용’만 할 줄 알고 있지, 함께 고민을 나누고 공동의 발전을 꾀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은 예전과 달리 그 덩치나 재정 규모에서 상당한 힘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 해 11월23일 역사적인 금속산별 완성대의원대회가 열리던 날, 대회장의 참관석 한켠에 앉아 있는 임영일 소장을 보았다. 단병호, 문성현, 이승필, 김창근, 심상정 … 금속산업연맹과 금속노조의 전직 임원들이 사회자의 화려한 수사와 박수 속에서 인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영남노동운동연구소에도 한 자리 쯤 마련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기분이 씁쓸했다. 

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우리 노동운동에 ‘아래로부터의 연대, 내용 있는 연대’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각종 집회의 연대사로 대표되는 판에 박힌 공식적 연대, 폼 잡고 보여주기 위한 연대가 아니라 제도권 밖을 향해서도 활짝 열려 있는 활발하고 생동력 있는 의사소통과 연대가 복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소의 해산은 앞서 말한 두가지 상황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산별전환’이라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 속에서 본격적인 산별시대의 산적한 과제들에 답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모색하려는 몸짓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임영일 소장은『연대와 실천』종간호(2006년 12월호)에서 “노동문제 전문가들과 현장의 활동가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작업하고 활동하였던 역동적인 운동성을 지금의 조건에 맞게 다시 일구어 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민을 깊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고민을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현장에서도 나와야 할 것이다.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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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신문>, 결국 문 닫게 되나

 
<시민의 신문>, 결국 문 닫게 되나
이형모 전 사장, 경영복귀 시도로 파행
 
박진형 기자    메일보내기
 
 
 

  사내 여직원과 시민단체 여성 활동가에 대한 잇단 성추행으로 이형모 씨가 지난 9월 <시민의 신문> 대표이사직을 자진사퇴한 뒤, 3개월 여 동안 경영공백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의 신문>이 더 깊은 파행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시민의신문 분회(분회장 이준희)가 이 전 대표의 사퇴 뒤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사회를 독려해 겨우 언론계와 시민사회 인사를 중심으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했고, 사추위가 지난 11월 23일 남영진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사장 내정자로 확정했지만, 12월 14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40%의 지분을 확보한 이 전 대표가 나타나 “남영진 대표이사 선임을 반대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이 전 대표는 자신을 포함해 11명의 주주들로부터 위임받은 지분 40%를 내세워 “본인이 데려 온 대리인을 통해 임시 운영한 뒤 3월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새 대표이사를 선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법테두리 내에서는 사실상 손써 볼 도리가 없는 막막한 상황이다.
  
  

 
△12월 14일 <시민의 신문> 주주총회에서 이형모 전 사장이 이준희 노조위원장의 옷깃을 움켜잡고 있다. (사진제공=시민의신문)

  따라서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표방하고 있는 <시민의 신문> 정상화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중재와 정체성 확립 등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겉으로는 '시민단체 공동신문', 실상은 '이형모 1인지배 신문'
  
  <시민의 신문>은 그 동안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자임하며 지면을 통해 시민사회의 다양한 활동과 주장이 소통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해왔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형모 1인 지배 신문’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시민의 신문>의 현 주소가 극명히 드러난 것이 바로 주총장에서의 파행. 파렴치한 행위로 도덕적 지탄을 받으며 물러났던 이 전 대표가 절반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해 낯 뜨거울 정도의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구조가 바로 <시민의 신문>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조직운영에 있어서도 외형적으로 ‘시민단체 공동’의 성격이 강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형모 전 대표가 전권을 휘둘러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식회사로서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고 각 시민단체의 이름 있는 대표자들이 이사로 참가하고 있지만 성추행 파문 이전에 이사회는 사실상 형식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희 시민의신문 노조위원장은 “1년에 한, 두 번 예결산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역할 정도를 했다”고 밝혔다. 성추행 파문 이후에도 이사회가 이 전 대표를 감싸는 등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시민의신문 노조는 주장한다.
  
  아울러 <시민의 신문>에는 고문이나 편집위원 등으로 상당수 명망있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이 또한 <시민의 신문>이 ‘시민단체 공동신문’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형식적인 요소가 강할 뿐 <시민의 신문>의 실질적인 운영에 별다른 영향을 주거나 간여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체불임금, 각종 체불공과금, 직원 차입금, 미지급금 등 최대 6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 <시민의 신문>은, ‘시민의 신문 비상경영위원회’가 의뢰한 경영 컨설턴트의 설명에 따르면 ‘거의 부도 상황’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고 외에는 별다른 수입구조가 없는 <시민의 신문>은 심각한 경영난 속에서 그나마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인맥 등을 동원해 광고를 수주해오면서 외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고 오히려 ‘시민의 신문이 저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건 이형모 사장의 경영능력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 전 대표 또한 주총장에서 자산이 부채보다 많음을 칠판에 적어가면서까지 설명하고 ‘내 재임 동안 1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고 주장할 정도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시민의 신문> 직원들은 ‘사실왜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시민의 신문>의 주거래통장은 주총 파행 직후 압류되었고 임금 또한 석 달째 체불된 상태다. 그 정도로 경영이 심각한 위기 상태에 봉착해 있지만, 이 전 대표는 <시민의 신문> 사장을 역임하는 동안 ‘시민단체 공동신문 발행인’으로서 각종 명예는 물론 엄청난 금전적 혜택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은 임금체불, "사장은 사회적 명예와 금전적 혜택 누려"
  
  현재 이형모 씨는 (사)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회장, (재)한국녹색문화재단 이사장, SBS문화재단 이사, (재)포스코청암재단 감사 등을 포함해 스무 곳 이상의 단체나 재단의 주요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시민의 신문> 대표이사를 하면서 얻은 직책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단체나 재단의 주요직책을 맡는 동안 상당한 금액의 연봉을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2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형모 씨가 “지난 해 2억 1천여 만 원의 근로소득을 신고했다”며 “시민의신문으로부터 1억 1천 5백여 만 원,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에서 6천여 만 원, 녹색문화재단으로부터 3천 6백만 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시민의 신문> 직원들이 임금체불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
  
  
 
△12월 14일 <시민의 신문> 주총장. 미소를 띤 이형모 전 사장과 사추위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된 남영진 사장 내정자의 괴로운 모습이 대비된다 (사진제공=시민의신문)

  언론노조는 “결과적으로 시민운동과 시민의신문은 이형모 전 사장의 명예와 금전적 이득에 막대한 기여를 한 셈”이라며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십 만 원의 활동비로 헌신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운동가들은 뭐란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문제는 40%의 지분으로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형모 전 대표가 버티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방안을 찾느냐는 것.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상황을 더 큰 파국으로 몰고 가는 <시민의 신문> 이사회
  
  12월 20일 오전 열린 <시민의 신문> 이사회는 주총이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남영진 대표이사 승인이 무산된 것을 ‘대표이사 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고,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새로운 임시 대표이사를 선임하여 내년 3월 주주총회 때까지 운영한 뒤, 3월 주총에서 정식 대표이사를 선임한다는 계획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이사회의 결정은 사실상 이형모 전 대표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
  
  이와 관련해 <시민의 신문> 이준희 노조위원장은 “이형모와 시민사회단체 명망가들이 시민의신문 언론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쫓으려 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사태 해결 전망을 찾을 수 없다고 절망을 토로했다. 사실상 ‘<시민의 신문>이 망했다’고 보는 것.
  
  <시민의 신문> 사장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했던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처장 또한 “도덕성을 강조해왔던 시민단체 명망가들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 충격적이다”며 “<시민의 신문>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민사회의 정론지’를 자임했던 <시민의 신문>의 역할을 수용하고 인정해왔던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시민의 신문> 노조는 시민사회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형모 전 대표에 대한 공분을 모아주길 바라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나서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을 여기자 성추행으로 검찰에 고발했듯,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 이형모 전 사장을 사법처리시킬 수 있도록 의지와 힘을 모아달라는 것이다.
  
  언론노조 또한 “그동안 조용한 해결을 바라며 지켜만 봐왔던 (시민사회단체의)소극적 자세가 사태를 키웠다”며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이라도 시민사회 진영이 한 목소리를 낸다면 사태 해결은 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유진 사무처장은 “<시민의 신문>이 ‘시민단체 공동신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에 걸맞는 조직 운영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의 근본적인 논의와 해법모색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파행으로 치닫는 <시민의 신문> 사태. 이 상태로 간다면 결국 <시민의 신문>은 문 닫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이제 <시민의 신문>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관련기사]
 
 
<시민의 신문> 이형모 전 사장의 성추행 전모 ㅣ 박진형 기자
 


2006년12월21일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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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지주, 왜 투기자본일 수밖에 없는가

하나금융지주, 왜 투기자본일 수밖에 없는가

감시센터, "헐값 매입, 지분매각, 슬림화 이후 구조조정... 전형적 투기자본 행태"

 

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또한 현재 하나금융 지주회사가 보이고 있는 행태는, 지주회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금융권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종 구조조정의 사례'라는 점에서 관련 노동계의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일 거래소에서 진행된 '투기자본감시센터/증권노조 하나지주 구조조정 저지 공대위 공동 기자회견' 모습.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


헐값 매입 그리고 내부 정리용 지분 매각

 

하나금융지주는 2005년 5월 대한투자증권과 대투운용을 4,750억 원에 사들였다. 당시 매입 과정에서 ‘헐값’논란이 있기도 했다. 하나금융지주가 대투증권을 매입한 이후에 보이는 행태가 투기자본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하나금융지주는 대투증권을 인수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대투증권 자회사인 대투운용의 지분 51%를 1,500억 원에 UBS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06년 10월 하나증권을 자회사로 편입시켰고, 11월 하나증권의 리테일본부(소매영업)를 영업양수도(어떤 회사가 영위하는 영업, 사업을 다른 회사나 개인에게 파는 것) 방식으로 대투증권으로 넘길 계획을 밝혔다.

 

계획 발표 이후 곧이어 하나증권의 지분이 리만브라더스로 매각된다는 언론보도들이 터져 나왔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하나금융그룹의 상품을 전담하여 판매하는 별도법인 하나GMG를 설립했다.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한다. 하나금융지주는 지주회사 출범 1년의 시간동안 ‘외국자본으로의 지분매각을 통한 수익 확보, 향후 구조조정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증권은 껍데기만 남을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하나금융지주, 리만브라더스를 통한 구조조정 계획

 

하나금융지주는 2007년 11월 30일까지 하나증권의 자회사 편입을 완료해도 됨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주식맞교환을 통해 하나증권을 완전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유가증권매매로 명백한 증권거래법 위반 사항이다.

 

투기자본 감시센터는 "하나금융지주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하나증권주식을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주식 교환했고, 이를 위해 우선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을 개별 접촉까지 해가며 집중적으로 우선주를 매입하여 50%에 지나지 않았던 지분율을 65%까지 끌어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 그대로 하나증권 소액주주들을 싼값에 스퀴즈아웃(소액주주 내몰기)시키고 그 차액을 하나지주가 독차지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감시센터는 하나증권의 리만브라더스로 매각 협상이 상당히 진전된 시점을 고려할 때, 매각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회사 편입을 앞당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금융지주 홈페이지


뛰어든 인수전에 고배를 마셨지만 계속되는 기도

 

하나금융지주는 대투증권 인수당시 싱가포르 국영투자은행(테마섹)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당시 테마섹은 지분참여 조건으로 원금 연 10%의 수익률 보장을 요구했다.

 

투기자본 감시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테마섹’은 기업 가치 제고와 기업의 사회공공적 측면은 도외시한 채 단기적 이익만을 꾀하는 대표적 투기자본이다. 그리고 하나금융지주의 최대 주주(9.89%)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의 수익률 보장 불허조치로 인해 이 컨소시엄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대투운용 매입을 시도한 UBS는 2004년 스위스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 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다. 또한 현재 미국 SEC로부터 의도적으로 미국 국채의 공급 부족 상황을 초래해 시세를 조작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또한 '하나증권의 지분을 넘기려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리만브라더스의 경우도 지난 2001년 11월 고려산업이 확정채권 8000억 원 가운데 채권자 90% 이상의 찬성을 얻어 정리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했으나, 고가로 채권을 매수할 것을 요구하며 정리계획안을 반대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투기자본 감시센터는 “하나금융지주는 공공성을 외면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본이라도 지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는 하나금융지주가 투기적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기자본은 ‘상생’이 아닌, ‘이윤율’ 최고의 방식만 택한다

 

하나지주 사측은 '대투증권은 브로커를 강화하고, 하나증권은 IB로 특화시켜 각각의 장점을 살리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하나증권을 자회사로 편입시킨 후 영업양수도 방식으로 하나증권 리테일(소매영업)은 대투증권으로 넘기고, 하나증권의 지분은 리만브라더스로 매각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하나GMG를 통해 대투의 펀드 상품 등 자회사 상품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투기자본 감시센터는 "하나증권과 대투증권의 리테일 통합을 통해 하나증권을 슬림화한 뒤, 리만브라더스로 매각하고, 대투증권을 비롯한 자회사의 상품을 하나GMG를 통해 판매하여 사실상 계열사 모두를 구조조정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기존 하나증권의 리테일 본부를 대투로 넘기는 영업양수 과정은 향후 지주회사 내 구조조정의 시발탄인 셈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투증권의 법인세 감면 효과를 통해 이익을 취하겠다는 것도 포함된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하나금융지주가 법인세 감면 효과를 노리고 있는 이러한 행태는 투기자본들이 조세회피 지역에 근거를 두고 한국에서의 이익에 대한 세금을 탈루하는 것과 같은 행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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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의 위기]2-7. 좌담 : 진보는 왜 전진하지 못하고 있나

[진보개혁의 위기]2-7. 좌담 : 진보는 왜 전진하지 못하고 있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김혜정 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 단병호 민주노동당의원(왼쪽부터)이 좌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문석기자
 
경향신문 창간 60돌 특별기획 ‘진보개혁의 위기-길 잃은 한국’ 2부를 마치며 진보진영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좌담에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좌담은 경향신문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의 사회로 지난 2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 지금은 ‘민주화 이후’ 새 길 모색의 진통기



사회=진보개혁세력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진보가 위기라는 데 동의하는지.

조희연=‘전환적 위기’라 본다. 어느 시기든 진보는 특정 문제에 대응하고 또 저항하는 형태로 운동해왔다. 독재 타도라는 시대적 과제 속에서 1987년 6월 민주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주도했던 민주진보 진영은 이제 전환국면에 있다. ‘포스트 민주화’ ‘지구화’ 시대의 진보로 전환하는 진통을 겪고 있다. 진보가 통째로 몰락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새로운 진보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가 남았을 뿐이다.

김혜정=삶 자체가 성장만 할 수 없듯 운동도 언제나 성장할 수는 없다. 시민운동이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고 다양함을 요구받는 시기에 그것을 수용해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위기의 본질은 양적인 성장을 이룬 시민운동이 질적으로 성숙함을 요구받는 것이다. 환경운동의 실패라는 평가에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환경운동이 없었다면 여기까지라도 왔을까 싶다. 새만금 논쟁을 통해 국민들이 갯벌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큰 진전이다.

단병호=현재 상황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수십년간 운동을 해오며 느낀 직감으로는 진보운동이 위기적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진보운동을 추동해온 주체들의 계급 안에서 구심점이 사라지고 있다. 노동자·농민을 한 덩어리로 보고 우리 사회를 추동해 왔는데, 노동 내에서조차 분화가 일어나면서 민주 진보를 추동해온 세력들이 서로 고립되고 있다. 새로운 민주 진보를 추동해 나갈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희연=민주화 이후 진보의 위기는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대만 천수이볜 정부, 태국 탁신 정부 등 80~90년대 제3의 민주화 물결을 이룬 아시아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경우 박정희가 개발을 성취했으나 그 개발이 가져온 새로운 모순의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재벌개혁이 진행됐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더욱 거칠고 험악한 모습의 계급사회가 출현해버렸다. 또한 민주개혁은 정치경제적 의제 중심이었다. 정치경제적 개혁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생태적 진보, 생활세계적 진보로의 확장은 거의 손도 못댔다. 지금까지 성취한 민주개혁이 어떤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지, 어떤 것은 여전히 성취하지 못했는지를 나눠서 봐야 한다.

사회=생활의 진보, 진보의 확장에 대해 더 말해달라.

김혜정=현재 개혁과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녹색’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진보의 선봉에는 정치·경제를 포괄하는 단체가 주류인데, 참여정부의 개혁에는 환경, 평화, 문화 분야는 완전히 실종됐다. 개발독재 때보다 더하다. 20여년 환경운동을 해오며 느낀 것은 참여정부가 역대 정부 중 가장 반환경적이고 재벌편향적이라는 것이다.

단병호=일반 국민들은 개혁과 진보, 민주와 진보라는 것을 개념적으로 구분해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시민운동을 참여정부와 한 덩어리로 보고 그 정부를 출범시켜 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안에서 ‘진보세력’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국보법이 그대로 살아있고 집시법은 오히려 더 강화됐다. 양극화는 심화됐고 고용불안정도 더 심해졌다.

조희연=참여정부에 돌 던져 버리고 끝나서는 안된다. 그 실패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참여정부 내 준비 안된 주체와 그들의 개혁성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이른바 개혁적인 386들 역시 삼성 보고서를 다 베껴 쓰는 실정이다. 정책수행 능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민노당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보법 실패는 참여정부가 안하려고 해서 안한 게 아니다. 국보법 해체를 우리 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진보적 역량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민주화 이후 역설적으로 계급적 기득권 세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진보를 확장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강남 사람들은 계급의식이 투철한 데 비해 강북 사람들의 계급의식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를 친일신문, 반개혁신문으로 평가하지만 조선일보는 오히려 투철한 계급신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김혜정=참여정부 하에서 더욱 심해진 양극화의 주범은 건설 마피아의 득세다. 건설 마피아는 개발독재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필요하지도 않은 댐, 다리, 도로 등 대규모 공사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참여정부가 말로는 ‘친환경’ 했지만 정권을 장악한 것은 건설 마피아, 토건세력들이다. 이들에 대한 실질적 개혁 없이는 민주개혁은 물론 우리 시민들 삶의 질 성숙도, 희망도 없다.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국토는 파괴될 것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국민들은 환경 문제 같은 삶의 질 문제에는 관심이 옅어지고 개발해서라도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조희연=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운동이 조급할 필요는 없다. 전두환·노태우 시대보다 노무현 정부가 더 반환경적이지는 않다. 개발독재국가에서 민주화운동, 민중운동이 쟁점화됐던 것은 독재의 성장국가 담론이다. 토건국가적 측면은 충분히 쟁점화될 기회가 없었다. 그때 쟁점화되지 못했던 것이 이제서야 터져 나오는 것이다.

단병호=참여정부, 개발 기득권층 얘기만 했는데 우리 스스로도 돌아볼 부분이 많다. 2년 전 국민들이 민노당에 13%의 지지를 보내며 10명이나 국회로 보내줬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했느냐 생각해 보면 사실 죄송한 마음밖에 없다. 국회 들어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들어오기만 했을 뿐 우리가 준비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법이나 제도를 만들어 내는 역량이 부족했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든지 구조적인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었다. 계획도, 실행도 부족했다. 진보에 대해 국민들이 회의하고 실망한 점, 저희 민노당이 기여한 측면이 크다. 민노총 역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노동운동이라는 게 조직원들이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와 요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민주노조를 해오며 그 안에서 버릴 것과 가져가야 할 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기존에 갖고 있던 형태의 운동만 고집했다. 민노총은 단협, 임금 등의 문제에 있어 자기 구성원 중심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조직된 조합원의 임금 문제에만 신경쓰고 비조직된 8백50만 비정규직에는 소홀했다.

조희연=민주화가 진행되며 나타나는 제도화의 도전이라 본다. 민노당의 의회 진출은 진보가 제도정치적 공간으로 확장됐다는 말이다. 그 확장은 사실 탄핵이라는 보수쪽 실책에 힘입은 측면도 크다. 진보진영의 정책 역량은 많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제도화의 도전은 시민운동에도 적용된다. 시민운동의 의제가 주류에 포섭돼 버렸다. 특히 인권, 여성 같은 종합적 시민운동이 그렇다. 제도화가 진전된다는 것은 진보세력에게도 제도적 활용공간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걸 활용하면서 보수의 일부까지도 진보가 획득하는 헤게모니의 정치를 해야 했다. 진보는 지금까지 ‘정체성의 정치’만 고민했지 ‘헤게모니 정치’에는 미흡했다. 보수를 비개혁적이라고 비판만 했을 뿐 그들을 진보 헤게모니로 끌어오는 것에 미숙했다.

사회=경향신문 진보시리즈가 나온 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진보의 실패는 진보 안에서 찾아야지 왜 엉뚱하게 노정부(盧政府)에서 찾느냐. 진보 스스로 반성하라”는 글을 올렸다. 진보의 위기에서 노정부 책임이 더 많은가, 진보 내부 책임이 더 많은가, 아니면 신자유주의라는 외부 요인이 더 큰가.

단병호=문제가 있으면 자기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 말인즉슨 맞다. 옛날만큼 진보운동이 치열했느냐, 나 자신부터 자신있게 대답하기 부끄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애초 “우리는 신자유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다”라고 표방했다면 이렇게 문제가 커졌을까. 참여정부는 끊임없이 자신이 민주세력이고 약간의 진보세력인 것처럼 포장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왔다.

김혜정=‘좌회전 깜박이 켜고 우회전하는’ 참여정부 정책이 온국민을 혼돈에 빠트렸다. 일반 시민들은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노정부가 진보의 위기를 초래한 문제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시민운동이 변화된 사회에 걸맞은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점 역시 사실이다. 이슈 중심의 운동에서 보다 정책 역량이 배가된 형태의 운동은 부족했다. 과거 환경운동은 친환경적인 언론 보도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 이제는 언론 보도 없이도 우리 자체적인 회원이라든가 시민 참여, 축적된 정책 역량 등 자생적 힘으로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약자가 중심된 ‘풀뿌리운동’으로 거듭나야

사회=여러 진보세력의 문제점을 보면 전망 및 대안 부재, 투쟁을 위한 투쟁, 기득권화, 정파갈등 등 몇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조희연=가장 중요한 것은 전망과 대안의 부재다. 민주정부와 진보세력은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서민들과 국민들을 먹고 살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박정희 모델을 전유하는 식으로 출구를 찾으려 했다. 사람들은 민주정부 하에서 훨씬 계급적으로 양극화돼 있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와는 다른 방식의 작동 가능한 경제모델을 제시하고 추진력 있게 그걸 실행해야 하는데, 대안적 모델도 문제고 그걸 실행하는 정책 능력도 없었다.

김혜정=북한 핵실험에 대해 민노당이 입장을 제때 못낸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한반도 평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공당이 내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나중에야 슬며시 낸 것이다. 핵무장을 인정하는 진보란 있을 수 없다.

조희연=정파 구도의 고정화는 진보의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성찰해야 한다. 모든 경계가 고정되고 관성화될 때 문제가 생긴다. 정파는 민주화 초기 형성된 것으로 정파가 도전하고자 했던 미국의 패권, 계급적 억압이 여전하긴 하지만 포스트 민주화 및 지구화 시대를 맞아 그 작동방식은 변하고 있다. 정파가 배제의 범주로만 작동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포섭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단병호=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진보정당 내에는 진보적 가치와 민족적 가치가 공존해온 측면이 있다. 진보정당의 기본으로 돌아갔을 때 북한 핵문제 대응 부분은 반성해야 하는 것이 맞다. 정파 문제는 좀 다르다. 정치운동에서 정파는 없어질 수 없다. 획일이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이다. 정파구도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느냐가 문제다. 이제는 정파라는 틀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정책을 내놓고 활발하게 토론하고 동의와 지지를 묻고 실행을 통해 평가를 받는 식으로 가야 한다.

김혜정=민족주의는 시민운동의 큰 걸림돌이다. 민족주의가 극한으로 가면 전쟁, 파쇼적 지배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노동운동의 결과 시민운동의 공간이 마련됐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 노동운동이 선봉에 서는 전선식 운동은 지양해야 한다.

조희연=우리 사회에 아직 계급적, 친미적 권력이 강고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바리케이드가 시민운동을 확장시켜 주는 측면이 있다. 노동운동은 현재의 계급적 역관계를 돌파하는 역할을 하고 시민운동은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동행동을 폭넓게 형성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민중운동의 계급적 실현과 시민운동의 공공성이 만나는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단병호=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갈등은 조금만 토론했으면 커지지 않았을 문제다.

조희연=운동의 일상적 분화는 불가피하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긴장·갈등은 오히려 있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시민사회 일각의 보수화 현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문제다. 진보 위기 이후 보수의 능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사회경제적 조건이 많이 변했는데 여전히 ‘투쟁을 위한 투쟁’을 고집한다는 비판도 있다. 가령 정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김혜정=과정은 다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운동이 투쟁을 위한 투쟁만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건 문제다. 가령 방폐장과 새만금 문제에서 환경운동 진영이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고 운동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슈를 제기하고 사회의제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은 기본적으로 대립 구도를 선호한다. ‘보존이냐 개발이냐’는 제목이 일단 나와야 기사화한다. 투쟁으로 반대 입장을 이슈화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우리 역시 법률구제 활동이나 연구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해오고 있으며 갯벌을 살릴 수 있는 조정안을 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단병호=언론도 그렇고, 고향이나 지역에서 사람들 만나봐도 투쟁, 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더라.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는데 투쟁 방식만 고집한다” “자기 이해관계만 집착한다”고들 하는데 이거야말로 정부의 통치 이데올로기다. 물론 통치 이데올로기가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가는 것은 투쟁 주체가 과제 설정을 잘못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으로 집권여당, 참여정부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 국회 들어가 보니 그건 불가능하더라. 사회적 조건이 구비돼 있지 못해 국보법 문제를 해결 못했을까. 아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의 실행 의지 문제였다. 정부여당은 민노당을 비정규직법 제정을 막는 당으로 몰고 있다. 현재 정부 방안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은행 창구에 함께 근무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겠다며 정규직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대체해버리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활용하겠나.

조희연=민주화 이후 민중·시민운동 단체가 순수한 약자 집단은 아니다. 이제는 정치적 고려를 좀 해야 한다. 지하철 노조나 전교조 파업이 그렇다. 전교조가 현장에서 약자 집단이라고 인식되진 않는다. 독재 하에서는 일직선적인 전투성이 계몽 효과를 가져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전투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정치력과 전투성을 병행해야 한다. 계급적 우위자들, 즉 자본이 계급적 약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비타협성이 있기 때문에 벼랑끝 전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자본과 기득권 세력의 비타협성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김혜정=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핵 마피아 집단이 갖고 있는 기득권이 강고하다. 부안 주민들이 처음부터 투쟁했겠나. 평화시위로는 안먹혔기 때문이다. 방폐장이 경주로 선정된 것을 두고 참여정부는 지역주민들의 지지 하에 성취한 민주주의의 성공 사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민주주의를 악용해 가장 나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된 경우다. 매표와 금권선거, 관권 개입에 지역주의까지 붙었다. 우리 사회가 피 흘리며 이뤄온 민주주의가 다 실종됐다. 국가는 자신의 국토 관리 권한을 자본에 넘겨버렸다.

단병호=투쟁이라고 하면 노동, 그 중에도 민노총으로 상징화돼 있다. 정책이든 정치적 의제든 반대만 한다는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도 민노총의 투쟁을 엄호해줘야 한다. 순망치한이라고 하지 않나. 민노총 투쟁이 무력화되면 본격적인 화살은 바로 시민사회로 향한다. 물론 투쟁에 대한 비판도 수용해야 할 측면이 있다. 민노총 조합원들은 전체 노동자들 중 기득권층으로 비쳐지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의 투쟁이 국민들에게는 물론 노동자 계급 내에서도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이다. “우리는 죽도록 일해서 월 1백만원 받는데 저 사람들은…”이라고 푸념하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냉철하게 돌이켜봐야 한다.

조희연=전투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대중이 전투적인 분노를 느끼는 의제를 발굴하고 그것에 대해 투쟁해 대중이 환호하면 문제가 없다.

사회=진보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희연=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의 대안적인 사회적 국가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서구의 국가 사회주의 모델은 자체 문제로 실패했고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 무력화됐다. 새로운 사회적 국가모델을 구체화하기 위해 일국적·지구적·계급적 사회모델의 형성을 고민해야 한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과제도 고민해야 한다. 정치경제적 진보보다 더 급진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심화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강고한 계급적 장벽을 뚫고 다양한 진보의 차원을 생태적 진보와 풀뿌리 진보로 확장하고 내부화해야 한다. 새로운 조건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 집단과 저항적 주체들, 가령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진보운동의 중심으로 더 나와야 한다.

단병호=더 큰 소유를 위해서는 가진 걸 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어쩌면 문제가 있는 부분은 1백만 조직 노동자들의 일부에 있을 뿐인데,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비쳐지고 있다. 지금 상태로라면 조직 노동자들이 고립돼 살아남기 힘들다. 기존 조직원의 임금, 단협에 매몰되지 않아야 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도 가능하리라 본다.

김혜정=시민운동, 진보세력이 성장하는 게 우리의 희망이기에 이런 논의를 하는 것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진보는 전인미답의 길이다. 그동안 부족했던 정책 역량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위한 풀뿌리 운동의 확대, 무엇보다 미래를 열어가는 의제 설정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

단병호=이렇게 볼 수도 있다. 내재적 불만은 커져 가고, 자괴감과 상실감이 도처에서 심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동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가 재결집할 수 있는 내재적 동력은 커가고 있는 게 아닌가.

<손제민기자>

<특별취재팀=이기수 오창민 김광호 박영환 김종목 전병역 최민영 이주영 손제민 장관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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