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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을 '경제동물'로 만들려 하나?

청소년들을 '경제동물'로 만들려 하나?
  [경제교과서 논란(2)] 기존 경제교과서의 실상
 
  2006-11-16 오전 9:07:32
 
   
 
 
 현행 경제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부르주아 경제학을 교육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현행 경제교과서의 검인정 기준인 '제7차 교과과정 경제편'이 "경제 과목이 지향하는 민주시민 상은 시장경제의 경쟁원리에 적응하여 효율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면서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합리적, 윤리적 경제인"이라고 분명하게 천명한 데서 확인된다.
  
  자본과 노동의 사회적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하기는커녕 이런 사회적 관계를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로 치환한 현행 경제교과서가 도대체 어떤 점에서 반시장적, 좌편향적이라는 것일까?
  
  노동인권 교육이 불가능한 교과서
  
  현행 경제교과서는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현행 경제교과서에는 그 어디에도 주류 경제학의 체계를 벗어난 서술이 없다. 주류 경제학에 맞서 경쟁적인 흐름을 형성해 온 마르크스 경제학, 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 제도주의 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의 흐름은 현행 경제교과서에서 전혀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또한 6차 경제교과서에는 '노동시장과 산업평화'라는 제목으로 들어 있었던 노동문제에 관한 절이 현행 경제교과서에서는 완전히 삭제됐다. 그 결과 현행 경제교과서에는 기업과 소비자만이 존재하고 노동자, 노사관계, 노동과정에 관한 서술은 자취를 감추었다. 노동과 관련해서는 기업과 근로자의 역할, 실업의 원인과 대책 정도만이 단편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교과서의 내용이 이러하니 학생들이 노동인권 교육을 받을 수 있겠는가? 2004년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노동인권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참았다'와 '그만두었다' 등 소극적 대응을 한다는 응답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응답이 80%로 나타났다(하인호 외,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개선방안 연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출 연구보고서, 2004년).
  
  또 한국노동교육연구원이 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총 72종의 교과서 내용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학생들의 직업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40여 건에 이른다. 특히 초중고의 모든 교과서에서 '노동'과 '근로',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육체노동자'와 '사무근로자'라는 식으로 사용됨으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학생들의 부정적 편견을 부추기는 것으로 지적됐다(송태수, '한국 노동교육 내실화를 위한 정책대안 연구', 한국노동교육연구원, 2006년).
  
  인간성과 사회의식의 골격이 청소년기에 형성됨을 감안한다면, 대학 진학 후에 비판적 사회과학 등을 통해 청소년기에 형성된 기존 사고방식의 틀을 깨기란 대단히 어렵다.
  
  우파는 재벌과 정부기구를 총동원해 고등학교 이하의 경제교육 과정과 그 내용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의 요소를 어린 싹부터 제거하고 학생들에게 체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제 진보진영도 이런 우파의 움직임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 시장경제에 순응하는 경제동물로 청소년들을 파편화, 불구화하는 데 기여할 뿐인 7차 교과과정 경제교과서는 전면 폐기돼야 한다.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과 달리 모순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가득 찬 사회문제를 탐구하는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다. 사회과학의 경우 교과서의 역할은 모순적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이해하고 비교하고 토론하는 것이 돼야지, 어떤 한편의 주장을 보편적 진리라고 획일적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경제교과서의 경우 역사적으로 특수한 시장경제 체제를 당연한 것 내지 초월할 수 없는 여건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서 순응하는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운동법칙과 그 모순 및 한계, 나아가 대안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이해하고 토론하는 것이 돼야 한다. 특히 경제교과서는 아직 세계관이 확립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시장경제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그들을 세뇌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 시각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토론하게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각과 능력이 함양되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경제교과서는 학생들이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최대한 접하도록 해야 한다. 동일한 문제에 대해 보수적 시각(자유시장을 주장), 자유주의적 시각(관리되는 시장을 주장), 급진적 시각 등 여러 시각에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며, 경제적 선택을 평가할 때의 기준으로 경제성장, 경제적 효율, 소득분배, 경제적 자유, 형평성, 안정, 경제발전 등을 제시한 미국의 교육학자들도 있다.
  
  교사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보다 다양한 입장을 제시하고 학생들 스스로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자기주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원칙은 다른 나라의 사회과 교육에도 확립돼 있다. 독일의 사회과 교육에서는 ① 교화 또는 주입을 금지한다, ②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 수업에서도 역시 논쟁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③ 학생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면한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교육돼야 한다는 3가지 원칙이 교육자들 사이에 합의돼 있다. 또 독일에서는 교육방법의 경우 모든 교과서가 토론식, 유도식, 체험식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강의식, 주입식, 강독식 교육방법은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경제교과서를 완전히 새롭게 써야 한다
  
  새로운 경제교과서에는 노동인권 교육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은 노동해서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자신의 기본적 인권을 지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노사관계와 노동자의 권리를 다루는 교과를 배우는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개혁과 참여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시장이데올로기의 교본인 현행 경제교과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진보학계의 거듭된 문제제기를 외면하고 7차 교과과정의 방향을 그대로 고수하는 내용의 8차 교과과정 시안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8차 교과과정 시안 작성과정에서 진보진영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8차 교과과정 시안은 교과서 서술에서 다양성과 경쟁을 고무한다는 미명 하에 교과과정을 개략화, 신축화했는데 이는 교과서 내용뿐만 아니라 제작과 선정 및 유통에까지 시장논리를 확실하게 관철시킴으로써 이미 경제교과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부르주아 경제학의 헤게모니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과 참여의 초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21세기 미래의 주역인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신자유주의 경제동물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이고 연대적이며 합리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육성하기를 조금이라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8차 교과과정 시안을 백지화하고 진보진영과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경제교과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장상환 정성진/경상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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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 기고] 윤평중 교수에게 말한다

 

[홍윤기 기고] 윤평중 교수에게 말한다

 

 

당신의 ‘이성’은 허수아비를 향해 있다
헛다리 비판을 하느니 차라리 인신공격을 하시지요!

 

한겨레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과

 
 
경애하는 윤평중 교수님,
 

지난 9일치 <중앙일보>는 리영희 선생의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를 시장맹·북한맹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면서 교수님의 글 내용을 이례적으로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문은 우선 두 가지 이유로 나의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먼저, 이 보도는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을 “시장맹, 북한맹”이라고 공격했다는 겁니다. 교수님이 인신공격을 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 보도는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의 사상을 놓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시장맹, 북한맹을 “초래”했다고 전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리영희 선생의 “인본적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는 시장과 북한을 바로 알지도 못할 정도로 맹(盲)한 “인본적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글을 직접 보니 이 보도가 오보는 아니었고, 또 정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리영희의 사회주의적 정향은 직관적이며 그만큼 파편적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이론정합성을 갖춘 논의 자체가 부재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우상을 부순 자리에 리영희가 세운 것은 바로 사회주의의 우상이었다.” “리영희의 인본적 사회주의와 유가적 도덕주의는 근대적 시장의 입체성과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시장맹(市場盲)으로 귀결됨으로써 자유인의 존재 근거를 부인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조야(粗野)하고 도식적인 그의 인본적 사회주의는 시장맹과 북한맹(北韓盲)을 배태(胚胎)하면서 우리 시대를 계몽함과 동시에 미몽에 빠뜨렸다. 리영희는 결국 냉전 반공주의가 압살한 불행한 시대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위의 인용은 모두, 리영희 선생의 책 <우상과 이성>을 비틀어 ‘이성과 우상’이라고 제목 붙인 글에서 교수님이 손수 굵게 부각시킨 리영희 비판의 핵심들입니다.

만약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을 “이성적”으로 “비판”했다고 믿는다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어느 글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서 ‘사상적’ 입장이나마 세웠던가요? 그리고 선생이 어느 자리에서 어느 정도나 시장체제의 ‘이론적’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열중하였는가요? 선생은 사회주의의 도덕적이고도 인간주의적인 기본 가치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자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우상화시키겠다는 이데올로기적 의도나 목표와 연결된 일이었습니까? 시장체제가 생활에 안겨주는 각종 고통을 리영희 선생은 집요하게 ‘비판’하고 ‘고발’하기는 했지만 과연 시장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대안’의 탐구를 자신의 ‘학문적 주제’로 삼았던 적이 있던가요?

교수님은 ‘반시장주의자, 북한 숭배자인 사회주의 사상가 리영희’, 그러면서 우리 사회를 그런 것에 눈멀게 만든 ‘괴력의 리영희’를 비판합니다. 아, 교수님! 교수님이 비판하는 리영희씨는 우리가 아는 리영희 선생과 동명이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 헛다리 비판을 우리 철학 교수들은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지요, 아마.


그리고 교수님이 “근대적 시장의 입체성과 역동성”을 “자유인의 존재 근거”와 연결한 발상은 너무 멋졌습니다. 그런데 “이윤을 매개로 작동하는 시장은 생산력의 확대와 함께 바람직한 사회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언명한 것은 아무래도 너무 나가신 것 같습니다. 그토록 균형을 강조하는 분이 시장의 이윤기제가 “바람직한” 사회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속편하게 말하시는데, ‘시장의 실패’라는 또 다른 측면은 어떠한가요? 나도 시장에 대해 맹(盲)한가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아무래도 철학을 업으로 하는 교수들의 얼치기 사회과학부터 깨져야 할 듯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리영희 지성의 진면모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할 듯합니다. 내가 아는 리영희 선생은 우리의 현대가 전적으로 결여한 채 출발하였던, 비판적 계몽의 선도자입니다. 그 분의 역할은 볼테르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볼테르더러 마르크스가 못됐다고 비판하면 공정한 비판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 윤 교수님은 기준 혼동의 오류까지 범한 듯합니다.

 

경애하는 윤평중 교수님,

이렇게 한없이 오류로 가득찬 A4 11쪽짜리의 조야한 잡문을 학교 연구비까지 지원받아가며 쓸 일이 아니라 차라리 리영희 선생을 속편하게 인신공격 하시지요. 그것이 철학교수의 비판이라는 것이 얼치기라는 직업상의 기밀을 은폐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동류의식이 발동하는군요. 교수님과 교수님에 훨씬 못미치는 나 자신에 대한 학문적 연민의 심정으로 간청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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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영화제 울산 상영장소와 시간표(16,17,18,19일)

제10회 국제노동영화제 울산지역 상영장소와 시간표

16~17일(목금)

현대자동차 문화회관 2층 대강당(양정동)


18~19일(토일)

전교조울산지부 2층 교육관 (삼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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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특별전(부산 시네마테크, 서울 동숭동)






켄 로치 특별전 Ken Loach Retrospective

컬러 | 영국 등 | 영화등급 : 12세관람가 | Director 켄 로치 Ken Loach

켄 로치 특별전 개요.


프로그램명 : 켄 로치 특별전 Ken Loach Retrospective
기간 : 2006년 11월 10~26일 (매주 월요일 휴관, 22일 상영없음)
시간 : 공지사항(시네마테크 소식 참조)
주최 : 시네마테크 부산, 동숭아트센터
후원 : 주한영국문화원
장소 : 시네마테크 부산
문의 : 051-742-5377, cinema.piff.org
상영작 : 총 14편 <캐시 컴 홈> <케스> <게임키퍼> <외모와 미소> <하층민들> <히든 아젠다> <레이닝 스톤> <레이디버드> <랜드 앤 프리덤> <내 이름은 조> <스위트 식스틴> <다정한 입맞춤> <티켓>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Ken Loach

역사란 향수가 아니다. 역사는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역사가 향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들에게 적합하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며, 따라서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 중 하나이다.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민중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을 그들의 현재를 재조정할 수 있고, 현재를 조정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과거에 대한 민중의 생각을 조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 켄 로치


1936년 영국에서 출생한 켄 로치 감독은 옥스포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BBC 방송의 TV 시리즈 연출자로 활동하며 시리즈 등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프리시네마의 영향을 받아 다큐멘터리적 기법과 리얼리즘을 반영한 <캐시 컴 홈>, <케스>를 연출, 세상의 왼편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영국 사회에 큰 반향과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1967년 <불쌍한 암소>로 영화 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 후, 켄 로치는 극영화의 제작비를 벌기 위해 TV 다큐멘터리에서 활동해 왔다.

70년대 켄 로치 감독은 <블랙 잭 Black Jack>(1979)과 <게임키퍼 Gamekeeper>(1980)를 연이어 만들면서 극영화 연출로 복귀해 영국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노동자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담아 내 다시 한번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 이후의 작품들은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해80년대 중반까지 노조투쟁 현장을 돌아다니며 기록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90년에 들어서면서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정치드라마 <히든 아젠다 Hidden Agenda>(1990)로 90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고, 계급적으로 각성하는 건축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하층민들 Riff-Raff>은 91년 '올해의 유럽 영화상'을 받아 전성기를 맞았다. 그리고 성찬식 때 입을 딸의 드레스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직자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레이닝 스톤 Raining Stones>(1993)으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랜드 앤 프리덤>(1995)으로 칸영화제 비평가상과 유럽영화상을 수상해 켄 로치 감독은 만드는 작품마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초청 되어 뜨거운 관심과 찬사가 끊이질 않았으며, 2006년 최신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영화 인생 정점에 이르렀다.


세상의 왼편에서 사랑과 혁명을 노래하는 시네아스트

불평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 사십 년 동안 일관된 주제와 스타일을 고수하며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온 켄 로치 감독. 그는 영화의 사회적 리얼리즘을 전달하기 위해 그들이 실제로 겪는 삶을 그대로 반영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착각을 하게 만들고, 비전문 배우 기용을 통해 일상의 세세한 면까지 묘사하는 탁월한 연출력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캐릭터에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진실되며 마음의 경적을 울리는 힘이 느껴진다. 또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창출해 내는 위트야 말로 켄 로치 영화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영화 속에 표현하고, 자신도 그와 같이 행동하기에 앞장선다.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들며 늘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소외된 이웃들의 어려운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노력과 자세는 ‘깨어있는 지식인’,‘행동하는 지성’으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켄 로치 식’ 영화에서는 스타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오직 ‘무엇을 말할 것인가, 무엇을 느끼게 해 줄 것인가가’ 영화의 핵심 요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꾸밈 없이 소박하고 단순하다. 미리 배우들하고 리허설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며, 공유할 기본 사항들만 체크 하고 바로 촬영에 임하고 스토리보드 또한 만들지 않아 배우들의 즉흥 적인 연기를 뽑아 낸다. 모든 현장 그림은 켄 로치 감독의 머리 속에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그 대표작으로는 <하층민들>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노동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유머를 녹여내 노동자들을 위한 상징적인 영화로 평판이 나있다.  

켄 로치 감독은 "민중들이 그들의 두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화란 시나리오와 영화 속 인물들 사이의 변증법이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사실적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도 사실적이어야 한다."라는 것이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것이야 말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학이다.



주요 필모그라피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124min / 35mm
2005년      <티켓 Tickets> 109min / 35mm
2004년      <다정한 입맞춤 Ae fond Kiss> 104min / 35mm
2002년      <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 106min / 35mm
2001년      <네비게이터 Navigator> 96min / 35mm
2000년      <빵과 장미 Bread & Roses> 110min / 35mm
1998년      <내 이름은 조 My Name Is Joe> 105min / 35mm
1998년      「희미한 불꽃 The Flickering Flame」  (TV)
1995년      <랜드 앤 프리덤 Land & Freedom>  109min /35mm
1996년      <칼라 송 Carla’s song> 127min / 35mm
1994년      <레이디버드 Ladybird Ladybird> 101min / 35mm
1993년      <레이닝 스톤 Raining Stones> 90min / 35mm
1990년      <하층민들 Riff - Raff> 95min / 35mm
1990년      <히든 아젠다 Hidden Agenda> 95min / 35mm
1986년      <파더랜드 Fatherland> 111min / 35mm
1984년      「당신은 어느 편인가? Which side are you on? 」 53min / 35mm (TV)
1981년      <외모와 미소 Looks & Smiles> 104min / 16mm
1980년      <게임 키퍼 The Gamekeeper> 84min / 16mm
1979년      <블랙잭 Black Jack> 105min / 35mm
1971년      <가족생활 Family Life> 108min / 35mm
1970년      <흑과 백 Black & White> 105min / 35mm
1969년      <케스 Kes> 113min / 35mm
1967년      <불쌍한 암소 Poor Cow> 101min / 35mm – 첫 영화 데뷔작
1966년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 80min / 16mm (TV)
1964년      「Z카 Z-Cars」 중 에피소드 세편 (TV 시리즈)
1964년      「캐서린 Catherine」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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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소개


1.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
1966, 80min, 16mm, b&w  /  주연: 캐롤 화이트, 레이 브룩스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거센 사회적 반응과 뜨거운 화제를 모은 작품. 젊은 여성 캐시는 출산과 남편의 실직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홈리스가 된다.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관료적 복지제도가 어떻게 가족을 해체시키는지를 꼬집고 있다.

2. 케스 KES
1969, 113min, 35mm, color  /  주연: 데이빗 브래들리, 프레디 플레쳐
1970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켄 로치가 만든 성장영화의 걸작. 영국의 한 탄광마을에 사는 15세 소년 빌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는 문제아로 항상 학교와 가정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어느 날 빌리는 매의 새끼를 키우게 되고, 언젠가 초원에서 그 매를 날게 하는 소망을 가진다.

3. 게임키퍼 The Gamekeeper
1980, 84min, 16mm, b&w  /  주연: 리타 메이, 필 아스크함

켄 로치가 가장 기쁘게 만든 작품으로 전해지며, <케스>의 원작을 쓴 배리 하인즈의 작품이다. 철강소에서 해고되어 사냥터지기가 된 조지는 전원생활에 만족한다. 이따금 숲에 찾아오는 불청객을 제외하면 평화롭기만 한 생활은 어느 날 다시 나타난 사람들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4. 외모와 미소 Looks & Smiles
1981, 104min, 16mm, b&w  /  주연: 그래함 그린, 캐롤린 니콜슨

실업문제가 심각한 <케스>의 빌리 세대의 청년기를 그린 작품. 18살인 앨런과 믹은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지만 쉽지 않다. 앨런은 군대에 자원해 아일랜드로 가고, 믹은 술과 싸움으로 지내다 카렌을 만나 사랑을 키우지만 위기가 찾아온다.

5. 하층민들 Riff-Raff
1990, 95min, 35mm, color  /  주연:  로버트 칼라일, 에머 맥커트, 지미 콜먼
1991년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작

1980년대 영국의 하층민들과 노동계급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 공사판에서 일하는 스티브는 노동현장의 열악한 처우를 알게 된다. 그러던 중, 미모의 가수지망생 수잔을 만나 동거를 시작하지만, 그녀가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6. 히든 아젠다 Hidden Agenda
1990,  106min , 35mm, color  / 주연:  프랜시스 맥도먼드, 브라이언 콕스
1990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국제 정치의 음모와 아일랜드 문제를 스릴러 형식으로 다룬 작품. 미국인 인권운동가 폴은 북 아일랜드의 인권을 조사하던 중 의문의 테이프를 도난 당하고 암살된다. 사건의 파장은 커지고 이를 수사하던 수사관은 정부 고위층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7. 레이닝 스톤 Raining Stones
1993, 90min, 35mm, color  /  주연: 브루스 존스, 줄리 브라운
199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영국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 낸 작품. 밥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양을 훔쳐 팔려고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의 일곱살난 딸의 성찬식 때 입을 드레스를 사줄 돈이 없어, 그는 돈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8. 레이디버드 Ladybird Ladybird
1994, 101min, 35mm, color  /  주연: 크리시 록, 블라드미르 베가
1994년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실화를 바탕으로 영국의 사회복지정책을 비판한 작품. 아버지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사는 매기. 그녀가 외출한 사이 집에 불이 나, 첫째 아이가 다치게 된다. 복지기관은 노동계층인 그녀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고 네 아이를 빼앗아 간다.

9.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5, 109min, 35mm, color  /  주연: 이안 하트, 로자나 파스트로, 이시아 볼레인
1995년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작

파시즘에 대항한 스페인 내전을 객관적으로 그렸다. 실업 수당을 받고 배고픈 시위를 하는 영국에서의 생활에 염증이 난 데이빗은 약혼녀와 헤어진 후, 스페인에서 시민군과 합류해 전쟁에 참가한다. 하지만, 좌파 내부의 이념적 갈등으로 분열이 생기게 된다.

10. 내 이름은 조 My Name Is Joe
1998, 105min, 35mm, color  /  주연:  피터 뮬란, 루이스 굿올
1998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실업과 알코올, 마약문제로 얼룩진 사회를 희망적으로 고민한 작품.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조는 약체 축구팀을 맡아 꾸려 나간다. 그는 마약 중독에 빠진 리암과 시빈의 집에서 보건원 사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11. 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
2002, 106min, 35mm, color  /  주연: 마틴 콤스틴, 미셀 콜터
2002년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질풍노도와 같은 사춘기를 그린 켄 로치의 걸작. 리암은 마약중독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어머니와 새집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꿈꾸고 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새 아파트를 장만하여 어머니를 만나게 되지만, 그에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12. 다정한 입맞춤 Ae fond Kiss  
2004, 104min, 35mm, color  /  주연: 아타 야쿠브, 에바 버시슬, 샤바나 박쉬
2004년 베를린영화제 Eucmenical상 수상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켄 로치 버전으로 인종과 종교문제를 다뤘다.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파키스탄 2세 카심의 부모는 사촌자스민과 결혼 시키려 한다. 하지만, 카심은 카톨릭 신자이자 백인인 르와진과 사랑에 빠지고 둘의 관계가 알려지자 큰 파장이 일어나게 된다.

13. 티켓 Tickets  
2005, 109min, 35mm, color  /  주연: 필리포 트로야노, 마틴 콤스턴, 윌리엄 루에인

켄 로치와 두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작품으로 여러 사회문제를 유쾌하게 엮었다. 로마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기차를 탄 소년 셋은 알바니아 소년을 만나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자신들의 표가 사라진 것을 알고 알바니아 소년을 의심한다.

14.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 124min, 35mm, color  /  주연: 킬리언 머피, 패드레익 딜레이니, 올라 피츠제럴드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1920년대 아일랜드 분쟁의 비극을 다룬 작품. 아일랜드인에 대한 영국 군대의 횡포를 목격한 데미언 형제는 친구들과 함께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게 되고 자치권을 둘러싼 분열로 데미언 형제는 동지에서 원수로 돌아서게 된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수영만 요트경기장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네 파크'(자동차야외극장)와는 다른 곳이니 혼동하지 마세요.



대중교통 이용시 '한독경정여고'에서 하차하셔야 합니다
하차 후 하단 옆을 지나 대우마리나APT와 경동APT 사이 도로로 약 600M 가량 걸어 내려오면 요트경기장 중문이 있습니다. 중문으로 입장 후 좌측으로 약 50m정도 내려오면 건물 상단에 'PIFF' 로고가 세겨진 건물입니다.

일반버스 이용시 '한독경정여고'에서 하차 .
5, 31, 31-1, 36, 38, 39, 40, 63, 63-1, 100, 100-1
115, 140, 141, 142, 239, 240, 200, 200-1, 240, 302번외 다수
(해운대역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은 모두 한정경정여고(舊 한독여실)에서 하차함)
좌석버스(302, 307번) 이용시 '경남마리나APT'에서 하차

지하철 이용시 '2호선 동백역'에서 하차



약도



위치/ 연락처
주소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1393-1 시네마테크 부산(612-021)
전화 : 051-742-5377
팩스 : 051-742-5378
E-mail : cinema@pif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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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금속산별노조, 이주노동자 품어야 한다&quot;

"금속산별노조, 이주노동자 품어야 한다"
[기자의 눈] 잇따른 이주노동자 죽음과 산별노조의 역할
 
 
 

강원도 문막에 있는 깁스코리아라는 회사에 계약직으로 일하는 12명의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월 평균 15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사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20명의 이주노동자들은 금속산업최저임금인 80∼90만원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금속노조 깁스코리아지회 허병국 사무장은 "하청업체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폭행과 폭언이 여전한데 깁스에 와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임금도 두 배나 받고 폭언폭행이 전혀 없이 한국 노동자와 어울려 일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서 이 회사 들어갈 수 없냐는 문의전화가 많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이 보호하는 이주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처지는 하늘과 땅이다.

한국에서 가장 '강성노조'라 일컬어지는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최근 2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건은 금속노조 내부에도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비참하고 참혹한 죽음 앞에 금속노조는 무엇을 했는지 자성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지난 달 25일 평택의 이젠텍 공장에서 프레스에 압착해 숨진 중국유학생의 산재사망사고는 사건이 발생한 지 5일이 지난 30일 금속노조 경기지부에 알려졌고, 금속노조 본조로는 2주후인 지난 6일 문서로 보고됐다. 이젠텍 회사와 하청업체는 30일 유족을 만나 신속히 합의했고 금속노조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금속노조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숫자도 파악 안 돼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간부들은 '작업중지권'을 발동해 기계를 멈추고 상급단체에 곧바로 보고한다. 이어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책임자처벌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고 회사와 합의가 끝난 후 공장을 정상 가동한다. 세상에서 사람 목숨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노총에서 가장 큰 조직인 금속산업연맹에는 250여개 회사 16만명의 노동자가 가입해있다. 이 회사에 상당수의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인원이 얼마인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해있는 이주노동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지난 5년간 산별노조운동을 해 온 금속노조(위원장 김창한)은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금속노조 노사는 지난 7월 26일 19차 중앙교섭에서 금속산업최저임금 월 832,690원(시급 3,570원)을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까지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주노동자 보호 위한 노력은 미약

이에 따라 금속노조 중앙교섭에 참가하는 100여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은 9월 1일부터 월 83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 2005년 중앙교섭에서 사용자들이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빼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나 금속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지난해에는 같은 공장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내부 규칙을 개정하기도 했고, 대전충북지부의 한 사업장에서는 산업연수생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소홀했고, 실질적인 사업들이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현재 40만명이 넘는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한국 산업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특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이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권리를 찾아나가지 않는다면 노예와 같은 삶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04년 강제추방 반대운동을 해왔던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할 때 상급단체를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당시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문제도 풀지 못해 허덕이고 있고, 이주노동자의 투쟁을 책임질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금속노조 가입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공장노조의 산별전환으로 금속노조가 10만명 이상으로 늘어나면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했다.

산별노조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

오는 23일 드디어 14만 금속산별노조가 출범한다. 현재 14만 금속노조의 조직형식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한 공장의 모든 노동자는 같은 조직에 가입해 같이 싸워야 한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산별노조는 대공장과 중소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모두 같은 조합원이고 하나의 노동자다.

금속노조 이상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은 "지난 해 스웨덴에 갔을 때 스웨덴에서는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그 어떤 차별도 받지 않았고, 도리어 더 많은 배려를 하고 있었다"며 "이주노동자들을 금속산별노조의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같이 싸우는 것이 진정한 노동자 정신"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우리 모두에 대한 부당한 대우다'(injury to one, injury to all) 남아공 노총인 코사투(COSATU)의 구호다.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금속산별노조가 품고 함께 싸우는 것이 바로 산별노조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다.

 
     관련기사
· "내 죽음을 한국인들에게 알려 달라"
 
2006년 11월 08일 (수) 11:00:35 박점규 현장기자 bada99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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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quot;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 위기에 서다&quot;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 위기에 서다"
  [강연] 최장집 "권력 갖고도 '조중동 탓'은 알리바이일 뿐"
 
  2006-10-02 오전 11:38:13
 
   
 
 
  "냉전 반공 군부세대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국 사회에 지울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민주화 세대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권력화된 386' 혹은 '운동권 정치인'에 대한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비판은 통렬했다. "정부라는 권력을 갖고서도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 아쉬움"때문이라고 했다. "민주화 세력이 스스로 개혁을 이뤄낼 수 있었던 기회를 성과없이 소진해 버린 데 대한" 원망어린 질타이기도 했다.
  
  최 교수는 '운동에 의한 민주화'가 위기를 맞은 원인으로 "운동 중심에서 투쟁 해 왔던 이들이 삶의 현실에는 무감각한 면을 보인 것"을 꼽았다. 정치의 중심이 됐으나 민주주의를 통해 정책을 만들고 '인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능력이 부족함을 보였다는 얘기다.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면서도 기존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정책을 맡겨 두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두고서는 "이럴 거면 집권은 왜 했느냐"는 뼈아픈 질책도 나왔다.
  
  '정치인의 민주화'와 '인민의 민주화'가 괴리된 현실에 대해서는 "'87년 체제'를 추동해낸 운동세력이 정당으로 전화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중층적 문제점들의 주요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짚었다. 기존 정당에 투신한 운동 엘리트들은 자신의 존재기반을 배신하고 기존의 틀에 너무 쉽게 녹아든 '변형주의'의 늪에 빠졌다는 진단이었다.
  
  현 집권세력이 이러한 자기성찰 없이 위기와 실패의 원인을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탓에서 찾는 데 대해서는 "'알리바이 이론'일 뿐"이라는 반론이 돌아왔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나 '보수의 재집권은 시민사회의 괴멸을 가져온다'는 두려움의 담론을 동원하는 것은 실질적 개혁을 방해하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며 여권 일각의 '민주 대 반민주' 필승구도의 부활 시도도 강력히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같은 위기를 타개할 경로로 '정당'을 강조했다. '인민의 문제', '삶의 현실의 문제'에 대한 비전을 가진 세력들이 조직화돼 담론을 만들고 이에 동의하는 투표자들의 표를 얻어 집권하는 민주주의 프로세스를 정상화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대담에 나선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답답한 정치권 밖의 출구, 혹은 정치권 상위의 해법으로 '시민운동'을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최 교수의 통렬한 비판을 두고도 조 교수는 기득권의 반발 등 현실적 제약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을 펼쳤다.
  
  프레시안 창간 5주년을 맞아 준비한 연석 기획 강연의 두 번째 순서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지난 29일 서울 서대문 충정로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에서 2시간 30분 여에 걸쳐 진행됐다. 최 교수와 조 교수의 대담 이후에는 추첨을 통해 참석한 30여 명의 청중들이 이 열띤 토론에 가세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강연과 토론의 전문이다. <편집자>
  
  
  
  
▲ 최장집 교수.ⓒ프레시안

  프레시안 창립 5주년을 축하하며,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저를 초청해 준 데 대해 박인규 대표와 프레시안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평소 프레시안에 대해 여타 인터넷 언론매체와 달리 속보경쟁보다는 한국사회 중요 문제를 중심으로 풍부한 정보와 심도 깊은 분석을 제공해 준 점을 높이 평가해 왔다.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더욱 발전해 한국 언론에 하나의 전범이 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강의 준비와 학회 발표 등 아주 바쁜 시점에서 박 대표가 부탁을 해 와 이 자리에 서게 됐다. 여유를 두고 좀 깊이 생각해서 좋은 얘기를 해야 할 텐데 별로 그렇지 못하면 어떡 하나 걱정이 앞선다. 평소 생각해 오던 것을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조희연 교수가 논평자로서 좋은 논평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대답을 하면서 또 미진한 내용을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체로 세 가지 항목에서 얘기를 해 보려 한다. 첫째 운동에 의해 이뤄진 민주화를 성찰해 보고, 두 번째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유산을, 세 번째는 현재 민주주의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 한다. 오늘 말할 주제가 꼭 노무현 정부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노 정부 역시 87년 민주화 이후 경험하고 있는 최종 단계의 정부이기 때문에 결국 그 얘기도 하게 될 것 같다.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다시 성찰해 본다.
  
  오늘의 시점에서 과거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돌아 봐야 현재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한국 민주주의가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는가 하는 발생의 기원과 조건을 먼저 살펴보려 한다. 우리나라 민주화를 생각하면 가장 인상적으로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민중적 민주화 운동이 폭발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난주에 독일 베를린에 가서 전 세계의 민주화를 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정리하면서도 1980년대 우리가 경험했던 엄청난 운동의 폭발이 혁명에 가까운 변화였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또 다른 특징은 그렇게 어마어마한 운동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사그라졌다는 것이다. 그 큰 운동이 소멸되면서 무엇을 남기고 이루었나 하는 문제를 스스로 제기해 볼 때 민주화가 과연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목표했던 일들을 다 이뤄냈는가 생각해 보면 별로 그렇지 않다는 답을 얻게 된다. 거대한 운동이 빨리,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또 빨리 소멸하면서 그 이후에 남긴 것이 별로 없다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해 온 긴 역사적 과정을 볼 때 자율적인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해 식민통치 경험을 갖게 됐고 해방 후 독립된 자주적 국민국가를 이뤄내는 데에도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이 한반도에 밀어닥치면서 분단이 됐고 이 과정에서 냉전 반공주의를 경험하고 민주화와 산업화가 이뤄졌는데도 이런 상황들이 누적적으로 남겨놓은 문제점 위에서 민주화가 이뤄져 사회 발전 과정에서 잉태된 문제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구질서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고 민주화 운동은 이에 대한 반체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됐다.
  
  87년 체제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나타난 민주주의 체제의 복합적 특성을 약칭해서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체제는 민주화세력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해 군부와 권위주의를 붕괴시킴으로써 만들어졌지만 한국의 민주화가 꼭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세력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원래 있던 기존의 기득세력과 기존 한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제도적 틀, 그리고 이것이 부여하는 제약들의 구조가 결합하면서 87년 체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에 87년 체제를 어떤 고정되고 경직된 틀이 아니라 유동적 균형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으로 제약이 가해지지만 운동의 힘이 함께 가기 때문에 향후 사태의 전개에 따라서는 이것이 현상 유지로 복원되는 방향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의 힘이 기존의 제약을 극복하고 변화를 가져온다면 정치적 민주화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가져올 수도 있었던 가능성을 안았던 체제인 것이다.
  
  이것은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정치체제의 변화지만 여러 변화를 일괄할 수밖에 없는 커다란 사회 변화라 정당체제의 변화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생산 체제는 어떻게 변화했나, 또 노사관계는 어떠했나 등의 수준으로 나눠서 중요한 수준에 맞춰서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일단 민주화가 된 이후는 격동과 변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른 후 먼지가 좀 걷힌 후에 나타난 결과가 무엇인지 보이는 것들이 있다.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현상유지의 복원이라는 것이 오히려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사태다. 이는 제도권 밖 운동 세력들이 집단적으로 조직되지 않고 분자적으로 흡수 통합되는 과정을 통해 나타난 현상이다.
  
  물론 87년 체제가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사전에 결정된 것은 전혀 아니다. 사이사이에 변화의 계기가 여러 번 있었다. 87년이 대표적이지만 97년 11월 IMF 위기 등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상복귀로 가는 경향에 있어 커다란 변화의 계기가 되지 못했다는 것은 돌아보면 알게 된다.
  
  이런 사태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해와 위기의 진원이 됐고 정당체제에 있어서는 지역 정당구조가 출현해 그 이후 민주주의 발전을 어렵게 한 장애 요인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현재 노무현 정부를 볼 때 집권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가장 특징적인 현상으로 생각된다. 앞선 정부에서는 그리 큰 괴리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노 정부에서는 심리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정치학의 한 개념으로 '변형주의(trasformismo)'란 말을 썼는데 헤게모니적인 기본적 흐름이랄까, 지배적인 가치관의 경향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본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력의 정책적 특징은 구 권위주의로부터 연속성을 갖고 내려온다는 것이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정착됐고 또 FTA를 이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현상은 민주화 운동이 전개될 때의 열망과 목표했던 경제 체제와는 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정치인의 민주주의와 인민의 민주주의 간의 괴리가 큰 것 아닌가. 원래의 민주주의는 정치인들만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는데 갈수록 인민의 민주주의는 성격이 약해지는 특징을 볼 수 있다.
  
  
▲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왼쪽)와 최장집 교수(오른쪽)ⓒ프레시안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그 유산

  
  한국의 민주화는 뭐니 뭐니 해도 운동에 의해 이뤄진 민주화다. 그렇다면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추동했던 중심적 민주화 운동 세력들이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경향이나 태도는 어떤 것인가.
  
  모든 것과 아무 것도 아닌 것 사이, 양극적인 것을 동시에 포괄하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운동을 할 때 운동의 중심에 섰던 집단의 특징은 해방된 공동체를 추구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도덕적 열정과 혁명적 이상주의, 낭만주의, 공동체적 집단주의 등에 충만해 있어 이를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가치로 이해하지 않았나 싶다. 이는 집단주의적 이념과 민주주의가 결합함으로써 나타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운동이 수반하는 경향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총체적 해결에 대한 충동,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집단주의적 정향, 정치에 대한 도덕적 접근, 운동이 목표로 했던 대상에 대한 적대 의식, 공동체 전체의 대의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특수이익이나 부분이익을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것 등이다.
  
  이런 태도와 정조가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의 공간을 여는 것'이란 인식을 저해하고 있다. 다원주의, 부분 이익들이 서로 갈등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운동에 의한 민주주의는 참여하고 실천하고 갈등과 타협에서 나오는 정치적 경향에 대해 관심이 적은 편이었다.
  
  또한 운동에 의한 민주주의는 반 정치적인 경향을 갖게 됐다. 정치를 도덕적으로 접근하려는 특성이 강화되고 이것이 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는 동시에 시민운동의 효능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는 경향을 낳았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적 이념을 생각할 때 자유주의의 근본이념은 정치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운동권의 태도나 정향 역시 정치를 인정하지 않는 정조를 수반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정치의 부재, 축소 등으로 인해 관료주의, 엘리트주의가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는 정당과 정당체제의 메커니즘이 중요한데 권위주의에 대한 거울 이미지로만 민주주의가 발전하자 '민주와 반민주' 혹은 '개혁 대 보수' 등 단순 구분 주변을 맴돌게 되기도 했다.
  
  시민운동의 흥기와 정당의 쇠퇴가 맞물리는 경향도 있다. 정당 갖고 되겠느냐 하는 생각은 정당을 부패하고 타락한 집단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발생했다.
  
  운동 주체였던 민주화 세대, 특히 현 정부와 의회에 있는 386 정치인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운동의 중심에서 투쟁했던 이들이라 운동에 대한 열정이 강한 데 비해 삶의 현실에는 무감각한 면을 보인다. 이들이 정치의 중심으로 나아간 후 정부 운용이나 민주주의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 현실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능력이 부족함을 보였다.
  
  운동권 세대란 기성세력에 편입되는 연령적 단위로도 정의될 수도 있다. 세대라는 말 자체가 '중산층적 현상'이다. 운동의 중심이 된 대학생들은 이미 좋은 대학을 다니고 엘리트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쉽게 엘리트 사회에 편입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권력지향이 강했던 점도 더 빨리 기성질서에 편입되고 엘리트화하는 경향을 부추겼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부 안에 들어가 있는 386 운동 세력들이 민주화 운동 당시 기대됐던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한 것도 기성 질서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중적 운동이 빨리 소멸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던 중심 세력이 오히려 헤게모니에 아주 유능하게 편입된 것이다.
  
  기술관료적 경영주의와 정서적 급진주의가 기묘하게 결합한 예는 노무현 정부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결합되고 이것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쉽게 수용되는 모습을 본다. 386 세대를 통칭하는 데에는 어폐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386 세대는 권력화 된 386이다.
  
  민주화 운동 세력이 누구보다 투쟁을 많이 하고 희생도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민주화를 통해 이뤄낸 흔적이 남지 않았다는 것은 설명돼야 할 부분이다. 산업화 주도 세대, 냉전 반공 군부세대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국 사회에 지울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민주화 세대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 ⓒ프레시안

  민주주의가 대면하고 있는 오늘의 문제

  
  선거가 다가오면서 현상유지를 보장하는 정치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쪽에서 '보수의 재집권'을 담론으로 얘기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보수의 재집권'이란 담론은 권위주의 회귀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하는 담론이다. 민주개혁세력이 대동단결해서 얻은 민주화를 강화된 보수세력이 되돌려 놓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반민주 구도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 실패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거시 역사적 수준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집권 엘리트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만이 있어 왔다.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요구에 대응해서 엘리트가 부분적, 보수적 개혁을 수행했을 뿐 민주화 운동세력이 직접 개혁을 주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음에도 내용적으로 이런 시도 없이 시간을 다 흘려보낸 셈이 됐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온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정치적인 것의 공간을 열고 정치적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갈등하는 부분의 이익들을 잘 조직해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경험과 삶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민중들의 삶의 문제를 정책으로 조직하고 정당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앞장서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비전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대선이 다가오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을 모으고 대충 이미지나 인상을 보고 투표하게 만드는데 이런 일을 되풀이해서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선거 이전에 전망을 갖고 있는 중심 세력들이 정치세력화하고 한국 사회를 어떤 사회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정책 방향을 갖고 선거에 나와 경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제정책도 전환의 계기가 있어야 한다. 민주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정책결정은 관료나 전문가들이 다 한다. 그들이 국내 문제를 스스로 찾아 정책을 만들고 해결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거의 외부로부터 주어지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까지도 거의 외부에서 주어지니 관료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합리적인 정책이냐 여부를 성찰하기보다는 외부의 대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결정해 온 것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됐다. 그래서 경제정책이 삶의 현실에서 나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하고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경제정책은 성장 일변도의 정책이다. 권위주의 정부에서 산업화를 이뤄냈고 현재 민주정부에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놨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은 기조가 '성장 일변도'다. 이에 대한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 무엇을 향해 무조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줄여가면서 민주주의를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한 비전을 갖고 정당이 만들어지고 투표로 선택받는 과정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끝으로 첨언한다면 제도의 문제가 아주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레임덕이 빨리 오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간의 사이클이 맞지 않고 지방선거가 중간선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등이 제도적 결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서 제도 문제라는 것이 당장 제일 중요한 아젠다도 아니려니와 이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인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불어 정치나 정당의 역할이 과소평가 되는 것과 병행해서 대의 민주주의가 무시되고 직접 민주주의적 방법을 선호하는 경향이 일고 있다. 예를 들면 국민 소환제 같은 것인데. 대중적인 참여를 넓혀서 직접적인 대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를 선호하고 이를 민주주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나 싶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대선에 오픈 프라이머리 시스템을 도입해 후보를 미국식으로 선출하겠다고 얘기하는데 이런 것이 운동과 연결되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선거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가 만족스럽지 못하니 직접 후보를 올리고, 또 마음에 안 들면 끌어내리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다른 나라의 경험이나 이론으로 미뤄볼 때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적 민주주의를 보충해 나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대의적 민주주의를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많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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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제도적 장애를 차치하고 정부 탓만 할 수 있나"

  
  조희연: 최 선생을 오랫동안 학문적 선배로 모셨고 70~80% 정도는 생각이 비슷하다. 우리 둘 사이에 많은 쟁점들이 있지는 않은데 요즘 선생께서 말씀을 좀 많이 하시니까 사석에서라도 만나 최근 하시는 이야기들의 의미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자리에서 뵙게 됐다.
  
  근본적으로 지금 우리는 민주정부의 위기,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는 민주진보세력의 위기라는 새로운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정확히 해석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위기는 해석의 위기이기도 하다. 무엇이 위기인가를 정확히 진단하지 않은 해석의 위기란 말이다. 우리가 직면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둘 생각이 거의 비슷한데 최근에 최 선생이 예각적으로 말씀하시니까, 그 예각적인 부분 말고 또 다른 지점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큰 틀에서 보면 독재시기가 있었고 민주화 시기가 있었고 포스트 민주화시기가 있는데 지금은 포스트 시대로 가는 전환적 이행기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포스트 민주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위기가 무엇인지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 참여정부, 386, 그리고 사회운동이 위기의 진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노무현 정부 문제가 핵심인 것 같다. 물어보고 싶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적이 아니어서 위기인가? 노 정부가 좀 더 개혁적이면 위기는 없어지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위기의 원인은 훨씬 더 복합적이다.
  
  386의 문제점은 넓은 의미로 볼 때 우리 자신의 문제점이다. 책임을 같이 싸안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담지하고 있는 진보적 인식과 실천의 한계 같은 것은 우리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지적하고 싶다.
  
  80년대가 그들 자신에게 강요했던 정치적 개혁주의에서 사회, 경제적 개혁주의로 혁신하지 못한 것이 386의 문제점이다. 그런데 그들이 90년대 이후 투명성, 정당개혁, 정치개혁이라고 하는 일련의 정치개혁에만 집중한 것은 정치적 개혁주의가 시대적으로 절박한 과제여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60~70년대에 반독재 투쟁을 했지만 그게 해결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핵심적 과제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그들에게도 비슷한 지점이 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져봤다.
  
  나도 참여정부, 386을 비판하지만 선생과는 톤이라고 할까 문제의 지점이 달리 접근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 전제에서 볼 때, 민주진보진영이나 참여정부의 위기가 노 정권의 개혁성 부재 외에 다른 어떤 원인들이 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 '민주화 세력 집권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이라는 선생의 진단에 대해서는 백낙청 선생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백 선생은 민주화 세력의 집권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이라는 진단은 보수 세력의 그것과 동일한 것 아닌가. 진보진영은 좀 다른 진단을 해야 하는데 동일한 진단을 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했다. 백 선생은 분단체제가 부과하는 제약, 분단체제에 물어야 하는 책임을 정부에 다 돌리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쨌든 개혁성 부재 외에 내적, 외적으로 현 정부의 위기 요인을 말해주시면 좋겠다.
  

  "조중동 문제도 결국은 민주주의 오류의 결과물"
  
  
조희연 교수는 개인적으로 나와 인연이 많은 분이다.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 처음 만난 소장학자기도 하고 그 이후에 내가 자꾸 비판적인 글들을 쓰고 운동권 교수 비슷하게 됐는데 조 교수 책임이 크다.(웃음)
  
  현재의 집권 세력은 대체로 기득권세력, 기존의 보수적 지배질서에 의한 제약 조건을 많이 강조한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나 특징 혹은 강조점 같은 것은 그런 환경적 제약요소보다 민주주의를 실제로 움직여 나가는 행위자들-개인이든 집단이든 세력이든 정당이든-그 주체들이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다루는 방식이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장 내에서 실행하는 능력과 범위에 초점을 맞춘다.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행위자 중심의 관점과 비슷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격은, 지금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시대나 혹은 민주화 과정에서 권위주의 체제를 공격하던 투쟁의 전환기 때와는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이고 정치의 틀이라서 이제 다시 지금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인식이 대단히 중요하다.
  
  일단 바깥에 민주주의를 소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보수적인 어떤 경쟁세력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 세력을 너무 의식하게 된다. 그 세력에 책임을 묻기 이전에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어떻게 결집하고 한국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의 비전을 어떻게 세워낼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운동에 의한 민주주의의 지금까지의 궤적을 생각하면 이런 점이 너무 허약하다는 것이 아쉽다. 가능성과 힘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데 그 힘들이 너무나 무력하게 소모되고 없어져 버리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 ⓒ프레시안

  대중들이 실제로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고 투쟁을 많이 하고 열심히 투표하고 참여한다고 해도 중요한 문제들은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결정한다는 것이 민주주의다. 중요한 문제를 그 사람들(정치인)이 잘 다룬다고 가정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설사 해결이 안된다 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성장하는 토양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서 오히려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훼손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예를 들면 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을 할 때, 선거법이나 정당법 같은 정치개혁의 내용들을 제도화 시킬 때 실제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 운동권 출신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대중과 민중이 정치참여를 하고 그 의사가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중심의 구조를 만들어내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선거법에서 지구당 철폐나 부패 방지를 굉장히 강조한 결과로 후보자와 투표자 간의 접촉을 차단하고 그 기회를 좁힌다든가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제를 없애려는 시도들. 이런 문제들은 민주주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연결된다. 좋은 정당으로 좋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함에도 왜 힘든 일들을 자초하는지 안타깝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을 따져보는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분단 체제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서 제대로 안 된다'는 말을 나는 수용하기 힘들다. 우리는 분단체제지만 다른 나라도 다 나름의 제약들이 있다. 모두 일국(一國) 차원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분단체제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지금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만들 수 있었던 성과와 현실적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 사이의 거리는 아주 멀다.
  
  현재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점에 대해 멀리서 요인을 불러들여 설명한다고 하는 것은 좀…. 이런 것을 알리바이 이론이라고 한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다른 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고 해야 할 것을 회피하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 아니냐?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안 한다'고 비판하면 '다 조중동 때문이다'고 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의 책임을 모두 보수언론과 의회 내외의 보수세력 탓으로 돌리는 식이면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조중동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물론 조중동 자체의 원인적 요소도 있지만 민주 정부가 실행하는 민주주의가 잘 안 된 것의 결과물이다.
  
  나는 조중동이 완전히 독립적인 변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권력이 제대로 잘 작동된다면 조중동의 비합리적 논조가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축소될 수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잘 되면, 민주주의를 가이드 하는 정부의 정책이 좋으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의 중요한 고리인, 거시적 정치 수준에서 경쟁의 건강한 틀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이것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사회 미시구조의 갈등이 풀려나가는 틀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중요한 고리가 풀린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민주주의의 문제, 정치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위계적이고 계통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게 느껴질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보이고 있는 문제점을 보는 방법론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이 쪽(행위자 중심의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그들이 만들어낸 부정적 결과를 강조하는 입장에 있다.
  
"과연 정당 강화가 민주화 위기의 해법인가"
  
  조희연: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 출신의 통치 집단이 노출하고 있는 무능력이 있다. 그 부분은 나도 충분히 인정을 하고 있고 그들의 무능력도 여러 가지 지점이 있는데 그것하고 최 선생께서 발제에서 말씀하신 점, 정치에 있어 운동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좀 다른 차원일 수 있다고 본다.
  
  최 선생은 민주주의가 공고화 되는 과정에서 정당정치가 사회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는 쪽으로 민주화가 진행되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런데 그것은 공고화의 한 측면일 수 있고 제도정치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제도권 정치 외부의 사회운동의 역할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력하게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운동이 정당화(政黨化)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당을 강화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보자. 그런데 사실 4.15 총선이 남긴 것은 열린우리당이 과반 이상, 거기다 민주노동당까지 합치면 우리 의회는 진보다수당 질서다. 그런데도 정당정치 강화에서 해결책을 찾는 방식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과연 100% 해결할 수 있나? 중도개혁 반독재 여당과 노동당이 다수가 됐는데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갈등으로 질척거리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다른 어떤 문제점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지금은 민주정부의 무능력을 계기로 보수 세력과 보수 세력의 중요 부분인 보수 언론이 의회와 행정부를 포위한 형국이란 생각이 든다. 최 선생은 정치학자지만 난 사회학자니까 사회를 강조해야 한다.(웃음)
  
  예컨대 부동산 정책, 8.31 정책 등이 무력화 되는 것을 보면 정치권 밖의 사회가 오히려 더 급진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사회운동을 강조할 때 제도정치의 확장된 역할을 부정하면 안 되고 제도정치를 강조할 때는 사회운동을 더 강조해야 한다. 아까 발제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의한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셨지만 나는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도 직접 민주주의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정치엘리트들에 의한 제도의 정치를 창출하는 점이 부족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긴 한데…하여튼 너무 한쪽(제도 정치)만 강조하면 또 다른 쪽의 문제점이 생기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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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 갖고도 개혁 못하면서 조중동 탓은 안 될 말"
  
  조 교수는 사회학 전공이고 NGO대학 학장이니까 당연히 사회문제를 강조해야지, 그런데 난 정당 이론이 전공이니까 이걸(제도, 정당정치) 강조하는 것 같다. (웃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일반론, 보편론을 못 펴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사회의 진보, 합리적 공론의 장이 확대와 대안적 담론 창출을 위해 시민운동의 중요성이나 일반 민중들의 정치참여 확대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가 보수적 정치를 만들 수밖에 없는 나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부정적 측면이 없지 않은데 나는 한국사회가 매우 다이내믹하고 진보적인 성격을 가진 사회라고 생각한다. 미국 같은 나라와 비교해보면 더 그렇다. 따라서 '뭐가 잘 안 되고 있다'는 지금의 현실은 바로 정치가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사회의 힘을 정치적으로 잘 제도화 하면 많은 변화의 모습을 볼 것이라고 기대한다. '있을 건 다 있다. 보수적 정당도 있고 민노당도 있고 그래도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말씀도 옳긴 하다.
  
  하지만 기존의 정당이 형식적인 틀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정당들이 가지고 있는 틀과 구조 자체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정치현장에서 대변할 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과 한국을 대비시켜 볼 때, 클린턴이 의료개혁 같은 것을 관철시키진 못했지만 근년의 미국에선 상대적으로 다이내믹하고 진보적인 성향의 대통령인데 클린턴은 미국 사회가 보수적이니까 캠페인은 보수적으로 하고 당선 이후 통치는 더 진보적으로 했다는 말이 있다. 반면 한국은(노무현 대통령은) 캠페인은 진보적으로 하고 통치는 보수적으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정당의 정치인들을 보면 대통령이고 의원이고 당선되면 변한다. 앞서 발제에서 언급한 변형주의는 정치인들이 제도권에 들어가면 기존에 존재하던 틀에 맞추기 위해 행동이 변하는 이탈리아 정치의 특징을 표현한 말인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많은 투쟁을 했던 정치인들이 있고 몇 차례에 걸쳐 민주정부가 수립됐는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형식적으로 가질 것은 다 가졌다. 민주정부도 만들어놨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내가 특히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것은, 이 정부의 외부적 상황은 이전 정부보다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는 여소야대와 씨름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개혁을)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그런 제약이 있나? 왜 4대 개혁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나? 탄핵 파동 이후 우리당이 다수가 됐다. 민주정부로선 최초로 행정부도 장악하고 의회도 장악했다. 그런데 왜 개혁을 못하느냐는 말이다.
  
  한번은 프랑스 외교관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이 왜 4대 개혁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느냐고 묻던데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더라. 아주 복잡하게 조중동이 어쩌고 보수적 여론이 어쩌고 설명해야 하는데 민주화가 됐다면 의회의 다수 결정으로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 것이다. 의회 다수파가 결합해 정책을 추진해도 법안을 통과 못 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외부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개혁을 못하느냐, 이것은 행위 주체가 가진 문제가 가장 큰 것이지 조중동이나 사회로 문제를 돌릴 것이 아니다. 물론 완전히 외적 요인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는데도 활용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의도적인 것도 많다. 의회에서 뭘 좀 하려는데 대통령이 한 마디 툭하고 던지면 그나마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제안을 하고 실행을 해야 하는 사람이 중간에 무슨 맘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엉뚱한 소리나 하고…. 국가보안법 문제가 그런 것이 아니냐(편집자 주: 2005년 대통령이 TV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은 '박물관에 보내야 할 낡은 칼'이라고 말하자 우리당은 국보법 폐지에 매달렸지만 그해 겨울 다시 대통령이 '급하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흐지부지 됐다.)
  
  (현 집권세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많은데 실천을 하지 않는, 부작위에 대한 아쉬움이 참 많다.
  
  "87년 운동세력 정당 조직화 못해 민주주의 지지부진"
  
조희연: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보수 양당 체제를 해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는데 최 선생이 생각하는 보수 정당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아예 민주노동당같은 진보 정당이 중심이 돼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열린우리당의 발전을 요구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 ⓒ프레시안

  정당 체제가 변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당의 민주화는 나 역시 굉장히 강조하는 바이지만 외부에서 굉장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정당은 스스로 변하기 어렵다. 과거 경험으로는 민주화 운동이나 IMF 사태 등이 일어나 유권자들의 요구나 행태가 바뀌었으나 이런 외적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당 체제는 그다지 변화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정당 체제는 87년 이후 '지역당' 구조를 유지해 왔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자면 해방 이후 50년 선거부터 냉전적 또 보수적인 협애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굳어졌고 이것이 정당으로 제도화돼 계속돼 왔다. 요즘 민노당이 안 되는 것도 내부적인 조건이 있겠지만 이미 보수 양당 체제가 유권자들의 선호를 장악하고 있어 구조가 허약한 정당이 이 틀을 바꾸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외부적 충격이나 내부적인 발전을 거쳐 민노당 같은 군소 정당도 커질 수 있으나 지금 시점에서 미래를 뭐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정치학의 입장에서는 전체의 틀과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현실에서 민노당이 좀 더 강화돼서 이 틀을 상당한 정도로 변화시키는 게 가능하고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열린우리당이 중앙에서부터 중도 좌파, 개혁 진영 쪽으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 공간은 늘 열려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다만, 우리 정당체제의 문제는 보편적으로 중간에서 왼쪽으로 모두 비어 있는데 이 넓은 공간을 왜 활용하지 않고 조직하려 하지 않는가는 의문이다. 이것은 정치인의 책임과도 관련된 문제다.
  
  현재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발전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87년 이후 운동세력이 정당 조직으로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당체제가 공간적으로 많은 사회적 이슈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공략하고 개발하고 조직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열려 있다. 여기에 왜 손을 안 대는지에 대해 의문스럽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정치 상품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
  
조희연: 사회운동의 역량이 정당정치의 역량으로 가지 못했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하시는데, 시민사회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또 시민사회 내 진보와 보수의 역관계 지형 속에서 다양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한국의 사회 운동이 너무 충실하게 정당정치화 돼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도 정치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사회는 제도 정당의 상위적 공간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못한 것은 보수 세력에 폐지를 강제할 만큼 시민사회가 비판적으로 동원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운동 세력이 정당제도로 들어가지 못한 것만을 강조할 수 있겠나?

  동전의 양면 같은 얘기다. 반대의 얘기도 가능하다.
  
  조 교수는 사회적으로 이런 공간을 개발하고 정치적으로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을 얘기하는데 그 방법으로 정당체제가 발전할 수도 있다. 사회적 균열이 정당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면 이는 수요자 중심의 이론이고, 정당의 조직이 투표자들에게 선택 여지를 준다고 하면 이는 공급자 중심 이론이다.
  
  우리나라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상품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나쁜 상품을 공급하는 게 문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정당체제가 갖고 있는 한계다.
  
  조 교수는 시민사회의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건강한 민주적 가치와 시민 의식에 의해 계도되고 움직여지는 시민사회를 가정하는데 이는 규범적으로 상정하는 면도 많지 않나 싶다. 실제로 우리나라 시민사회가 그렇게 강력하지 못하다. 조중동이 가장 영향력을 많이 갖는 영역이 시민사회다. 시민사회가 합리적 담론의 장을 만들 수 없도록 파편화된 것도 보수 입김이 가장 많이 작용해 생긴 현상 아닌가.
  
  "개혁입법의 좌절, 엉거주춤하게 하니 실패하는 것"
  
조희연: 탄핵국면에서 궐기하고 활성화됐던 시민사회가 보수 세력들에게 포위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질문이라 생각한다. 시민사회는 헤게모니 투쟁의 공간인데 민주화 이후 시대의 한국 진보세력이 시민사회를 진보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비전과 담론을 상실했던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은 인정하더라도 정당정치를 강조하는 최 선생님께는 다시 사립학교법은 국회를 통과돼서 법이 됐지만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다.

  한국의 사학은 이른바 헤게모니 투쟁의 중심이 되는 보루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바꾸는 문제는 간단히 법 개정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것이 조 교수의 지적인 것 같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접근해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행될 수 없는 법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법을 할 수 있는 만큼 했더라면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았을까.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 내용이 공지돼야 한다고 보는데 정치인들이 자신들만의 폐쇄적 공간에서 개혁법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불완전하게 만들어 버린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통령이 강하게 발언하고 힘 있게 밀어 붙여도 될까 말까인데 엉거주춤하게 하고 그래서 안 되게 된 것 아니냐.
  
  실제로 법이란 그에 근거한 집행력이 작동해서 제재가 가해질 때 반응하는 것이지 법만 제정해 둔다고 해서 효력을 발휘하지는 않는 것 아니냐. 사학법도 그런 점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노 정권의 실패는 인적역량 구축하지 못한 탓"
  
조희연: 최 선생은 성장 일변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 이슈를 회피하려 한다는 것을 노무현 정부의 실책으로 꼽고 계시는데 그게 꼭 노 정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물론 나도 원칙적인 대안과 방향은 갖고 있다. 나는 사회적 완충 국가로 역할 전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정책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국 사회는 배울 데가 없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처럼 반미적 저항과 에너지 동맹으로 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 대안과 정책을 만드는 현장이 바로 대한민국이란 생각을 한다.
  
  이 세계화 시대에 박정희와는 다른 방식으로 국민들을 먹고 살게 해 줘야 한다고 본다. 골목 경제가 유지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노 정부에 돌을 던짐으로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것이 진보 진영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배울 수 없으니 창조적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
  
  전 사회적 역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가가 그 다음 문제다. 정책을 펴려고 해도 자본과 권력의 저항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어 버렸다. 부동산에 8.31을 뛰어넘는 정책을 구사할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오히려 강남사회는 계급의식이 투철한데 강북사회는 계급의식이 없는 현실이 대안 사회를 실현하는 공간을 줄이고 있는 것 아닌가. 대중들은 냉전 반공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면이 크고 조중동은 또 그런 식으로 대중을 교육하고 있다.

  
▲ ⓒ프레시안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비전을 갖고 만드는 것은 쉽다. 기존 틀의 연장선에서 합리적으로 이끌어 가면 되지 않나. 그러나 기존 질서에 대응하고 사회 현상을 바꾸는 개혁은 굉장히 강조해야 할 부분이 많다. '민주화 이후'가 실패한 것은 이런 점을 잘 조직하고 형성하지 못한 탓이다.
  
  노무현 정부에 모든 책임을 안기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정부는 엄청난 자원과 능력을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얼마나 노력을 했냐는 것이다. 정부를 만들어 줬는데 아무 것도 안하니 너무나 허무하다. 기대된 방향과 실행이 너무 다르지 않냐. 민주화 정부라고 해 놓고 경제 장관은 기존 관료에서 임명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 허무한 것이다. 그러려면 민주화는 왜 했나. 세계화 시대에도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회경제적인 정책을 펴고 보통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경제 활성화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이 선거 전에 비전으로 만들어져야 하고 선거에서 언표되고 이를 대중이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야 실제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경험을 노무현 정부를 통해 배운 셈이다.
  
  노 정권도 인적 역량을 구축했었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굉장히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 대학 교육이 상당히 보수화 돼 이 안에서 대안적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또한 어려운 일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교육 정책을 어떻게 해서 변화를 도모할 수 있었는데, 지금 교육부 장관이 누군지 달라진 게 없지 않냐.
  
  "시민사회 리더십, 이념을 실현할 여유를 제공해야"
  
  사회자: 이만 청중들의 질의를 받아보겠다.
  
청중1: 안양에서 논술학원을 하는, 안양지역 모 시민 단체의 총무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지역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민운동이 참 침체돼 있다. 희망도 별로 없다.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집권을 지향하는 민주세력이나 운동세력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념은 민주주의인데 막상 그 내부에는 민주주의가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 목표만 앞세우고 내부의 문제는 다 묻어버린다.
  
  바로 이런 문제로 현 집권세력이 내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신뢰집단 형성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내부의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개인주의나 합리주의를 완성하지 못한 탓 아닌가?
  
  청중2: 민주노동당에서 일하고 있다. 정당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회운동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민노당이 소수 정당이기 때문에 대중운동으로 특화되지 않으면 어떤 좁은 법안 발의도 다 묻혀버리는 뼈저린 경험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에 백퍼센트 동의한다.
  
  그런데 지금 시민운동의 주류인 대부분의 NGO를 보면 역동적인 시민사회 운동을 동원해 낼 수 있는 담론이 제시되더라도 현재 시스템과 구조로서는 그런 것이 담보되기 힘든 것 같다. 그 분들이 민노당도 많이 비판하지만 어떨 때 보면 일종의 로비집단 같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담론이 제시되더라고 현재 시스템과 구조로서 그런 것이 담보될 수 있겠는가. 최장집 선생이 말씀하신 정당정치의 강화, 거기에 플러스 되는 역동적 사회운동의 모습은 지금 어떤 그 무엇으로도 이뤄지기 힘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프레시안

  최장집: 두 질의를 묶어서 답하겠다. 지금 시민운동이나 민주 진영 내부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시장중심사회, 이는 개인의 이익추구를 시장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무제한적으로 풀어놓고 중심적 규범과 가치로 삼는 상황이 민주화와 맞물리고 있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80년대에는 민주화라는 대의를 통해 공동의 투쟁목표로 결집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각자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일상적 삶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흐름이 상당히 가속적이었다. 공동선, 공공성을 가지고 공동으로 조직을 하고 운동을 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민주화 정부들의 정책수행에서 실망을 거듭하는 것에서 민주주의 자체를 불신하게 되고 회의와 냉소가 상당히 팽만하다시피 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이런 조건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쉽겠는가. 나는 시민운동에 직접 몸담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상상이 된다.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조직하고 운영하는 것은 리더십 문제와도 관계되는 것으로 본다.
  
  지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정치체제의 민주화에다가 민주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실천되는 과정에서 사회가 실제로 변화는 것으로 볼 때 리더십의 형성 문제가 민주주의의 구현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느냐는 것에 대해서다.
  
  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작은 조직 내의 리더십의 원리는 좀 다르다. 예컨대 노동운동 내의 리더십은 기존 정치체제에서 대통령 뽑듯이 많은 사람들이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해서 리더십을 형성하는 것과 다르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를 보면 리더 중심의 운동이 많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미국의 경우 누구 누구라는 사람으로 운동이 대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 사회의 하부구조, 생산자들의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 집단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문제란 말이다. 그런 리더십은 꼭 선거를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민노당이나 민주노총에서 만일 나한테 '한 가지를 제안해보라'고 하면 '선거를 너무 자주해선 안 된다. 지도부의 임기를 너무 짧게 둬선 안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중들이 따르고 지도부의 이념이 관철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민주주의를 망치고 내부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조희연: (두번째 질의에 대해) 시민운동이 정치의 역할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 정상화보다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현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 시민운동으로 나뉘어 있다고 볼 때 최 선생이 말씀하신 386의 문제점, 정치적 개혁주의의 한계를 다 동일하게 갖고 있다고 본다. 정치적 개혁주의는 '쇼'가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을 보면 당원 투표를 해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꼭 중요한 게 아니다. 공공성의 강화, 시민운동이 급진주의를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민노당은 나름대로 제도 정치의 장에서 복합적 경쟁 공간에 뛰어들었으니 시민운동과 함께 헤게모니를 틀어잡을 수 있는 실천을 같이 해야 하지 않겠나.
  
  "권력화된 386, 통일된 힘 없으니 정체성도 잃어버린 것"
  
청중3: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의 갈등분석해결연구소에서 공부하고 있다. 최장집 선생께서는 1987년 당시 운동권이 정당으로 조직되지 못했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셨다. 집권엘리트가 된 386들 말고 지금도 자기 현장에서 묵묵하게 살고 있는 운동권이 정당으로 조직화되지 못한 점을 지적하신 것일 테고 그 결과 시민사회의 불신도 나타난 것일 텐데, 이런 세력들을 정당으로 조직화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이 있는가?

  
▲ ⓒ프레시안

  최장집: 현실적이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1987년의 결과물은 비판적 지지, 후보 단일화, 독자후보의 세 흐름의 조직화였다. 지금도 이 흐름과 조직화의 표현이 상당 부분 유지되며 골간을 이루고 있다. 그 와중에 지역당 구조로 흘러가면서 정착됐다. 우리나라의 운동권은 지적 자원이 상당히 부족했던 상태에서 운동을 통해 (권위주의) 체제를 바꿨다. 지금의 현실은 이런 과거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물이다.
  
  운동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점했던 젊은 리더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공동의 이해 관계를 모아서 느슨한 연대라도 해서 정당을 만들었으면 구 질서 내의 정당을 대체할 수 있는 정당이 될 수 있지 않았겠나? 아니면 기존 정당에 그룹을 지어 들어가 이념을 구체화 시키든가. 그런데 지금 열린우리당 같은 곳에 그룹을 지어 들어가 있지만 이 사람들이 너무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과거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운동을 했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존 질서를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개별적으로 보면 중간보스 정도까지는 올라가긴 하는데 결합된 힘으로 통일을 못하기 때문에 별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권력화된 386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당 안에도 당장 운동의 중심이었던 386들이 있는데 뭘 하고 있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보다 더 빨리 현상유지적 질서에 적응하고 기성질서에 순응하는 엘리트가 돼버리면 보는 사람들이 허무해진다.
  
청중4: 프레시안 기자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민중의 역량이 독립적이고 폭발적으로 분출 된 것은 세 차례 정도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1987년 6월 항쟁, 대학생 중심이었고 당시 정원식 교육부 장관 폭행 논란으로 기세가 꺾였던 한계를 갖고 있긴 하지만 1990년 3당 합당 반대 운동, 그리고 1996년 말 신한국당의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처리에 대한 총파업을 비롯한 반대운동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분출이 어떻게 종결되었던가 돌아보자.
  
  1987년에는 집권 민정당과 YS계, DJ계 야당 의원들이 8인 수임기구를 꾸려 직선제 헌법을 만들었다. 당시 투쟁을 이끌었던 범국본은 관여도 못했고 학생운동 일부에서 제헌의회 소집 그룹이 있었을 뿐, 직선제 쟁취 투쟁에는 열심이었던 국민들도 개헌 문제에 끼어들지 못한 것에 관심도 없었다. 1990년에는 3당 합당으로 인해 완전히 포위되었던 평민당이 결과적으로 그 과실을 가져갔다. 합당 이전에 4당 중의 하나에 불과했고 합당으로 가장 위기에 처했던 DJ당이 거대 민자당에 당당히 맞서는 야당으로 우뚝 서게 됐다. 1996년 겨울도 비슷하다. 김영삼 정권은 결국 물러섰지만 야당이었던 DJ 정당과 여당이던 신한국당과의 협상으로 노동자, 민중들의 요구 사항과 아주 거리가 먼 누더기 노동법이 통과됐고 집권의 길을 열수 있었다.
  
  세 경우가 다 비슷한 것이, 대중들이 나서서 정치의 장을 확장시켰지만 그 과정에 별 기여도 못했던 제도 야당이 그들을 대신해 협상에 나서서 자신들의 힘만 키웠다. 그리고 사후적으로 문제 인식은 있었지만 야당이 제 잇속만 차리는 동안 대중들은 별 불만도 없었다. 물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사회가 조금씩 진보하고 정권 교체도 되고 민주정부도 수립됐다.
  
  지금 한미FTA에 대한 반대 운동이 거센데 이 세 차례와 비슷하게 전개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지금은 그 반대 여론의 과실을 여권이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다를까? 보수 진영에서 이른바 'FTA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 골자는 이렇다. 모 장관이 협상 진행과정에서 계속 문제점을 제기하고 여론의 호응을 얻어내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리를 던지며 한미FTA 협상을 중지시키든지, 아니면 반대 세력의 대표주자로 나서며 정권 재창출을 노린다는 것이다.
  
  황당한 이야기긴 한데 과거 역사를 보면 이 플롯이 그다지 터무니없지만도 않다. 앞으로 또 다시 정부가 견디기 힘든 일을 대중들에게 강제해서 대중들이 직접 일어서도 근본적 변혁적 상황이 발생하게 하지 않는 이상 그 과실은 기존 정치권 내의 반대세력이 다 가져가고 대중들은 다시 실망하고…. 그러면서 조금 나아지는 면이 있겠지만 신자유주의는 더욱 강화되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비관적 인식을 갖고 있어 그런지 몰라도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내다보이는데 이 고리를 끊어낼 방도가 있을까?

  
▲ ⓒ프레시안

  최장집: 사실만 떼놓고 설명하고 분석을 할 때와 자신의 가치 방향이나 희망사항을 녹여서 분석할 때는 내용이 좀 다르지 않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만 해도 분석도 있지만 내 주장도 포함된 것이다. 현실만 분석하면 기자가 지금 말한 것처럼 비관적 모습이 보인다.
  
  사태 악순환의 되풀이….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기존의 정치 세력이 득을 보고 그러는 과정에 사회는 조금 발전은 하긴 하고 그런 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바로 그것이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이다.
  
  차이를 갖는 정당의 조직이 중요하다. 대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대안을 갖는 것이 쉽지 않지만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어떤 대안을 만드느냐가 문제다. 이는 두 가지 수준에서 봐야 할 것 같다. 현실로서의 신자유주의가 한 측면이고 신자유주의라는 독트린이 가져오는 어떤 사회적 가치관이나 정향들에 우리가 반대하는 것이 또 한 측면이다.
  
  새로운 대안은 신자유주의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본다. 신자유주의라는 가치를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 수준이 아니다. 현실을 반대해버리면 경제를 운영할 수도 없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현실을 수용하면서 그 부정적 효과를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런 문제들이 (대안 마련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굉장히 크다. 사회가 보수화 되어 있는 것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대학도 마찬가지고. 많은 경우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배적 헤게모니의 일방적 영향 하에 놓여서 그런 것이다.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느냐로 첫 출발하는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우리가 그 구체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대답할 만큼 뭔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87년 '반독재' 같은 저항적 담론 없어 위기"
  
청중5: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강남 사람들은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데 강북 사람들은 계급의식이 없다는 말이 있다. 내 주변만 봐도 계층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자면 진보적이고 노동자 계급 중심의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은 영세 상인이나 노동자들이 가진 생각이 너무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정부를 비판하면서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삼는 생각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왜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이 자신의 이해관계나 계층관계에 따라 시민운동 등으로 결집되지 않고 보수적인 쪽으로 분산될까? 이러니까 시민과 무관하게 시민운동이 움직인다는 말을 듣는데 이런 현상이 꼭 조중동에 속아서만은 아닐 것 같다.

  조희연: 87년 6월 항쟁은 시민사회 저항의 활성화의 한 정점이었는데 독재라는 구체적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소멸이 됐다. 다시 시민사회의 저항적 활성화나 급진화를 이야기 하려면 구체적 시대적 상황에 맞는 쟁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여러 시민사회 운동이 저항적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는 비전과 담론을 못 만들고 있다는 것이 질의에 대한 답변의 한 중요한 단서일 것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최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박상훈 주간이 말한 것인데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새로운 혁명이라는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중들을 자본의 질서, 경쟁력 강화 질서, 새로운 시장의 질서에 복속하게 만드는 혁명적 성격이 있다는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내포하는 힘이 시민사회의 비판적 활성화를 제약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결과에 올바로 조응하고 고통 받는 대중들의 절망을 분석해서 나오는 어떤 적극적 대중운동을 통해서 시민운동이 재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공허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대중투쟁과 삶의 문제로 연결시키는 우리들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본다. 정권교체가 어느 쪽으로 되느냐 문제와 관련 없이. 신자유주의 파괴적 질서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적극적 의지로 전화(轉化)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청중6: 대학생이다. 최장집 선생께서 정당정치의 강화를 줄곧 말씀하셨는데 그 방향을 잘 모르겠다. 민노당 형식의 진성정당 방향으로 생각하시는 것인지 묻고 싶다. 사실 대학생만 봐도 보수화, 무정형화되고 자기 개인 생활에만 매몰되어 있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민노당 처럼 노동이라는 부분으로 특화된다면 정당과 시민들은 더 멀어지지 않을까?

  
▲ ⓒ프레시안

  최장집: 우리나라의 노동문제가 중심적 대안을 담당할 만큼 전체적인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든다. 현재 노동의 문제나 계층 문제는 과거 노동자계급으로 대표되던 계급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내놓아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보편성을 갖는 중산층을 아우르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질의 중에 '노동으로 특화되는'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하겠다.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나 사민주의의 넓은 대안 속에서 노동문제를 포괄하는 대안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이지윤,윤태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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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석학 아탈리와 쓸쓸한 만남 | 손석춘의 편지 2006/11/06 07:42

프랑스 석학 아탈리와 쓸쓸한 만남 | 손석춘의 편지 2006/11/06 07:42

 

 

 

자크 아탈리. 프랑스 지성인을 대표하는 석학으로 꼽힙니다. 1943년 생으로 경제학과 정치학 박사입니다. 서른두 살 때, 당시 프랑스 사회당 총재였던 미테랑의 경제고문으로 발탁됩니다.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 된 뒤에도 ‘핵심참모’로 보좌했습니다. 그의 저서는 전 세계에 27개국 말로 옮겨져 500만권이 팔려 나갔다고 합니다. 앨빈 토플러도 그를 일러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성인”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가 최근 서울에 왔습니다.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아탈리와 한국방송(KBS)를 매개로 만났습니다. 한국방송의 ‘TV, 책을 말하다’에서 그의 유토피아 저서 <인간적인 길>을 두고 대담했습니다. 아탈리는 강조했습니다.

  “한 사회의 궁극적 목표는 영리추구가 아닙니다. 사회의 목표는 시민을 위한 복지의 실현입니다. 성장은 하나의 방법이죠. 성장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리면, 시민의 복지는 망각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이윤의 성장만이 됩니다. <인간적인 길>이라는 책은 어떻게 유토피아를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책입니다.”

  성장과 분배를 언제나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는 한국의 윤똑똑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아탈리는 <인간적인 길>에서 시장의 힘이 무한으로 확장될 때 인류는 인간 자체가 상품이 되는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대담에서도 아탈리는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시장은 스스로의 승리에 도취해 있습니다. 계속 도취의 양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장은 자연을 파괴합니다. 사람을 로봇으로, 복제인간으로, 물질로, 상품으로 차츰 변화시켜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인간이 이 상황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상품화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위험입니다.”

  여기까지 아탈리와 저는 전적으로 생각이 같았습니다. 아탈리에게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을 소개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거기까지였습니다. 아탈리와 저의 생각 차이는 대화할수록 점점 더 벌어졌습니다. 상품사회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가 차이의 핵심이었습니다.

  아탈리는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 ‘인간적인 길’의 고갱이라고 주장하더군요. 그와의 대담은 이미 방영됐습니다만, 방송시간의 제약으로 편집에서 빠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아탈리의 저서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책이라는 아탈리 자신의 주장과 달리 상품사회를 벗어나는 방법이 지나치게 두루뭉수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길>에서 변화의 주체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어디에 살고 있든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전부를 결집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어 덧붙입니다. “모두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랍니다. 그가 미래 사회의 희망을 ‘형제애’에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요. 과연 “모두가 같은 사람들”이기에 모두가 ‘형제애’를 지니면 유토피아가 이뤄질까요? 공자에 대한 모욕일지 모르지만 ‘공자님 말씀만 한다’는 생각이 든 까닭입니다. 아탈리가 <인간적인 길>에서 무능한 좌파를 ‘어설픈 좌파’라고 비판한 사실이 떠올라 되물었습니다.

  “이 책에서 프랑스 좌파들을 ‘어설픈 좌파’로 비판한 당신에게 그 말이 혹 부메랑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는가요?”

  아탈리는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며 자신의 제언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답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대담의 끝자락에서 결국 아탈리와 얼굴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그가 <인간적인 길>에서 “핵무기를 통한 (전쟁)억제력”을 강조하고 있기에 북핵문제를 물었습니다.

  아탈리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프랑스처럼 핵무기를 정당하게 갖게 되면 문제가 없지만 북핵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통제하면 어렵지 않게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물었습니다.

  “아탈리 박사의 저서들을 읽으며 프랑스에서만 살아온 지식인 일반이 지니는 한계를 느꼈는데 오늘 대담을 통해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핵을 가질 정당성이 있는 나라 가 따로 있고 없는 나라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나, 북쪽 정권을 붕괴시키는 게 당위라는 생각이 그것인데요. 그런 논리와 제국주의자들의 논리는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유엔 안전보상이사회 국가들이 지닌 핵무기는 정당하다면서 사뭇 결연히 말했습니다.

  “한 나라의 정권을 붕괴시킬 권리는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있다는 손 박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어 저에게 반문하더군요.

  “히틀러를 보세요. 그렇다면 우리가 히틀러를 패배시키지 말아야 했나요?”

  황당했지만 되물었지요.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히틀러는 다른 나라들을 침략한 전범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미국은 침략 당하지 않았지만 참전했습니다.”

  방송 녹화 중이었고 사회자의 만류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습니다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아탈리는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국제 문제에 미국과 프랑스는 대체로 견해를 같이 한다”고 말을 흐렸을 뿐입니다.

   그랬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지성인 아탈리조차도 북미핵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책임에 전혀 무지했습니다. 그가 ‘형제애’를 강조하며 상품사회를 벗어나자고 제의한 게 단순히 순진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아탈리와의 만남이 쓸쓸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제가 유럽이 아닌 분단조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새삼 빚진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크 아탈리가 차라리 고마운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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