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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4.12월 : 선로를 복구하라!《탈선》,《네비게이터》

 

제목: 탈선
지은이: 앤드루 머리
가격: 12000원
발간일: 2003년 2월
출판사: 이소출판사


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2월호 통권 126호
http://www.ynlabor.net

선로를 복구하라!《탈선》,《네비게이터》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2000년대 거세게 몰아친 신자유주의가 단지 경제적인 궁핍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세상을 자기의 뜻대로 창조하는 인간의 의지를 거세시키고, 모든 행위의 주체, 논리의 출발점을 자본으로 단일화시키는 것. 이것이 신자유주의 위험성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합리성을 중요한 작동논리로 상정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비합리적인 위험에 직면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합리성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어떤 합리성인가? 경제적 수익을 우선시하는 합리성인가?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둔 합리성인가?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나라 중 하나인 영국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합리성에 기초해 진행된 철도 사유화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결국 철도를 다시 국유화시키는 쾌거를 거두었다.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영국 국민들은 연이은 열차사고로 인한 불안감을 감내해야만 했고,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사용되어야 할 막대한 부가 사유화의 혜택을 입은 소수의 자본가에게 공적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또한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달리는 열차는 결국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던 승객들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죽음의 질주, 위험의 증대 속에서 사람들은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국 철도 기관사 노조(ASLEF)의 공보담당관인 앤드루 머리가 쓴 <탈선>(이소출판사, 오건호 옮김, 2003년)은 영국 철도 사유화의 참혹한 결과와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의 우익 연구소들이 내놓은 철도 사유화 방안은 효율과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보수당 대처 정부의 광신적인 믿음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다. 노동당이 ‘집권 후 재 국유화’를 주장하는 가운데, 신속하게 추진된 철도 사유화는 영국 철도를 100여 개의 수많은 기업으로 분할시켰다. 화물 철도는 세 개의 기업으로 분할(이후 다국적기업 EWS의 민간독점으로 귀착), 열차운행은 25개의 기업으로, 여객 차량 임대회사는 3개의 기업으로, 선로유지 보수 회사는 3개의 기업으로, 선로, 역, 다리 등 시설은 레일트랙(Rail Track)의 독점으로 귀결되었고, 그 밑에 하청관계에 있는 수많은 분할 구조가 존재하게 된다. 철도산별노조(RMT) 위원장 지미 냅은 철도 안전성 심의 컬런 조사위원회에서 재하청 계약으로 ‘철도와 연계된 기업이 적어도 1,000개는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민영 철도의 구조>




이러한 분할 체계 하에서 기존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을 보장받았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악화되었고, 기업 간 수많은 계약관계들 속에서 그 누구도 철도 운행과 안전과 관련한 총체적인 책임 속에 있지 않게 되었다.
사유화의 강력한 논리를 살펴보자. 영국 정부와 자본 측은 사유화를 토해 승객 수와 화물 운송량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과연 사유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연증가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철도의 강력한 경쟁자인 도로운송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경쟁력 없는 노선의 경우 공공적 이익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폐쇄되었고 이는 ‘수익성’의 논리 하에 운송량의 억제를 자본 측이 조장했음을 나타낸다. 또 다른 사유화 신앙의 주장은 납세자인 국민의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납세자들의 보조금은 주식 보유자의 은행 계좌로 흘러 들어가고, 레일트랙 등에 대한 보조금의 주요 부담자는 국민들이다.

결국 국유화 시절보다 더 많은 자금이 보조금으로 지급되고 있는데, 국유화 시절에는 보조금이 그나마 철도 부문에 머물면서 쓰이고 있었던 반면, 사유화 이후에는 주주들과 사기업의 금고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레일트랙은 매년 10억 파운드의 보조금을 받아, 주주들에게 3억 5천만 파운드를 배당금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 ‘경쟁’ 속에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철도 각 부문은 경쟁 없는 독과점 체제로 출발했으며, 독점 이윤은 안전을 갉아 먹었다.


97년 런던 서부 사우스올 사고(7명 사망), 99년 10월 래드브로크 그로브 열차 충돌(31명 사망), 2000년 10월 햇필드 사고(4명 사망) 등 연이은 사고들을 거치면서 사건의 진상은 드러나게 된다. 선로의 균열 또는 자동 보호 장치 미설치와 노동강도 강화로 인한 기관사들의 신호 무시 무단 통과는 바로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유화의 예정된 결말이었던 것이다. 승객과 철도 노동자의 안전은 결박당했다. 유럽의 자동 보호 장치는 재정 문제와 경제성 논리에 따라 도입되지 않았다. 또한, 서비스의 질은 저하되었다. 열차 정시성은 하락하였고, 철도 요금은 물가상승률을 초과했다.



오랫동안 신자유주의 사유화의 폐해에 대해 연구해 왔고 지금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에 있는 오건호 씨가 이 책을 번역했다. 역자가 이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역자 뿐 아니라 우리 철도 노동자를 비롯해 많은 활동가들에게도 똑같은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출간된 지 2년이 다 되 가지만,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지금부터 읽어야 하는 책임이 분명하다.

<탈선>이 책으로 읽는 영국 철도 사유화 보고서라 한다면, 영화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는 영화로 보는 사유화의 악몽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영국의 좌파 감독 캔 로치(Ken Loach)의 작품으로 철도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면서 겪는 고통과 사유화의 폐해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은 철도 사유화 이후, 다른 일터로 쪼개지고 에이전시에 등록되어 비정규직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만다. 이들은 서로가 경쟁 상태에 놓여졌고 이전에 보장받았던 휴가나 수당 등은 사라졌다. 인간적인 애정이 가득했던 일터에는 이제 명령과 복종만이 남았고, 비용절감의 미명하에 안전 장치는 사라졌다.

노동자들 역시 일거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안전은 뒷전이다. 철도 보수 작업 중 다친 동료는 도로에서 차에 치인 것으로 위장된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영화 전반부에는 코믹하고 끈끈한 동료애, 화기애애한 일터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의 영국 국민들의 팍팍한 일상, 고통스런 난관들이 점차 영화를 지배하게 된다.

11월 16일, 의왕역 근처 경부선 선로 철도 침목 교체 작업 중 한 철도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인력 부족 상태에서 6일간 연속 야간 근무 상태에서 고인은 서행 표지판 철거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올해만 9명의 노동자가 철도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우리는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영국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인간다운 삶을, 공동체적 사회를 ‘탈선’시킨다면 노동자의 사명은, 노동운동의 사명은 ‘탈선’된 열차를 제대로 돌려놓고, 부서진 선로를 복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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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4.11월 - 민주노동당의 선택과 집중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1월 (125호)

민주노동당의 선택과 집중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 redstar@jinbo.net

노무현 정부 들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용어가 부쩍 많아졌다. 최근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가 그러하다. 산업 클러스터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경쟁력 모델을 제시한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무엇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바꾸어 말하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클러스터, 허브 등의 용어에 이어 이제 경영학 서적 속에 등장하던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가 한국의 모든 분야, 모든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LG 경제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등등의 재벌 및 자본 연구소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업종과 산업, 체육계, 학원계, 심지어 정치권까지 ‘선택과 집중’을 언급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까지도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의제가 겹치면서 당의 독자적 이슈 제기가 부족했다고 평가하며,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열린우리당 2중대’ 문건 유출 논란 과정에서도 김창현 사무총장은 당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당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들이야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영학 용어가 익숙하겠지만, 우리에게 낯선 ‘선택과 집중’을 저들의 논리와 동일하게 사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다. 가용 가능한 자원과 선택지가 한정된 상황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말 것인가는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우선인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우선인가 하는 점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 두 투쟁이 대립될 수가 없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쟁점으로 불거진 데에는 민주노동당 내적으로는 열린우리당과의 ‘개혁공조’와 곧 이어진 파기, 민주노동당 내 당면전략을 둘러싸고 회람된 소위 ‘열린우리당 2중대 논란 문건 파동’ 등이, 당 외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의 의제 선점(소위 4대 개혁입법)과 보수수구세력들의 집결과 준동,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양산법)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민주노동당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대중투쟁의 기운을 높일 수 있는 기획이 전혀 없는 상태 속에 열린우리당이 선점한 의제에 한나라당이 적극 반발하면서 생긴 정치적 냉각상태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존재는 사라져 버렸다.


사학법과 관련, 전교조는 10월 말일 한 차례의 집회 이후로는 그다지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위원장 선거 국면으로 넘어갔다. 언론관계법과 관련, 언론개혁 국민행동이 국회 앞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언론관계법과 관련한 주요 타격 대상은 안타깝게도 한나라당에 쏠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내놓고 있는 4대 개혁입법은 사실 개혁입법이라 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대신 형법개정안을 채택했고, 이적단체죄는 계속 지속되며, 간첩죄 처벌이 보강되기까지 했다. 언론관계법 역시 신문사의 특정인 소유지분 제한 제도가 제외되면서 그 개혁적 의미는 사라졌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에는 학교장의 교직원 임면권 부여, 재단의 공금횡령 관련 규정에 대해서는 현행 사립학교법에서 재단의 공금횡령 사실이 알려져도 15일 이내에 변제만 하면 처벌을 받지 않는 이른바 계고기간 삭제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누더기 개혁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보수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면으로 돌파할 의지가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산이 높으면 돌아간다’는 이른바 개혁우회론을 제기했고, 열린우리당 내 한나라당과의 타협파가 상당수 존재한다. 한나라당 역시 보수파의 거센 압력 속에서 박근혜 대표가 당의 명운을 걸고 ‘4대 악법’을 막겠다고 했지만, 내부 의견통일이 완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 입법의 연내 일괄처리는 아직 그 추이가 명확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당의 타협의 가능성도 매우 높다. 4대 입법의 결정물은 열린우리당의 안보다 더욱 후퇴한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국가보안법 역시 상정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안에 대해 ‘견인’을 이야기하면서 민주당-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의 개혁공조를 단행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열린우리당보다 훨씬 보수적인 당론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의 대한나라당 투쟁의 엑스트라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했다. 견인은커녕 개혁공조가 지속되는 동안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시야에 들지도 않았다는 것이 좀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김창현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에게는 각을 세우고 열린우리당의 기회주의에는 가차 없이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개혁입법을 주도한 열린우리당의 행보가 부유하는 자유주의세력의 기회주의인지, 정국을 주도하면서 지배세력의 점유권을 휩쓸기 위한 치밀한 전략인지, 아니면 협상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주고받을 공수표의 목록 만들기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형법 대체를 연내 통과까지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지, 아니면 재보선 전까지 미룰지도 미지수이다.


민주노동당이 4대 개혁입법과 관련해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열린우리당과의 공조이고 선택해야 할 것은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싼 대중투쟁의 조직화였다. 단지 국회 앞 농성으로 거대여당을 견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오산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각론적인 차원에서 공조 또는 견인하는 것과 당대당 공조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더군다나 잃을 것과 얻을 것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공조를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었다. 만일 지금 이 시점이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등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대중투쟁과의 접점을 만드는 데 당력이 할애되어야 한다. 4대 개혁입법 투쟁을 대중투쟁 속에 녹아 내면서 시너지효과를 높이지 않는 이상, 개혁성도 실종되고 민주노동당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당장 직면한 문제는 4대입법을 둘러싼 문제보다는 현재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정부의 강력한 탄압과 자체 동력의 소진 속에서 탄압받고 있는 공무원노조 문제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투쟁을 정치적으로 엄호하는 역할을 자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와 정치적 적대선을 그어야 할 것인가? 실체도 없고, 깡다구만 있는 ‘반핵반김 국권수호 국민협의회’와 선을 그을 것인가? 한나라당 김용갑과 선을 그을 것인가? 공무원노동조합을 유명무실화하려 하고, 비정규양산법을 상정하려는, 기만적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을 일으킨 정부여당과 선을 긋지 않고서는 대중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이라는 구호는 한가한 장식에 불과하게 된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판을 마련하고 직접 등장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열린우리당이지 한나라당이 아니다. 또한, 기업도시법, 한국형 뉴딜 정책 등 경제파탄과 재벌특혜 정책들 역시 열린우리당의 주도 속에서 국회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야당과 싸우는 야당은 야당인가? 여당인가? 국회공전 속에서 보수준동에 대한 과다한 의미부여는 열린우리당의 주도성을 가리는 착시현상을 가져왔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가 보지 못한(또는 않은) 것은 이해찬의 막말과 한나라당의 막무가내가 실은 칼로 물 베기로 끝날 싸움이었다는 점이며,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싸움에 견인이니 양비론이니 읊어대며 누구 편을 들 것인가 따지는 동안 이해찬은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한나라당은 용서 같지 않은 용서를 하고 말았다.


비정규직 양산법에 대한 총력투쟁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강요된 ‘선택과 집중’점이다.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이 연내 통과되지 못한다면, 또는 노무현 집권 시기 동안 계속해서 민주노동당의 줄서기를 강요하면서 등장할 ‘개혁공조’ 논란 때마다 다시 되짚어 보고 떠올려야 하는 것은 이번 민주노동당 내 문건파동과 관련한 논의 과정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 속에서 그나마 10석의 의원을 만들어낸 것이 의미를 발하려면 되풀이되는 논란과 실수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세 속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 낸 ‘선택과 집중’이어야 한다. 참으로 등장인물들이 많은 현재의 정치세력 속에서 역동적인 주동성마저 없다면 거대한 소수는 ‘거세당한 소수’ 또는 ‘거대함 속의 소수’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과거 보수야당 신민당의 개헌 현판식과 같은 주도력마저도 보이지 않는다면 노동자 정당임을 자부하는 민주노동당의 현실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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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4.10월 -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신개발주의에 위협받는 노동자와 도시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0월(124호)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신개발주의에 위협받는 노동자와 도시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요즘처럼 도시가 주목받는 시대가 있었을까? 기업도시,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 행정수도 이전 등 생소한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서 대체 다가올 변화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난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행 속에서 내외 자본은 한국 경제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분업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 자본주의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존의 보호주의에 입각한 공업형 수출주도 산업정책과는 달리, 소위 ‘개방형 (신)통상국가론’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면서 조립․가공뿐만 아니라 광고, 금융, 유통, 판매, 물류, 교통, R&D 등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되었다. 경제, 산업정책과 연관된 도시의 재구조화는 IMF 위기 이후 시작된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으면서 내외 자본의 요구에 종속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지역 간 불평등의 심화, 다른 한편으론 도시 내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내 성장연합은 누가 더 자본에 기생적인 존재인지를 놓고 심각한 경쟁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모두가 성장주의에 긴박당한 채 조급증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고유하게 내재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요소는 한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1990년대는 신고전주의적 시장자유화라는 거의 유토피아적인 조건 속에서 전지구적 도시개발이 이루어진 역사상 최초의 10년이었다’.1)


얼마 전 부산과 광양의 경제자유구역 사업에 대한 전윤철 감사원장의 비판이 알려지자, 부산과 전라도 지역의 여론이 비등(沸騰)했다. 8월 20일 전윤철 감사원장은 “3개 경제자유구역 추진사업에 대한 감사를 해보니 걱정스럽고, 문제점이 많다”며 “지역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물류, 첨단, 관광산업을 유치함으로써 예산의 중복투자 등이 우려 된다”고 밝혔다.

감사는 감사원 내 국가전략사업평가단(이하 평가단)을 통해 2003년 말부터 이루어지고 있고, 2004년 9월 중 경제특구사업 개선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단은 ‘국가전략사업에 관한 감사’,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사업에 관한 감사사항’, ‘신행정수도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사업에 관한 감사’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부산일보는 사설에서 ‘중복 투자가 되거나 과당경쟁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제특구로 지정하지 말았어야 옳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특구 지정 시 전윤철 감사원장이 경제부총리로 재직 중’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특구 선정이 잘못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산항을 사랑하는 모임’과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등도 전 감사원장의 발언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전윤철 감사원장은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집중 지원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신지역주의 단체’들은 ‘감사원장의 중앙집권적 사고방식, 지역균형발전을 위해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부산 지역의 일부 여론이 침소봉대되고 있는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즈의 사설은 다소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신문은 ‘경제특구가 실적없이 표류하고’ 있는데 늦게나마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교통개발연구원이 실시한 부산, 광양항에 대한 다국적기업들의 동북아 물류거점 선호도 조사에서 9개 조사대상 중 8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경제특구의 성공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지원만 주문할 뿐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2)

경제자유구역 주무부처인 재경부 뿐만 아니라, 각 부처와 동북아시대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다른 부처, 기관들도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2004년 6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학생비율을 해당 학교장이 결정할 수 있게 하고, ‘해외송금 금지 장벽’도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교조 등 노동․교육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교육개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2004년 8월, 오갑원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 기획단장은 외국계 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개방공대위의 반대는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국내의료법에서는 금지된 영리(營利)병원 설립도 허용키로 했고, 수익금의 해외송금과 자본 투자 등이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작년 경제특구법이 통과된 이후 노동계와 시민사회 단체들의 움직임이 둔화된 가운데 현재 제반 사항들이 아무 저항 없이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다.

<표1>과 같이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경우 자본 및 대기업의 수도권 개발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거대한 시장과의 인접성(서울 및 경기, 중국)이 높기 때문에 투자유인 효과에 있어서 지방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3)

그러나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과 광양경제자유구역청이 출범했으나 투자 유치 실적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부산-진해경제구역청의 경우에는 3월 개청 이후 양해각서(MOU) 체결 실적마저 전무한 상태이다. 공장용지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고,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재원 역시 부족한 상태이다. 재계가 감세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에 필요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현재 경제자유구역의 문제점은 한국 산업 성장엔진에 대한 숙고 없이 노동, 환경 등의 희생을 대가로 ‘저진로(low road)’를 지원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구성되었으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 정책추진력의 소진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사실에 있다.

 


<표1 인천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실적>

(단위: 달러)

시기

투자자

내용

투자규모

02년 1월

게일(미), 포스코

송도 개발, 컨벤션센터 건설

127억

2월

백스젠(미), KT&G

항암제 생산설비 투자

1억5천만

03년 6월

아멕(영)

제2 연륙교 건설

11억

7월

클럽폴라리스

골프장 개발

1억

11월

TNT(네덜란드)

물류센터 건설

8백만

04년 1월

DHL(미)

물류센터 건설

3천4백만

3월

한국중화총상회(화교)

차이나시티 건설

20억

4월

P.H 컨소시엄(미,독)

송도신항 건설

15억

4월

아멕(영)

복합레저타운 조성

20억

5월

보난자(미)

R&D센터, 쇼핑몰, IT 빌딩

3억1천만

6월

보난자(미)

유방암 스크리닝센터

3천만

8월

보난자(미)

외국학교 설립

2천만

8월

MS, HP, 삼성, LG 등

IT 비즈니스 지원설비

10억

(자료: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그렇다면, ‘자본의 천국’처럼 보이는 경제자유구역에(특히 부산-진해, 광양) 왜 외자유치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추후 세밀한 비교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IMF 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시스템의 변화이다. 현재 한국에 들어온 해외자본들은 ‘투기자본’들이다. 이들은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 수익률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중소기업 및 벤처보다는 우량 대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설정한다. 결국 우량 대기업들이 경제자유구역에 투자를 해야 하지만(해외자본 10% 이상이면 투자 조건이 성립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부분의 우량 대기업은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할 자격이 있다), 이들은 현재 경제 조건 하에서 (정부의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보다는 내부 유보 내지는 해외투자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근접한 거리에 한국보다 더욱 매력적인 조건을 지닌 경쟁상대(중국 칭다오, 심천 경제특구 등)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보다 더 자본주도적인 기업도시의 추진 속에서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말부터 추진된 한국의 ‘생산의 세계화’ 전략은 ‘금융의 세계화’에 하위 종속된 상태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대등한 노사의 ‘대타협’에 의한 고진로(high road)가 아닌, 노동의 배제 속에서의 고진로(high road)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깨끗한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소위 산업 클러스터라고 일컫는 지역혁신체제를 자본은 기업도시와 등치시키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더군다나 경제불황 속에서 각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을 기업주도 개발주의에 의탁하려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세 번째로는 현재 경제자유구역과 관련한 제반 사항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부산과 같은 전통적인 도시에서는 용지 확보가 쉽지 않고,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설사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기업도시처럼 효율적으로 빨리, 이해당사자들의 저항 없이 이루어지는 방식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자본은 망설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추후 전경련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시와 경제자유구역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동북아중심국가 구상 하에 기획되었다. 애초 금융 허브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물류/유통 기능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참여의 폭이 넓지 않으며, 설치지역도 인천, 광양, 부산-진해 등으로 제한된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섯째, 소위 선별과 집중 전략이라는 국가 경제 발전 방안은 각 지자체간 이해관계의 대립, 정치적 문제로의 비화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부산-진해 및 광양 경제자유구역이 물류 중심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부산신항 명칭을 둘러싼 부산과 경상남도 간 이해대립, 부산/광양을 거점으로 하는 투포트(Two-Port) 정책 포기 또는 재기 논란에서 보듯이 첨예한 지역간 대립은 앞으로 기업도시, 혁신도시4), 과학단지구역 등의 유치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 부산-진해, 광양 경제자유구역 축소조정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의 개발을 둘러싼 각 이해당사자들의 ‘성장연합’이 ‘경제자유구역’의 취지와는 무관한 이권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은 ‘지역분권’ 또는 ‘국토균형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신지역주의’의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양적 성장 지상주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민 전체의 고른 발전이라는 관점보다는 ‘특정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경제자유구역 문제뿐만이 아니라, 부산 영도대교 문제, 지역 산업정책 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전체가 지역개발의 블랙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나, 합리적 룰과 통제 시스템은 전무한 ‘개발 지상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당연하게도 행위주체들은 ‘이해관계’에 따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부산시민’이라는 호명 속에서 시민 일반이 ‘이해당사자’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노동자, 서민, 농민, 중소제조업자, 주부, 학생 등 다양한 계급계층의 이해는 사라지고, 각 주체들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정책 효과는 논의의 장에서 빠져버리게 된다. 이 틈을 지역 언론사와 개발업자, 이권관련자들이 ‘부산시민 전체를 대리, 대표’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넷째, 최근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매립지 개발을 둘러싼 특혜 의혹에서도 볼 수 있듯이(2004년 10월 7일 지구단위 입안권이 해운대구청에서 부산시로 넘어간 뒤 초고층 아파트 개발 특혜논란이 불거짐), 지자체의 개발주의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경제자유구역이 노동자 서민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담보로 한 경제자유구역 설립은 초입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법안 통과가 곧 투쟁의 종결을 의미할 수는 없다. 재계와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중심에 놓는 ‘산업정책’을 만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은 ‘반대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감사원 감사로 불거진 센텀시티 조성사업 문제점

 


2004년 7월부터 8월 사이, 감사원은 부산시 감사결과를 공개했다. 그 중 센텀시티 조성사업과 관련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보자.

 


센텀시티 마스터플랜과 실시계획에서 지원시설용지를 전시, 문화관광, 상업업무, 유통시설 용지 등 4개 구역으로 구획하였으나, 각 구역별로 건축물의 제한 등 세부개발계획을 수립하지 아니한 채 분양하였기 때문에 유통시설 용지와 상업업무시설 용지 등에 공동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이 건축되거나 건축예정으로 있어 당초의 도시개발 구상과 다르게 주거단지화 우려.

센텀시티 조성에 소요되는 자체재원이 부족하여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계 4,900억 원을 차입함에 따라 2003년 말까지 1,729억 원의 이자를 부담하였고, 앞으로도 연간 167억원의 이자를 부담하여야 하는 등 재정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조성된 부지를 조속히 매각하여야 하나……도심위락지역을 최고가에 의한 경쟁입찰이 아닌 부지 전체를 동일인에게 일괄 매각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어 매각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매각성사 여부 불투명

감사원,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부산광역시 일반감사, 2004년 3월

 


문제는 마스터플랜 단계에서부터 졸속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획 조차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국민들의 세금은 개발업자와 금융업계에 넘어가게 되고, 다른 노동자, 서민들에게 쓰여야 할 돈은 바닥나고 정부 재정은 압박받게 된다.

부산시는 센텀시티 개발과 관련해 특히 제2 BEXCO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BEXCO는 작년부터 흑자(당기순이익 3억 6000여 만원)로 돌아섰고 가동률은 해마다 증가해 2001년: 26%, 2002년: 40%, 2003년: 46%, 2004년: 51%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내외 컨벤션 산업의 과잉투자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어 제2 BEXCO는 위험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90년대 이후 매년 컨벤션 산업이 20%씩 급성장해왔으나, 공급 과잉 폐해가 심각하다. 일본 역시 과잉성장한 컨벤션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컨벤션센터를 추진하고 건립하면서 2007년-2009년에는 과잉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COEX), 부산(BEXCO), 대구(EXCO), 제주(ICC)가 운영중이고, 경기 고양, 광주, 경남 창원, 3곳이 2005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울산과 대전, 인천도 대규모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중이며, 경북도 정부에 예산 지원을 건의한 상태이다. 현재의 가동률을 기준으로 제2 BEXCO를 건립하겠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창원의 컨벤션센터와 부산 BEXCO는 인접거리에 있어 중복투자가 될 것이 뻔하고 서로가 제살 깎아먹기를 할 것이다. 이미 건립중인 창원 컨벤션센터 운영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제2 벡스코의 경우에는 민주노동당 부산시당과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이 함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APEC 회의가 부산-제주에서 개최됨에 따라 지역에서는 컨벤션산업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고, 이를 빌미로 외국인대상 대형 카지노장 건설 논의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중으로 BEXCO 타당성 용역 조사가 끝나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울산의 경우에는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에도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신개발주의 욕망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업도시 건설 경과

 


2003년 10월 전경련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름하여 ‘주택가격 안정과 지방균형 발전을 위한 기업도시 건설방안’이 그것이다. 올해 2월에는 심각해지는 일자리문제와 연결하여 기업도시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후 전경련이 제안한 기업도시 개발에 대해 6월 10일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기업도시 건설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전경련의 제안을 참고해 건설교통부는 ‘민간복합도시개발특별법(안)(일명 기업도시 특별법)’을 마련했고, 9월 21일 법안을 공개했다. 전경련도 기업도시와 관련 대 정부, 대 언론 로비를 강화하면서 정부를 압박해 나가고 있다. 9월 22일 건설교통부는 공청회를 개최했고, 10월 8일 당정 협의를 거쳐 11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기업도시 특별법에 우호적인 상황에서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연내 1-2곳의 기업도시를 발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부가 기업도시 특별법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경제위기 논란의 와중에서 현 정부는 내수경기의 심각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이해찬 총리는 경제회생을 위해, 특히 건설경기의 연착륙에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자본 투자 확대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경부 역시 ‘뉴딜 정책’을 본받는다며 사회기반시설 중심의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했다. 전경련 역시 내수 진작과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복합서비스 클러스터 단지(대체에너지+관광레저+유통)’의 조성을 제안했다.

두 번째로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불황 속에서는 열린우리당이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 전국적인 압승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방선거를 겨냥한 내수경기 진작을 염두하고 있는 방책으로 보인다. 2006년 6-7월경에는 기업도시 개발 실시계획 승인과 기업도시 건설 착공이 예정되어 있다.

세 번째, 재벌기업들에 포위당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기업이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특혜를 제공해주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의제를 둘러싼 개혁-보수 논쟁과는 별개로 경제분야에서의 재벌기업 의존성은 여야구별없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재벌에게 상대적으로 강하게 저항하던 정권 초기의 모습은 이제 대등한 파트너쉽을 지나 알아서 기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기업도시 내용 및 쟁점

 


전경련이 내세우는 기업도시 모델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파크이다. 전경련은 이러한 모델을 원용해 한국적 기업도시를 건설해 주택가격 안정, 지역균형발전, 일자리창출과 고부가가치 산업혁신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경련은 건교부가 제시하는 수도권과 충청권 이외 지역 기업도시 추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산업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 주거, 문화, 레저 등 도시기능의 일부가 아닌 자족형 모델을 기업도시의 중요한 요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전경련과 자본이 동원하는 수사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자본의 투기를 위한 토지수용권과 개발이익 환수가 핵심이다. 카지노와 놀이동산, 대규모 호텔이 자족형 모델인가? 전경련의 주장에 따르면 카지노 옆에 자립형 고등학교, 학교 옆에 놀이동산과 고급호텔, 대형병원이 이어지는 희안한 조감도가 그려질 수밖에 없다.

전경련은 기업도시를 내세우면서 산학연(産學聯) 지역혁신체계구축(RIS)을 매우 중요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유치 희망지역 내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포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전경련은 노동권의 유연한 적용 하에 노동할 수 있는 권리(대체근로 인정, 무노조 가능 등)까지도 요구하고 있다.5)

 


<표2 기업도시에게 주어질 혜택>

토지

기업이 주도적으로 토지 수용, 개발 처분

학교

외국인 대학 및 기업의 대학설립 허용

병원 및 레저

기업이 종합병원 설립, 체육시설에 기업 이름 사용

인프라

기업이 개발이익으로 건설, 도시 밖은 정부가 부담

규제

출자총액제한 적용 제외, 부채비율 규제 예외

노동시장

해고제한 조건과 근로자 파견제 규제완화

조명래: ‘외국사례에 비추어 본 기업도시와 경제정의’에서 재인용

 


기업도시의 네 가지 유형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유형은 관광레저형이다. 정부도 올해 안에 결정될 기업도시 예정지 2곳도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상정하고 있다. 또는 산업형이나 관광레저형, 물류형과 관광레저형이 혼합된 형태의 기업도시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개발초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부동산 투기를 통해 쉽게 보전할 수 있다는 계산을 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6)

 


<표3 예상되는 기업도시>

기업

유형

예상도시

비고

금호

물류 및 관광레저형

광양항 배후, 새만금

 

동부

 

 

 

롯데

복합물류, 관광레저

김해

 

벽산

 

 

 

삼성

 

 

(충남탕정 좌절)

에버랜드

 

 

 

포스코

산업교역 및 지식기반형

포항

 

한진

물류 및 관광레저형

서귀포 또는 김해

 

한화

복합관광레저

여수 방산공장 부지

 

현대자동차

자동차 R&D 및 지식기반형

 

(경기화성 희망)

LG필립스

복합레저단지

새만금

(경기파주 희망)

SK

 

 

 

현대

골프장 등 레저단지

현대소유 서산 간척지

 

 


<표3 기업도시 유치 희망지역>

 

(전경련에 유치신청을 낸 지자체는 당초 9곳에서 23곳으로 확대)

지역

특징 및 인센티브

도시형태

인천

경제자유구역

경제자유구역, 영어인프라 확충

수도권 규제 완화, 원스톱 서비스

R&D형

충주

충주 첨단산업단지 부근

산업형

진천

신행정수도와 인접

편리한 교통, 풍부한 용수, 토지확보 제공

산업형, 문화-레저형

음성

음성 유통단지(2007년 완공예정)

물류형, R&D형

서산

20만t급 선박 입항가능

산업형(화학)

원주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와 연계

진입도로 등 기반시설 지원

R&D형(의료산업)

군산

최적의 항만조건, 풍부한 용수

추가적 부담없이 부지 확보 가능

산업형, 물류형

익산

투자재원 확보(총1,000억원)

입주업체에 싼 가격에 토지 제공

산업형

전주

기계, 자동차 부품산업 클러스터 조성

장기토지 이용권 부여, 세금 감면

산업형

목포

 

산업형

광양

경제자유구역

신덕: 주거단지, 외국인 학교, 병원건립

화양: 관광, 레저 휴양단지 조성

산업물류형, 문화-레저형

무안

 

산업형

포항

신항만 배후단지 기본계획 수립 완료

지방세 감면, 고용이전보조금 지원

산업형

대구

달성군 구지면 용지 대구시 소유

국가예산 확보, 현재 진행중인 사업

R&D형, 산업형

영천

대구의 배후주거단지 조성계획

도시기본계획 반영, 기반시설 전액부담

산업형

김해

부산, 창원, 마산 등 인접 대도시 중심

산업형

진주

필요부지 확보 및 입지기반 시설 지원

산업형

사천

첨단항공 및 부품소재산업 클러스터 추진

산업형

밀양

토지매입에 따른 행정지원

R&D형, 산업형

창원

산학연 네트워크로 경쟁력 우위

산업시설과 연계한 R&D 시설 집적화

R&D형, 산업형

마산

마산-시모노세키 직항로 운항

수출자유구역, 창원등과 인접

산업형

통영

부지확보 및 도시기본계획 변경

상하수도시설 제공

문화-레저형

서귀포

국공유지로 싼값에 매입 용이

제주국제자유도시

문화-레저형

(출처: 한국경제신문 2004.10.7 A37면)

 


이러한 전경련의 주장과 건교부의 특별법안이 발표되자 노동사회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 법안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도시 토지수용권 문제이다. 건설교통부의 특별법에 따르면 민간기업이 대상 토지의 50%를 협의매수할 시 나머지 50%의 토지에 대한 강제수용권한을 기업에게 준다. 전경련은 아전인수격으로 100% 토지수용권을 기업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평소 시장자유주의를 내세워 온 전경련이 엄연히 사유재산인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기업에게 부과하는 것은 ‘시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공공기관 등이 토지를 수용할 때도 공공적 목적에만 국한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토지수용권의 기업 이전은 명백하게 헌법에 위반된다. 이에 손호철 교수는 ‘재벌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면서 냉소에 찬 비판을 가하고 있다.

둘째, 개발이익 환수 문제이다. 정부의 안에는 기업도시 조성과정에서 70%의 개발이익을 환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개발이익을 따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정부의 안대로 하자면 개발이익은 전체 개발이익의 70%가 아니라 15% 정도에 불과하다. 건교부는 준공과 완공 두차례에 걸쳐 개발이익을 산정하고 환수할 방침이고, 기업의 직접사용 토지분에 대해서는 예외로 했다.

전경련은 이를 개발이익 환수율을 명문화하지 말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간 협의를 통해서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황과 지역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자체와 기업간 관계는 대등한 협의가 불가능하다. 지자체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 경쟁에 돌입한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전경련은 꿰뚫고 있다.

셋째, 출자총액제도 예외 인정 문제이다. 정부의 안에는 사회간접자본 투자 금액에 대한 출자총액 제한 제외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출자총액제한제를 풀지 않으면 기업의 투자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벌을 그나마 최소한으로 규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를 기업도시법안에서 예외로 규정할 경우 앞으로 재벌의 각종 규제 폐지요구를 정부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넷째, 기업의 학교와 병원 설립 허용 문제이다. 경제자유구역에서의 허용 문제와 마찬가지로 병원 및 학교를 영리법인화할 경우 보건과 교육체계는 심각한 혼란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비의 대폭 인상과 불평등한 교육, 공교육의 사유화로 인한 공공성 훼손이 우려된다.

다섯째, 건교부안에는 각종 세제혜택이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수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위의 사항과 마찬가지로 재벌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는 기업도시 특별법은 재벌 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여섯째, 환경 파괴의 문제이다. 애초 전경련은 주택가격 안정을 내세우면서 기업도시를 제의했지만, 이는 고양이가 생선의 안위를 걱정하는 꼴이다. 기업 도시 유형 중 관광레저 도시개발에 기업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상황에서 전국토의 위락시설화, 카지노화가 우려된다. 이게 과연 산업의 혁신과 성장동력 창출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일곱째, 건교부는 노동권 규제완화는 빠져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비정규직 법안을 통해 파견제 확대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어불성설이다.

조명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전경련의 기업도시법안을 비판한다. 첫째, 기업의 독점적 지배가 관철되는 도시란 새로운 산업패러다임과도 맞지 않고 지방민주주의 정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해외 기업도시 사례에 대한 전경련의 벤치마킹은 잘못되었거나 기만적으로 제시되었다. 조명래 교수에 따르면 신산업공간의 성공요인은 지자체-주민-기업간 협력 네트웍을 구축하는 데 있지, 법적용의 예외를 통한 개발이익에 있지 않다. 이는 정경유착을 통한 자본의 치외법권적 공간에 불과하다. 셋째, 전경련이 내세우는 기업도시의 공익성은 허구다. 사익의 합이 전체의 공익과 같지 않다. 넷째, 법규의 예외적용은 공동체성을 훼손한다. 다섯째 토지수용의 문제의 경우 자본주의의 근본원리인 사적소유제를 자본 스스로 부정한다. 여섯째,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고권(計劃固權)의 포기이다.

가장 우려되는 바는 전국에 걸쳐 부동산 투기가 과열되고, 전국토가 개발의 열기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기업도시법은 사실상 재벌기업이 관철한 부동산투기법과도 같다. 또한,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특별법 등 재계의 요구가 점차 관철되면서 예외법규로 인해 노동법, 교육법, 제반 관련 법규들을 통한 재벌 기업들의 규제가 사실상 무력화되는 상황이다. 예외법규의 탈예외화는 정상법규의 예외화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전면적 친자본법의 완성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노동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은 너무나도 친재벌적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부가 정부이기를 포기하고 투기장을 전면화시키는 경제 망치는 악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비생산적 투기와 투자를 생산적 투자로 이끌어야 할 노무현 정부의 경제팀은 전경련의 ‘심부름센터’가 되고 있고, 지자체들은 머슴이 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회수하자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법, FTA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공간재구조화와 신제도 등은 계급간, 계급내부 격차와 더불어(연결하여) 지역간 불균형의 심화와 자본 힘 관철의 심화를 낳고 있다. 앞으로도 문화관광부의 관광레저복합단지법(골프장, 카지노, 기업도시법과 연동)도 예정되어 있고 혁신도시 건설도 닥칠 것이다.

노동자, 민중 진영은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법에 대해서 적극적인 무력화 투쟁에 나서야 하고, 기업도시법의 국회 처리를 저지해야 할 임무가 놓여져 있다. 또한, 기꺼이 자본의 머슴으로 굴종하려는 지자체에 대해 지역 내 노동자, 민중의 적극적인 참여와 견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공간 재구조화로 인해 피해보는 광범위한 부문, 계급, 계층과 연대하여 저지투쟁에 나서고, 민중적, 진보적 지역 재구조화에 대한 대안을 시급히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협소한 지역차원의 대응이 아니라 부산, 울산, 경남 등 동남벨트 전체에 대한 비판적, 총체적 시각을 가지고 지역 노동, 민중 간 상호 협조와 소통 속에서 마련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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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4.8월 - 해석의 정치 속으로 - 누구의 기회인가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8월호(122호)

해석의 정치 속으로

- 누구의 기회인가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딱따구리의 운명?


2003년에 출간된 책이 헌책방에서 골라 낸 책처럼 철지난 책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곰곰이 시간을 따져보니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1년 6개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단다. 많은 일을 겪고 나면, 그만큼 성숙해지기 마련이라는데, 그렇다면 나와 우리 사회는 ‘성숙한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성숙한 느낌’보다는 ‘국방부 시계’에 몸을 맡긴 것 마냥 뻐근하고 쉬고 싶고, ‘소모전의 훈련’을 거친 패잔병 같은 느낌뿐이다. 마침 오늘 아침 태풍 ‘메기’까지 부산을 지나갔다.

어쨌든 많은 일이 일어나긴 일어났나 보다. 새벽 편의점을 보고 있는 아줌마도, 출근길을 서두르는 직장인도,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노무현을 포함한)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 파악까지 마스터한 것 같다. 전두환을 거쳐 김영삼까지 오로지 대필, 대독에 익숙했던 리더들이 이끌던 시대는 갔고, 바야흐로 ‘그 잘난 입’으로 ‘말발’ 세우는 DJ와 노무현 정부의 시대가 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노무현 정부의 주둥아리들은 오늘도, 어제도, 1년 전에도 떠들고 떠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떠드는 딱따구리처럼. 금속 조합원들에게 ‘귀마개’라도 얻어야 되는 건 아닌지 모를 정도다.

‘친일진상규명, 과거사 청산’을 내세우던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월간 신동아의 부친 친일부역 행위 폭로로 인해 의장직을 사퇴했다. 자신의 거취와 상관없이 과거사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친일 부역 부친과 상관없이 자신의 거짓과 뻔뻔함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았다. 그는 왜 ‘의장직’만 사퇴했을까? ‘국회의원직’도 내놓고 친일파의 후손으로서, 국민을 기만한 책임을 지고 ‘자진귀양’이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리하여 1년 6개월 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일찌감치 대권을 노리던 유력한 주자가 이렇게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전혀 신선하지 않은 이름이 된 김민석, 추미애와 더불어 ‘날개없는 추락’ 리스트에 또 한 명이 더해진 것이다.

신기남의 우스꽝스러운 사퇴 과정보다 더 희한한 것은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침략에 부역한 ‘씻을 수 없는 역사적 범죄’를 바로 잡겠다는 ‘대한민국 국가’ 전체가 제국주의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부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또는 40년이 지난 어느 날, 노무현의 자식이, 김근태의 자식이, 정동영의 자식이 또다시 우기고, 사퇴하고, 미화하는 되풀이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훗날 열린우리당의 무덤에서는 죽은 박정희의 ‘진시황병마용(秦始皇兵馬俑)’이 발굴될 것이다.


한나라닭대가리들의 반역(反歷)


참여정부라는 나무 위에서 딱따구리들이 짜증나게 떠들고 있을 때, 이에 질세라 ‘닭장’에서 떠들고 있는 날지 못하는 ‘계두(鷄頭)’들이 있었는데, 일명 ‘한나라닭’들이다. 어제도, 오늘도 조중동과 경제신문을 확성기 삼아 얼토당토 않는 ‘3류 코미디 믿거나 말거나’ 떠들고 있는 이들은 얼마 전 중앙일보 선공하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소속 ‘간첩과 사노맹 출신 조사관들’이 나라를 망치고, 한풀이를 하고 있다고 떠들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위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기 위한 ‘꺼리’였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한국의 정체성이 민주주의, 자주국가, 인간존엄 등의 가치가 아니라, 반공반북, 시장 자유, 소수독점이다. 과연 이런 집단이 한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박근혜는 배짱 좋게 일제시대 뿐 아니라 ’과거사 전체’를 다루는 ‘과거사 국회 기구’ 구성을 제안했고, 여야는 합의했다. 박근혜는 친일 부역자 뿐 아니라, 해방 후 ‘좌익’들도 다뤄야 하며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과연 ‘편파적’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중립’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한국의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중립을 운운하며 ‘대한민국의 과거’를 해석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닭짓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의 정치지형은 ‘중립’의 이름 하에 해석의 우선권을 쥐려는 쟁투과정을 요구하는데, 여기서 승리하는 것은 곧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선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와 한나라당은 승리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한국 사회를 둘러싼 지배이데올로기의 층위 변동을 내포하고 있다.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정점으로 하고 타 이데올로기를 하위수준에 배치했던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 체계는 무너졌다. 이 자리에 ‘(경제)성장이데올로기’ 또는 ‘발전이데올로기’가 ‘새로운 군주’로 등장했다. 따라서 한나라당 박근혜가 제안한 내용은 전략적 고지를 선점하는 교묘한 책략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좌익도 검증해야 한다’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 전체’와 ‘공’과(功過)에 방점이 찍힌다. 좌익이라는 과(過)는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 운동세력에게 떠넘길 것이다. 소위 ‘산업화 세대’라 일컬어지는 경제성장기의 역사적 공(功)이 친일을 포함한 과(過)를 능가할 수 있는 자신감은 박근혜식 뒤집기의 토대이다.


개미들의 과거 청산


사실, 민중운동 차원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에 대한 엄호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우리 머리 속에는 암묵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분리시키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박근혜가 ‘신기남 사건’을 돌파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우리의 무능력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우리의 공(功)은 얼마나 왜소화되었는가? 상대의 과(過)는 얼마나 드러났는가?

이참에 잘 됐다 싶기도 하다. 일제시대를 포함해 과거사를 몽땅 다루겠다고 했고, 공과(功過)를 몽땅 다루겠다니, 그렇게만 된다면 K-1 보다 더 뜨거운 ‘승부’의 격투기 장이 만들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러한 과거규명 작업에 ‘성향’을 내세워 소수만이 참여하는 자리로 왜소화시킬 것이다. 이 작업은 실은 대한민국 전체 인민들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 작업이다. 역사는 소수의 소유물이 아니며, 과거의 유산은 모두가 짊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유신시대를 사과했지만, 실은 김대중 개인이 사과를 받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박정희 독재의 ‘억압적 그림자’는 그만큼 넓고 깊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청산은 현재를 둘러싼 정치적 투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박정희 독재를 단죄하고, 민족의 이름으로 친일을 단죄하는 것은 ‘그들의 중립성’이 두려워하는 바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과거해석을 둘러싼 투쟁은 현 계급역관계의 미래다. ‘정통성 논쟁(?)’ 속에서 누가 미래를 담지할 자로 점지될 것인가? 우리인가? 그들인가?


<200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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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 2004.1월 - 소금 : 그대는 철도 여성노동자/붐 : 몰락, 그리고 공동체의 재구성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월(115호) 

소금 : 그대는 철도 여성노동자/붐(Boom): 몰락, 그리고 공동체의 재구성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1. 노동자 영상사업단 희망,『소금-철도 여성노동자 이야기』, (2003)

 

노동자 영상사업단 희망에서 제작한 영화『소금』은 철도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공교롭게도『연대와실천』이번 호에는 철도노동자의 2004년 투쟁 전망에 대한 현장통신 글이 실려있다. 과연, “관계자외 출입금지” 지역, 철도 노동자들의 일터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속에 소수자로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수색역 수송일을 맡고 있는 김○○는 4개월 전 4년만에 임신한 애를 잃었다. 수송일 중 열차를 떼어 다른 열차에 붙이는 일을 ‘입환’이라고 하는데, 달리는 기차에서 매달렸다 뛰어내렸다 하다 보면 임산부들에게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김▽▽는 민주노동당 유인물을 뿌린 것과 역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임산부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여성부 site에 올린 것 때문이었고, 조합원들과 함께 항의를 했지만, 결국 그녀는 2년 동안 정들었던 수색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역 수송일을 하는 강▲▲은 임신 7개월이다. 그녀는 현재 서무보조로 일하고 있다. 임신 후 그녀는 보건휴가를 썼다. 그녀의 상관 과장은 “병원 갈 거 아니면 근무”를 하라고 종용하고, 임신 증빙 서류와 보건휴가시 의료 진료서를 떼올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임신한 것이 죄도 아닌데, 모성을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이 외에도 모성보호를 받지 못하는 철도 여성노동자들은 수 없이 많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노동자들이 담당하던 업무에 여성노동자들이 진입했지만, 모든 업무와 작업환경, 관례는 아직 남성노동자들에게 맞춰져 있다. 열차 승무원 중 7명 중 4명이 유산을 경험했으며 1명은 하혈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철도 노동자들의 근무는 24시간 맞교대로 이루어진다(한 여성노동자는 “다른거 필요없이 3조 2교대만 하면 살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인원충원이 안되면서 자신이 쉬면 업무가 다른 동료들에게 과중되기 때문에 쉴 수도 없다. 따라서 출산을 앞두고서도 열이면 열, 일하는 도중에 병원에 실려가 출산을 한다. 노동조합과 철도청은 인원충원에 합의했지만, 4․20 합의 파기 이후 인원충원의 구체적 일정은 아직 나와 있지 않은 상태이다.

매표업무를 보고 있는 김●●은 철도에 들어오기 전에는 “매표원들이 왜 저렇게 불친절할까?”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들)는 현재 ‘불친절’을 강요당하는 작업환경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놓고 싸우고 있다. “그만둘까? 참아볼까?”

80년대 후반까지도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을 가정 내 존재나 모성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복합적 정체성(어머니이자 노동자)을 부정하지 않고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오장미경, 『여성노동운동과 시민권의 정치』).” 하지만 철도에서는, 아니 이 사회에서는 이러한 복합적 정체성은 매일매일의 갈등과 투쟁 없이는 유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을 3년이나 지나온 작년 영화제에서 한 남성 관객이 박정숙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아이를 죽여가면서까지 일을 해야하느냐”. 감독은 “남성에게 왜 일을 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여성에게도 일은 중요한 가치이자 자아 실현의 도구”라고 답변을 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되지 못하는 현실! 모성과 노동자 정체성이 충돌되지 않는 조건은 아직도 요원한 것이다. 과연 철도 여성노동자가 어머니임을 포기하고 뱃속의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엄마가 아이를 죽였다”고 말하는 자가 아이를 죽인 것은 아닐까?


감독은 철도 내 모성보호가 안 되는 현실, 철도 노조의 협상 의제설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요구가 배제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4․20 합의 때 기뻐하는 조합원들의 모습과 교차시킨다. 그러나, 그조차도 정부에 의해 파기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참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는 특정 노동조합의 문제라기보다, 노동조합운동 전체의 현 실태이며 이는 노동조합 대표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기는 부모 모두의 책임’, 이를 넘어 ‘육아는 사회의 책임’이 되어야 할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아니 도래했다. 단지 육아의 문제뿐 아니라, 교육과 주거, 문화와 노후, 정보의 자기결정권 문제 등등 모든 부문에서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괴리의 극심함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주요한 행위자로 나설 수밖에 없으며 점점 더 그러해질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제목이 달콤한 “설탕”이 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면 왜 “소금”이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감독은 “이 땅의 여성 노동자들이 꼭 필요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금’ 같다는 생각”으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꼭 슬픈 것만은 아니다. 엄마들은 철도노동자로서 일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비록 아가에게 죄인이지만, 그녀들은 ‘더 많이 아프더라도 그들에겐 눈물이고 아픔인 기차에서 희망의 기적 소리를 들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스산한 눈물만이 아니라, 언 손을 호호 불어주는 따뜻한 입김 같은 화면이 영화 속에 있다. 그녀들의 삶이 그러하기에 화면 역시 그러한 것은 당연하다.


이 영화는 2003년 7회 국제노동영화제, 2003년 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2003년 3회 인디다큐 페스티벌 국내신작전 등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노동자영상사업단 <희망>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참조: (02) 2272-8934, e-mail: tshope@jinbo.net


2. 위스퍼드 미디어,『붐(Boom, The Sound of Eviction』, (2001)

 

영화 붐(Boom)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변화와 이에 맞선 주민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이다.

미국 서부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는 무한한 흡입력을 지닌 자석과 같은 도시였다. 라틴 사람들과 유색인종들, 극빈층 예술가들과 노동자계급이 모두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둥지를 틀고, 저마다 나름대로의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도시의 활력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구성과 교우 속에서 생성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닷컴(dot com) 기업의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구역(The Mission District)에는 외지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이 도시에 몰려드는 것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지만, 문제는 그들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주민들의 ‘주거권’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1년 새에 40% 이상 집세가 오르자, 라틴 및 유색 인종, 노동계급과 그 가족들은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건물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고급주택화(gentrification)를 서둔다. 어쩔 것인가? 정들었던 이웃들과 헤어져 생활기반과 친인척이 전혀 없는 낯선 곳으로 이주해 갈 것인가? 아니면 ‘주거권’을 위협받는 사람들과 단결해 맞서 싸울 것인가? 그들 중 일부는 떠나갔지만, 많은 미션 구역 주민들은 끝없는 싸움에 돌입했다. 거주민들의 퇴거와 이주를 부동산업자들은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주거권’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면서 주민들이 목격한 바는, 원래 이 사회의 주인은 자신들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이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러한 상황을 다시 바꾸는 과정에서, 다시 말해 스스로 일구워왔던 공동체를 원상복구시키기 위한 투쟁의 흐름 속에서 축소되어 있던 ‘나’를 확대된 ‘우리’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주민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이들은 반(反)강제퇴거연합(Anti-Displacement Coalition)을 조직하고, 미션 거주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 위원회’를 장악하기 위한 위원 선출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나간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대표를 위원회 선거에서 대거 선출시킨다.

부동산업자와 미국 지배층이 공유하고 있던 시각 중 하나는, (미국판 ‘산업 성장이데올로기’인) 미국 신경제(New Economy)는 하나의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성장을 멈추자는 것, 즉 몰락을 자초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션 구역 주민들의 ‘주거권’을 위협했던 닷컴 열풍(인터넷 기업 호황)은 꺼지고, 닷컴 기업의 80%는 파산했다. 미국 신경제를 상징하는 닷컴 붐이 꺼지면서, 미션 구역에 들어와 있던 기업들도 파산과 철수를 완료한 상태이다. 그러나, 집세는 원상회복되지 않았고, 그들은 지금도 싸워 나가고 있다.

 

미국 좌파 역사학자 로버트 브레너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 봄에, 닷컴 기업들이 하나 둘씩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무너지자 주가가 하락했다. 대다수 닷컴 기업들은 단돈 1센트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뒤어어 가을과 겨울에도, 호황기에 선두를 달리던 거의 모든 유명 정보기술 기업-실패한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이 연이어 이윤이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발표함에 따라, 특히 투자자가 이윤율이 여전히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차로 상기하게 됨에 따라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이 글을 쓰던 때, 즉 2001년 중반에도 주식시장이 아직 바닥을 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로버트 브레너,『붐 앤 버블Boom & Bubble』, 아침이슬, 2002)


이 영화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역동적인 모습들이 잘 드러나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민중들의 자율적 생활 영역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 하나인 이 도시가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부문 아카데미상을 받은 바 있는 영화『하비 밀크의 시대』를 보면, 샌프란시스코라는 이 도시에서 동성애자 시의원 하비 밀크(뉴욕에는 동성애자 고등학교인 하비 밀크 고등학교가 있다)와 지역주민 운동이 어떻게 샌프란시스코를 변화시켜 나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샌프란시스코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거리 곳곳에 휘날리고 있고, 96년부터 동성애 부부 및 동거인 권리 인정을 명문화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평범한 시민 하비 밀크가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뒤, 모두가 낙선될거라 예상했던 시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되었다. 그는 당선 후, 동성애자와 노약자, 여성, 빈민의 정책을 입안하고 ‘부자도시’를 바꾸어 나갔지만, 결국 동성애 혐오주의자인 공화당 시의원에 의해 살해당한다.

 

작년 말, 샌프란시스코 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36)과 미국의 진보정당인 녹색당 후보 매트 곤잘레즈(38)가 경합을 벌였으며, 결국 뉴섬이 당선되었지만, 곤잘레즈도 47%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 붐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운동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출퇴근을 하고, 물건을 사고, 여가를 즐기는 지역에서 노동자계급과 사회적 약자들의 연합과 힘은 곧 지역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 나가고, 이 과정에서 단결력을 키우고 연대의 폭을 넓혀 나가는 과정이 샌프란시스코를 진보적 도시로 형성시킨 중추적 힘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마크 리브, 제프리 테일러, 아담스 우드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 집단 위스퍼드 미디어를 96년에 창립했다. 멕시코, 우크라이나, 우르과이, 네덜란드, 미국 전역에서 상영된 『붐 Boom』은 2002년에 서울 국제노동영화제 상영되었으며, 현재 노동자뉴스제작단이 배급을 하고 있다. 연락처: (02) 888-5123,    http://www.lnp89.org 

                                                                                                                         <200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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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 2003.12월 - 노무현 정권 1년을 되돌아보며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3.12월

노무현 정권 1년을 되돌아보며

지속되는 노동배제, 확대되는 차별, 개혁의 침몰



양솔규 / 연구소 사무국장

 

1. 깨어진 환상


2002년, 월드컵과 노사모, 자발적 참여와 젊은 애국주의라는 증폭된 블랙홀에 4천만이 빠져든 후, 이제는 정말 한국도 '원시적 시공간'을 지나 21세기로 들어선 듯한 착각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효순이․미순이 추모 촛불집회는(결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집단적 자각의 시발점으로 보였다. 절망의 깊이만큼이나 붉었던 장밋빛 희망에 찬 전망이 2003년 우리 앞길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기대는 처참하게 추락하고, 다시 거리 곳곳에, 뇌리 구석에 움크리고 있던 산산조각 난 절망의 파편들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의 나이든 노동자 배달호가 자본측의 손배 가압류와 노조탄압에 대한 항의로 분신자살하면서, 애초부터 변동 없이 그대로이던, 그러나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전근대적 노동통제 관행’과 ‘노동배제의 에토스(ethos)’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노동의 ‘죽음의 정치’는 해결되었지만, 이들을 추모하는 마음은 계급적 차단막에 가려져 있다. 모두가 보지 않으려 하지만 언제나 존재하고 있던 그 사실은 여전히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아니 노동배제적 시선은 ‘지속되는 배제’를 피해 버린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일년이 되어 간다. 지금 현재,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을 청와대에 입성시킨 대통령 핵심 측근 박지원, 권노갑은 구속․수감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IMF 경제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다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빛 좋은 숫자놀음에 불과했고, 건실한 경제구조보다는 재벌들의 독점 강화, 빈곤층의 증가와 빈부격차의 심화, 여전히 지속된 온갖 추잡한 비자금 스캔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래도 DJ는 통일문제 하나는 잘했잖아”, “경제는 어려워도, 남북정상회담은 대단한 성과이다”라고 말이다. 국민의 정부가 통일, 외교분야에 있어서 얼마나 큰 성과를 냈는지 의아하지만, 민심은 대체로 이러한 견해로 수렴되는 듯 하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가 지난 후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억측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추세로 봐서는 이런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노무현은 노동문제 하나는 개판이었지”, “경제도 어려운데, 노동정책은 정말 대단한 과오였다”고.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든, 반대하는 입장이든,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필자 자신을 포함해 다수가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을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노무현 정권은 명확한 정책기조를 세워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노무현 정권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화된 노동자와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 자본의 입장을 초월한 객관적 중립자로서 노동정책을 수립했는가?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계급해방적 요구’를 내걸고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과격한 투쟁노선’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인가? 극한적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노무현 정권의 복안은 있는 것인가?

 


2. ‘노동죽이기’ 카르텔 형성과 ‘이회창 없는 이회창 체제’의 성립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총은 노무현 후보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노동계의 많은 이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다수는 ‘전통적인 비판적지지’ 정서와 이에 기반한 분석, 그리고 실용적인 득실에 기대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비공식적’이지만 가시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비밀이다. 이러한 상황을 빚어낸 논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권영길은 당선될 수 없다, 둘째,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당의 상대적 개혁성, 민주당 내부에서의 노무현 후보의 상대적 개혁성, 80년대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의 성장을 노무현 후보가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의식, 셋째,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한 공포감, 넷째, 위와 같은 논리의 귀결로서 점진적 개혁(노사중립적 입장)의 필연성(적어도 높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요는 노무현 후보의 정치적 기반과 전략적 선택지에 대한 고려 없이 감정적인 호감이 밑도 끝도 없이 증폭된 결과였다.  


인수위 시절 차별 시정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기대가 ‘과학적 기대’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고, 두산중공업 배달호 분신사망 처리과정, 철도노조, 화물연대 1차 파업에 대한 처리과정에서 뭔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유연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3년 5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방문에는 많은 재계인사들이 대동했으며 일련의 ‘동거동락’ 이후 재계-정부의 관계는 데탕트로 접어들었다. 또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사측의 노조탄압에 항의해 목매 자결한 이후인 11월 5일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편집국장들과 화해의 장을 마련하면서 정부-재계-언론의 ‘노동죽이기’ 카르텔을 형성했다.  


돌이켜 보건데, 노무현 정부 초기의 친노(親勞)적(?) 행보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배제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명분쌓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철도노조와 철도청(사실상 교섭의 실질적 주체는 정부였다)이 합의한 4.20 합의에는 손배 가압류에 대한 취하와 부족 인력 충원 및 민영화 방안 배제, 철도개혁에 철도노조 등 이해당사자와의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 사항은 정부 자신에 의해 파기되었고, 올 한 해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손배 가압류는 법원의 기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청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손배 가압류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매우 유력한 노동통제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학생들의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NEIS에 대해 전교조와 교육부가 추진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이것 역시 정부에 의해 파기되었다. 급기야 법원에서 NEIS CD 제작배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육부는 그대로 강행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16일 NEIS의 인권 3개영역은 별도의 시스템으로 관리하기로 하고, 학생 신상정보의 수집 관리주체는 학교장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토대로 최종방침을 밝혔고, 전교조도 이를 수용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교육부의 효율성과 경제성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고 이러한 시각이 일소되지 않는 속에서 또 다른 문제는 잠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노동쟁점의 전개과정에서 원칙과 대화, 참여와 합의정신은 배격되었고 ‘합리적인 21세기 비전’은 소멸되었다.

하반기, 노무현 정부는 이주노동자 추방, 손배가압류에 대한 방치, 공공부문의 노사합의를 파기한 후 독단적 밀어붙이기를 계속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근거없는 이데올로기 유포를 통해 전(全)사회적 노동배제 질서를 내면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노무현 대통령과 개혁세력이 정부 내 역학관계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소위 ‘노빠’(노무현 빠xx)들은 노무현 vs 조중동, 노무현 vs 한나라당, 노무현 vs 전경련 식으로 현재의 국면을 극명한 이미지로 정식화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미시적인 지배권력 내부 관계를 살피는데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거시적인 지배권력간 이해공유와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것이다.  

'노빠'들과 ‘열린당’의 총선출격 386 돌격대들의 노동문제에 대한 의도적 배제는 노무현 정부의 약한 고리인 노동문제가 담론화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조중동과 같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이들은 인기 없는 경제정책(정리해고, 공기업 사유화 등등)을 ‘용감하게’ 추진한 김대중 정부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를 계승하면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구조개편 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를 더 밀고 나가면 ‘인기없는 정책이 국민경제를 살찌’우기에 현재의 노무현 지지도의 하락은 곧 올바른 정책의 올곧은 추진이며, 이것이 증명되는 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으로 등극한다는 순진무구한 그러나 충성스러운 꿈을 꾸고 있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있어서도 ‘옳다고 믿으면 무모할 정도로 고집을 피우는’ 노무현식 정치 때문에 ‘노무현 지지하기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정작 파병문제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파병반대-노무현지지 철회자들에 대해 ‘조중동 추종자’라는 얼토당토 않는 레떼르를 붙인다. 파병반대자들은 조중동의 파병찬성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면서도, 조중동의 파병관련 정보는 백퍼센트 믿는다는 것이다. 후세인이 체포되면서 상황은 일사천리로 바뀌고 있다. 물론 국내 정세에 따라 시기는 가변적이지만, 노무현 정권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하워드 딘(Howard Dean)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부시 정권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라도 파병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결정할 경우, 과연 노빠들은 어떤 논리를 가져올 것인지 심히 기대된다.

(이데올로그ideologue는 못되나 훌륭한 프로파간다들이다) 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이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조중동의 정책적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노동문제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가리워지고, 법률상의 권리인 파업권은 상황에 따라 유보될 수 있는 ‘선택적 옵션’에 불과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애송이 선동주의자들인 이들의 시각을 법조인 출신 통수권자가 공유하고 있다는 아니,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아마추어리즘에 빠져있다.  

3. 얼어붙은 노동배제, 강요된 동투(冬鬪)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 ‘대기업 이기주의’를 비난하고, ‘정규직에 의한 비정규직의 차별’을 비난했지만, 노동현실은 이와 판이하게 다르다. 대통령은 정확하게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왜곡된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 언론들은 금속산업의 주5일제 근무제 실시 합의와 이에 이은 현대자동차 노사합의에 대해 끊임없이 왜곡하면서 이데올로기적 타격을 가했다. 논란이 끝난 후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했지만 이미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후였고, 어떠한 진실도 통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합의안에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조중동은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논의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조중동 언론은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연봉이 5,000만원이 넘는다고 왜곡하였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대 재벌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였으며, ‘민노총은 이 나라를 거덜낼 셈인가?’라는 사설과, ‘폭력시위 나라가 멍든다’는 시리즈를 내고 있다. 정작 불안을 선동하는 것은 극우매체 조중동이다. 전경련은 현대자동차 노사 협상에 사사건건 끼어 들어 노사합의를 방해하려 하였고, 협상 타결에 임박해서 현대자동차 사용자측은 오히려 (삼성 출신이 부회장으로 있던)전경련에게 볼멘 소리를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제반 조건의 격차를 해소해 ‘사회적 통합’(노무현 정부의 국정목표이기도 하다)을 이루어야 할 노무현 정부는 불구화된 주5일 근무제와 개악된 근로기준법을 통과시켜 노동 내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노사 자치주의’라는 이름아래 정부의 자기 역할을 방기하면서 노사관계의 제도화를 거부하고 약육강식의 자본 위주 게임을 관장하고 있다.  


참여정부 초기,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네덜란드 모델’을 현 정부의 노사관계 모델로 상정했지만, ‘네덜란드 모델’이 사회적 차별 해소를 전제로 한 모델이라는 점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참여정부에 의해 제시된 노사관계 로드맵이 노리는 것은 ‘노동 내부 분할 심화를 통한 이주노동자, 청년 실업자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철저한 방기’, ‘자본 주도 노동정책의 진전’,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 노동자의 대(對) 사회적 발언력의 철저한 봉쇄’이다. 참여정부의 노동통제전략은 이데올로기적 통제 속에, 물리적 통제를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노태우 정권 이후의 통제전략과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노동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으며 따라서 분신, 투신 등 극단적인 자기 희생을 통한 ‘죽음의 정치’가 불과 참여정부 1년 만에 현상하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 운송노동자,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이어졌고, 개별적인 타결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안전장치는 하나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강제출국과 단속에 직면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 역시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겨울 들어, 이름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지하철역에서, 공장에서, 송환되던 배에서, 화장실에서, 은신처에서 동사(凍死)하고, 목을 매고, 바다로 뛰어내리고, 절단기에 잘리고, 압사 당하며 이국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명동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농성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보다 더 많은 노동자 구속을 양산했던 김영삼 정부, 그보다 더 심한 노동자 구속을 양산했던 김대중 정부... 이보다 더 많은 노동자를 구속하는 노무현 정부는 과연 민주적 개혁분파 정부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극좌 혁명적 파괴주의’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는가? 대부분의 노동 관련 학자들은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에서 실리적 노선으로 옮겨오는 것을 불가역적 추세로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은 노동의 선택지를 좁히는 노동배제적 노동정책으로 인해 이러한 흐름은 아직도 가로막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재벌과의 데탕트 이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불구화된 주5일 근무제는 전경련을 비롯한 자본가단체들과 한나라당의 찬성 속에서 통과되었다. 민주노총은 대다수 평범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과제였던 온전한 주5일 근무제를 주장했지만, 노동배제적 담론 지형과 왜곡, 날조 선전선동, 전통적인 성장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론의 몰매를 홀로 감수해야 했다.  


2003년 12월 5일,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연구위원회(위원장 임종률․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9월 발표했던 중간보고서에 이어 최종보고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핵심적 내용을 보면, 최종안은 '공익사업'의 범위를 사회보험업무 등 공공서비스와 열(난방)․증기 공급사업까지 확대했으며, 부당해고와 관련해선 상습적일 경우에만 처벌토록 했다.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이 60일에서 30일로 줄어들었고,  '파업예고기간'(7일)이 신설되었다. 쟁의행위의 합법, 불법과 관계없이 직장폐쇄가 가능해졌다. 올 한해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던 손배 가압류와 관련해서는 가압류 시 노조 존립 및 조합원 생계 보장을 고려한다고 했지만, 그 선은 명확하지 않으며 힘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노조 활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살아있는 노동력, 죽은 노동조합은 여전히 가능하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11월, 전국 6,500명의 노조위원장 및 지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동부와 참여정부가 노동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 시간에도 ‘죽음의 정치’는 풀리지 않았고, 정부에 의한 노동조합 손배 가압류는 풀리지 않았으며, NEIS 추진을 고집했고, KTF, 두산중공업 등에서 대규모 명예퇴직이 이루어졌다. 졸업시즌을 앞두고 청년 실업자의 대량양산이 코앞에 닥쳤고, 여성 노동자들의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바뀌었다. 수구보수 대중선동지 조중동은 노동을 코너에 몰아넣었고 정부는 차별 해소에 대한 공약과 국정지표도 포기한 지 오래다.  


작년 대선 당시, 노무현 광신도들은 노동진영을 향해 “표를 구걸”했다. 노무현에게 표를 던지지 않으면 이회창이 당선되며 이는 곧 민주주의의 후퇴와 파시즘의 출현 가능성이 예상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지금 일부 사회단체(문화연대)에서는 “노무현 파시즘”이라는 파격적(?)인 헌사를 했고, 부안사태를 “제2의 80년 광주”로 비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 1년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민중탄압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이름도 희한한 ‘이회창 없는 이회창 체제’가 현 노무현 체제이며, 사회통합적 내용 없는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이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다. 빈곤한 자, 노동하는 자, 사회적 소수자의 참여 없는(배제하는) 참여 정부가 노무현 정부이다 


4. 마치며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정책에 대한 이러한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시기상조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국적 자본분파와 국내 재벌, 수구언론은 대선 시기부터 노무현 정부의 행보를 틀 지워져 왔기 때문이며, 노무현 정부 1년의 과정은 대통령과 추종세력의 ‘시각교정’의 트레이닝 코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레이닝의 스파링 파트너는 물론 조중동과 재계, 한나라당과 부시정부였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골격은 이후에도 크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노동이 ‘약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급내적 정치와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민주주의적 시민권으로서의 노동권을 방어하고 사회적 발언력을 확장하면서 다양한 개입을 통해 변화의 이니셔티브를 획득한다면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일정한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최대치라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12월 19일 대선 1주년을 기념해 노무현 친위대(서프라이즈, 노사모, 국민의 힘, 라디오21)들이 여의도에 모여 당시를 되새기는(리멤버) 축제를 연다고 한다. 김두관의 축하메시지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고, 청와대에서도 참석을 고려한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 연달아 작년 대선 후보 이회창과 현 대통령 노무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내일은 제1야당 한나라당 최병렬의 기자회견이 있다고 한다. 정세에 민감해야 할 나조차도 3일 연속 이들의 기자회견을 듣자니 구역질이 나오는데, 하물며 바쁘게 땀흘리며 생계를 꾸려 가는 우리네 이웃들은 오죽이나 정치에 신물이 날까? 10억이든, 100억이든, 1000억이든 그 공감되지 않는 숫자에 얼마나 무감각한가?

2004년은 멀지 않았으나 아직 봄은 우리에게 멀다.



<200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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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3.12월 -벽을 넘은 시선, 세 가지 보고서

 

리뷰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3년 12월호
http://www.ynlabor.net

벽을 넘은 시선, 세 가지 보고서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1. 민주노총,『동남아 노동운동 정세보고서』, (2003.11.)



이 보고서에는 아시아 4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노동운동의 현황과 현지 조사 결과들이 기록되어 있고, 나라별 보고와는 별도로, 세계화 과정에서의 아시아 여성들의 상태,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이 실려 있다.


이들의 사회적 조건과 운동의 상태를 단순히 과거 우리의 모습으로 환원시키기 쉽지만, 이 보고서를 읽다 보면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들 나라의 투쟁의 역사 또한 지난한 과정이었으며, 필리핀은 우리에게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조직화 전략', '노동운동과 여타운동의 연대' 등등에 대해 이들 역시 깊은 고민 과정에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일상 활동 속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은 단지 특수한 조건에 있는 '좁고', '특수한' 고민거리가 아니다. 물론 상황의 불일치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불일치 만큼이나 전세계적 세계화의 물결이 휩쓸고 있는 현재, 고민꺼리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노동운동이 현재 아시아의 노동자 연대를 선구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일까? 이러한 초보적인 보고서가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보더라도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원 여러분께 일독을 권한다.



2. 국제민주연대,『해외한국기업 인권현황백서』, (2003.10.)



앞의 보고서가 '바다 건너'에 사는 '노동형제'들의 운동에 대한 것이었다면, 지금 소개하는 보고서는 '이 땅'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이 바다 건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자료는 참여연대 해외투자기업 감시위원회에서,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로 전환되었다가 독립한 국제민주연대가 7년 간의 활동을 총결산한 성과물이다. 우리 노동운동이 아직 이러한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에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한 노고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해외진출 한국기업들은 업종별로 보자면 제조업이 가장 높은데, 이 중에서도 중소기업으로 이루어진 섬유의복업종과 대기업으로 이루어진 전자통신, 기계업종이 주된 분야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한국기업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에서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권위주의적 노동통제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지 미적응'의 문제는 자본과 국가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지 노동자에 대한 노동, 인권탄압이라고 할 수 있다. "더럽게 돈 벌려거든 우리나라를 떠나라". 이러한 외침은 필리핀 까비떼 수출자유지역에서, 멕시코 마낄라도라까지 한국 기업들이 있는 곳 어느 곳에서든 터져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일어난 마산수출자유지역의 한국씨티즌 폐업 투쟁이나, 마산의 TC, 수미다 등의 싸움과 흡사한 양상들이 이들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지 경찰과 결탁해 노동운동에 앞장 선 사람들에 대해 해고하고 구속하고 체포하는 모습,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하는 모습은 세계 수출자유지역의 일반적 현상이며, 70-80년대 한국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전근대적 노동통제 양식과 태도를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은 '비동시성의 동시성' 혹은 '21세기의 드라큐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보고가 바다 건너 이야기일 수만은 없는 것은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 많은 초국적 자본이 진출했으며, 특히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면서 이에 대한 노동의 대응이 시급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3. 금융노조·한국비정규노동센터,『금융산업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와 조직화방안』, (2003.11.)


금융산업의 종사자 수는 97년 말 317,613명에서 2001년 말, 218,726명으로 31%가 감소되었고, 2002년 12월에서 2003년 6월까지 불과 6개월 사이에 정규직은 4.6%(4,586명) 감소한 반면, 비정규직은 22.1%(7,395명)나 증가했다. 이러한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 대해 노동조합은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만을 조직대상으로 한 활동을 벌여나갔으나, 각 금융기관과의 '비정규직 비율 제한' 합의조항은 점차 무력화되어 갔다.


금융노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금융산업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와 조직화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이 보고서에는 비정규직 확대의 배경, 은행산업 구조조정 과정과 목표, 방식, 내부재편, 노동시장 이중화 전략, 금융노조 비정규 규모, 심층 실태 조사,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 원칙, 조직화와 차별해소를 위한 과제, 비정규직 조직화 전략, 비정규직 관련 단체교섭 및 투쟁 방향, 비정규직 설문 조사 등 매우 세밀한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12월 2일, 금융노조는 지부대표자회의를 통해 비정규직 특별지부와 기존의 지부 내 비정규직조합원 조직을(통합지부) 동시에  받기로 결의했다. 이러한 사업추진 방향은 위의 보고서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한 결과물이다.


<자료출처>


1. 민주노총,『동남아 노동운동 정세보고서』, 2003.11.
출처:
http://www.nodong.org 자료실에 일부 업로드.
2. 국제민주연대,『해외한국기업 인권현황백서』, 2003.10.
출처:
http://www.khis.or.kr
3. 금융노조·한국비정규노동센터,『금융산업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와 조직화방안』, 2003.11.
출처:
http://211.58.254.162/kfiunion/index.htm [비정규마당]

<2003. 12. 16>


자본과 정권의 거센 노동탄압에 맞선 잇단 자결과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둔 시점에, 서울에서는 아시아노조 연대회의가 11월 5일부터 3일 간 열렸다. 이 행사에 참여한 10개국 24명의 아시아 노동지도자들은 행사 마지막날이었던 7일, 노동탄압을 중단할 것을 한국정부에게 촉구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아시아 노동지도자들을 초청해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러한 행사를 기획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동남아 노동운동 정세보고서』가 있었다. 이 보고서는 그동안 소홀했던 동남아시아 노동운동을 단지 '소개'하기 위한 목표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이후 민주노총이 아시아지역의 '어떤' 노조들과 '연대'를 형성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가라는 실천적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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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3.8월 주5일근무제 개악안과 노동운동의 미래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3년 8월호(110호)

주5일근무제 개악안과 노동운동의 미래




양솔규 / 연구소 사무국장


 

우리도 이제 노동 일은 않을 테야 일해 봐야 보람도 없는 그런 일은 않을 테야

겨우 연명할 만큼 주면서, 생각할 틈조차 안 주다니, 진절머리가 난다네.

우리도 햇볕을 보고 싶다네. 꽃 냄새도 맡아 보고 싶네.

하느님이 내려 주신 축복인데 우린들 아니 볼 수 없다네.

우리는 여덟 시간만 일하려네. 조선소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점포에서

우리는 힘을 길러 왔다네. 이제 우리 여덟 시간만 일하세. 여덟 시간은 휴식하고, 남은 여덟 시간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세.

- 188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노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노동운동이야기>(책갈피/1996)

 


“노동청장님. 우리는 잔업수당을 받지 않고 좀더 가난하게 살지언정 12시간 철야노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좀더 일해서 좀더 벌어야 한다고 걱정하실 지 모르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몸이 너무 지쳐서 더 이상 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잊지 않을 것이다. 해태제과에서 있었던 8시간 노동제의 투쟁과정을. 그리고 후세에게 전할 것이다. 미국의 8시간 노동제운동보다는 100년이나 뒤지기는 했지만. 노동운동만세!

- 70~80년대 해태제과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 투쟁기록

<8시간 노동을 위하여>(풀빛/1984)

 


자본은 오늘도, 어제도 기업할 수 없는 이 나라의 조건에 대해서 한탄을 내뱉는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거듭된 공언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끊임없이 불만을 생산하고 있다. 자본의 나팔수 조중동과 경제신문들은 선동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본과 조중동 찌라시의 정치적 전위인 한나라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마련한 주5일제 근무 관련 근로기준법안에 찬성표를 던진단다. 노사정위 협상이 결렬되자 자본은 정부안을 받아들인다고 발표했고, 한나라당 역시 그동안의 태도를 바꿨다. 노무현 정부가 ‘친노동 성향’이기 때문에 근기법에는 노동계의 입장이 배려되어 있다면서도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친노동적인 근기법을 제정하려는 노무현 정부는 노동당 정권인가? 한나라당은 노동당인가? 근기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총파업도 불사하겠단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양대 노총은 그렇다면 반노동적인 세력들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늘(21일)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근기법 개악안은 26일 법사위 심의를 거쳐, 28일 본회의에 상정, 처리될 예정이다.

 


자본의 엄살은 그렇다 치자. 마음놓고 노동할 수 없는 이 나라의 조건은 어떤가? 산재를 당하고도 고용불안 때문에 입도 벙긋 못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 장시간 노동에 부서질 대로 부서진 몸뚱아리 팔아 임금 좀 챙겼다고 여론린치를 당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최저임금제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후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아니라 임금하락의 지렛대로 사용하는 놀라운 창조력, 배달호 열사 이후에도 계속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와 조합비 가압류......

누가 이러한 상황에서 이 나라에서 노동하고 싶어하겠는가?

해외로 떠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어느 기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20, 30세대들의 50%, 51%가 이러한 질문에, 주저 없이 “떠나겠다”고 답했고, 실제 많은 젊은이들이 감행하고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노동의 탈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되묻지 마시라. ‘세상을 바꿀 생각은 안하고 혼자 떠나면 되나?’, ‘모두가 떠날 수는 없다’ 등등. 어쩌겠는가? 지옥 같은 ‘절간’을 중이 떠나겠다는데 말이다. 떠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기 전에 먼저 ‘절간’이 어떻게 변할지를 살펴보는 게 순서에 맞겠다.

 

국민을 떠나게 하는 국회


8월 21일 국회 환노위에서 통과된 노동법 개악안과 노동계 단일 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① <연월차 휴가수당 폐지>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그 취지가 있는 만큼 이러한 정부안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중소영세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전체 임금총액 중 연월차 휴가수당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들에게 더 큰 불이익을 줄 것이다.

② <연장근로시간 확대(현행 12시간→3년간 16시간)>는 과연 정부안이 노동시간단축안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3년간 최초 4시간 할증율 25%로 삭감되는 안은 더욱더 노동자들이 총액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연장근로에 의존하는 경향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실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을 것이다. 또한, 주당 연장근로시간은 확대되고, 총근로시간은 56시간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③ <생리휴가 폐지로 인해 여성노동자들>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연월차 휴가 10일, 법정공휴일 4일에 이어 생리휴가 12일이 줄어들 경우, 여성노동자의 휴일 수는 늘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깎이는 임금총액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무급생리휴가를 청구하지 않고 일하게 될 것이다.

④ 정부안의 <주5일근무제 시행시기>를 보면, 총 6단계로 2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2011년 내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다. 정부안에서는 도입 최초 시기가 2003년 7월 1일이었던 반면, 국회환노위를 통과하면서 1년이 추가로 유예(2004. 7)되었다.

이렇게 될 경우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분할선을 더욱 굳히는 효과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특히 영세중소 사업장들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일주일 중 몇 일을 일하느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표식이 될 것이다. 이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대(對)사회적 발언권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노-노간 분할을 뚜렷하게 해 계급단결을 가로막을 것이다.

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서비스, 유통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영세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주당 노동시간한도가 평균 48시간 정도이다.

⑥ <선택적 보상휴가제>는 노사 서면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편화 되어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강제사항이나 다름없다.

⑦ <기존단협 갱신 의무 조항>은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금속노조나, 현대자동차, 금융노조 등에도 불리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 차원에서 세심한 전술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표1> 국회환노위 통과 정부 개악안(2003.8.21)

내 용

현 행

정부 안

노동계 단일 안

법정 근로시간(제49조 제1항)

1주 44시간

1주 40시간

1주 40시간

내용

현 행

정부 안

노동계 단일 안

연월차휴가수당

폐지(제59조의2 신설)

신설

사용자의 휴가사용촉구에도 불구하고 휴가미사용시 사용자의 보상의무면제, 귀책사유해제

도입 반대

연장근로확대 및 할증율 인하(부칙)

신설

3년간 한시적으로 주12시간에서 16시간으로 한도 상향조정

최초 4시간 할증율 25%

도입 반대

생리휴가 무급화(제71조)

월1일의 유급생리휴가

청구할 경우 무급휴가

현행유지

시행시기(부칙)

없음

① 공공부문, 금융․보험, 1000인 이상 사업장(2004.7)

② 300인 이상 (2005.7.1.)

③ 100인 이상 (2006.7.1.)

④ 50인 이상 (2007.7.1)

⑤ 20인 이상 (2008.7.1.)

⑥ 20인 미만 (2011년내, 대통령령)

① 공공부문, 금융․보험,

1,000인 이상 사업장

(공포 후 3월 경과하는 날)

② 300인 이상 (2004. 7. 1)

③ 300인 미만 (2005. 7. 1)

연월차유급휴가

(57조, 59조 제1,2항)

월 1일의 유급월차휴가

1년 개근자 10일, 9할 이상 출근자 8일 유급연차휴가

매1년당 1일 가산

총연월차휴가일수 32일을 초과할 경우 초과일수에 대해 통상임금 지급 대체 가능

연월차휴가 통합

1년간 8할이상 출근자 15일 유급휴가

매2년당 1일 추가(최초1년은 제외)

총휴가일수 25일 한도

1년 미만자 1월 개근시 1일의 유급휴가(이때의 월 1일 유급휴가는 1년이상 2년미만자의  연차휴가에 포함)

연월차휴가 통합

1년간 8할 이상 출근자 18일 유급휴가

매1년당 1일 가산

총휴가일수 27일 한도

1년 미만자 1월당 1.5일 유급휴가

탄력적(변형) 근로시간제

(제50조 제2항)

1개월 단위

1주 56시간 한도

1일 12시간 한도

3개월 단위

1주 52시간 한도

1일 12시간 한도

3개월 단위

1주 48시간 한도

1일 10시간 한도

선택적 보상휴가제(제55조의 2 신설)

신설

연장․야간․휴일근로시 임금대신 휴가부여

반대


내용

현 행

정부 안

노동계 단일 안

임금보전

(부칙)

신설

법 시행으로 인하여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당 통상임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함

기준근로시간 단축분은 기본급으로 보전

개정법 시행시 연월차휴가일수 축소에 따라 단축되는 연월차휴가일수에 대한 수당을 퇴직 시까지 매년 총액임금 기준으로 보전

기존 단협변경

(부칙)

신설

기존 단협 및 취업규칙 갱신노력의무 명시

반대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제58조)

운수업, 물품판매 및 보관업 등 특수업종에 대해 연장근로, 휴게시간 한도 초과 허용

 

폐지

* 판매서비스업, 운수업의 장시간노동해소를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

연소자, 유해위험사업장 근로시간

(제67, 46조)

- 연소자 근로시간 1일 7시간, 1주 42시간 한도

- 유해위험사업장 연장근로한도 1일 6시간 1주 34시간

- 연소자 근로시간 1주 7시간, 1주 40시간 한도

- 현행

- 연소자 근로시간 1일 7시간, 1주 35시간 한도

- 유해위험사업장 연장근로한도 1일 6시간 1주 30시간

법정공휴일 축소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규정)

현행 17일(노동절 포함)

* 4일 축소(토요일과 겹치도록 일자 변경조정)

반대


현재로서는 근기법 개악안을 둘러싼 투쟁의 결말을 쉽사리 예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간에 ‘주5일제 투쟁’은 당분간 노동운동의 중요한 이슈로 계속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운동이 껴안고 가야 할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서술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첫째, 조합원들의 실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노동조합의 통제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임금보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임금보전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조합원들이 끊임없이 물질적 이익 추구를 한다면 이를 노동조합이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 노동시간, 각종 수당과 복지의 차별을 철폐하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고 관철시켜 나가야 한다. 철저하게 평등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하더라도, 노사정의 각축 속에서는 일정한 후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처음부터 확고한 전선을 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셋째, 근기법 개악안이 통과되든, 재협상을 통해 다소 나은 안이 통과되든, 근기법의 노동시간 단축 효과와 일자리 나누기 효과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를 통해 거시적 노동공급정책에 대해 정교한 협상안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주5일제를 레저산업 및 서비스업 확대, 일상생활 세계의 상품화의 진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자본측의 의도와는 반대로, 노동의 ‘삶의 질’ 향상 방안을 마련해 실천해 나가고, 이를 통해 사회를 정상화(正常化)시키는 데 노동운동이 선도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주5일제 투쟁을 통해 노동의 조직력을 확대하고, 미조직 대중들에 대한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최근의 자본과 언론이 쏟아 붓고 있는 여론 조작 선동을 돌파해 나가는 주요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노동시간 단축 및 개정 투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악안이 시행된다면, 첫째로, 주5일근무제의 도입 의미인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이는 논란의 와중에 드러난 주5일근무제를 바라보는 자본과 정부의 편향된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부정 등).

둘째로, 임금보전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안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삭감은 물론 전반적인 근로조건이 후퇴하였다. 사실상 임금보전 문구는 도입과 더불어 사문화될 것이다.

셋째로, 근기법 개악안을 통해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와 더불어 노동 내부의 분할선이 더욱 심화되면서 ‘개악의 효과’가 차별적으로 적용될 것이 분명하다. 여성/남성, 중소/대기업, 비정규/정규직 분할이 진행되면서 조직 노동의 약화와 미조직 노동의 파편화를 동시에 꾀하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쟁점을 제기하던 노무현 정부의 인수위 시절, 또는 초기의 발언들은 한낱 립서비스였던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외국으로 노동력 탈출을 감행하던가, 귀농을 택하던가, 둘 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결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해 싸우던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200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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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 2003.7월(109호) 네덜란드 노사관계 모델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 연대와실천> 2003년 7월호(109호)

네덜란드 노사관계 모델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사관계 모델로 네덜란드 모델이 거론되면서 자본과 노동, 보수언론과 여야 정당 등에서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제기되는 방식이 네덜란드 모델의 ‘끈질긴 사회적 주체간 대화와 합의의 문화’와는 배치되는 다소 뜬금 없고 즉흥적인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과연 네덜란드 모델을 도입하려는 자세가 노무현 정부에게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사관계 개혁’의 방향에 대한 본격적인 첫 논란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글에서는 네덜란드 노사관계 모델의 특징을 간략히 언급하고, 논란의 과정, 한국에서의 네덜란드 모델의 수용의 불가능성, 노동운동계에 주는 함의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네덜란드 노사관계 모델의 특징


‘네덜란드 모델’ 뿐 아니라, 새만금 간척사업, 네이스를 둘러싼 논쟁들 등 거의 모든 사안에 있어 노무현 정부는 상반되는 진영에게 각각 거부되는 기이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네덜란드 모델에 대해 조선일보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인용해 네덜란드 모델의 사망을 선고한다(2003.7.9). 한겨레 21의 기사에서 윤진호 교수는 네덜란드 노사관계 이면엔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과 임금억제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상반된 두 입장 모두 ‘네덜란드 모델’이 80-90년대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었는지는 모르나, 지금 현재는 쇠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은 이미 2002년 1월, 네덜란드 모델에 대한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KBS 역시 1월,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에 대한 리포트를 내보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상태에서 이 모델의 도입 가능성은 점칠 수 없는 상태였고, 간헐적으로 소개된 네덜란드 모델은 수면 밑으로 잠복하게 되었었다. 2003년 노무현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네덜란드 모델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레시안은 네덜란드 노사관계 모델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제시했다.


1.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임금억제

2.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증가, 임시직 증가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

3. 공공지출의 삭감

4. 독일 마르크에 대한 길더의 고정환율제

5. 직접적인 직업 창출 등 실업대책


이러한 네덜란드 노사관계 모델의 첫 출발점은 70년대의 불황과 79-80년 2차 오일쇼크로 인한 최악의 경제 침체에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진 82년 ‘바세나(Wassenaar Agreement) 협약’이었다. 이 협약에서 노사 양측은 임금과 고용을 교환하였고, 임금하락-생산성 증대-노동유연성 강화-신규 일자리 창출-채용이라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의 협정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요구는 제외되었다.

두 번째의 계기는 93년에, 88-91년 사이의 국제경제의 호황이 다시 92-94년의 불황으로 전환되면서 이루어진다. ‘새로운 경로’(New Course)라 일컬어지는 협약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유형의 다양화, 세금 감축 등이 논의되었고 노동시간 단축의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노동유형의 다양화라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후, 노동시간은 96년 교섭의제에서 다시 나타났다. 현재는 전체의 60%가 단체협약으로 주 36시간을 체결하고 있고 나머지 40%는 주 38시간을 체결하고 있다. 연간노동시간은 1983년 1,530시간, 90년 1,433시간, 96년 1,372시간으로 단축되었는데, 이는 독일의 1,522시간(96년), 프랑스의 1,529시간(96년), 미국의 1,951시간(96년)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이다.(OECD, Employment Outlook, 1998)


<각국의 근로시간 변동 추이(OECD, 1997)>

 

1973

1979

1983

1990

1996

네덜란드

1,724

1,591

1,530

1,433

1,372

독일

1,804

1,699

1,686

1,562

1,508

프랑스

1,771

1,667

1,558

1,539

1,529

영국

1,929

1,821

1,719

1,773

1,732

미국

1,896

1,884

1,866

1,936

1,951


임금억제는 80년에 시작되어 15년 이상 지속되었다.  92-94년 불황기를 거치면서 사용자들은 임금동결 캠페인을 벌였다. 79-97년 사이에 노동생산성은 36%가 오른 반면 시간당 실질 임금은 6%만이 올랐을 뿐이다. 90년대 초반 호황이 불황으로 역전되면서 정부는 임금동결 경고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냈고, 노사는 이러한 일련의 경고에 화답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안정을 또 다시 교환하게 된다.

79년-97년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28% 증가했다. 89년 이후 임시직은 급격히 증가했고, 노동자의 1/3을 임시직이 차지하게 되었다. 기혼 여성 노동자들은 2차 수입을 위해 대거 비정규 노동시장에 참여했다. 파트타임 노동자 비율은 83년 21%에서 96년 38%로 늘어났다. 하지만, 네덜란드 파트타임직의 상당수는 정규직이고, 정부와 노조는 파트타임 노동자에 대한 권리와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완비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93-95년 동안 법적 사회급부는 동결되었고, 87년 실업자 급부 시스템은 급부 수준을 낮추고 자격을 강화하는 동시에 남성에 대한 우대를 제거했다. 몇몇 사회부조 시스템은 민간 보험업자에게 개방되었다.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83년 노동력의 11.2%에서 94년 7.6%, 95년 6.9%, 96년 6.3%, 97년 5.2%로 낮아졌다. 94-98년 동안 정부는 35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공언했다. 83년부터 90년 사이에 7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는데, 상대적으로 인구 중 젊은 연령대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의 대부분은 신규노동시장 진입자들의 몫이고, 대부분이 파트타임직이며, 장기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노동자 부부 사이에는 ‘1.5 일자리 모델’이 번성하고 있다.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에서 ‘네덜란드 모델’로 이행하는데 있어 또 하나의 핵심적인 개혁 중 하나는 사회복지 개혁이었다. 물가-임금-복지급부의 연동으로 인한 동반상승의 고리를 끊고, 가장 문제가 되었던 장애보험의 급여수준을 제한하고 판정 기준을 엄격하게 했다. 또한 장애보험 미신청과 장애자 채용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해고를 제한하기 위한 ‘노사갈등의 외부화’, ‘노사간 담합’의 길을 차단하였다.



네덜란드 모델을 둘러싼 논란들


네덜란드 모델의 도입이 가능한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논쟁에 참여한 거의 모든 주체들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역시 도입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쨌든 논란에 참여한 각각의 주체들 사이에는 네덜란드 모델의 어떤 점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동자 경영참가를 강조한다. 그는 현재의 노사협의회 수준보다는 높되,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보다는 낮은 ‘협의’ 수준의 경영참가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의 ‘소신’이 그대로 관철될 지는 미지수이다. 자본과 언론의 강력한 반발이 거세지자, 경영참가의 수준을 ‘협의’ 수준으로 낮추어 명료화하는 모습에서 그의 진정성은 깎여 나갔다. 오히려, 현재의 경제 상황과 노동-자본간 힘의 역관계를 고려할 때, 노동계를 현혹시키는 ‘미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이는 고건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의 시각을 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고건 총리는 국회 노동문제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얘기의 초점은 경영참여에 비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문제를 사회적으로 합의제에 의해 해결해 나가고 있는 폴더 모델에 대해 얘기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즉 독일의 사회경제협의회(SER)와 비슷한 것으로 상정되고 있는 우리의 ‘노사정위원회’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재벌과 한나라당, 조중동, 한경신문을 비롯한 수구언론들은 막무가내식으로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에게 법과 원칙은 네덜란드식의 ‘끈질긴 대화와 설득, 합의의 문화’가 아니다. 노동에 대한 즉각적인 철퇴를 가하는 것이 네덜란드 모델의 도입보다 훨씬 더 간편하고 값싸며,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네덜란드 모델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네덜란드 모델을 지탱해 주는 세 가지 축 중 하나인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조선일보는(2003.7.18) 금속노조와 사측 간의 임금삭감 없는 주5일제 근무 합의에 대해 강한 질타를 가했다. 노무현 정부의 ‘네덜란드 모델’과 같은 단막극이 벌어지는 동안, 주도권은 금속노조에게 넘어갔고, 금속노조가 한 나라의 노동정책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사간 합의(그것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조차 배격하고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적 내용과 배경들은 실종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법과 원칙이 있겠는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네덜란드는 복지의 천국이다. 네덜란드에서는 80-90년대를 거치면서 복지제도 상의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제도의 골간과 사회적 평등지수는 어느 정도 유지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각종 개혁이(물론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 건너가고 있는 상황에서 네덜란드 모델의 도입이란 실상 노자 양측의 win-win을 가장한 노동조합에 대한 무장해제 요구에 다름 아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는 외면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복지제도도 미흡한 상황에서 네덜란드 모델의 도입은 불가능하다.

언론들이 말하듯이 노사간 전투적 대립이 심한 한국에서 이러한 모델 도입을 위해서는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선도적인 지도력이 전제되어야 한다(특히 노사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자본에 대한 지도력).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게는 이러한 힘이 없다. 재벌과 자본에 들이밀 수 있는 무기를 거세당한 정부가 무엇을 가지고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대립을 부추기고 노사관계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조중동과 자본에게 어떤 카드를 내밀 수 있는가?

네덜란드 모델을 제기한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은 수구신문들-한나라당, 고건 총리를 비롯한 정부 내 관료들,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반대, 경총 등 자본측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청와대가 추진하고 있는 노사관계 개혁 대책은 일정상의 차질을 빚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러한 노사관계 모델을 포기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정우 실장을 비롯해 점진적 추진을 약속해 왔고, 노사관계의 일정한 변화에 대한 압력들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 운동 진영에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사회복지의 확충(특히,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을 비롯한 복지 적용 등), 생존권과 노동조건의 보호, 고용안정에 대한 대책 수립, 노사관계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자본에 대한 끊임없는 공세를 벌여 나가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아직 모른다. 진정으로 네덜란드 모델의 도입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은 현재 노동운동 외에는 아무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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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와 민중저항의 승부처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존 매들리/차미경, 이양지
창작과비평사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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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와 민중저항의 승부처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리뷰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9월호
http://www.ynlabor.net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존 매들리/차미경, 이양지 옮김, 창비(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한창 벌어지던 시기, 제3세계 (아동)노동을 착취하는 이른바 '노동착취공장(sweatshop)'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전세계에서 벌어졌다. ‘깨끗한 옷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 CCC)’이라는 단체가 벌이는 캠페인에 민주노총과 새사회연대 등 한국의 노동시민단체도 함께 했다. 리복,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 초국적 유명 스포츠용품 기업들의 생산공장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타이, 중국 등 제3세계 하청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 공장의 노동자들은 70년대 한국의 여성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장시간 노동, 노동권 박탈, 성적학대, 감금과 폭력에 직면해 있고, 소음과 열, 화학약품에 둘러쌓인 채 개선의 여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민영화, 자유화, 전지구화, 기업화의 물결은 초국적기업들의 제3세계 진출의 결과물이다. 초국적기업들은 일자리 창출, 산업화, 기술이전, 대규모 투자, 외화벌이 등을 내세우며 제3세계 각 국 정부들을 매수, 설득, 강요하며 이들 나라의 노동력을 끌어 모았다. 각 국 정부는 초국적기업 유치말고는 빈곤의 나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초국적기업이 던지는 '당근'에 암묵적 또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각종 규제는 철폐되었고, 제3세계의 풍부한 광물, 자연 등 자원은 초국적기업의 수중에 헌납되었고 전통적인 농업은 수출을 위한 농업으로 변모하면서 거대한 초국적 식품기업에 종속되었다. 확대되는 빈곤은 질병을 몰아오고, 다시 초국적 제약기업은 이를 이윤창출의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초국적기업은 개발도상국과 그 국민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이윤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책략과 모험도 감수한다. 강대국과 세계은행, IMF 등 초국적기구들은 이러한 침탈과 착취의 첨병들이다.  



생존의 위협, 생명의 위험



초국적 종자기업들은 인류의 기원만큼이나 오랫동안 보유해 온 농민들의 종자를 소유하고, 특허권을 소유했다. 농민들은 이제 생산의 첫 삽부터 초국적기업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고유한 각 나라의 품종들은 어떠한 보상도 없이 유출되고 있으며, 강도는 '주인'으로 행세한다. 더 나아가 유전자를 조작한 품종들이 점차 세계 농업생산물 시장을 침식해 가고 있다. 세계 인민들의 먹거리는 초국적기업의 손아귀에 놓이게 되었다.


수출을 위한 농업이 확산되었지만, 전세계 농민들은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점증하는 초국적 자본의 장악력에 반비례해서 농민들의 삶의 조건은 해체되어 가고 있다.
제3세계 각 국 농림부와 초국적 담배회사들은 점차 줄어드는 서구의 담배시장을 상쇄하기 위해, 세수 확대를 위해 담배생산과 소비를 늘리려는 공세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초국적 담배 기업들은 놏촌고용과 외화벌이의 원천으로서 담배 경작을 권유하지만, 얻는 것은 영양의 결핍과 빈곤, 빚뿐이다.



세계적인 식품기업 '네슬레'는 모유(母乳)를 대체하기 위해 막대한 마켓팅 비용을 들이고 있고, 전세계 모유대체물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보건총회는 94년 만장일치로 모유수유 강화를 위한 결의를 채택했지만, 초국적기업들은 적어도 28개국에서 정부가 금지한 의료시설에 모유대체물 무료공급을 하고 있다.


자연의 착취와 죽음의 공포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80년대에 약 1억 5400만ha의 열대 밀림이 손실되었으며 이는 연간 1540만ha에 이른다. 필리핀에는 1700만ha의 열대밀림이 있었으나, 89년에는 단지 100만ha만이 남았다. 초국적기업은 벌채를 통해 목재를 얻지만, 그 뒤에는 숲의 일부분인 광산채굴이 기다리고 있다. 전세계 초국적 광업기업들은 규제가 적은 남반구에서 환경과 노동권을 파괴하면 할수록 더 많은 수혜를 얻고 있다. 노동자들은 중금속에 중독되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감수하고 있으며, 산림은 파괴되고 강은 폐기물들에 오염된다.



바다에서는 초국적기업들의 트롤어선이 어장을 휘젓고 다닌다. 트롤어선들은 어업협정을 통해 개발도상국 해안의 200마일 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생선을 잡는다. 남반구 연안 어민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매년 400만 명의 사람들이 발전용 댐 건설계획으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이러한 댐건설의 배후에는 초국적 건설회사들과 개발도상국의 부패관료들의 검은 커넥션이 있다. 댐을 통해 생산된 전기는 민영화를 통해 초국적기업의 수중에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혹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개발도상국 정부가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값싼 제네릭 의약품(상표를 부착하지 않은 값싼 의약품)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려고 하면, 강력하고 끈질기게 방해한다. 제약기업들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45개 약품에 대해 제네릭 상표로만 제조되고 판매되게 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신문 광고와 미국 대사관을 통해 강력하게 저항했다. '제약기업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정부를 이용하지 않은 적이 없다.'



초국적기업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 넣고는 야금야금 잡아먹는다. 사상 유례없는 자연과 생산의 사유화를 통해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는 초국적기업은 세계를 삼켜버렸다. 그러나, 이에 그대로 숨죽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제3세계의 민중들과 소수 국가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를 서서히 벌여 나가고 있다. 세계 인구 중 압도적 다수인 가난한 사람들은 영속적 가난을 얻은 대신, '연대감'을 획득하고 있다.



이런 '연대감'이 표출되는 진지들은 다음과 같다.


http://www.ran.org/ 우림행동 네트워크(Rainforest Action Network), 캘리포니아 소재.
http://www.jumpstartford.com/home/ 친환경적 운송수단을 위한 사이트,
http://www.rwesa.org/ 동부 및 동남아시아 강 감시 네트워크
http://daga.dhs.org/atnc/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
http://www.antislavery.org/ 강제노동반대 사이트
http://www.maquilasolidarity.org/ 마낄라 연대 네트워크(라틴아메리카 공업지대)
http://www.ibfan.org/국제 아기식품 행동 네트워크(모유대체물에 대한 반대)
http://www.fairolympics.org/en/index.htm(스포츠의류산업에 종사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사이트)
http://www.thailabour.org/(태국노동자 권리 캠페인)
http://www.cleanclothes.org/ 깨끗한 옷 캠페인(제3세계 의류산업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캠페인)



<200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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