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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

 

 


박용우와 잠깐 찬조출연한 천호진의 연기 카리스마가 불을 뿜는다.

평범한 외모의 박용우는 또릿또릿하고 절도있는 양반자제로서의 말투와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애절한 남자로서의 감성적 연기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매력있는 캐릭터로 승화시킨 듯하다. 그리고 잠깐 출연하고도 불꽃을 내뿜는 눈빛연기를 보이는 천호진의 연기는 영화의 절정을 이끌어가는 구심점이다.

상대적으로 주인공 차승원은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중에 연기력이 늘고 있구나가 보인다. 미스캐스팅이라고 본다. 극의 전체무게를 싣고 움직이는 차승원의 역할 무게감으로 보았을 때 그의 가벼운 목소리와 약간 거슬리는 건달식 말투가 고전적이고 양반자제의 품새가 베어나지 않음에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한다.

 

 

 


큰 흐름으로 보았을떄 전반적으로 잼난 영화였다. 아니 조금씩 재미를 떨어뜨리는 불필요한 상황연출도 간간히 보였으나 범인이 누구일까의 추리구조(합리적 이성, 근대성)와 한풀이로 대변되는 진혼굿(초자연적 현상, 비근대성)식의 서사구조자체의 흥미진진한 고리가 있고 고증을 온전하게 옮긴, 투자의 효과를 톡톡히 작품의 질로 승화시킨 미술, 의상팀. 아주 훌륭했다.

 

 

 

 

 

구체적 결말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였으나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무릇 가진자의 처신이란 어때야 하는가와 리더의 자세에 대한 교훈(일명 노블리스 오블리제).
차승원의 아비는 자식에게 문제를 던져주며 자신의 지식과 깊은 뜻을 전했다.

한가지 예로 설명되는 문제가 극의 전반을 이끌어가는 철학이다.
내용은 복잡해서 영화를 보고 정리해야만 이해되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ㅠ_ㅠ;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이렇다.

땅을 지닌자가 양식을 수확한후 가져가는 양에 대한 것으로 흉년이 되었다면 땅을 지닌자는 얼마를 가져가야 하는가. 이 문제는 경영자의 철학?이 담긴 답변이 되어 돌아온다. 가진자의 품성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이념에 대한 문제이며 영화의 전체맥락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양반가의 권세가 병풍위의 날림체(초서체)로 대담하게 드러나는 장면. 직선으로 뾰족하게 뻣은 갓과 함께 위세에 눌릴만한 분위기. 멋진 장면으로 추천~

 


합리적 이성으로 정확하게 설명되어지는 것만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요, 시대를 떠나 자신의 안위와 출세야욕을 쟁취하려면 올곳은 선비의 자세와 능력만으론 안된다. 타고난 핏줄의 계급적 한계와 남을 짓밝고 올라서야 하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철저하게 적용되는 사회이다. 이지점에서 과거와 현재는 묘하게 접합되어있다.

경제력과 덕으로 작은 섬마을의 인심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강 객주는 사리사욕을 정치적 권력으로 악용하는 양반에 의해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게 된다. 그안에는 양반의 시기와 질투, 세상의 이치인 반상의 법도, 그것만이 철윤이 되는 조선시대 양반중심사회의 계급의식이 내제되어있다. 권력과 돈을 탐하는 양반의 정치적 음모가 비극의 시작이었고 그안에는 개인에 대한 다수의 배신과 사랑, 사리사욕이 도사리고 있다.

(사족>다수의 배신과 침묵에 대해 파시스트적 폭력으로 해석하는 글도 있었다. 감독은 이걸 인간의 "염치없음"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이 모든 실마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갠적 연상인데 X-파일의 역할구도로 대비되는 캐릭터. 차승원은 합리적 이성을 지닌 스컬리로, 무당은 미스터리적 감성을 소유한 멀더의 역할로 대체되어 풀어가는 구도.
진실은 이성적 합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결론맺는 상황.


하지만 약간 생뚱맞게? 모든 발단의 근원이 “사랑”으로 실타래가 풀리는 결론. 뒷심부족이 확실하다.


스토리의 결함은 두 가지.
첫째, 차승원이 무의식중에 지닌 아버지에 대한 감정. 꿈으로 대체되는 우물신이 실마리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 아버지에 대한 잠재적 의식을 풀어주는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것.
둘째, 굿을 하는 미모의 젊은 무당의 역할. 비근대성의 상징적 역할을 무당이 하고 있지만 붉은피로 원혼의 복수를 풀어내는 방식은 왠지 약하다.

 

또한 민심을 움직이고 만들어내며, 민심이 생겨나는 그럼으로서 발생하는 사회현상에 대한 구조적 시각이 약하다.

감독이 의도하는 다수 민생의 염치없음이라는 것은 정보의 닫힘과 교육의 부족, 경제적 취약함등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드러나는 사회현상은 아닐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도 유무와 경중은 구조적으로 조절되고 제어되는 것은 아닐까?

지배이데올로기를 미디어의 다양성과 정보의 선점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시각으로 <혈의 누>를 들여다 보면 “염치”라는 인간의 본성으로만 사건의 실체가 설명될 수는 없다. 씨줄날줄의 복잡하고 촘촘하지 못한 내러티브의 한계가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게 근대성과 비근대성이 충돌하는 지점의 시대극을 만들어낸 원인인 걸까? 아..헷갈린다. 사실..

 

 

 


사랑의 힘은 대단한 건가보다.
맛깔나는 대사들이 종종 들렸다.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잊을 수 없는 대사.
영화의 전체논리를 설명하는 박용우의 대사
“넌.. 나의 무덤이야”

이 대사로 사건의 시작과 끝이 설명된다.

 

 

 

이 이상의 글은 무리다.
나머지는 한번정도 더 봐야 읽어낼수 있을 것같다.

 

개봉1주일도(5월4일) 안돼 벌써 100만을 넘어섰다 하는데 그럴만한 극의 힘이 있다.

주말에 무얼볼까 고민하시는 분들 꼭 보시길 권장~ 후회엄따~

 

 

 

<5일동안의 5가지 살인방법>

_ 씨네21에서 빌려옴. 조선시대와 관련한 지식을 알면 알수록 영화보는 재미가

   쏠쏠해진다고 한다. 아는만큼 보인다나? 

 

효시

이미 사형을 집행한 연후에 위협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대역죄를 범한 죄수의 머리나 시체를 매달아 공중에게 전시하는 것.

 

육장

대역 죄인을 벌하는 형벌 중 하나로 빈 가마솥, 혹은 미지근한 물이 담긴 가마솥에 죄인을 집어넣고 불을 때서 삶아 죽이는 시늉을 하는 형벌. 이때 죄인은 실제로 물에 삶아져 죽은 걸로 여겨져 몸은 살았으되 죽은 자와 똑같이 취급 받아 공식적으로는 가족 외에 아무도 만날 수 없었으며 외부 출입도 일체 금지되었다고 한다.

 

도모지

얼굴에 물에 젖은 한지나 종이를 발라 질식사 시키는 것. 양쪽 발목과 양쪽 손을 뒤로 묶고 한지를 얼굴에 붙인 후, 그 위에 물을 뿌려 서서히 질식시켜 죽인다.

 

석형

목에 동아줄을 감아 잡아 당겨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 깨서 죽이는 것.

 

거열 

네 마리나 다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사지에 묶은 후 달리게 하여 다섯 토막이나 여섯 토막으로 찢어 죽이는 것

 

 

사족1>

"혈의 누"제목의 폰트디자인이 멋지다. 영화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이미지화하는데 성공한 디자인이다. 또한 포스터의 완성도도 높은 듯하다. 시간되면 포스터와 폰트디자인에 대한 분석도 한번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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