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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리베라

멕시코 천재벽화작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

벽화라는 미술장르를 새롭게 써내려간 1920년경 멕시코의 벽화주의운동을 주도했던 주인공.

 

디에고 리베라.

 

천재들의 재능이란 작품을 통해 그냥 느껴진다.

그냥...

 

디에고와 칼로의 예술세계를 담고 있는 서적을 탐독중인데 확실히 남성은 거시적 주제에

여성은 미시적 주제에 관심이 지대한 듯...

사회적으로 의식화된 이유인지 아니면 생물학적 차이인지는 좀더 연구해 보아야 겠지만

개인적 경험에서도 비슷한 듯...

규정짓기보다는 끊임없이 한계와 경계의 영역을 넓히는 작업이 나의 과제중 하나되다.


Mexico Today and Tomorrow/1934~1935/Fresco cycle

Palacio National, Mexico city_south wall

: 멕시코의 고대 원주민 문명과 스페인의 침략, 독립과 혁명을 다룬벽화

  쪼~기 보이나요? 상단중앙의 인물은 마르크스되겠어요^^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개혁을 상징하는 미래로 파업을 주동하는 노동자를 표현,

  왼쪽은 파괴로 기계에 갇힌 미국경제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의 탐욕스러운 얼굴의 미래를 상징.

  맨아래 왼쪽을 손짓하는 민중으로 마르크스의 손짓방향과 일치하고 하는데

  디에고 리베라의 이데올로기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Mexico Today and Tomorrow 부분

 

 


Detroit industry or Man and machine/1932~1933

The Detroit Institute of Art_West wall/Fresco


Detroit industry or Man and machine 상단부분

 

Detroit industry or Man and machine 하단 좌측부분


Detroit industry or Man and machine 하단 우측부분


Detroit industry or Man and machine 하단 중앙부분



토착문화와 산업사회가 조화된 리베라의 벽화

_디트로이트 산업 벽화 디트로이트 미술관 현지 취재

글 김의연 2001.4

1999년 연말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의 〈센세이션전〉의 파장 이후,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Detroit Institute of Art ; DIA)의 관장은 그가 재임하는 동안 "DIA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 미술 작품의 전시를 금한다"고 밝힌 바 있다. DIA에서는 이미 1930년대 초반에 〈센세이션전〉에 못지않은 논란이 벌어졌으나, 미술관의 관점은 요즈음과는 사뭇 달랐다.
1933년 3월 13일, 미술관의 '가든 코트'에 그려진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의 〈디트로이트 산업 벽화(The Detroit Industry Murals)〉가 대중에 공개되자, 종교계·언론계·시의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벽화를 지우라고 거세게 요구했다. 그 이유는 벽화의 누드가 선정적이고, 특정 패널이 신성 모독적이며, 노동자와 산업생산을 다룬 벽화의 주제가 미술관의 미적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사회주의자인 리베라의 정치적 견해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입김이 여기에 작용했다. 그러나 미술관 관장을 비롯한 직원들과 후원자의 노력, 그리고 시민들의 서명운동으로 인해 이 벽화는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오늘날 〈디트로이트 산업 벽화〉는 디트로이트 시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으며, 리베라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인 리베라는 1920년대 호세 클레멘트 오로츠코(Jose Clemente Orozco) 등과 함께 멕시코 정부의 예술정책에 힘입어 벽화의 황금시대를 연 인물이다. 1921년부터 1930년까지 그는 멕시코에서 여덟 점의 주요 벽화를 완성한 후, 193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퍼시픽 증권거래소에 벽화를 의뢰받아 미국으로 옮겨 왔다. 이 무렵 DIA의 관장인 윌리엄 발렌티네(William Valentiner)는 그에게 미술관 내부의 벽화제작을 위임했다. 이에 따른 제반 비용은 당시 포드 자동차 회사의 사장이며, 디트로이트 예술위원회 회장인 에드셀 포드(Edsel Ford)가 지원했다. 1932년 4월 디트로이트에 도착한 리베라는 이곳의 산업과 자동차 공장에 매혹된 나머지, 처음에 약정한 '가든 코트'의 두 벽면뿐 아니라 네 벽면 전체를 벽화로 채울 것을 결정했다. 1932년 7월부터 1933년 3월까지 8개월에 걸쳐 제작된 이 벽화는 1930년대의 디트로이트 산업과 노동자들에 대한 찬사를 주제로 하여, 역동적인 이미지와 감각적인 형태로 산업현장을 시각화한 대작이다.
지금은 '리베라 코트'로 명명된 '가든 코트'에 들어서면, 천장으로부터 쏟아지는 자연광을 받아 빛나는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마주하게 된다. 벽화의 이야기는 동쪽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는 인간의 생명과 기술의 기원이, 중앙 패널의 아기와 쟁기의 두 칼날로 시각화되어 있다. 아기의 형태는 인간의 생명이 대지로부터 비롯됨을 뜻할 뿐 아니라, 이 벽화를 품은 DIA가 지역문화의 본질적인 매개체가 되기를 바라는 리베라의 소망을 담고 있다. 한편 농업과 기술과학의 시초를 상징하는 쟁기의 끝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안고 있는 누드의 여인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은 토지에 대한 의존과 기술과학에 대한 주제는 이어지는 다른 벽면의 그림을 통해 계속 전개된다.
서쪽 벽의 벽화에서는 전체적으로 삶과 죽음이 병존한다는 고대 인디언의 믿음과, 과학기술의 오용과 연결된 기독교적 최후의 심판 개념이 큰 축으로 작용한다. 벽면 중앙의 패널은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인디언의 마스크, 즉 인간의 얼굴과 두개골이 결합된 형상이 희망을 나타내는 별을 경계로 놓여 있다. 별을 기준으로 왼쪽엔 산업사회인 북미, 오른쪽엔 농업사회인 남미가 배치되어 두 지역간의 상호교류와 의존을 나타내는데, 이는 리베라가 염원한 범미주의(Pan-American Unity)를 상징한다. 위쪽의 패널들에는 좌우로 각각 수송여객기와 전쟁용 비행기가 배치되어,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부정적인 면을 보여 주고 묵시록의 종말을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이원적인 주제는 하단의 수직 패널들의 좌우에 나타난 노동자와 경영자의 형상에도 적용된다. 노동자의 초상은 리베라 자신의 것이며, 경영자의 얼굴은 헨리 포드와 토머스 에디슨을 합성한 것이다. 이들의 배경인 기계장치는 동력을 생산하는 파워하우스로, 동쪽 벽의 쟁기나 북쪽과 남쪽 벽의 자동차 공장과 같이 벽화 전체를 아우르는 산업기술에 대한 주제와 연결된다.

북쪽 벽과 남쪽 벽에는 포드 회사의 자동차 공장을 중심으로 디트로이트의 주요 산업인 화학·의학·약학 분야가 전개되어 있다. 이 두 패널에는 여러 인종의 다양한 계층이 등장한다. 패널 상단에는 마치 신과 같이 보이는 거대한 나체의 인간들이 대지의 산물을 끌어내고 있다. 북쪽 벽에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인을 나타내는 홍색과 흑색의 인간들이 석탄과 철광을 쥐고 있으며, 남쪽 벽에는 백인과 아시아인을 의미하는 백색과 황색의 인간들이 석회석과 모래를 쥐고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요소들은 모두 강철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성분으로 자동차 생산을 비롯한 디트로이트의 산업과 관련되어 있지만, 동시에 사회주의적 인간상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쪽 벽 아래쪽에는 여러 인종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이 보인다.
리베라는 다인종으로 구성된 디트로이트의 노동력을 도시 산업문화의 토착 요소로 간주하고 그것이 미래의 문명과 연결될 것으로 여겼는데, 이 역시 그의 정치적 이념과 직결된다.
한편 그는 산업현장의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멕시코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뱀의 형태를 기계장치의 구성에 이용했다. 서쪽 벽 하단 중앙의 두 개의 축이나, 남쪽 벽 하단 우측의 거대한 기계장치는 아즈텍의 신상을 변형한 것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문화와 현대의 기계문명을 결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디트로이트 산업벽화〉는 산업에 대한 그의 철학적인 시각이 기계공학에 대한 경애와 결합된 것으로, 아메리카의 토착문화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고, 남미와 북미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벽화의 시작점인 동쪽 벽화에서 태아 형상을 통해 그가 염원했듯이, 이 작품은 지역문화의 토양에 뿌리내린 미술관이란 조직체 속에서, 지역미술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정교하면서도 매혹적인 이 벽화는 1933년 처음 대중에 나타났을 때와 다름없이 지금도 빛나는 색채와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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