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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 중에서 - 2012.9.2

페이스북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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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의 주옥같은 말씀 몇 구절 훔쳐오기.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 중에서)

사람들은 푸름을 노래합니다. 푸른 산, 푸른 바다, 푸른 청춘, 푸른 서울, 늘푸름, 늘봄. 물론 푸름은 생명의 빛입니다. 그러나 정말 푸름은 푸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푸르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생명이 제 즐거움에서 푸름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푸른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겉 푸름이 있고 속 푸름이 있습니다. 속 푸름에서 겉 푸름이 나왔지, 겉 푸름이 속 푸름을 낳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다시 푸름이 되려면 반드시 한 번 죽어 썩어서 근본에 돌아가지 않고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늘푸름이란 없습니다. 없는 늘푸름을 나모하고 숭배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늘푸름은 전체에만, 근본에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푸...름은 푸름이 아닙니다. 늘푸름은 가지는 것은 씨ᄋᆞᆯ뿐입니다. 씨ᄋᆞᆯ 속에는 푸른 잎도 있지만, 또 검은 뿌리도 있고 붉은 꽃도 있고 갈색 나무통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온 계절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 27p

흙! 씨ᄋᆞᆯ의 바탕인 흙이 무엇입니까? 바위의 부서진 것입니다. 바위를 부순 것이 누구입니까? 비와 바람입니다. 비와 바람은 폭력으로 바위를 부순 것 아닙니다. 부드러운 손으로 쓸고 쓸어서 따뜻한 입김으로 불고 불어서 그것을 했습니다. 흑이야말로 평화의 산물입니다. 평화의 산물이기에 거기서 또 평화가 나옵니다. 씨가 흙 속에 떨어지기 전엔 평안이 없습니다. 그저 불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자아를 열지 않습니다. 아구 트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흙 속에 떨어질 때 거기서는 노래와 춤이 나옵니다. 새로 돋아나는 싹처럼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의 씨ᄋᆞᆯ도 그렇습니다. 겸손히 역사의 바닥에 내려갈 때 혼의 평안은 오고, 혼이 평안을 얻을 때 거기서 우주의 영(靈)의 부름에 의한 활동이 기쁨과 영광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웅이라는 어리석은 아이들이 서로 치고 받아 그 피와 시체로 더럽혀 놓은 역사의 동산을 다시 푸른 생활로 갱신시킬 수가 있습니다. 겸손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아! 봄이 왔씁니다. 여러분, 안녕하십시오.
- 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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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부, "땅의 숨구멍" - 2012.5.24

페이스북에 쓴 글.

 

 

 

 

나도, 도시의 아스팔트, 시멘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오늘 내 방 책꽂이에 오래 묵혀두었던 녹색평론(81호)을 한권 꺼내 시 한편을 읽었는데, 너무 마음에 와 닿아 옮겨본다.

마지막 부분을 혼자 소리내어 읽어보는데, 빗물이, 흙탕물이, 소금쟁이와 물방개가 외치는 격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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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숨구멍

권영부
...
매일매일 다져 밟고 사는 땅에는 숨구멍이 있다
봄비가 잔잔히 내리는 날에는
저 숱한 나뭇잎들이 걸러낸
맑은 빗물이 박하사탕처럼 싸하게 땅의 숨구멍을 타고 흘렀을 것이고,
제법 세차게 여름비가 내리는 날에는
농사꾼이 막걸리로 마른 목을 축이듯
땅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빗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은 것들은 철철, 논물로 흘러들어
가장 넓게 몸을 누이고 가슴팍에는 소금쟁이와 물방개를 키웠을 것이다
여름 볕의 사랑에 온 몸이 달아오른 논물은
슬그머니 논고랑을 빠져나와 개울을 타고 만경창파로 흘러들지만,
단 한번도 땅의 숨구멍을 막은 적이 없다
질퍽거리는 논둑길을 걸어갈 때면 흙탕물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땅이 제 숨구멍을 막아대는 발자국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은 수만년을 반복한 습성이기에
누가 누굴 탓하지도 않는다
이제, 논둑길이 헐리고 아스팔트로 땅의 숨구멍을 틀어막는 시절
빗물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해 빙빙, 돌고 돌다가 우리를 덮쳐도
오로지 하늘만 탓하고 살지만,
그 사이 우리의 몸뚱어리를 먹여 살리는 숨구멍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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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 2012.7.17

페이스북에 쓴 글. - 2012.7.17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 108게송으로 새롭게 중론 읽기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 108게송으로 새롭게 중론 읽기
김성철
불교시대사, 2004

 

 

 

오늘 아침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중론>에 대한 책을 다 읽었다. 나는 초딩때부터 절에 다녔지만 간단히 암송하는 불경 몇 구절에 대해서도 무슨 뜻인지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하기는 이렇게 어려운 내용을 초딩때 아무리 들어봤자 이해를 했겠나...

<중론>은 인도의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용수(인도식 발음으로 나가르주나)가 저술...한 '공空'사상에 대한 핵심적 저작이다.

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다 접어두고, 딱 이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지식은 쌓아서 이룩되고 지혜는 부수어서 얻어진다"

공사상은 지혜를 얻는 것을 막는 온갖 희론, 망상, 헛된 관념을 때려부수는 무기이다. 마치 손오공이 108요괴에 맞서 싸우듯이.

나도 하'오공'(悟空)이 되고 싶다. 다 때려부수고 지혜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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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욕심과 분노의 구심점이다. 좋은 것을 나를 향해 당기는 마음이 욕심이고, 싫은 것을 나에게서 밀어내는 마음이 분노심이다. 욕심과 분노는 그 힘의 방향이 반대다. 불교 전문용어로 욕심을 '탐(貪)', 분노를 '진(瞋)'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탐'과 '진'의 마음은 모두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일어나며 이런 어리석음을 '치(痴)'라고 부른다. 이런 세 가지 마음, 즉 탐진치가 바로 '독과 같이 우리는 해치는 세 가지 마음(三毒心)이며 이를 제거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최종 목표가 된다.
겉으로 분노심과 욕심을 억누를 수는 있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우리 암속에서 분노심과 욕심은 다시 발생한다. 따라서 삼독심 가운데 가장 뿌리가 깊은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이다.

- 김성철,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의한 해탈], 1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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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나서 - 2012.8.18

페이스북에 쓴 글. - 201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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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하다!

맛있는걸 먹어서도 아니고, 멋진 광경을 보아서도 아니고, 누구에게 칭찬을 들어서도 아니다.
'존재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 스님의 복된 말씀 하나로도 이렇게 마음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건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내 삶 최초의 경이로움이자 불가사의다.

그대들은 '더위'의 실상에 대해 생각해 본적 있는가? 우리는 더위를 피하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여름 더위만이 벼를... 익게하고, 열매를 맺게하며, 그 탐스러운 열매로 아이들을 웃게한다. 그러나 오직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창 밖으로 남에게 더 심한 더위를 전가하는 에어컨은 그런 기쁨들을 만들어 내지 못힌다.

기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복음(Good news)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불상도 탱화도 염주도 없는 작은 교육장에서 만난 도법스님의 말씀은 마치 첫사랑의 순간처럼 나를 두근거리게했다. 우리말로 암송했던 생명평화경도...

매달 인드라망 월례법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야겠다. 다음달은 9월15일(토) 2시 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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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교> 후기 - 2012.8.29

페이스북에 쓴 글. - 20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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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영화 은교를 보았다. 몇 가지 생각해 볼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 적어본다.

1. 늙은 시인과 패기넘치는 신예 작가의 대결 구도 속에서, 문학적 열정과 출세욕을 투영한 것은 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든다. 또 스승이 제자의 작품을 대필해주는 이런 식의 사제관계가 현실에서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2. 이적요 시인의 욕망을 그리면서, 단지 그 욕망의 소중함만에 주목하지 않고, '늙어감'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 한 부분이 좋았다. (특히 이적요 시인의 대사 "젊음이 니 인생에 대한 상이 아니듯이, 늙음도 니 인생에 대한 벌이 아니다.")

3. 하지만 다른건 다 접어두고, 나는 이 두 작가의 관계에 돌발적으로 끼어든 '은교'의 출현이 좀 의아스러운 점이 많다. 너...무 동화적이기도 하고... 아니, 마치 요정같다. 사건의 개연성을 따지는 것은 좀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노 시인과 은교가 가까워지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마치 남자가 몽정할 때 눈앞에 그려지는 흐릿하고 몽롱한 장면들을 옮겨놓은 것 같다. 나이 70먹은 할아버지가 자는데 17세 소녀가 그 다리 옆으로 들어와 잠을 자고, 잡자기 할아버지를 자기 무릎에 눕히고 헤나를 그려주겠다거나 하는 건 좀 지나친 남성의 성적 판타지 투사 아닌가?

4. 내가 말하고 싶은건 노 시인의 그런 욕망이 문제라는게 아니라, 이 요정같은 '은교'는 영화 내내 그런 욕망의 객체로 그려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영화에서 은교는 흔들의자에 하얗고 눈부신 허벅지를 드러내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해서, 할아버지가 써 준 소설 속에서 자신이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된 자신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5. 감춰진 은교의 욕망. 난 그게 궁금하다.

6. 어쨌든 '은교'는 근래 내가 본 영화중에 가장 충격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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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김수영을 위하여> - 2012.12.24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천년의상상, 2012

 

 

며칠간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시를 만났다.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의 속물스러움, 누워서 침을 뱉고 싶을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 누군가에게 마음껏 능멸당해도 싸다 싶을 자신의 내면에 거침없이 맞서는 사람. 그런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그런 사람, 김수영은 너무나 무섭고, 충격적인 인간이다.

6.25 전쟁 당시 거제포로수용소에 잡혀있는 동안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친구와 살림을 차린 부인, 게다가 수용소에서 탈출한 뒤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는 간청을 뿌리쳐 시인의 인생에 거대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부인. 그리고는 결국 54년 자신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 부인 김현경.

아래의 시는 63년 어느날, 부인 김○○을 백주 대로에서 때린 일과 관...련된 시이다.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는 기겁할 시 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인의 떨리는 시선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 시의 마지막 행을 읽고, 책을 집어던졌다. 결국 이 꼬라지를 한게 인간이구나 싶어서... 시인의 눈을 통해서 이 따위 꼴을 한 인간의 모습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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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은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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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거세 법안 관련 - 2012.9.6

페이스북에 썼던 글 - 2012.9.6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906121009950

 

 

1.

여자들도 난소, 자궁떼내고도 잘산다? 맘의 몸에 있는 병좀 고칠 줄 알면 그 사람인생 대신 살다 나올 줄 안다고 생각하는건가? 이건 의사가 아니라 마법사구만..
그나저나 신체부위를 절단하고 그냥 약먹고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마치 자기 몸을 용산전자상가에서 부품별로 구입해다가 조립해 쓰고 있다는 식인것 같아 아주 끔찍하다ㅠ
 
 
2.
이과 공부만 정신줄놓고 한 것으로 보이는 미친 의사 출신 국회의원 한마리가 사람을 야생동물 취급하네. 니한테 치료 받았을 환자들이 불쌍하다. 환자가 고통스러워 괴성이라도 지르면 "저걸 그냥 잘라버릴까?" 이딴생각했을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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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way to the light

페이스북에 썼던 글  - 201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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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와언니의 목소리에 이런 엄청난 불법(佛法)이 담겨 있었다니! 나는 씨디 자켓에 실린 가사에 웬 산스크리트어가 있나 했더니ㅎㅎ

이 노래의 가사는 비로자나불을 향해 염원하는 광명진언이라 합니다. "신이여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소서"라는 의미. "우리에게 광명을 주소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새생명이 깃들기를 염원하며 부르(기는 조금 부담스럽)고, 들어봅시다.

... 이 노래른 통해 저는 시와님의 종신형 팬으로 등록하겠습니다.


http://m.soundcloud.com/twomyung/twomyung-way-to-the-light-f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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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자해공갈단 - 2012.9.19

페이스북에 썼던 글  - 2012.9.19

 

 

 

광화문역 내에서 한 달여간 진행중인 장애인 동지들의 농성 투쟁.
이를 보도한 기사에 달린 악의적인 댓글들의 논조는, 내가 얼마전에 모 장애인 단체장의 발언을 통해 들은 "장애는 특권이 아니다"라는 식의 말과 대동소이했다.

장애인증 하나 있다고 주차장 점령하고, 국가에 돈 내놓으라고 떼쓰고.... 심지어 가짜 장애인이 장애인 행새한다는 둥... 갖가지 신기한 논리들이 판치고 있었다.

이들의 논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이 나라 장애인들은 다 '보험사기단'처럼 보인다. 국가한테 돈 타먹으려고 무시무시한 짓 하는 자해공갈단이거나...

이들의 장애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절묘하게 악마화 되어 있다. 따지고보면 이건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도 비슷하다.

한 마디로, 토 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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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되서 이전에 썼던 글.

 

 

페이스북에 썼던 글  - 2012.9.14.

 

오늘 아주 기이하고 해괴 망측한 소리를 들었다.
어떤 지역의 ○○장애인협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장애는 특권이 아닙니다. 장애인이라고 범법행위를 한다거나, 규범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손가락질 받습니다. 장애인이 정말 차별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법을 잘 지키고 살아야합니다."

이 말은 곧 장애인이 법을 잘 안지켜서 차별받는 다는 것 아닌가?(대우명제)

아, 흑인은 법을 어겨서 그렇게 처참하게 학살 당했구나.
아, 비정규직은 법을 어겨서 임금을 절반만 받는구나.
아, 성소수자는 법을 어겨서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구나.
... 아, 독거노인은 법을 어겨서 그렇게들 외롭게 죽어가는구나.
아, 청소년은 법을 어겨서 이유없이 머리를 잘리는구나.
아, 아, 아, 아, 아,

정말 악악 거리고 싶었다. 우리 모두 이 분 말대로 '정상적인 장애인'이 됩시다. 준법정신 투철한. 우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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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후기 - 2012.9.24.

페이스북에 썼던 글 - 201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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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형과 안민희님이 재밌다고 하길래, 주말 내내 집에 처박혀서 골든타임 9회까지 몰아서 봤다. 역시, 이선균....... 이라고 그냥 좋아할라고 했는데, 드라마 전개가 갈수록 맘에 안들어진다.

1. 아무리 중증외상환자(그냥 내가 이해하기 쉽게 '응급환자')를 다루는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라지만, 몰려드는 환자가 하나같이 다 "당장 수술 안하면 이 환자 죽어!"라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사람들 뿐이라, 보는 내가 다 숨 넘어가겠다. 너무 한꺼번에 몰아봐서 그런가?

2. 중환자들이 원래 그렇긴 하겠지만, 이 드라마에서 환자는 말이 없다. 그저 수술대 위에 누워 배가 갈린 채, 의사들은 그 환자의 장기를 잘라내고 붙이고 꼬매고... 끊임없이 환자의 생명을 살려야 한다고 의사들끼리 멱살도 잡고 싸우고 별 짓들을 다 하지만, 그건 의사의 목소리이지 환자의 목소리가 아니다. 역시 이선균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전작 '하얀거탑'에서도 그랬지만, 의사가 환자를 다루는 방식은 기계 수리공의 방식하고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단지 기계 수리공은 기계가 완전히 망가진다고 해서 울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 끊임없이 배를 열고 닫고, 배속에 거즈를 넣어다 뺏다가... 생명이 이런식으로밖에 다뤄질 수 없는 건가. 수술대 위에 올려진 신체는 정말 신체가 맞는건가?

3. 아,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너무 많은 걸 바라나 보다.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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