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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했습니다.

지난 1월8일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에 와주신, 그리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오지 못했더라도 축하의 마음을 담아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회진보연대 회원이기도 하고 전국보육노조 인천지부에서 일하는 박지영 동지와 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 다음날 신혼여행도 다녀왔습니다. 환상적이고 행복한 경험들이었는데 아마도 박지영 동지 덕분이겠죠. ^^;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고서,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도 정작 우리 결혼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하는지 깊이 토론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혼으로 구성하게 되는 가족이라는 것이 가지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할지 모호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상적으로 가지는 원칙은 있었지만 그것이 정작 우리 자신들의 문제가 될 때에는 더 진지하고 책임감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도 결혼을 준비하면서 깨달아갔죠.

 

이런 고민을 더 하게 된 계기는 '결혼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속에서 어떤 의미와 약속을 담을 것인지를 의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정작 결혼식 자체에서 그것이 어떻게 녹아났을 지 평가는 나름대로 가능하겠지만, 고민의 계기는 분명히 된 것같습니다. (역시 물질적 계기, '사건'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군요.)

 

특히 그런 고민이 집중된 것은 성혼선언 혹은 결혼에 대한 약속을 어떤 내용으로 구성할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인권의 정치와 성적차이](공감, 2003)에 실렸던 올랭프 드 구즈의 [여성의 권리와 여성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 중 "남성과 여성의 사회계약의 형식"을 참고하기로 하고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와 ----, 우리 둘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또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결합한다. 우리는 우리의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동시에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가 특히 좋아하는 이들[예컨테 입양한 아이들]에게 그것을 물려줄 권리를 각자 유보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재산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들이 누구의 소생이든 무관하게 직접적으로 귀속된다는 것과 아이들 모두가 아무런 차별없이 그들을 자신들의 아이들로 확인하는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의 이름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한다. 우리는 자신의 아이들을 유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준수할 것이다. 생전에 이별할 경우 우리는 법에 의해 우리의 아이들의 몫으로 정해진 부분을 공제하고 나머지 재산을 분할할 것이다. 사별할 경우 죽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몫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며, 아이들이 없을 경우 죽어가는 사람이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면 산 사람이 그것을 물려받을 권리를 갖는다.

... 이런 우정어린 결합의 유대가 처음에는 무질서를 초래할 지 몰라도, 그러나 그 결과로 완전한 조화가 마침내 생산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용자체가 시대적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에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난감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다시 구성해보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 고민을 담으려고 하고 몇몇 선배들의 조언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구성한 '결혼에 대한 약속'을 결혼식에서 낭독했습니다.

 

박지영와 박준형, 우리 둘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결합합니다. 우리의 우정어린 결합의 유대에서 서로는 고유한 성적 차이를 존중하고 그러한 차이에 근거한 각자의 권리를 갖습니다. 이에 따라 둘은 결혼으로 구성하는 가족의 성격과 각자가 속한 공동체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의무를 서로에게 가집니다. 임신여부와 그 회수를 선택할 시민적 권리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여성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재산을 소득에 상관없이 공동으로 소유합니다. 부득이한 경우, 공정하게 분할하거나 남은 사람이 그것을 물려받을 권리를 갖습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결합할 것을 우리는 약속합니다.

 

나름대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문제는, 선언을 성안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일 겁니다. 약속을 하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항상 더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족 제도를 변혁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이 생활자체가 되어야하는 일인 만큼 어느 약속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하에서 가족이 온갖 종류의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가족의 구성이라니, 흠흠.. 특히 이러한 결합 속에서 더 책임감있는 실천이 요구되는 쪽이 현재의 가족제도의 모순속에서 특히 남성에게 있다고 할 때 개인적인 책임감이 더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약속'에는 온전히 다 담지 못했을 지 모르겠지만, 더 고민되는 것은 과연 관계의 성격이 어떠해야하는지, 관계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서로의 차이와 권리를 존중하고 유지시켜갈 것인가 등등입니다. 아마도 여남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시빌리테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구체적인 형태는 살아가면서 매순간 발명해가야할 것입니다.

 

결혼식에서는 조주은 선배와 박하순 선배가 귀한 시간을 내서 '주례'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굳이 주례라는 부담스러운 말로 소개하지 않아도 활동가, 이론가 선배들로서 후배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해주신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죠. 우리는 결혼식을 진행하면서, 나이든 남성의 보증으로 결혼이 승인되고 보증된다는 식의 구도를 깨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에 따라 '어르신'보다는 '선배', 그리고 여남 각각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구성을 했습니다.

 

박하순 선배는 말씀중에 알튀세르가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서 한 아래 구절을 언급해주셨는데, 저도 참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 그 후 나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그것은 자신을 부풀리고 '과장'하는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받아들이는 것을, 하나하나의 선물을 인생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줄 아는 것, 그러나 전혀 자만하지 않고 전혀 강요하지 않은 채 똑같은 선물을, 똑같은 기쁨을 상대방에게 줄 줄 아는 것이다. 요컨데 단순한 자유다. 세잔느는 무엇 때문에 생트-빅투아르 산을 매 순간 그렸겠는가? 그것은 매순간의 빛이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관계가 우리가 '약속'에서 담지 못한 그런 내용일 텐데, 매 순간 상기하면서 살아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인 박준도 동지는 축가를 불러주었습니다. 윤선애씨가 '러시아에 대한 명상' 중 불렀던 '사랑'이라는 노래입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결혼식 당일날 아침에 듣고 나온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사랑 그것은
다만 우리가 마침내
둘이 되어 고단한 우리들의 앞날을 본다는 것

사랑 그것은
다만 우리가 마침내
미래를 두 눈으로 바라볼 뿐
주인은 너희들(후손들)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더 나아가 눈물 흐린 시야를 보탤 줄 안다는 것
살아 있는 동안
영원 불멸한 생애를 불태우고

무엇이 또 일어서는가
그러나 일어서는 것은
이미 살아있는 수천의 미래일 뿐

그래 생애는 흔적으로 남는 것이 아닌 것
그것은 눈물 혹은 기쁨일 뿐
일어서는 것은 오로지 세상 뿐

무엇이 또 일어서는가
그러나 일어서는 것은
이미 살아있는 수천의 미래일 뿐

이룩된 것이 보다 찬란히 일어선다

 

전체 가사는 http://dawn.logosia.com/rs.html 참고.('새벽'의 홈페이지), 노래는 밥자유평등평화 사이트의 여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권현정, 공감, 2002) 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따라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의 물질적 토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현재 사람들이 가족에게 거는 모든 기대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냄으로써 가족을 덜 필요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대적 가족형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비판은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물질적 토대의 소멸과 동시에 그것 안에서 추구되었던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 또는 동반자적 사랑 역시 역사적 시효를 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의 틀을 넘어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새로운 사랑과 유대를 사고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48쪽)

 

박지영 동지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정작 결혼제도 속에서 묻히는 것같아 아찔했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랬던 것을 깨닫게 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대한 정확한 평가입니다.

 

결혼을 통해서 가족을 구성하지만, 박지영 동지와 '가족의 틀을 넘어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새로운 사랑과 유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것이 결혼을 경과하면서 우리가 그 제도 속에 묻히지 않고 자신의 실천을 할 수 있는 방향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에서는 수많은 추상적인 원칙보다 구체적인 실천들(가사노동이라든가, 각자의 가족과의 관계라든가 등등)이 훨씬 중요할 것이라는 것, 그것이 가장 힘들 것이고 관계의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리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해내기 위한 노력, 실천이 모든 것을 판별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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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옳을 때

지음님의 [대중운동을 목격하다] 에 관련된 글.

좋은 글이 몇개 링크되어 있기도 한 좋은 글이다. melona라는 아이디를 썼던 과갤러의 블로그를 보고는 즐겨찾기에 등록했다. 멋진 사람이다. '아릉~'이라는 사람과 함께 가장 먼저 의혹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사람들.

 

나도 며칠 동안 중독된 것처럼 들락거렸던 브릭(소리마당)과 과갤(디시인사이드 과학갤러리)은 독립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개인들이 교통을 통해서 집단적으로 진실을 인식해가는 멋진 사례를 보여주었다. 어느 과갤러가 말한 것처럼, 이들 공간이 '과학'을 주제로 한 공간이었다는 말도 새겨들을만하다. 대중의 맹목적인 상상이 아니라 과학을 사고하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는 것.

 

과학, 과학자 사회이라는 공간도 모순적이라는 것이 다시 드러났다. 얀 핸드릭 쇈의 사기사건에서도 나타났지만, 새로운 산업적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에서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쇈의 연구는 나노기술과 IT와 연관되어 있었고 황우석의 연구는 IT 이후의 성장동력으로 '기대되는' BT분야이다. 이들은 모두 자동차공업을 이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각광받던 IT, 전자공학이 한계에 부딪힌 가운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예상되는 산업들이다. 쇈 사건과 황우석 사건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링크 참고.) 그러나 과학자 사회에 남아있는 진실에 대한 검증 시스템은 다행이도 작동했다. (오히려 이런 검증과정에서 보여주는 과학자 사회의 태도는 20세기에 고유한 것이라기 보다는 19세기의 유산으로 보인다.)

 

다만, 나는 이번 진실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사실과 거짓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고, 거짓에 대해서도 더 이상 어거지로 지지할 수 없는 조건이 있는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을 뿐이다. 유리한 戰場이었고, 정세의 호기를 만났을 뿐이다.

 

실상, 우리는 항상 이런 운이 통하지 않는 사건들에 더 많이 직면한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사건들이 브레이크 없는 광기에 대중을 동원할 위험이 더 크다. 붉은악마의 열정에는 사실과 거짓이 소용없다. 독도문제와 같이 사실이 함께 하는 경우에 오히려 더 위험한 열정이 증폭되기도 한다. '사실'이라는 것조차 대중의 상상에 이용될 때, 그것은 어떤 정세에서는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역설. 사실이 환상을 증폭하고 급기야 사실이 아닌 상상의 요소로 완전히 전환된다.(마치 고대의 신화들로 '해석'된 역사적 사실들처럼 말이다. 사실에 기반했지만 이미 상상의 요소가 된 것들.) 우리는 민족주의적인 역사적 상징들에서 그런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어쨋든, 이번의 작은 승리, 멋졌다. 특히 브릭과 과갤의 그대들, 우리들, 축하한다.

브릭과 과갤 네티즌들은 이미 이 어처구니없는 광기를 불러온 '애국질'을 조롱하고 있기도 하다. 성장동력으로 각광받는 BT연구의 뒷면에는 월화수목금금금, 라면, 40만원의 월급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것을 주문한다.

이번 승리가 단지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멈추지 않고 애국주의, 민족주의의 대중동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성찰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회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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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마지막 환상을 깨는 계기

아마도 중국에 대해서 '공산당 정권'이나 '사회주의 시장경제'니 하는 말에 혹해서 아직도 중국에 미련을 가지고 있던 활동가라면 이번 WTO 홍콩각료회담과 이를 수호하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유린을 자행한 경찰들을 보면서 완전히 환상을 깼을 것이다.

 

중국은 2001년 11월 WTO 가입 이후, 이번 각료회담 개최를 통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충성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그리고 철통같은 방어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한국의 노동자 농민을 때려잡음으로서 자신들의 본질을 다시한번 확인해주었다. 한때 동아시아 공산주의의 맹주였던 중국은 신자유주의를 수호하는 무장한 경찰력이 되어 있었다.

 

거대하고 슬픈,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舊사회주의 정권들의 비가역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에 대한 비판을 터부시하는 일부 좌파들에게는 약이 되었을 지 모를 일이다. 대안은 다시금, 실패한 舊사회주의 실험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WTO에 반대하여 싸웠던 노동자 농민 원정투쟁단과 같은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 오늘(21일) 진행되었던 폭력탄압/인권유린 규탄, 구속자석방촉구 중국대사관앞 항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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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대중과 과학기술 - 무엇을 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인가


대중과 과학기술
김명진 엮고지음 / 잉걸

 

2001년에 나온 이 책은 황우석 교수 사태에 대한 논란 속에서 제기되는 쟁점들을 이미 여러가지 측면에서 제기하고 있다. 대중의 과학기술 수용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 쟁점을 중심으로 과학기술논쟁의 전개, 대중매체와 과학기술, 생명공학의 문제점 등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황우석 논란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 현상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질문한다면 이 책의 여러 문제의식이 유용할 것이다.



우선 과학기술이 대중과 맺는 관계가 문제다. 과학기술은 20세기에 들어와서 급격하게 생산력과 결합했다. 물론 이전에도 기술과 결합하기도 했고, 사회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면적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와 함께 대중의 삶에 과학기술이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소외는 구조화되어 갔는데 지식의 독점이 심화되어갔기 때문이다. 생산현장에는 테일러주의의 도입과 함께 노동자들의 암묵적 지식도 박탈되었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그 정책이 대중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당연히 대중들 사이에 토론되고 이를 통해 결정되어야한다. 이런 지점은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철회되기 시작한 60~70년대부터 제기되어왔다. 환경운동, 평화운동 등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성화되었다. 이런 흐름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산력의 무한한 확장, 영원한 번영이라는 관념이 70년대의 불황으로 인해서 약화된 데도 원인이 있다.

 

그래서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가 쟁점이다. 대중이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 알아야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논지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사회적 쟁점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논지까지 여러 입장에서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문제는 이러한 논지에 따르면 대중은 필연적으로 과학자들에 비해서는 과학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과학자들에게 주도권이 주어져야한다는 입장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과학자들의 지적위계에 따른 권력을 강화할 뿐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과학기술 논쟁에서 비전문가인 대중들도 논쟁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논쟁의 쟁점과 의미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며 이에 기반해서 입장을 정리한다는 점이 밝혀졌다고 한다. 특히 대중적 쟁점이 되는 과학기술의 쟁점에서 이러한 대중의 입장과 자기 이해는 매우 중요할수밖에 없다. 핵폐기장 문제와 관련해서 첨예한 논쟁이 진행되었고 대중적인 투쟁을 불러왔던 부안 핵폐기장 논쟁이 비근한 사례가 될 것이다. 대중들은 과학자들이 간과하는 사회적, 정치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때문에 순전히 '과학적' 판단을 하는 것보다 올바른 정책적 판단이 가능하다. (저자는 국내 사례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진행한 98, 99년의 유전자조작식품과 생명복제에 대한 '합의회의'를 들고 있다. [유전자조작식품합의회의 자료/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예를 들어, 선천적 질환을 가진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유전자 검사는 어떨까? 과학자들이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선호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이 기업에 의해서 노동자 채용에 적용될 때 드러나지 않고 발현될 지 확실치도 않은 유전적 특성 때문에 부당한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과학을 둘러싼 논쟁이 단지 과학적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 제기된 논쟁만 해도 학교에서 지문인식기 사용, 전자주민카드, NEIS 등이 있고, 근골격계질환, 노동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 등 산업재해를 둘러싼 투쟁도 이러한 논쟁이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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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쟁점들에 노출된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해서 양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서 유포되는 '미친 과학자' 이미지에 친숙하면서도 과학기술이 가져다줄 '장미빛 미래'를 지지한다. 나는 올해 개봉된 영화 '아일랜드'를 보면서 그 영화의 악역인 탐욕스런 경영자-과학자가 당시 열광을 불러오던 황우석과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숀빈이 연기한 '메릭 박사'는 인간복제로 돈을 버는 기업의 경영자이자 스스로 과학자인 인물이다. 생명과학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는데 몰두할 뿐 아니라 --최근의 상황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지만-- 과학자이면서 비즈니스맨이고 거짓말장이라는 데 동일하다. 대중들은 영화 '아일랜드'에 호응하면서도 동시에 황우석에도 열광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것은 합리적으로 입장의 정합성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이 과학기술에 대해서 가지는 양면적인 무의식을 드러내는 사례다. 과학기술에 대한 불신, 과학자의 지식 권력에 대한 공포와 함께 그것의 장미빛 진보에 대한 환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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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한 논쟁은 대중에게 개방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민주적 통제가 증진되어야한다. 과학기술이라는 것인 사회적인 맥락과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과학 외적 개입은 필수적이다.(이러한 과학 외적 개입에는 저널리즘의 개입도 포함되는데, 저자는 한개의 장을 할해하여 논의를 소개한다. PD수첩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이 첨예한만큼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해보자.; "..결국 과학 저널리즘의 목적이란 과학연구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식견을 갖춘 시민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비판적 과학저널리즘은 과학활동이 내포하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함의들, 의사결정을 뒷바침하는 증거의 성격 그리고 인간사에 적용되었을 때 과학이 보여주는 힘뿐만 아니라 그 한계까지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이다.(166쪽)" PD수첩, 프레시안, 한겨레 등을 제외한 언론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보수적인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특수한 연구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도 사실은 과학 스스로의 내적 발전경로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자본이 이윤 추구에 직접적으로 종속된 과학 연구방향에 대해서 다른 대안을 제기해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생명공학 연구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료분야들이 있다. 황우석 지원 예산이면 당장 혈액질환자 고통 던다 /박주영 (민중의료연합))

 

그러나 이 과정이 제대로 된 대중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이번 황우석 사태에서처럼 대중이 맹목적인 애국주의적 열광은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제대로된 토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과학기술 통제만을 이야기할 경우, 여기에는 대중의 합리적 토론을 만들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대한 문제가 간과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번 황우석 사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권리는 자칫하면 이데올로기적 동원에 무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쟁점을 넘어서는 대중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더 사고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중요한 문제 몇개를 제기한다.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문제의식에는 지식생산의 민주화라는 쟁점이 포함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지식이 과학지식의 생산에 기여할 수 있으며, 특히 환경, 보건과 같은 분야에서 그렇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가능성은 고도로 생산력에 통합된 과학기술 생산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자신의 지식을 생산하고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지적 차이를 감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과학자 사회의 민주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요즘같은 상황에서 이 중요성은 더 부각된다. 저자가 두드러진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 여성과학자에 대한 진입장벽과 처우상의 차별 철폐 △ 불리한 조건에 처한 집단(장애인, 저소득층 등)이 과학기술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는 권리보장 △ 대학원생, 박사후 연구원 등 청년,소장과학자들의 발언권 보장 △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 등이다. 이 중 몇가지는 특히 이번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중요성이 더 부각된 쟁점들이다. 과학자 사회도 '과학'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당연하게도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과학적 진실이 억압되기도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러났다. (하긴 과학자 사회라고 다른 집단들과 다를 이유도 딱히 없는 것이다. 단지 '과학적'이라는 이미지가 가지는 환상이 있을 뿐이다. 하긴,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가지는 '객관성, 가치중립성, 엄정함, 복잡한 수식과 정교한 실험' 등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7세기말 뉴튼 과학의 성공으로부터 형성된 과학 이미지일 뿐이다. 이는 미신과 무지, 독단에 빠진 당시 사회를 과학적 성공의 모델에 따라 개조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혹은 '오해'하였던) 18세기 계몽철학자들이 오늘날에 남긴 하나의 규범적 허구에 불과"하다.(본문17쪽))

 

이번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 많은 쟁점들이 평가되고 토론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 그리고 그것이 보장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대중이 '과학'을 '종교'로 수용하는 현실은 지식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권리를 박탈되어온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둘러싼 쟁점이 사회의 민주화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 매우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확인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쟁점들은 더 극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꾸준히, 그리고 중요하게 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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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애국주의 운동권들의 코메디 (추가)

이번 황우석 교수 파동에서 사회운동 진영도 여러 입장에서 접근했다. 쟁점이 복합적인 만큼 나름의 시각에서 접근하면서 논점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운동진영에서도 매우 '독특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NL 계열의 인터넷 매체인 '자주민보'에 실리고 민주노동당 內 NL도 제기했다고 하는 시각인데, '애국주의'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 내용을 직접 살펴보면서 황당하기 이를데 없었다.

 

아래는 '자주민보' 주요한 기사와 논평들.

피디수첩의 배후를 밝혀라

피디수첩이 살길은 2차검증 철회뿐

우리는 네이처와 섀튼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할 것이다

민족 무시하면 민의 버림받는다

엠비씨의 사과 이정도로 안된다

 

압권은 아래 소위 '논평'

난자기증 연구원의 진심을 믿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서구의 잣대로만 보지 말아야"한다나 뭐라나.. 푸하하..

 

글 하나하나가 코메디다.

"피디수첩의 배후를 밝혀라"라는 글의 부제는,

"아무래도 미국이 의심스럽다"

이다.

 

이들이 비록 NL의 일부분일 뿐이라 하더라도 남한의 주요 사회운동 세력인 이들의 수준이 겨우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대중의 애국주의 열광 그대로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심지어 그것으로부터 '배우라'고 말한다. 애국주의 열광에 반대하는 것은 모두 미국의 음로로 치부된다. 여성에 대한 천박한 사고를 보면 이들이 과연 사회운동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런 입장이라면 마치 1920년대 독일의 국가주의적인 좌파들이 나치를 지지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파시즘이 다른 형태로 부활할 위험이 있는 시기에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위험하다.

 

이런 노골적인 애국주의 입장이 아니라도, 민주노동당의 생명윤리 문제제기로 인해서 논란이 커질 때, 이를 '적당히 하라'고 제지한 권영길, 주대환을 비롯한 민주노동당의 주요 인사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권영길 대표는 ‘황우석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보여준 빛나는 성과에 대해 당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이후에 당 환경위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황우석 관련 권영길 임시대표 모두발언에 대한 중앙환경위원의 입장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이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것은 '국민의 지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런 기회주의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아마도 이후에도 이런 쟁점이 아닌 다른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도 이들은 이런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당내 정치에 있어서나 사회적 쟁점에서나 이런 식의 기회주의로는 영영 3류 정치세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쉽게 대중추수적인 정치행태를 보이면서 진보정당의 정책, 이념적 지향도 희석시켜 갈 것이다.

 

모든 것이 명백히 밝혀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도 '자주민보'류의 '애국자'들은 '진실'이 '미제의 음모'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진실'의 편일지 '거짓'의 편일지가 아니라 '미제'의 편일지 '거짓'의 편일지 선택해야하나? 자기비판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이들이니 또 그냥 넘어가겠지만, 우리 운동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이번 파동으로 인해서, 모든 정치세력의 또 다른 본질이 낱낱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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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나서 '자주민보'실린 더 황당한 댓글들을 보게 되었다.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데 한번 가서 살펴보면 경악하게 될 것이다.

댓글 살펴보기

 

이들의 '애국주의'에 입각한 황우석 지지 태도를 비판하는 글에 대해서 '이창기'라는 기자의 댓글이 예술이다.

 

"피디수첩 1탄의 의혹정도로는 굳이 언론에 터트리지 않아도 될 문제였으며 영국과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언론보도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1조원이나 주겠다고 하면서 오라는 미국에도 가지않고 민족의 기초과학을 위해 일하는 황우석 교수팀에 대한 예의의 측면에서도 좀 심한 보도였습니다.
피디수첩의 보도가 사실은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었습니다. 진실은 민중과 민족의 이익에 복무할 때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지극히 나라를 사랑하는 한 과학자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아프게 할 수 있는지, 텔레비젼에 나오는 슬픔이 어린 눈을 볼 때마다 아무런 힘을 줄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습니다."

 

라고 한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이런 태도를 보면 이런 자들이 아무나 '미제의 간첩'이라고 비방하고 숙청하더라도 전혀 양심의 꺼리낌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사고 방식이 한심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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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의 연구결과 조작과 관련된 몇가지[보완]

아래는 퍼온 그림. 해도 해도 이 정도면 너무 치졸할 것아닌가? 포토샵으로 조작해서 다른 사진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건데, 이런 건 도저히 실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의도적인 조작일 수밖에.

 

▲ 한 누리꾼이 공개된 황우석 교수 논문의 사진을 토대로 세포의 동일성 여부를 분석한 사진. ⓒ2005 디시인사이드

링크들 :

+ 이미지 더 크게보기   

+ 그림이 올라와 있던 디시인사이드게시물 (원래는 BRIC 게시판에 올라온 건데, 댓글들을 보면 연구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알수 있습니다. 참담한 거죠.)

 

서울대 젊은 교수들이 재검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버티는 것을 보면, 역시 과학자 사회에도 과학보다 강한 것은 과학자 사회의 권력과 이와 연결된 권력-자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군요. 과연 얼마나 더 명백하게 드러나야 검증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할지, 원.

그 밖에도,

* 황우석논란에 대한 정리-펌글 모음(pssp게시판)

* 황우석의혹 총정리 (최원님 게시판) 

* 디씨인사이드에 실린 더 쉬운 버전

* 개념정립을 위한 작은 가이드(디시인사이드)

 

논문의 문제점에 대해서 자세히 정리한 글도 있습니다. BRIC 사이트 게시판에 실린 글 : DNA fingerprinting 데이타 살펴보기

아래는 위 분석에서 논란이 되는 그래프를 포토샵으로 비교한 것

http://board6.dcinside.com/zb40/data/science/1133964234/g12.jpg

황교수팀이 연구를 포토샵으로 했다는 식의 비아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역시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토샵이 좋기는 좋군요. 크..

 

디씨인사이드 과학겔러리에 가면 배꼽잡고 웃을 수 있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울할 때 한번 둘러보면 재밋습니다.

 

보도를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오고 있군요. 대략 줄기세포 성공이 11개가 아니라 3개 이하에 불과하다는 것, 혹은 아예 하나도 확인할 수 없다는 말(참세상기사: 한학수PD, "진실이 묻혀서는 안됩니다")도 있습니다.

 

김아무개 연구원은 진실을 말하면 검찰수사 대상에서 빠지도록 제보자 보호를 하겠다는 피디수첩의 제의를 받은 뒤 ‘지시를 받고 사진 2장을 10장으로 불렸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서 부담을 느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한겨레신문/국가기관에서 신속한 재검증을]

 

이 내용은 10일 YTN뉴스를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단독] '김선종연구원이 줄기세포 사진조작 YTN에 숨겨'

다만, YTN의 이런 보도는 상당히 치사한 짓인데, 이미 자신들도 알고 있었지만 숨겼던 것을 이런 식으로 번복하려고 하는 것같습니다.

 

한편, 9일~10일 간밤에 새로 제기된 내용으로, 줄기세포 사진들이 겹친다는 것을 밝혀낸 그림들이 있습니다. <링크모음 보기> 이 사진들을 보고 어떤 사람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퍼즐 종합정리: 7=8, 3=8, 5=6, 9=11, 7=11, 5=10, 4=7, 이 방정식을 풀면 3=4=7=8=9=11, 5=6=10, 그런데 2번 줄기 세포와 논문에는 사진 한장 없는 12번 줄기 세포까지 다 넣더라도 최대 가능한 줄기세포는 2,3,5,12로 압축됩니다. 그런데 논문 정정 내용을 보면 5, 6, 7, 8, 12 번 줄기 세포는 마지막 줄기세포 검사에선 fail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3,5,12 는 제대로 된 줄기세포가 아니니까 제외하고 2번 줄기세포도 1차 검증 때 DNA 불일치로 나왔습니다. 그럼 결국 남는 줄기세포 개수는? 0 입니다

 

라는 겁니다. 거참..

(이 내용은 다음날 아침에는 프레시안 기사로 떴습니다. 日인터넷 게시판 "줄기세포 중복사진 3쌍 더 발견"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요.)

 

결국, 황우석 교수가 후속논문으로 검증하겠다는 것은, 막대한 국가적 지원과 대중의 난자공여를 토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도박 혹은 '공격경영'을 하려는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번 논문은 다소 무리하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관심을 끌어내고, 추가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그 담에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주의적 투자와 경영이라는 게 다 그런 방식인데, 다만 그런 논리를 과학연구에(어차피 생명과학도 가장 첨단의 비즈니스가 되었으니까 뭐 마찬가지죠) 도입하려 했겠죠. 황우석은 그런 점에서 과학자라기 보다는 비즈니스맨으로 보이는군요.

 

문제는 대중들이 이미 이런 입장을 수용하면서 윤리적 문제가 있든 없든, 05년 논문이 진실이든 아니든 별로 상관없다는 식의 입장들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자신을 속인다는 것을 알고도 속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수가 없습니다.

 

여튼간에, 논문의 진위여부도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의심없이 황우석 교수를 맹신하는 대중들을 보면 참 대중의 상상-이데올로기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구나하는 것을 매번 다시 느낍니다. 과학이든 진실이든 사실이든 아무 관계없다는 식이 반응들인데, 파시즘도 이렇게 해서 가능했겠지요.

 

마지막으로, 전반적인 상황 일지와 문제점 등에 대해서 잘 정리한 글이 있군요. 추천.

황우석 논문 진위 논란 - 디씨과갤판 그것이 알고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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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동상이 어울리는 한 장면

전용철 농민열사의 죽음 이후 광화문을 중심으로 농민집회 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1일에는 광화문 네거리로 진출해서 도로를 점거하고 밤 늦게까지 완강하게 투쟁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집회에서 광화문 네거리의 집회 참가자들과 이순신 동상앞의 전경차량, 병력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었습니다. 네거리에서 바라본 이순신 장군 동상과 전경들의 모습입니다. 이순신 장군이라는 상징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차량 위에 늘어선 전경들 뒤로 이순신 장군 동상

 

곤봉과 헬멧을 착용한 전경과 장검과 투구를 쓴 장군동상이 같은 방향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위의 두개 사진들은 인터넷방송국 "청춘" 에 올라와있는 오성님의 '우리는 승리하리라'라는 동영상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지하에 있는 이순신 장군이 이런 장면을 보면 뭐라할 지는 모르습니다. 그러나 살인정권을 규탄하는 노동자 민중 시위 참가자를 노려보는 이들 장면을 보면서, 박정희가 의도한 것이 이렇게 구체적인 한 장면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르조아 국가의 '안보'를 상징하는 동상과 그것을 시민에 대한 폭력으로 현실화하는 전투경찰의 모습이 비슷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한편으로 상징으로 동상이 드러나고 바로 그 밑에서는 물질적인 폭력이 그것도 살인적인 강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경과 대치하면서 촛불 집회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날 낮에도 경찰폭력은 여전했습니다. 물대포만이 아니라 방패로 찍는 것도 여전했습니다. 뒤에 이순신 동상이 보입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전투경찰들의 백그라운드.

 

[위의 두 사진은 민중언론 참세상 기사 동영상에서 캡쳐한것입니다. 아래는 기사 주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id=1243 ]

 

광화문에서 이후에도 계속 투쟁이 진행될텐데 집회 때 마다 계속 이순신 장군 동상의 이런 모습과, 이순신 장군이 상징하는 것들을 대면하게 될 것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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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파문의 여러 쟁점들 ; 애국주의 열광과 과학 [덧붙임]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한 PD수첩의 보도 이후 온통 난리다. 윤리문제에서 연구결과 발표의 사실여부 문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상황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대중들의 광적인 반응은 놀라운 것이면서도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이러한 대중의 광적인 민족주의에 대한 열광이 2002년 월드컵의 '붉은악마' 현상과 유사하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당시에 '붉은악마'에게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아야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제 어떠신지 묻고 싶다. 당시 인권운동 사랑방이 <논평> '붉은 악마'를 부추기지 말라 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붉은악마'들의 광기는 차치하고라도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인권운동사랑방이 '심했다'는 식의 반응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인권운동 사랑방은 [논평] 국익 선동에 가려진 인권 을 통해서 현재 국면의 문제를 적절히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PD수첩과 민주노동당 덕분?에 당시와 같은 비방의 중심은 되지 않는 것같다.)
 
'붉은악마'의 애국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열광에 대한 ('진보'적인 인사들까지 포함한) 이데올로그들의 무비판적인 찬양은 오늘의 사태를 불러오는데 책임이 없지 않다. 그 열광이 마치 '대중의 활력'인 것으로 오해되었는데, 대중의 활력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할 수 없다는 점, 그것은 쉽게 애국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파시즘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과학의 이름을 통한 여성의 몸에 대한 지배, 여성인권의 문제다. 또한 연구용 등의 난자구매는 장기구매와 같이 가난한 자의 육체를 하나의 직접적인 상품으로 만든다. 여성의 육체에 대한 권리를 중심으로 인간의 육체를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쟁점이 제기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대중들에게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토론해야한다.
 
또 한편으로 황우석의 연구결과에 대한 PD 수첩의 검증문제에 이르러서는 과학자 사회의 검증 매커니즘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과학의 위상, 사회적 관계에 대해 과학이 가지는 관계가 쟁점이 된다. 과연 과학에 대한 대중의 권리란 무엇인가?, 과학은 스스로를 대중의 '무지에 기반한 열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
 
아래의 두개의 링크(딴지일보에서 가져온 것이다)를 참고할 수 있다.
 
글 (1)은 황우석을 둘러싼 애국주의 열풍, 윤리문제를 비판하면서도 과학적 연구결과에 대한 검증은 과학자 사회가 할 일이라는 입장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2)는 과학자 사회에도 권력관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과학이 아니라 권력이 판단하는 상황에서 과학자 사회 외부의 개입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한편, 글의 내용들을 보면 아마도 글쓴이들은 연구조직의 위계에서 상이한 위치에 있지 않을까 예상해볼 수 있다.)
 
하나의 과학적 연구의 결과가 이미 과학 외적인 문제가 된 상황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과학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것이 아니라 이미 중요한 생산기술의 일부로 통합되어 자본의 구성요소가 되었고 또한 이에 따라 정치적인 문제가 된 상황이 관련되어 있다. 황우석의 연구도 이미 과학자 사회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전사회적 문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국가는 다른 연구에 대한 지원비를 빼서까지 황우석을 지원했고 이를 애국주의 선동에 앞장서 활용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저널리즘의 검증 대상이 되는 것이 올바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저널리즘의 검증이라는 방식 역시도 과학을 과학 외적인 상황과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 아닌가? 특히 황우석에 대한 광신을 조장한 것이 저널리즘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저널리즘의 개입을 긍정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여기에 현재 수준에서 가능한 답은, 과학이 이미 과학자 사회의 전유물이 되기에는 불가능한 비가역적인 지점을 넘어섰다는 현상황에 대한 사실진술 정도인 것같다. PD수첩의 개입은 이미 과학적 연구결과가 '과학' 그 자체에 제한되지 않고 자본과 권력의 일부가 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황우석에 대한 광적인 지지-'무지에 기반한 열광'이 이미 연구의 독립성을 침식한 상황인데 PD수첩을 문제삼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PD수첩이 아니라 이미 선행한 저널리즘의 대중선동 과정에서 형성된 과학과 저널리즘의 관계 구조 전체가 문제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조건을 인정하는 것으로는 자본과 권력에 독립적인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과학적 연구의 조건을 만들어내야한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가 묻혀진다는 점이다. 또한 자본과 권력에 독립적인 연구라면,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결국 과학적 연구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이데올로기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가운데 과학이 스스로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만 '과학'으로서 자신의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 여기에는 알튀세르를 더 참고해야한다.)
 
이번 과정은 딱히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 다양한 모순-쟁점을 드러내고 제기하고 있다.(다만 정세적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애국주의 광기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각각의 쟁점이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서 논쟁될 수 있다. 이 속에서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사회운동, 좌파들의 입장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고 상황을 전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방식을 대중들에게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최근의 열광은, 황우석의 연구가 설사 거짓말로 밝여진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않거나, '진실'을 비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연구의 결과가 사실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정치적으로 더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애국주의자들은 마침내 타도해야할 민족의 적을 명확히 지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대중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중들 스스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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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이 글을 남긴 다음 날, MBC는 뉴스테스크를 통해서 취제윤리문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이제는 과학계가 나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결국 '과학자 사회'에 공을 넘긴 셈인데, 이로 인해 숱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PD 수첩이 시도했던 과학에 대한 과학외적 접근은 '애국주의자들의 적'으로 자신들을 노출시킨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또한 이후에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 특히 생명과학에 대한 맹목이 맹위를 떨칠 것이다. 생명과학의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이 것이 앞으로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올 것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독서일기] 나쁜 과학 - 근본적으로 위험한 유전자조작 생명공학)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과연 '과학자 사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일 뿐더러, 과학에 대한 환상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결정의 영향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과학은 결국 과학자들만이 그 진위를 논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다만 과학은 대중에게 상상으로 번역될 수 있을 따름이고, 그 상상은 다름아닌 애국주의적 환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 지식에 대한 대중의 통제, 과학기술의 민주화는 과학에 대한 과학외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때 가능할 수 있다. 그것은 충분조건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이다.
 
PD 수첩이나 MBC에 미숙한 대응이 한 몫했지만,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 과학에 대한 맹목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맹목과 결합했을 때, 어떠한 거대한 승수작용이 일어나는 지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국주의에 열광하는 '국민'들이 환호할 수록 그들의 과학과 지식에 대한 권리가 박탈된다는 역설에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비극적인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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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이틀째

12월 2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이틀째 날이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12월 1일에 집중했기 때문에 파업대오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집회 참가 대오 역시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어제의 투쟁과는 달리 집회와 행진에 있어서도, 다소 어수선하고 의기소침한 분위기였다. 대오의 숫자나 쌀쌀해진 날씨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의도다리를 건너 영등포로 넘어오는 길에서는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행진선동은 비정규법안의 각각의 쟁점을 구호로 만들어 외치고 있었다. 기간제 사유제한, 파견법, 동일노동 동일임금, 특수고용 등 법안쟁점들에 대한 구호를 외친다. 본대회나 각 연사들의 발언도 딱 그 수준이었다.(전농 간부의 연대발언을 제외하면 그렇다.)

 

투쟁의 정치적 요구를 상승시키지 못하는 민주노총



집회의 어수선한 분위기(그것은 아마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총연맹의 실무력의 문제가 작용했을 것이다. 사무총국 15명의 사직을 강행처리한 이후 이미 예상된 일이다.)나 너무 '평화적인' 마무리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투쟁의 쟁점을 어디로 가져가야할 것인가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조직의 상황이 그대로 나타났다는 점이 매우 우울했다. 전용철 열사가 살해되고 농민의 투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촉발되고 있는 상황, 빈곤으로 인한 극단적인 참사가 빈발하는 상황,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망이 '법제화'될 이 상황에서 전체 투쟁을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전선으로 묶어내지 못하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세력의 무능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현재 각 부문 대중의 투쟁 사안은 달라보이지만 모두 공동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농산물시장개방,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심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양상들에 대한 투쟁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묶여야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과제라고 한다면, 지금은 전용철 열사의 죽음 이후, 이러한 투쟁들이 서로 조우할 수 있는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지 시기적으로 만났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정권에 대한 공격을 통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집결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사회화와 노동 [12·1 파업을 민생파탄·폭력살인 노무현정권 심판투쟁의 출발점으로! - 현시기 노동자·농민투쟁의 진로]를 통해서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의 호기에도 주체들은 전혀 긴박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개인이나 단체들이 농민투쟁과의 결합을 주문하고 있지만, 연대사를 교환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연대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여러 조건 상 쉽지 않다면, 최소한 노동자 투쟁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라도 시작되어야한다. 그러나 2일차 집회에서 보았듯이 구호는 철저하게 법안의 세부적 쟁점에 대한 것으로 그치고 있었고, 정권 퇴진은 커녕 정권 규탄 구호/연설조차 들리지 않았다. 전술적으로도 어제 광화문 농민집회의 완강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어가지 못했다.

 

물론 대중적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그래서 대중적 동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되어야하는 지금, 투쟁의 정치적 수위를 상승시키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는 단위 사업장의 임단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정치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정치적 분노를 통해 조직되어야한다. 각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는 대중을 조직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상승된 요구로는 그럴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노조 간부들의 노조관료다운 판단일 뿐이다. 대부분의 노조간부들이 사고방식으로는 조합원들은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실리적 이해를 계산하는데만 몰입하고 있어서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해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중은 그런 계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움직인다. 정세에 따라 그 이데올로기 형성을 추동하는 것이 활동가들이 할 일이다.

 

주말과 다음주에도 계속 투쟁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정세에 맞게 대중적 분노를 촉발하기 위한 노력이 없이 '조직동원'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시기 투쟁이 중요하니 무작정 할당된 대로 조직을 동원하라고 해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급단체로부터 단위노조까지 이러한 방식의 조직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결국 조직동원을 요구하는 식으로 집회, 농성, 선전전 등 투쟁 '일정'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악순환이다. 활동가 개인들이나 작은 조직, 한두개 노조 단위나 연맹 집행부 차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갇혀있다.)

 

새로운 세대의 불안정노동자들

 

한편, 이런 저런 사정으로 대공장노조들의 총파업 돌입, 집회 결합 수준이 크게 떨어지면서 노동운동의 위기라고 불렀던 것이 의미하는 바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파업대오는 대부분 중소영세제조업 사업장인 금속노조 소속 단위였다. 기아차에서는 투표가 부결(사실 단사에서 부결이라도 민주노총 차원의 총파업에는 제한적으로라도 결합했어야했다), 현대차는 선거를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공공에서도 파업사업장은 대부분 지자체 직간접 고용비정규직 노조였다. 심지어 철도노조는 12월 예정되었던 투쟁을 내년으로 연기하기도 했는데, 사업장 내부의 쟁점 외에 정세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버가 [노동의 힘]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의 이동에 따라서 형성되는 새로운 노동자 대중이 새로운 투쟁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단지 생산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장소/업종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의 함수도 존재한다. 남한에서는 시간적 균열에 따라 새로운 세대의 운동주체들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87년은 이제 끝났다.

 

전투성으로 이름을 날렸던 대공장노조들이 자신들이 가진 '구조적 힘'을 사용하지 못할 때(혹은 자신들의 협소한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고자할 때), 더 열악한, 새로운 세대의 불안정노동자들은 '연합적 힘'밖에 기댈 것이 없다. 아직 그것이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전비연의 어쩌면 무모해보이는 헌신적인 투쟁은 '연합적 힘'을 형성하기 위한 새로운 세대의 분투를 보여준다. 비정규노동자들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라도 서로 더 연대하고 더 단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이러한 균열을 인식하고 있다. 내가 이야기해본 '구세대'의 정규직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이번 투쟁과정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세대'의 정규직 활동가들이, 그나마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엄호해야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35~40%의 조합원들과 함께 어떻게 새로운 세대의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소한 단위노조의 이익을 넘어서는 관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동차 완성차노조들이나 철도노조 등이 움직임을 볼 때 아직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구세대의 정규직 노조운동이 새로운 세대의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과 주체형성을 엄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87년 이후 운동은 신자유주의 세력을 정권에 앉히고 그것에 의해 파괴되는 비극적 상황으로 종결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엄호와 주체형성에 성공한다면, 적어도 87년은 다른 의미에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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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2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2
모리스 마이스너 지음, 김수영 옮김 / 이산

 

 

중국 현대사를 진지하게 다룬 이 책을 보면서 이제야 10여년 전에 보았던 사회주의 이행논쟁에서 중국의 입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서사연에서 냈던 [사회주의의 이론.역사.현실](1991)에서는 특히 이행이론과 관련하여 스탈린주의와 함께 마오주의 입장을 평가하고 있었는데, 그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에는 단지 '대과도기론'이라는 결론으로만 인식했던 마오주의의 입장이 어떠한 역사적 경로를 거쳐 형성되었으며 현실에서 의미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수 있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 나는 알튀세르가 당대에 마오주의로 이해되었고 마오의 영향을 실제로 받았다고 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에서의 계급투쟁, 당을 관통하는 계급투쟁,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 등, 알튀세르나 발리바르가 강조한 정치적 명제들이 마오에게서 기원하거나 실마리를 얻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다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현실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났는지를 중국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혁명을 거치면서 형성되어온 중국 현대사를 사실들과 함께 역사적 쟁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중국혁명과 마오주의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보다 풍부한 이해가 가능하게 해준다. 저자는 마오주의와 중국혁명의 역사적 과정들을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비판함으로써 역사목적론을 지양하고 사회주의 운동의 시각에서 제기되는 쟁점을 풍부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 중국이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서 자본주의로만 치닫는 것으로 보이는 오늘의 중국에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쟁점이 있었는지, 따라서 현재와 앞으로 제기될 쟁점은 무엇인지 알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과 의의에 대한 소개는 월간 [사회운동] 5월호에 백승욱 선생이 쓴 아래 글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모리스 마이스너,『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백승욱]/ 2005.5

 

나는 다만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된 몇가지 쟁점들에 대해서만 아래에서 언급하려고 한다.



마오의 주의주의와 주체사상, 알튀세르

 

마오주의는 주의주의적 경향을 가진다고 평가된다. 이 책의 전반부는 마오주의의 주의주의가 역사적 경혐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혹한 대장정의 시련에서 살아남았으며,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토대가 거의 부재한 거대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지를 앞세우는 주의주의가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이후에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이러한 마오주의의 주관주의는 한편으로는 북한의 경험에 영향을 준다.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마오주의의 주의주의를 더 극단화시킨 하나의 변종인 것으로 보인다. 마오도 '사람'을 강조하고 '사람의 의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강조는 북한에서는 다소 경직된 방식으로 변용되어 수용되었다. 마오주의에 함께 포함된 사회주의 하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이라든가, 당을 관통하는 계급투쟁과 같은 관념은 제거되고 다만 사람의 의지에 대한 무한한 관념론적 강조, 지배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강화로 변용되었다. 마오주의의 대중노선과 대중에 대한 신뢰는, 몇번의 간접적 영향을 거쳐 남한의 NL까지 와서는 대중추수주의와 근거없는 낙관주의로 변화되기도 한다.(역사란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이후 한편에서는 60년대말 프랑스에서 알튀세르 등의 이데올로기론에 영향을 준다. 구조주의적으로 수용된 마오주의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대신 과학의 대상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사회주의 하의 계급투쟁

 

마오(와 그 동료들)는 1949년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중국혁명이 하나의 일회적 계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는 혁명이 장기적 과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로부터 중요한 정치적 결론들이 도출된다.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 이후에도 계급적 모순은 소멸되지 않는다. 중국은 50년대를 거치면서 성공적으로 지주와 자본가라는 구 지배계급을 인적으로 소멸시켰지만 계급투쟁은 소멸하지 않는다. 마오는 그것을 구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잔재 때문인것으로 보았다. 사회주의 하에서도 계급투쟁은 계속된다. 계급투쟁은 사상투쟁의 형태를 띈다고 규정되었는데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이다. 이로부터 50년대 후반의 백화운동, 60년대의 문화대혁명 등의 사회주의 하에서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이 제기된다.

 

마오는 이러한 쟁점을 단지 '논쟁'이 아니라 대중운동을 동원함을 통해서 제기하고 물질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계급투쟁이 당을 관통할 뿐 아니라, 그것이 대중운동에 의해 제기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진정한 혁명적 잠재력이 당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에 의존하는 자발적 농민운동에 있다는 점, 오히려 대중운동에 대해 당이 지체될 수 있다는 관점은 무오류-일괴암성이라는 레닌주의적인 당 관념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실재로도 그런 차이가 제대로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정통'이론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은 물론 실용적인 이유에서 당의 무오류성에 대한 주장은 반복되었던 것이다. 특히 대중운동을 억압하고 당의 통치성을 회복하려 할 때마다 이 점이 강조되었다.)

 

다만 마오는 대중운동을 통해 계급투쟁의 과제를 제기해야한다는 점은 충분히 강조했지만, 바로 그 계급투쟁의 모순이 대중운동 자체도 관통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는 않았다.(따라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대중-'인민' 내부에조차 이미 차이와 적대가 존재한다는 사실. 마오는 '인민'의 규정을 제한함을 통해서 문제를 편의적으로 해결했을 뿐이다.) 마오는 매 계기마다 최종적으로는 기존의 국가기구를 방어하는 것으로 후퇴하고 대중운동을 억압했다.

 

사상의 자유를 확대하고 논쟁을 촉발한 백화운동의 예를 보자. 백화운동은 결국 인민의 단결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는데, 이는 '인민'은 기본적으로 단결된 통일체라는 운동의 전제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 결과, 백화운동이 '통제 가능선'을 넘어서자  이단색출로 전환되어 탄압이 시작된다. 인민이 그 목표와 이해관계에 기본적으로 일치한다면 그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관점을 보인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비판이 분열을 낳는다면 운동을 끝낸다는 것이다. 인민-대중 자체가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마오는 백화운동에 뛰어든 지식인들-사회주의 비평가들의 평등주의적이고 반관료주의적인 목표에는 동의하고 이를 추동하여 당내의 우파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에 대한 그들의 헌신에는 공감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촉발시킨 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돌아선다. 마이스너는 마오가 지적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적 제도가 사회주의 건설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마오는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마오는 '만약 우리가 사회체제를 공고히 하는 일에만 매달린다면 이 체제를 반영하는 사상이 융통성을 잃을 것이고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에 자기의 사상을 맞추어 나가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고 말은 했지만 정작 그 한도에 대해서는 당-조직과 국가기구의 유지라는 명확한 선을 그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운동과 인민주의, 개인숭배

 

문화대혁명도 마찬가지로, 당과 국가의 관료화의 우경화에 대항하여 대중의 혁명적 진출을 통해 당과 국가를 개조하려고한 시도였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도 혁명을 계속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대중운동의 방식에 의해야한다는 점을 마오는 정확하게 지적했다. 훗발 '대재앙'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사건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 계급투쟁이라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제기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대중운동의 폭발은 마오에 대한 개인숭배를 경유해서 이루어졌다. 저자는 개인숭배는 양면적인 성격을 가진 현상으로, 한편으로 이것은 인민이 사회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말한다. 개인숭배는 단순히 대중이 자기 위에 선 국가의 권위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지의 체현이자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여기는 한 인간의 최고권위에 자기(그리고 자기의 권력)를 완전히 예속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오숭배는 사회권력의 소외가 정치적 귄위에 대한 맹복적 숭배로 나타났던 역사적 현상들 중 가장 극단적인 예의 하나이다.)
 
그러나 문화혁명 기간에 개인숭배는 시민이 그들 위에 군립하는 관료기구를 공격하고 권위에 반기를 드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주요 도구가 되었다. 마오가 당을 경유하지 않고 대중과 직접 관계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대중의 진출을 위한 정치적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민주의적인 정치스타일이 대중의 진정한 해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대중의 행동을 촉발하는 계기는 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실재로 문화대혁명을 추진하던 홍위병, 활동가, 대중들은 마오와 당에게 모두 배신당하고 상하이 등에서 그들이 형성한 각 지역 코뮌은 모두 분쇄되거나 화석화된다.

 

중국혁명이 진행과정에서, 혁명 이후 체제에서 이러한 인민주의적인 정치동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좀 더 비판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농민이 압도적이었고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농촌이 급진화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중국의 인민주의의 물질적 토대는 20세기초의 인민주의 보다는 19세기의 (미국이나 러시아의) 농민적 인민주의와 유사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인민주의 비판](공감/2005)을 참고)

 

계급투쟁의 물질적 토대

 

문화혁명의 과정이 마오주의의 주의주의적 경향과 맞물려, 물질적 토대의 변화와 결합되지 않은 주관주의적인 계급투쟁의 일면적 강조로 나가는 측면이 있었다는 비판이 있다.([사회주의의 이론.역사.현실]의 평가가 그렇다.) 물론 그러한 측면이 강하지만, 반드시 물질적 근거가 간과된 것으로만 평가하기는 힘들 것같다.

 

이러한 다양하게 제기된 '계급투쟁' 과정에서 생산력 증대라는 과제에서도 자본주의를 모방한 소련식의 산업화가 아니라 농촌에 기반한 대안적인 전략을 채택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초기에 실시되었던 소련식의 경제개발 계획은 대약진운동 등이 정리된 이후에도 소련식의 중공업 일방 우선과 다른 방식의 경제계획이 입안되었다. 또한 농업 집단화와 농촌의 공업화 등에서도 소련의 경험과는 다른 실험이 이루어졌다.

 

생산력의 성격이라는 것이 계급투쟁과 분리되어 순전히 양으로 환산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의 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제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도 이러한 계급투쟁의 성과를 생산관계에서 물질적으로 남기는 과정은 인민공사의 설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인민공사에 도입된 '공산주의' 요소

 

대약진 운동 기간 설립이 촉발된 인민공사에는 여러가지 '공산주의' 요소가 도입되었다. (공사=코뮌) 이는 매우 의식적인 작업이기도 했는데, 중국공산당이 단순히 협동농장을 생산력증대의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생산-생활 단위를 만드려고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농촌의 소공업을 통해 농업과 제조업을 결합하고, 교육과 산업활동을 결합하는 등 도시-농촌의 구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 - 지적차이 감축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적차이의 모순 자체를 제거할 수 있는가는 문제가 있는데 이후 마오가 보여준 반지성주의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오는 이후 당시의 제도 교육에 대한 불신 속에서, 청년들이 너무 책을 많이 보아서는 안된다는 등의 주장을 한다. '노동현장의 실천적 지식'을 일면적으로 강조할 경우 경험주의에 빠질 수 있으며 이에 근거하지 않는 과학들을 경시할 수 있다. 이는 지적차이를 감축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

 

마오 이후, 중국에서의 계급투쟁

 

마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최고실력자가 된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민주'에는 민주적 내용이나 사회주의적 내용도 없었다. 민주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생산자가 자신의 노동생산품과 노동조건을 통제하는 수단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한 제도적 조건도 전혀 고민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반적 이해(하지만 스탈린주의적 이해)처럼, 사회주의는 생산에 대한 국가통제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심지어 주요모순이 적대적 사회세력간의 모순이 아니라 중국의 '선진적 사회주의 제도'와 낙후된 생산력 사이에 모순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생산력을 사회주의 제도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 다른 모근 것을 무시하고 생산력 발전만 추구하는 정책이 이후 지속된다. 심지어 농업집단화를 해체-후퇴하면서 사회발전 수준과 경제발전 수준사이의 모순이 어느정도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궤변도 등장한다. 사회주의 몰락과 포기로 인한 이데올로기 공백을 공산당 정권은 내셔널리즘과 애국주의로 매꾸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애국주의 열풍이 추동된다. 마오 이후에 이데올로기가 다시 강조된 셈이다.

 

그나마 혁명의 지향은 분명하게 가지고 있던 5.4운동 세대의 원로 공산주의자들이 사망하면서, 새로 등장한 공산당 지도자들은 대부분 당관료 출신의 인사들이다. 덩사오핑 이후의 실권자로 등장한 장쩌민은 사회주의가 21세기 말에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결국 사회주의는 현재의 희망이나 행동과는 사실상 단절된 먼 미래의 일로 연기되고 사회주의는 결국 무의미한 수사가 되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들어, 공산당 간부가 앞장서서 자본가로 변신하고,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확대되었으며, 새롭고 거대한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었다. 거대한 노동자층은 극단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불안정노동자들이다. 실버가 [노동의 힘]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이 갈등을 몰고 다니고, 자본의 이동에 따라 새로 형성되는 노동자 대중이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만들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에서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등장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회주의의 전망은 지배정당이 공산당이 아니라 새로운 대중운동에서 시작될 것이다.

 

중국에서 새롭게 형성된 부르조아지도 정치적 변화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현 자체가 당 관료로서 특권에서 가능했을 뿐더러 이들의 이해를 보장하는 것도 중국 국가이다. 따라서 이들이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한다고 해서 정치적으로도 그런 것은 아니며, 따라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를 실현하는데 있어 혁명적 세력이 될 수는 없다. 계급들이 혁명적일 수 있는 상황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정세와 계급역관계에 따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중국 사회주의의 진짜 근원은 먼 미래의 어느 시간에 이루어질 공산주의 제도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적 성숙 속에서가 아니라 오늘날 바로 이 자리에서 공산당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투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 그것은 자본주의의 사회적 파괴에 반대하는 투쟁이 필연적으로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행위자는 프롤레타리아가 될 것이다. 독립적인 노조설립의 자유는 가장 치열한 정치적 쟁점이다.

 

평가를 위한 질문

 

마이스너는 마오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다. 마오주의는 근대적 경제발전의 수단과 사회주의의 목적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한다는 딜레마와 정면대결한 이론이기는 했지만 대중민주주의가 사회주의 실현에 필요한 수단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점은 간과했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는 국가권력을 생산자들의 자치정부로 바꾸어가는 시기라는 점과 사회주의는 국가소유가 아니라 '연합된 생산자 소유'라는 점을 간과한 점에서 스탈린주의와 똑같은 한계를 마오도 보여주었다. 마오의 비-스탈린주의적 전략이 결국 스탈린주의와 같은 한계를 보여주고 같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책을 보면서 마지막 의문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름대로 50~60년대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당시의 시대적 조건 하에서 '사력을 다해' 최선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를 새로운 지배국가로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계급투쟁을 통해서 혁명을 계속 진전시켜나가려고했으며 이행기 사회 자체에 공산주의 요소를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스탈린주의와 구별되지 않는 결과를, 곧 이어 실용주의자들이 승리하고 자본주의로 회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마오주의와 중국의 공산주의자들도 넘어서지 못한 물질적 한계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사상이론적, 실천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사회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반성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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