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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생님이랑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까
제가 사오정이 된 것 같습니다.
자꾸 뭘 잘 못 듣습니다.
미루가 잘 때가 많아서
조용조용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도 붙어 있으니까
서로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유가 없어..."
"사올까?"
"뭐?... 뭘 사온다고?"
제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우...유..."
주선생님이 다시 대답하십니다.
"참나, 의욕이 없다고 의욕이..."
아마, 그 뒤에는
"인제, 말귀도 못 알아듣냐?"가 생략된 것 같긴 한데
주선생님은 착해서 그냥 참은 것 같습니다.
미루가 우는데 보니까 오줌을 아주 조금 쌌습니다.
기저귀를 갈려다가 주선생님이 그냥 더 차고 있어도 되겠다 싶었나 봅니다.
"갈아주는 척 하다가 다시 채우는 엄마의 센스~~
갈아줬다고 생각해~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야, 미루야~"
미루가 막 웁니다.
"아..이런, 알아버렸어? 엄마의 계획이 수프로 돌아갔네..."
엄마의 계획이 수프로 돌아갔다!
세상에 계획이 수프로 돌아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거기다 대고,
"현숙아~'수프'가 아니라 '수포'야"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랬다간
주선생님이 저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 미쳤구나~?" 라고 했을 겁니다.
출산 전에는 맨날,
키위, 호두, 철분제 등등을
꼬박꼬박 먹고, 운동도 매일 하도록
아예 점검표를 만들어서 챙겼었는데
산후에는 산후풍약도, 철분제도 계속 못 챙겨줍니다.
게다가 이젠
말귀까지 못 알아듣는 겁니다.
계속 붙어 있어도 좀 집중해야지..하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러던 차에 오늘 낮엔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역시 주선생님이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 점심땐 국수 먹자~~!"
"옥수수 먹자고? 갑자기 무슨 옥수수?"
증세가 더 심해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구, 비디오 빌려왔어?"
"드디어, 뭐?"
...아, 어디가서 수련이라도 해야할까 봅니다.
처음 미루를 목욕시킬 때는
굉장히 긴장했었습니다.
혹시 떨어뜨리면 어떡할까
손에서 놓쳐서 물 속에 빠뜨리면 어떡할까 등등
안 좋은 상상은 다 했었습니다.
처음 목욕시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좀 더웠기 때문에
큰 아기 욕조에 시원한 물을 잔뜩 받아 놓고
책에서 본대로 일단은
물 속에 넣기 전에 머리 감기고 세수도 시켰습니다.
미루는 진작부터 울기 시작합니다.
'애들은 물을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물 속에 넣으면 그때부턴 안 울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꿋꿋하게 얼굴, 머리를 씻긴 다음
물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더 웁니다.
욕조에는 물이 너무 많아
미루의 움직임 때문에 생긴 파도가
다시 미루를 덮칩니다.
몸이 휘청휘청 거리고,
파도 밖의 두 어른도 덩달아 휘청휘청 거렸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참 많이 나아졌습니다.
처음엔 물 속에 들어간 다음에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벗긴 옷을 배 위에다 올려놔줬습니다.
안 그러면 불안해져서 빽빽 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처음부터 옷을 홀라당 벗겨서 들고 들어갑니다.
처음엔 뽄때나게 애기 욕조에 시켰지만
지금은 2000원 짜리 대야 두개를 사서
하나는 본 목욕, 하나는 헹굼용으로 씁니다.
미루도 이걸 더 편해라 합니다.
맨 처음 목욕시켰을 때 마구 울었던 건
미루 덥다고 '시원한 물'을 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들은 38~40도 사이의 온도를 좋아한답니다.
온도계를 사고, 물 온도를 정확히 맞춰주니까
그때부터 미루는 결코 울지 않습니다.
38도에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목욕을 즐깁니다.
39도에는 미루의 표정 옆에 말풍선을 달아준다면
"어...시원하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40도가 되면, 눈을 있는대로 크게 뜨고 "후..후..."합니다.
우리가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갈 때 내는 소리랑 똑같습니다.
이때는 바로 몸을 완전히 뒤로 젖히는데
사우나에서 아저씨들이 이러는 거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37도에 집어 넣으면
미루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고 바로 울기 시작합니다.
굉장히 정교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 같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이런 미루를 보고
이렇게 얘기해줍니다.
"민감하기는~~"
지난 주엔 전반적으로 순탄해지던 미루의 목욕에
최대의 난관이 닥쳤습니다.
너무 더워서 물 속에 넣다 빼자면서
대야 하나에만 물을 받아서 씻기는데
미루가 느닷없이 막 웁니다.
곧이어, 물에 뭐가 둥둥 뜹니다.
물 속에서 똥을 싼 겁니다.
"으..어떡해, 어떡해..빨리 씻기고 나가자"
마지막으로 몇 번만 끼얹어주면 되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손으로 바가지를 만들어서
미루 목과 가슴에 물을 퍼올렸습니다.
마음이 급했던 모양입니다.
주선생님이 끼얹은 물이
미루 입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으악~어떡해애애~~"
너무 너무 당황한 저는 머리 속이 하얘졌습니다.
미루를 뒤집어서 등을 쳐주고 난리가 났습니다.
똥물을 먹으면 십중팔구 장염에 걸리는데 큰일 났습니다.
그러나 주선생님
예상치 못했던 과학적인 분석을 내놓으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미루가 울고 있었잖아? 근데 울 때는 기도가 열려..
그 상황에서 입으로 물이 넘어갔으면 그때는 먹는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기도로 넘어가서 폐로 가는 걸 걱정해야 해..
근데 우리가 미루를 곧바로 뒤집었고, 미루가 켁켁 거렸잖아?
그러니까 폐에까지는 그 물이 안 갔다고 봐야지..걱정마 장염 걸릴 일은 없을 거야..."
결과적으로 주선생님의 분석은 맞았습니다.
미루한테는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아..그나저나
우리의 미루
요즘 못 먹을 걸 너무 많이 먹습니다.
저 빼고 두 사람이 수난입니다.
1. 미루의 수난
미루는 얼마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수난을 당했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미루가 똥 싸놓은 기저귀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때 미루가 느닷없이 오줌을 찌~익 갈겼습니다.
태어나고 몇 주간은 시도 때도 없이 싸고 갈기는 미루 덕에
우리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오줌도 좀 덜 싸고
똥도 하루 종일 싸대진 않아서 안심을 하던 차였는데,
이 날은 또 때마침 똥 기저귀를 갈고 있는 사이에
저를 향해 오줌을 발사한 것입니다.
"아~앗"
당황한 저는 저도 모르게 한 손으로는, 잡고 있던 미루의 두 다리를 번쩍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오줌을 막았습니다.
여기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리를 번쩍 들자 오줌이 하늘을 향해 발사됐고
한 손으로 그 오줌을 막자, '반사'가 되어
그만 앵앵 거리던 미루 입속으로 그대로 들어가버린 것입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호들갑도 그런 호들갑이 없었습니다.
켁켁거리는 미루한테 물을 먹여야 할까
아니면 젖으로 중화시켜야 할까 고민하면서
촐싹촐싹 온 방을 뛰어다녔는데
이때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놔둬~~괜찮아~~"
저는 주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고
미루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요새 미루 얼굴이 약간 노래진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2. 주선생님의 수난
사실 진짜 수난은 주선생님이 당하고 있습니다.
더위를 날려버리겠노라면서
시원하게 샤워를 마친 주선생님이
머리를 닦고, 수건을 걸어 놓는데
수건의 전체적인 색조와 다른 색이 눈에 보였던 모양입니다.
"상구, 이게 뭐야...?"
"응? 그거? ....그거 미루 똥 묻은 거네..."
"으으윽....나 그걸로 방금 닦았는데...."
수건에 똥이 묻어 있는 건
사실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예전보다 나아졌다 해도 여전히
미루의 똥과 오줌은 집안 구석구석 사해만방으로 퍼져나갑니다.
젖먹이는데 한바탕 싸서, 수유쿠션에 똥이 흘러서 묻고
침대보에 묻고, 방 바닥에, 방수요에, 그 위에 깐 얇은 천에 묻고 또 묻습니다.
오줌을 자기 키 만큼은 발사하는데
제 바지에 싸고, "에이~"하면서 갈아 입은 바지에 또 싸고
기저귀 교체하는 그 순간에 싸고,
안고 걷는데, 약간 틀어진 기저귀 사이를 뚫고 제 티에다 또 쌉니다.
우리는 망연자실
"그새, 또?"를 거듭 외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주선생님이 목욕을 시키기 위해
미루를 안아서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피곤했던지 곧바로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감싸고
아래쪽부터 위쪽까지 쭈~욱 쓸어올립니다.
곧바로 비명이 터졌습니다.
"으~악, 이게 뭐야~"
안고 오는 동안 미루가 똥을 주선생님 손에 쌌고
주 선생님은 그 손 그대로 얼굴을 비볐던 겁니다.
아마, 느닷없이 로션 바르는 느낌이 났을 것 같습니다.
주선생님의 얼굴에는
'미루표 로션'이
적당히 펴져서 골고루 발라져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피부, 최대의 위기입니다.
오늘은 진정,
주선생님에게 위로가 필요한 날입니다.
얼마 전부터 숙원 사업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냉장고 청소하기
또 하나는 화장실 청소하기
"상구~화장실 청소 좀 해줘...곰팡이가 날 잡아먹을 것 같애.."
청소는 정말 끝이 없습니다.
애한테 매달려 있다 보니, 청소까지 열심히 할 여력이 없기도 합니다.
처음의 의욕과는 달리 바닥 쓸고 닦는 건 2-3일에 한번씩 할까 말까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해야겠다고 맘 먹은 화장실 청소는
주선생님의 하소연을 듣고도 차일 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음식 만들기의 핵심은 냉장고 관리이기 때문에
평소에 잘 하면, 따로 청소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냉장고 안에는 뭔가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주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화장실에 들어간 김에 저는 세면대하고 변기를 조금 닦았습니다.
청소한 티가 가장 잘 나는 곳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간 화장실 전체가 깨끗해지겠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일단 이렇게 해서 눈에 보이는 데만 좀 청소하면
주선생이 그냥 넘어가겠지..'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화장실 일부분이 깨끗해진 걸 보더니
주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화장실...깨끗해졌더라?"
"응....아까 그냥 좀 청소했어..."
"대충 그걸로 때울라고 그랬지?"
문제의 핵심을 일체의 돌려말하기 없이
정확히 꿰뚫는 주선생님이십니다.
세상 일 중엔 한방에 뒤집는 게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조금씩 고쳐봐야 끝까지 결판 안 나는 일이 있습니다.
'대충 때우는' 개량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는 조금의 변명도 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나갑니다.
"미안....내일 꼭 청소할께..."
하지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서 저는
결국 냉장고 청소를, 그것도 일단은 냉장실만 했습니다.
온갖 음식 쓰레기가 다 나오더군요.
냉장고 관리를 해야 비로소 음식을 만든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제 평소 주장에 비춰봤을때,
역시 전 입만 살았습니다.
언제 해서 넣어놨는지 기억도 못하는 도라지 무침
검은 비닐에 쌓아서 넣어 놓는 바람에 방치된 상추 세 봉지
시장에서 사서 한 동안 잘 먹다가 그새 잊어먹고 이번에 발견한 쭈꾸미 조림
냉장고에 하도 오래 있어서 눅눅해져버린 멸치 조림
김치찌개 해 먹으려고 따로 모아놨는데, 화석이 되어버린 김치조각들
유기농을 사 온 거라 아껴 먹으려고 넣어놨다가 골동품으로 변해버린 야콘
...
이런 것들을 모두 치웠습니다.
드러워서 말이 안 나옵니다.
하지만 한방에 뒤집으니 이제 겨우 살만 합니다.
"아..청소하니까 영혼이 맑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 보다 한발 앞선 감각을 갖고 계신 주선생님의 반응입니다.
이제 화장실이 남았습니다.
인간다운 화장실을 위해 또 한바탕 '혁명적 청소'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제가 대충 청소해놨던 화장실에 들어가려다
주선생님이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습니다.
세면대가 깨끗한 걸 보고, 청소가 다 된줄 알고 방심했었나 봅니다.
미안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역시 개량은 위험합니다.
아침에 잘 누워 있던 미루가
방금 먹은 젖을 토했는데
짙은 노랑색에 당근색이 섞여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토해놓은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전화도 했고 책도 찾아봤지만
대체 뭘 토한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미루가
신나하면서 팔다리를 흔들어 대는게 위안이었는데
이 때 주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체온 재볼까?"
저는 최첨단 고막 체온기를 귀에 댔습니다.
'37.5도'
평소 미루는 36.9도 쯤 나갔고
37.5도는 소아과 의사선생님이 예전에 페구균 접종한 다음에
그 온도 넘으면 해열제 먹이라고 했던 바로 그 체온입니다.
이번에야 말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 밤에 밤새도록 덥더니
어디가 아픈 모양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려고 주변 소아과에 전화를 돌렸지만
일요일 아침에 하는 곳은 응급실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응급실에 대해 두 가지 안 좋은 추억이 있습니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쓰러진 친구를 업고 응급실을 찾아갔었는데
의사가 허둥지둥하더니 구석에 가서 책을 찾아보는 걸 봤던 게 첫번째 기억입니다.
두 번째 기억은 체한 주선생님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의사가 자꾸 맹장일지 모르니까 엑스레이 찍자고 해서 찍었던 일인데
나중에, 그 당시에 뱃속에 미루가 있었다는 걸 알고 기절초풍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응급실에 가는 건 조금만 미루고 일단
우리가 직접 체온을 내려보기로 했습니다.
옷을 모두 벗기고 몸을 식혀줬습니다.
미지근한 물로 목욕도 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체온을 잽니다.
37.3도, 37.4도, 37.2도....
체온을 여러번 재는 건 평균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주선생님은 열심히 미루의 귀밥을 파냈습니다.
애가 아픈 데 귀밥 파고 있는 심정,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예전에 미루 왼쪽 귀 온도를 재고 열 나는 줄 모르고 있다가
큰 일 날뻔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왼쪽 귀 36.9도, 오른쪽 귀 37.5도.
왼쪽 귀에 귀밥이 꽉 차서 온도가 낮게 나왔던 겁니다. 참 별일이 다 있습니다.
어쨌든 계속된 노력으로 우리는 겨우 미루의 체온을 36.9도로 낮췄습니다.
만세를 불렀습니다.
긴장이 풀리자 주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거실 한 쪽으로 가서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좀 더 확실한 위안을 위해 이내 누워서 잡니다.
...
사실, 이렇게 해서 다 잡은 줄 알았던 미루의 체온은
두세번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습니다.
두번 째 열이 오른 건 주선생님의 초대형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에어컨을 틀면서 바람이 미루에게 정통으로 가게 해놓은 겁니다.
제가 그걸 뒤늦게 발견하고 바람 방향을 바꿨지만
미루 체온은 다시 37.5도가 돼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앉아 있는 주선생님께
저는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거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해야 하는 말은
"너도 많이 놀랬지~? 인제 괜찮을 거야~"라는 멋진 말입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조그만 게 아프니까 큰 사람 둘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아픈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만 합니다.
미루를 키우면서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노래들이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우는 미루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이 노래들은 사용됩니다.
자주 하는 노래 중 하나는
불후의 명곡
"자장~자장~우리 애기, 잘도 잔다~ 우리 애기~" 입니다.
주로 미루가 잠들기 직전
눈이 반쯤 감겼을 때부터 이 노래를 불러줍니다.
마구 울때는 일단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게 중요합니다.
이 때는 아까 그 노래의 음에 가사만 바꿔서
"괜찮아요~괜찮아요~우리 미루~괜찮아요~"를 불러주거나
혹은
역시 같은 음으로
"우리 미루~이쁜 미루~우리 미루~착한 미루~"를 불러서
애의 환심을 삽니다.
이 외에도 몇 곡 더 불러주는 게 있긴 한데
저는 주로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주는 편입니다.
애 한테 익숙한 음률을 들려주고,
같은 상황에서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게 좋다고 해서 입니다.
주선생님도 나름대로 같은 노래를 불러주긴 하는데
가끔 느닷없이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저도 당황하고
미루도 당황하고
자신도 당황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엔 애가 칭얼대는데
이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묵찌빠, 묵찌빠~묵은 묵사발~""
애 한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뭘까 궁금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묵사발'이란 용어를 접하는 미루의 심정도 궁금했습니다.
주선생님의 노래는 계속 됐습니다.
"묵찌빠, 묵찌빠~찌는 찌~개~"
이제는 메시지 보다
저 노래가 과연 정상적으로 끝이 날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묵'으로 시작하는 음식 '묵사발'
'찌'로 시작하는 음식 '찌개'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빠'로 시작하는 음식을
주선생님이 생각해낼까 걱정이 됐습니다.
그 짧은 1, 2초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빠'로 시작하는 음식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평소 스타일로 봐서
"묵찌빠, 묵찌빠~빠는...에이, 모르겠다...히히.."
이러고 넘어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선생님의 노래가 계속 됐습니다.
"묵찌빠, 묵찌빠...
빠는...
빠나나.."
아..역시,
주선생님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빠나나~'를 외치고
미루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노래는 계속 됩니다.
요 며칠 주선생님이
여러번 병원에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주된 이유는 '이스트 감염' 때문이었습니다.
젖을 먹이는 중에도
그리고 젖을 먹이고 난 후에도 가슴이 계속 찌릿찌릿 아팠답니다.
원래 아픈 거 참는 실력이 세계 4강에 드는 주선생님은
역시 이번에도 계속 참았답니다.
그러다가 육아 대선배 진경맘님이
"혹시 이스트가 아닐까"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병원에 가서 확인했더니 정말 이스트였습니다.
병원에 가기 전에 주선생님이 걱정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엄마가 이스트 감염이면 애기도 감염된대.."
그런데 그 와중에 저는 왠지 '이스트'란 단어가 좀 익숙했습니다.
"정말? 근데, 이스트...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대..
..그거 빵에 넣어서 부풀어 오르게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것 같은데.."
"헉..그럼, 얼마전에 똥이, 거품이 막 뽀글뽀글 일면서 나왔잖아..그게 이스트 때문이었나봐.."
상상력이 널뛰기를 합니다.
아무튼 그 후 주선생님의 '가슴 아픈' 증상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보다 더 심하게 아팠습니다.
점심 때 먹은 게 체했나 봅니다.
낮쯤에 머리가 좀 아팠던 게,
해 지고 나서는 토할 것 처럼 메스껍고, 편두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저는 주선생님의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 사이,
그리고 발바닥의 움푹 파인 부분을 눌러 주었습니다.
척추를 따라 양쪽을 꾹꾹 눌러주고
등의 가운데 부분을 손으로 퍽퍽 두드려주었습니다.
한 시간쯤 그렇게 하자,
그토록 기다리던 트림이 나오면서 속의 메스꺼움은 좀 가라앉았습니다.
이번엔 머리 차례입니다.
누워있는 주선생님의 머리를
손가락 열개를 세워서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타닥..타닥...탁탁탁...타다닥..탁탁탁"
고기 다질 때랑 비슷한 소리가 납니다.
갑자기 주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꼭, 도마위의 소고기가 된 것 같애..."
입이 살아났습니다.
아주 좋은 징조입니다.
평소 주선생님은 깨어 있을 때 참 말을 많이 하십니다.
말을 안 할때는 자고 있거나 아니면 아플 때입니다.
따라서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좀 나아졌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산모는 애기 땜에 아플 수도 없습니다.
사실은 그 사실이 좀 슬픕니다.
'애기는 울려야 한다.'
'우는 걸 자꾸 안아주면 버릇 나빠진다.'
어른들이 흔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애가 우는 건 뭔가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애들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놔두는 것 뿐입니다.
"응애~응애~!!"
"응...그래, 우리 미루 ..인제 잘려구~~?"
"응애~응애~켁 켁"
"어..우리 미루 알았어~자장, 자장..우리 아가.."
"응애~응애~으앙~으아앙"
"아이고, 이 놈의 자식 왜 이렇게 울어...에라~그냥 울어라~"
"으앙~으앙~으아아아앙~"
이걸 통역해 보겠습니다.
"배고파요...밥 줘요~~!!"
"응...그래, 우리 미루 ..인제 잘려구~~?"
"정말, 배가 고프다니까요~~"
"어..우리 미루 알았어~자장, 자장..우리 아가.."
"왜 밥 달라니까 자꾸 자라고 그래요~~배 고파아앙~~"
"아이고, 이 놈의 자식 왜 이렇게 울어...에라~그냥 울어라~"
"으앙~밥 달라니까, 밥도 안 주고, 아빠 싫어~~"
어른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애기는 정말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면 더욱 더 악악 거리면서 울 수 밖에 없습니다.
미루는
'켁켁' 거리면서 울거나 '응애, 응애'하면
배가 고파서 우는 겁니다.
그걸 그냥 놔두면 나중에는 힘들어서 '음메, 음메~'하고 울기도 합니다.
깜짝 놀랍니다.
짜증스럽게 울어대면 어김없이 똥을 싼 겁니다.
많이 싸면 뭉개면서 좋아라 하는데
울때는 꼭 조금만 싸고 깔끔한 척 할 때입니다.
느닷없이 자지러지게 울면
젖먹고 트림을 안해서 입니다.
이 때는 최대한 빨리 등을 토닥여주면 트림을 하고, 금방 웃습니다.
고양이처럼 울다가, 점점 보채면
졸려서 우는 겁니다.
"자장, 자장~"은 이 때 합니다.
그 이외에 우는 경우가 있는데
조금 달래주면
"앗~! 이건 내가 우는 4대 이유에 해당 안되는데.."이런 표정으로
금새 그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게 인간관계의 중요한 덕목이고
아이의 울음을 잘 듣는게 아빠, 엄마의 기본인 것 같습니다.
...
참, 그런데 미루가 가끔은, 마구 울어대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저는 마음을 차분히 먹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고, 이 놈의 자식 왜 이렇게 울어...에라~그냥 울어라~"
"어...이거 봐...목에 이게 뭐야..?"
주선생님께서 미루를 정밀 관찰하시던 중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게, 이거 빨간 게 이게 뭐지?"
"모기 물린 거 아냐?"
"모기?"
"집에 모기 들어왔나보네.."
"에구 불쌍한 우리 미루 ...되게 아팠겠다.."
"그러게.."
"어! 여기 팔도 물렸네.."
"어떡해~다리에도 두방이나 물렸어.."
자고 일어났더니 모기가 미루를 5방이나 물었습니다.
모기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아니, 무슨 모기가 이렇게 양심도 없냐?"
"그러게 말야, 어른들 다 놔두고 왜 애를 물어, 애를~~"
한참을 얘기하다 주선생님
점점 화가 나서 못 견뎌하더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방으로 뛰쳐들어갑니다.
"나쁜 새끼들, 다 죽여버릴거야~~"
조금있다 따라들어가 봤더니
주선생님은 모기는 안 잡고 침대에 누워서 잡니다.
충격에 마음을 달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2.
"뭐해?"
제 물음에 주선생님이 대답합니다.
"응, 인터넷으로 모기장 사는 중이야.."
"어, 그래..모기장...빨리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러게.. 밤마다 모기 있나 보고 ..모기약도 피우고 했는데 완전 당했다.
모기장이 제일 확실한 데 방심했어..."
모기에게 5방이나 물린 미루가 너무 걱정이 돼서
소아과 의사선생님한테도 여쭤봤습니다.
"5방이나 물렸는데, 우리 애..괜찮을까요?"
"괜찮아요~~"
소아과 선생님이 피식 비웃는 듯 말했는데,
그래서 더 안심이 되긴 했습니다.
우리는 모기장을 현관에다 걸었다가
미루 침대를 아예 덮었다가 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모기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골몰했습니다.
3.
"아~이거 진짜~~"
"정말 미치겠다.."
"미루 괜찮은지 한번 봐봐"
"퍽, 팍~, 퍽"
밤새 모기 때가 주선생님과 제 머리 맡을
윙윙 날라다녔습니다.
불 켜기를 몇 차례씩 하면서
이놈들을 때려잡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
"에이, 그냥 자자..
우리가 희생양이 돼서 미루를 지키면 되지~
이 놈들아 우리를 물어라~~!!"
결국 침대를 통째로 모기장으로 덮기도 했고
우리가 모기들을 유인하면
미루는 안전하겠다는 생각에
이불을 걷어 치우고 잠을 잤습니다.
4.
"나, 모기 여섯방이나 물렸어...가려워 죽겠어..
상구는 몇 방이나 물렸어?"
"...나? ..찾아볼께"
사실, 저는 평소 모기에 물렸는지 안 물렸는지
잘 모르는 스타일입니다.
물려도 가렵지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모기가 잘 물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어제밤에 모기가 그 난리를 쳤는데
나도 좀 물렸겠거니 하면서
모기 물린 자국을 찾아 봤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아..이거 한방이라도 물렸어야 하는데..괜히 현숙이 한테 미안하잖아..'
속으로 이런 마음이 들어서 열심히 찾아봤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저기...한 방도..안 물린 것 같은데.."
주선생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엉엉...그럼, 나 혼자 미루를 지킨 거야?"
모기와의 전투에서 주선생님은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집 세 사람이 미용실에 갔습니다.
36년간 오직 전통의 헤어스타일 한 가지만을 고집하던 저에게
주선생님께서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파마를 하자고 해서 간 겁니다.
미용실에 들어서자
거기서 좀 높아보이는 여자분이 와서
이것 저것 참견합니다. 그러다가 하는 말.
"어머, 애기 코에 이거 자기 손으로 긁었나 보네..
손톱을 잘 깎아줘야지...
아빠가 화 나겠다..엄마 뭐했어~"
순간 주선생님 얼굴에 열이 확 뻗칩니다.
저는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 지 못 들었다가
주선생님한테 얘기를 듣고, 뒤늦게 열이 확 뻗쳤습니다.
'아니, 애 손톱은 꼭 엄마가 깎아주라는 법이라도 있어요?
그리고...얼굴 긁었으면 아빠가 엄마를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왜 화를 내요?
직장 나와서 일하시는 분이 본인도 다 겪어봤을 거면서
애는 무조건 여자가 키워야 한다는 겁니까?'
저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속으로 말했습니다.
미용실에 있는 내내
주선생님은 많이 불편해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데 애 데리고 나왔다고 구박하는 눈치까지
이 여자 저 여자 한테서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일들은 정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육아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맨날 집에만 있으면
잠깐이라도 밖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굴뚝 같은지
여자들은 서로 이해할 줄로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미용실의 그 높은 분은
직장 일은 직장 일 대로
집안 일은 집안 일대로 이중으로 하는 여자이면서
말은 꼭 남자의 관점으로 얘기했습니다.
이런 저런 핑게로
애 키우는 데는 하나도 신경 안 쓰면서
뭔 일만 있으면 "아니, 대체 집에서 애를 어떻게 키우는 거야?"
이렇게 얘기하는 남자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 할 일 따로 있고, 남자 할 일 따로 있다 이겁니다.
애 키우는 일 같은 건 여자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런 겁니다.
전형적인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입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집에 돌아와서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여자와 남자 사이의 불평등이 없어지나
뭐, 그런 종류의 얘기를 하면서
서로를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제의 일을 잊고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면서 밖에 나갔습니다.
저는 미루를 안고 주선생님은 몇 발 앞서 걸었습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주선생님에게 말씀하십니다.
"저게 뭐야~애기 배가 다 나왔어~~옷 잘 입혀야지"
애를 안고 있는 건 전데,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애에 대해서 엄마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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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이 더운데 두분이 붙어 있느라 욕보시오. 두분의 애정이 더욱 무르익기를...!(너무 익어서 끓겠다 끓어ㅎㅎㅎ)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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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너무 무르익어서 탈이오...ㅎㅎ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