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배밀이를 향해서

"어머~쟤 봐~"

"왜?"

"엉덩이를 완전히 들었어, 다리를 쭉 펴서..."

 

하루하루가 새롭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특히 미루는 요즘

뒤집기 이후 최대의 과제인 '배밀이'에

맹렬히 도전 중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참 정교하고 정성스럽습니다.

 

 

1.

 

처음 뒤집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팔을 쭉 뻗더니, 뒤로 갑니다.

 

우리는 열광했습니다.

 

평범하게 앞으로 기는 것 보다

뒤로 가는 게 훨씬 낫다면서 환호했습니다.

 

주선생님이 장모님한테 전화했더니

"애들은 다 그래~" 하십니다.

약간 실망입니다.

 

저희 어머니한테 전화드렸더니

"우하하하하~"하시면서 같이 열광해주셨습니다.

분위기는 다시 고조됐습니다.

 

 

2.

 

얼마전부터는 엎드린 상태에서

양팔을 쭉 펴서 상체를 들고

고개를 뒤로 확 젖힙니다.

 

요가할 때 하는

코브라 자세입니다.

 

이게 배밀이랑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무조건 열광합니다.

 

 

3.

 

4일 전부터는 양팔과 양다리를 다 들어서

오직 배의 힘만으로 버팁니다.

 

스카이다이빙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더니, 두 발을 뒤로 막 찹니다.

저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미루는 앞으로 나갈 겁니다.

 

 

4.

 

이제는 엎드린 체로

엉덩이를 위로 푹 들었다 내렸다 합니다.

 

생각해보니까

엉덩이를 들어야 다리가 바닥에 밀착할 수 있습니다.

 

역시 배밀이를 향한

일보 전진입니다.

 

 

5.

 

"인제, 발목도 저렇게 움직이네~~"

 

발목을 까딱까딱 움직입니다.

그렇게 해서 발바닥 부분이 바닥에 닿아야 비로소 미는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배밀이를 향한

한발 한발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런 식으로 해서 준비가 다 되면 배밀이 하나 봐~"

 

주선생님이 문득

그 동안 가슴 속에 품었던

작은 소망 한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인제 우리도 미루 배에 걸레 깔아서

방바닥 닦게 할 수 있는거야?"

 

"그렇지~~"

 

...

 

배밀이가 멀지 않았습니다.

 

미루를 위해서 

걸레를 준비해야 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감기 2

"애도 애지만

엄마가 맞아야 돼..이 집은 엄마 아빠 둘 다 맞아야겠네.."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독감예방 주사를 맞기로 했는데

 

한 방에 5만원이라고 해서

다음에 맞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안 맞았습니다. 한달 됐습니다.

 

"상구, 나 목이 되게 많이 부었어.."

 

주선생님이 아침에 일어나더니

감기기운이 있답니다.

 

"빨리 병원 가봐.."

 

아침 일찍 주선생님은 병원으로 가고

저는 미루랑 놀았습니다.

집이 많이 건조합니다.

 

"엄마가 감기 걸리면 애도 감기 걸리는데, 큰일이네..

아...이 집은 아빠가 있으니까 괜찮을 수도 있겠다..."

 

주사를 맞고 온 주선생님한테

저는 마스크를 선물했습니다.

 

"미루한테는 접근 금지야...젖 먹일 때는 마스크 쓰고..."

 

주선생님은 하루 종일

미루로부터 반경 5미터 지점 외곽에서

맴돌았습니다.

 

집은 계속 건조합니다.

 

"엄마, 나 감기 걸렸어요...네..네..알았어.."

 

장모님께서 감기에 좋은 도라지, 배 등등을 넣고 달인 약을

보내주시기로 하셨답니다.

 

들어보니까 장모님도 그저께 몸살로 누웠다 일어나셨답니다.

 

'그래도 뭐, 튼튼하시니까...'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는데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좀 이상합니다.

 

긴급 정신분석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현숙아, 내가 방금 생각해봤는데..

여자가 아프면 집안에서 밥 하지 말라고 하냐? "

 

"그래도 밥은 해야 할 걸?"

 

"음...그런가?"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막 끄집어 내서 펼쳐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파도 아프다고 잘 안 하신다...'

'아파도 밥도 하시고 빨래도 하시고, 남편도 챙기시더라..'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셔도 크게 긴장은 안되더라..아픈 티를 내셔야 긴장하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머니는 엄청 튼튼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아프다고 하셔도 곧 털고 일어나시겠지라고 생각하는 습관도 생기고...'

 

"콜록, 콜록"

 

너무 깊은 생각을 하는 바람에

머리에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침까지 합니다. 

 

"콜록~콜록...골골골..."

 

감기 바이러스에 맞선 최후의 저항전선이

저인데, 제가 감기에 걸리면 큰 일입니다.

 

미루는 지금 우리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마냥 놀고 있습니다.

 

집안에 전운이 감돕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기랑 노는 건 정말 힘들다 2

미루랑 노는 건

여전히 체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체력이 받쳐줘야 합니다.

 

요즘엔 미루가

책 읽어 주는 걸 좋아하는데

 

소리내서 책 읽어주는 게

왜 이렇게 힘든 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최근에 산

'세밀화' 시리즈 3권을 읽어줬습니다.

 

"미루야~이건 '개' '미', 개미야~우리집에 많지~

 

이건 '호 랑 나 비', 펄럭 펄럭, 호랑나비..

 

..'거' '미', 거 미..어떡하지? 이것도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애...."

 

첫번째 권을 끝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책을 덮자, 미루가 싫어합니다.

한 번 더 읽어줍니다.

 

이제 1권을 끝내고 2권 시작입니다. 

그 전에 재빨리 뛰어가서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자~인제 곡식 볼까? '보 리',  보리~

 

밀~밀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안 나...

 

옥수수~옥수수~"

 

슬슬 체력이 딸립니다.

책은 속으로 읽어야 되는데

 

소리내서, 그것도 높낮이를 바꿔가면서 읽으려니까

힘이 듭니다.

 

특히 같은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배로 힘이 듭니다.

 

 

"마지막이다~꼬꼬꼭~꼬끼오~나는 닭이야~

 

꽥꽥꽥~나는 오리야, 오리~"

 

책 3권을 두번씩 다 읽어주고 나도

미루는 또 읽어달라고 보챕니다.

 

그래서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소야~소~음메에에에"

 

마지막에 이걸 해주면

미루는 웁니다. 음메 소리를 싫어합니다.

 

재빨리 달래주고 나면 더 읽어달라고 보채지도 않습니다.

효과 만점의 치사한 방법입니다.

 

"상구 있잖아..미루한테 말 많이 걸어줘..

이번 주가 26주라서 급성장하는 시기잖아...막 보채면, 옆에 누워서 잘 달래줘..화 내지 말고...

옆에 누워서 말 걸면 애기한테도 좋고, 화도 덜 난대.."

 

"그래?"

 

"응...보통, 누워 있다가도 화 나면 벌떡 일어나잖아..."

 

후딱 뛰어가서

물을 가스렌지에 앉히고 왔습니다.

 

미루 옆에 누웠습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줬습니다.

 

미루는 가만히 제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누워 있으니 좀 살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목, 등, 허리가 다 아픈데, 이렇게라도 쉬니까 좋습니다.

 

순간 소원이 생겼습니다.

'빨래 끝났다는 소리..한참 있다 울려라...'

 

저의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얘기가

미루에게 너무 차분하게 들렸나 봅니다.

갑자기 지루해하더니, 막 소리를 지릅니다.

 

"꺄악~~꺄아악~~"

 

벌떡 일어났습니다. 다시 신나게 놀아줘야 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혼자 밥 먹기

오늘 일이 있어서

시골에 내려 갔다 왔습니다.

 

"가만 있어봐, 말 나온 김에 전화 한 번 해보자.."

 

어머니께서

두 달 전에 애 낳은 막내 동생의 부인,

그러니까 제수씨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쯤이면 한참 힘들 때인데

역시나, 오후 3시가 넘었는데도

애가 안 자서 점심도 못 먹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벌써 미루가 6개월째라고,

2개월 쯤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희한하게 잘 생각이 안 나지만

그래도 그 '느낌'은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아직 밥도 못 먹었단 얘기를 들으니까

몸이 그때 일을 기억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애 때문에 밥 시간을 놓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밤 9시 넘어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들어서는데,

주선생님 얼굴이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오늘 힘들었지...내가 돼지머리랑, 홍어회랑 얻어왔는데 먹자~"

 

주선생님은

오늘 저녁에 뭘 먹었는지

그걸 먹으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저한테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나갔다 들어와서 미루 재우고 짜장면 시켰거든...?

근데 40분이 지나도 안 오는 거야..."

 

미루가 자는 동안 저녁을 해결하려던

주선생님의 계획은 짜장면이 50분만에 오고

미루는 그 전에 깨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답니다.

 

"처음에 시킬려고 보니까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은거야..

그래서 고민하다가 우짜면을 시켰어...."

 

"어.. 그랬어..."

 

"중국집에 전화를 했는데...아저씨 우짜면이요~그러니까"

 

전화 저쪽에서 "볶짜면이요?" 이러더랍니다.

 

"아니, 우짜면이요.." "볶짜면이요?"

 

"사람들이 우짜면은 잘 안 시키나봐...암튼, 난 우짜면을 시켰지..

근데 미루 젖 다 먹이고 나서 짜장면부터 먹을려고 하니까 다 불어 터진 거야..."

 

진짜 울고 싶더랍니다.

저녁 시간은 한참 지나서 배는 고프고,

근데 짜장면은 불어터지고.

 

"그래서, 우동을 한 번 먹었는데..이건 완전히 진짜..면발이 풀어져버린거야.."

 

눈물이 글썽입니다.

믿었던 우동은 더 했으니, 얼마나 상심했을까 싶습니다.

그냥 볶짜면 시키지...

 

"짜장면 먹다가...너무 불어서 우동은 좀 낫겠지 하고 먹었는데 이건 더 불고..

그래서 좀 덜 불은 짜장면이라도 먹어야겠다 하면서 다시 짜장면을..."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합니다.

입이 일그러졌습니다.

씹다만 돼지머리가 밖으로 나올려고 합니다.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모습.

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주선생님은 

짜장면은 다 먹었답니다.

 

애를 옆에 두고 혼자 밥 먹는 건

6개월이 됐어도 여전히 힘든 일입니다.

 

오늘 이것저것 얻어 오길 정말 잘 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겨울 채비-유모차 커버

9월이 다 돼서

여름 준비를 마쳤던 가슴 아픈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엔 겨울 준비를 좀 빨리 할까 했는데

갑자기 겨울이 와버렸습니다.

 

사실 제가 한 건 딱 한가지입니다.

 

"미루 있잖아...유모차 커버 필요하지 않으까?"

 

안 그래도 지난 몇 주간

공원에 나가면 유난히 사람이 없어서

좀 이상했었습니다.

 

3일 전에 외출을 했다가

전에 자주 보던 한 엄마를 만났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주선생님이 반갑게 말을 건넵니다.

 

"요새 공원에 안 나오시나봐요..안 보이든데..."

"네..요즘 추워서요.."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요..미루는 맨날 나오는데.."

 

사실, 쌀쌀한 날 미루를 데리고 나올려면

옷이란 옷은 다 껴입히고

큰 수건으로 몸을 말고, 거즈로 목을 다시 한번 싸줍니다.

애벌레 같습니다.

 

안 그랬다가

찬 바람이라도 들어가면 큰 일 납니다.

 

"그래서 친한 엄마끼리 오후 3시 이후엔

돌아가면서 집에서 모여요..안 그러면 애가 텔레비젼만 보더라구요.."

 

어쩐지 쌀쌀할 때 공원 나와 있는건

우리 밖에 없더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공원에 나갔다가

신기한 유모차를 봤습니다.

 

유모차 앞 부분이 투명한 비닐 같은 걸로

씌워져 있었는데,

 

그 안에 있는 애는

히터 튼 차 안에서 졸려 하는 사람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닐에는 김까지 서려 있었습니다.

 

미루는 옷으로 꽁꽁 감쌌지만

코도 빨갛고, 눈 주위도 빨갛습니다.

 

"저렇게 생긴 유모차도 있네..우리도 저런 걸로 살 걸..."

 

밤에 주선생님과 상의해보니까

그게 바로 '유모차 커버'였습니다.

 

제가 주변을 잘 살피면서 다닌 덕에

본격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유모차 커버를 샀습니다.

 

주선생님은 그 중에서도

아이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눈 앞쪽이 판판한 투명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유모차를

어떻게 알고 주문했습니다.

 

'자! 이제 겨울이 와도 우리의 외출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게 어제까지의 각오였습니다.

 

근데 오늘 보니까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겨울에는 그냥

집에 가만히 붙어 있는게 최고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호강하다

오늘 아주 호강했습니다.

 

제 생일이라고

주선생님이

부엌에서 미역국을 합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알려주신

최강의 미역국 끓이기를 직접 해냅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쇠고기 미역국,

정말 맛있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주선생님은

곧바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합니다.

 

"상구는 좀 쉬어.."

 

내가 뭘 했다고..

그냥 쉬랍니다.

 

뭐,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한번 쉬어볼까 생각하면서

어제 빌려온 비디오를 봤습니다.

 

몸도 편하고 정신도 몽롱해지는 게

아주 좋습니다. 

집이 이렇게 아늑했었나 싶습니다.

 

주선생님은 옆에서 빨래를 개고

또 빨래를 널고 있습니다.

 

"같이 하자~"

 

"상구는 좀 쉬라니까..."

 

형식적으로 빨래 서너개를 널어주고는

또 쉬었습니다.

 

정말 편합니다.

마음도 뭐 불편하진 않습니다.

 

"우리 좀 있다 미루 깨면 케잌 먹자~"

 

미루가 참석한 가운데,

초는 만 나이로 계산해서 36개만 꼽고

짧은 파티를 했습니다.

초가 참 많았습니다.

 

오후 2시

 

"상구 출출하지 않어?"

"응..좀 그러네.."

"내가 호박 넣고 부침개 해주까?"

"아니...너도 좀 쉬지..."

 

그 이후로도 주선생님은

계속해서 일을 했습니다.

 

여름옷 집어 넣고

겨울옷을 꺼냅니다.

 

"같이 할까?"

"아니, 괜찮으니까 쉬어~"

 

주선생님은

미루랑 놀다가, 젖도 먹이고

이것저것 계속 뭔가를 합니다.

 

그러다가 또 저녁 준비를 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곧바로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라도 내가 할께..."

"아냐, 다 했어...쉬어.."

 

저는 계속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옆에서 일을 하건 말건

 

다 본 비디오를 계속 다시 돌려보고

케잌 먹고, 미루랑 아주 잠깐 놀아주다가,

거실 바닥에서 뒹굴고

폼 잡고 독서도 했습니다.

 

편하고 좋았습니다.

이러는 것도 습관되면 할만 하겠다 싶습니다.

 

"근데 있잖아...다른 남자들은 평소에도 이러나?"

"그렇지..그러니까 결혼할라고 하는 거잖아.."

 

이 짓을 매일 하면

주선생님한테 미안해서 못할 것 같은데

 

정말로 매일 이러는 사람들은

참 강심장입니다.

 

어쨌든 오늘 하루 굉장히 호강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식구가 늘었다

11월 5일은 제 생일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저 어릴 적부터 생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부모님께서

저한테 뭘 가르치셨는지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거창하게 생일 잔치를 하면

속으로 '저런 건 다 사치야...'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주선생님이

그래도 케잌이라도 하나 사고, 미역국도 끓여준다면서

어제부터 요란을 떨었습니다.

 

셋이서 오랜만에 외식도 하고

마트에 가서 소고기와 미역도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미루 씻기고 재우니

상당히 피곤해졌습니다.

 

"상구~나 부탁이 있는데..."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주선생님이 어렵게 깨웁니다.

근데, 몸이 너무 무겁고 만사가 귀찮습니다.

 

"으..으응...무슨 부탁..."

 

"있잖아...케잌 하나만 사다주라..."

 

주선생님은 저한테

제 생일 축하 케익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냥 케잌 같은 거 안 먹으면 안되냐?"

이 말이 입에서 막 샜는데, 참았습니다.

자다 깨니까 짜증이 많이 납니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

20분쯤 걸어서 도착한 빵집은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다시 20분을 걸었습니다.

 

"제일 싼 케잌이 어떤 거예요......그걸로 주시구요...초는 36개, 아니 37개 주세요.."

 

케잌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옛날 생각이 하나 났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초겨울 쯤이었는데

그 날도 제 생일이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저녁 12시에 비 쫄딱 맞고 집에 들어갔는데

동생이 막 뛰어 나오더니 저한테 물었습니다.

 

"형아야~형아 생일이 11월 5일 맞지?"

 

뛸 듯이 기뻤습니다.

한 5년만에 우리 식구가 내 생일을 기억하는구나..

 

"응...너 어떻게 알았어?"

"어...아까 통장 아저씨가 와서 식구들 생일 조사하는 데 아무도 형 생일을 모르더라구..근데 내가 맞췄다...히히.."

 

그러더니 동생은 지 방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그러부터 20년이 지난 이번 생일은

비록 제 손으로 케잌을 사가는 것이긴 해도 어쨌든 생일을 챙기는구나 싶으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빨리 가서 둘이 오붓하게 촛불키고 노래 부르고 사진찍고 그래야지...'

 

"현숙아~나 왔어~~"

"왔어?....근데 어쩌지?"

"뭘?"

 

"있잖아...우리 식구 중에 한명이 자고 있어서, 축하파티는 내일 낮에나 해야겠다..."

 

아...식구가 한 명 더 있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미루는 우리 식구입니다.

 

근데 괜히 케잌 사느라고 밤 중에 고생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가을 땀띠 긁어주기

요새 미루 몸 여기 저기에

땀띠가 많습니다.

 

원래 몸에 열이 많고

혼자 신나서 움직일 때에는 등에 땀도 흥건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별 생각 없이

미루의 앞면만 신경을 썼지

뒷면에는 신경을 못 썼는데

 

뒤통수, 뒷목, 어깨의 뒤쪽에

땀띠가 수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땀띠 난 부분에 땀이 차지 않도록 신경 써주고

목욕 끝나면 물기도 잘 닦아 줍니다.

 

땀띠는 특히

미루가 잠이 거의 들었다가도

몸을 비비 꼬고, 등을 바닥에 비비고, 손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다가 깨기 땜에 문제입니다.

 

실컷 고생해서 거의 재웠는데 다시 깨면

그것도 한 두번이지 미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방법을 찾았습니다.

 

엎어져 자는 데 취미를 붙인 미루가

엎드리자 마자, 뒤에서 땀띠난 부분을 살살 긁어줬습니다.

 

처음엔 팔도 짧은 게

뒤통수 긁느라 고생한다 싶어

대신 긁어줬는데

 

아, 이게 꽤 시원한 모양입니다.

 

눈을 스르르 감더니 곧바로 잠이 들어버립니다.

그 어떤 잠재우기 의식 보다도 효과적입니다.

 

슥슥슥...

 

누굴 긁어주면서

이렇게 보람을 느껴보긴 처음입니다.

 

더 열심히 긁어 줬습니다.

 

벅벅벅...

 

이렇게 몇 번 성공했는데

미루가 맛을 들였는지

이제 조금 긁어줘서는 잠을 안 잡니다.

 

다시 혼자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냥 계속 긁어주면 되나?

아니면 뒤통수 아랫 부분 말고 다른 곳도 좀 긁어줘야 되나?

내가 손톱이 길어서 긁으면 아픈가? 더 살살 긁어줘야 되나?'

 

이번엔 뒷목, 어깨까지 긁어줬습니다.

 

다시 잘 잡니다.

 

신나서 등도 조금씩 긁어줬습니다. 더 잘 잡니다.

몇 번 그러더니, 다시 잠을 안 잡니다.

 

문득 평소 제 '생활 속의 소원'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으...거기 말고 좀 더 왼쪽 왼쪽, 거기서 조금 위...아니 조금 아래.."

 

가끔 등이 가려워서 주선생님한테 긁어달라고 하면

항상 가려운 곳의 정확한 좌표를 찾아내는 일이 어렵습니다.

 

이 나이에 효자손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항상 긁어달라고 하는데 

 

진짜 문제는 가려운 곳이

꼭 도망을 간다는 것입니다.

 

"으아..시원해...어...그 옆에도, 그 위에..그 위...계속 도망간다...아니..더 위쪽~~"

"에라이~"

 

주선생님, 아예 두 손으로 등 전체를 박박 긁어줍니다.

가려운 곳이 빠져나갈 틈이 없습니다. 

 

제 소원은 가려운 곳이

제발 한 군데 얌전히 있는 것입니다.

 

'혹시 미루도 가려운 곳이 도망가나?'

 

제 통찰이 맞다면

주선생님이 저한테 해주는 것처럼 해야

미루가 쉽게 잠들 겁니다.

 

내일은 이 방법으로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청소

이 놈의 집은

하루만 안 치워도

쓰레기장입니다.

 

청소는 평소에 저보다

주선생님이 잘 합니다.

 

저는 화장실, 냉장고 같은

특별구역을 주로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립니다.

나머지 구역은 주선생님이 합니다.

 

제가 1시간 걸려서 할 걸

15분이면 합니다.

 

제가 청소하는 걸 보다 보다 답답해하더니

언젠가부터 자기가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한테 일 시킬려면

바로 이 순간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항상 이렇게 외치고 결국 자기가 해버리다 보면

가사노동은 죽는 날까지 여자 차지입니다.

 

주선생님이 3일째 교육을 가고

오늘은 저 혼자 미루 목욕시키고 재웠는데

 

1시간 가량의 전투를 치르고 거실에 나왔더니

이런 엉망이 따로 없습니다.

 

로션, 베이비 오일, 기저귀띠, 수건, 거즈, 애벌레 인형, 이런 저런 딸랑이 등등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습니다.

 

갑자기 나의 어지러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이에 누웠습니다.

 

함께 널부러져 있으면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면서

마음이 좀 가벼워질 것 같았습니다.

 

에이..천정에 매달려 있는 등이

먼지로 새까매진 게 보입니다.

 

괜히 누웠다가 짐만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귀찮아서 계속 안 닦을 건데, 신경은 쓰일 거니 마음의 짐입니다.

 

아무튼 널려 있는 것들은 빨리 치워야 겠습니다.

쓰레기도 버릴 게 많고, 재활용 쓰레기도 많습니다.

 

근데, 아파트 살면서

꼭 출근시간, 퇴근시간에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게 되면

아침 출근길이 시큼해집니다. 저녁 퇴근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킁킁~상구 누가 음식물 쓰레기 갖고 탔었나봐.."

"설마~~ 푹 익은 김치냄새구만..내가 쓰레기 경력 몇 년인데..

이 냄새에는 확 끌리는 게 없어..."

"음식물 쓰레기 같은데..."

 

1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한 아주머니가 음식물 쓰레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주 커다란 통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 날 아침 컨디션 조절을 위해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었는데

 

전 이런 일 없으라고

음식물 쓰레기는 꼭 밤에 버립니다.

 

지금부터 치워야 할 쓰레기 중에는

역시 음식물 쓰레기도 있습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루는 손님

주선생님과 어떤 분이

이런 대화를 나눴답니다.

 

어떤 분: 애 놓고 다녀도 괜찮으세요?

주선생님: 네, 그럼요. 아빠가 봐줘요..

 

어떤 분: 아..그래요. 좋으시겠네요

주선생님: 근데, 벌써부터 애 떼어놓고 다니면 어떡하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어떤 분: 에이~그런 게 어딨어요. 애랑 애착관계만 잘 형성되면 되는 거죠..

주선생님: 그러니까요... 근데 우리 애기는 저랑 별로 애착관계가 안 생기나봐요..

 

주선생님은 몇 달 전부터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살짝 삐쳤었다가,

 

인제는 그냥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다.

 

미루는 지금도 제가 놀아주면 막 웃고

가만히 있어도 저를 보고 웃는데

 

그러다가도 주선생님이 놀아주면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할 때 얼굴이 됩니다.

 

요새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애들이 잘 하는 해맑은 웃음.

 

그걸 주선생님한테는 잘 선사 안 합니다.

 

"미루는 나한테는 저렇게 안 웃어.."

 

이렇게 말하긴 하는데

이전처럼 좌절의 기운이 감돌지는 않습니다.

 

"실컷 젖 먹고 기분 좋아져서 고개를 돌리면 아빠가 보이니까,

그래서 아빠를 더 좋아하는 거 아닐까?"

 

나름대로 분석도 합니다.

궁색합니다.

 

어떤 분: 정말이요?

주선생님: 네...지 아빠한테는 애착관계가 잘 형성된 것 같은데..저한테는 안 그래요..

 

어떤 분: 오호~그럼, 땡큐죠!!

주선생님: 땡큐라구요?

 

어떤분: 그럼요~얼마나 좋아요..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고...

주선생님: 히힛~그러네요~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건 좋은데

사실 그것 때문에 엄마들이 자기 할 일 포기하는 건 

싫습니다.

 

한 20년만 내 인생 애 키우는 데 쓰지 뭐...

이러면 곤란합니다. 딱 그 시기 20년이 사람 인생의 전성기일 때입니다.

 

그 보다는

아이가 있어서 좋고

그것 때문에

자기 일도 더 신나게 하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미루는 우리한테 온 손님이니까,

신경써서 잘 해주자~대신, 매달리진 말자~"

이게 우리의 각오였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미루가 저를 더 좋아하는 게

육아휴직의 성과 같아서 뿌듯합니다.

 

근데, 좋아한다는 애가

왜 제 머리 끄댕이는 자꾸 잡아당기는 지

아파죽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