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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미루 눈 밑에

좁쌀만한 게 오돌토돌 났습니다.

볼 피부도 하루 사이에 거칠어졌습니다.

 

"이거 이유식 때문에 그런 건가?"

 

주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직전에 먹였던 감자를 안 먹이고

다른 걸 먹여보기로 했습니다.

 

양배추를 넣어서 먹이니까

한 이틀 정도 보였던 좁쌀들이 사라졌습니다.

 

이유식 해주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재료를 어떤 걸 넣어주느냐하는 거 말고도

이유식 먹일 때 신경 써야 할 게 많습니다.

 

"케케켁..."

 

양배추 미음을 줬는데

미루가 오만상을 찌뿌리면서 뱉어냅니다.

 

"왜 그러지?...상구~이거 뜨거워..."

 

미음 만들어 놓은 게 다 식어버려서

잠시 중탕을 했고, 확인도 한다고 했는데

엄청 뜨거웠던 모양입니다.

 

"으악...미루야 미안해...다시 식혀줄께..."

 

다시 먹으면서 미루는

이유식 숟가락을 매우 경계했습니다.

그러다가 안 뜨거운 걸 확인하더니

잘 만 받아먹습니다. 단순하고 좋은 아이입니다.

 

양배추 미음을 먹이고 나서

자기도 출출해졌는지 주선생님이

고구마를 집어 먹습니다.

 

자기 혼자 먹으면 됐지

그걸 미루 입에 자꾸 대줍니다.

 

"주지마~~"

"히히~얘 봐..진짜 먹을려고 그래..."

"아, 주지말어~"

"미루야 아빠가 주지 말래.."

 

미루가 막 짜증을 내고, 혀를 낼름거립니다.

 

"정말 좀 먹어 볼래?"

"그거 먹이면 부작용 생겨도 고구마 때문인지 양배추 때문인지 모르잖아~!!"

 

주선생님은 저의 연이은 구박에도 끄떡 안하고

희희낙락 거립니다.

 

"근데 있잖아...미루는 엄마랑 아빠랑 둘이 같이 있으면 표정이 되게 밝아..그치?"

"아니......"

"잉? 그럼?"

"나랑만 있을 때도 밝아.."

"뭐야 그럼..나하고 있을 때만 표정이 안 좋은 거야?"

 

자꾸 미루한테 고구마 먹일려고 하길래

좀 우울하게 만들어줄려고 이렇게 얘기했는데

 

주선생님은 이런 얘기 듣고 얹히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고구마만 잘 먹습니다.

 

아무튼 이유식 제대로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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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화장실

미루랑 잘 놀던

한 낮에

 

갑자기 장 내부의 압력이

부동산 가격 보다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아침 일찍 모든 일을 처리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고

 

혹시 있더라도 차분히 인내하다가

미루가 자는 시간을 적절히 이용했었습니다.

 

오늘은 모든 게 어긋났습니다.

 

요새 미루는 한 번 깨면 2시간 넘게

쉬지 않고 놉니다.

 

엄청난 압력을 2시간 동안 버티는 건

더 큰 대형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어떻게 할까..

 

뭘 어떻게 합니까. 당장 화장실로 달려 가야지.

 

근데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즘 마구 구르기와 뒤로 배밀이 하기로 기동력이 생긴 미루는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어디로 굴러가서 박힐 지 모릅니다.

 

고민했습니다.

'미루를 업고 화장실로 들어갈까?...몸이 앞으로 쏠릴텐데..'

'안고 들어갈까?...음, 괜찮네..'

 

하지만 정녕 미루를 안고

변기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인간성 상실이 또 없습니다.

점점 후각도 발달하고 있을 미루도 불쌍하지만

저도 불쌍합니다.

 

다시 고민 끝에 전 화장실 앞쪽에 미루를 눕혀 놓고

화장실 문을 연 다음에 말로 미루를 끊임없이 붙잡아 두기로 했습니다.

손을 뻗어서 잡고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안 닿았습니다.

 

"미루야~아빠 금방 나갈거니까, 조금만 그대로 누워 있어..."

 

미루는 아빠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곧바로 뒤집더니 뒤로 배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루야~~어디 가~~"

 

미루는 뒤로 후진에 후진을 거듭했습니다.

중간에 혹시 몰라 바리케이트로 쳐 놓은

수유쿠션, 베개를 전부 뚫고 쇼파 밑으로 곧장 직행합니다.

 

"미루야~~거기 드러워~~미루~~"

 

조금만 있으면 됩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루야~~이거 봐~~곤지 곤지 곤지 곤지 잼잼잼~"

 

변기에 앉아서 별 짓을 다 합니다.

 

저의 노력에 미루가 멈칫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획 바꿉니다. 부엌으로 향합니다.

 

그곳엔 쓰레기통도 있고, 각종 전선에, 오래 묵은 기름 때등이 조화를 이뤄

아이들이 잠시 머무르기에 지극히 나쁜 곳입니다.

 

"미루야~제발~~"

 

애가 나쁜 길로 빠져드는 걸 보고만 있으려니까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만약 미루가 더 이상 가서는 안되는 길로 간다면

내가 이 상태에서 뛰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위급한 상황이 오면 뛰쳐나가겠지만

인격에 큰 손상이 오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루야, 이 놈아~~가지 마~~야아아아아~~~"

 

어제 광주에 갔었는데

만나 뵀던 분들 중 몇 분이

저와 똑같은 일을 겪으셨고

다들 애를 두 팔로 꼭 껴안은 채로 사태를 해결하셨답니다.

 

다들 한번쯤 이렇게 하셨을텐데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통한의 눈물만 흘리셨을 전국의 많은 산모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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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세계대전

1914년과 1939년에 발발했던 제 1, 2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3차 세계대전이 오늘 아침 저희 집에서 있었습니다.

 

전쟁의 징후는 얼마 전부터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었습니다.

 

주선생님과 저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별 것 아닌 일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소규모 분쟁이

그 동안 국지적으로 발생했었는데

 

지난주부터는 점차 전면전의 양상으로 치달았습니다.

 

"아침 시간엔 제발 내가 책 좀 읽을 수 있게 해달란 말이야~!!!"

 

저를 위해서 특별히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려고 했다가

아침 7시도 안됐는데 시끄럽게 굴어서 책도 못 읽게 한다며 제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전쟁의 열기는 한 차례 고조됐었습니다.

 

"조금만 빨리 준비해줘~"

"내가 뭘 늦게 했다고 그래~!!"

 

10시가 넘어서 막 잠이 깬 미루가 보채는데

아직 이유식 준비가 안 끝나서 주선생님이 가볍게 한 말에

저는 괜히 상처를 받고 막 지랄을 했습니다.

 

정세는 점차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결국 양 진영은 대규모 화력을 동원해서

상대방 진영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위아래집 및 옆집에선 전쟁의 포성을 다 들었을 겁니다.

 

저는 화려한 이미지 뒤에 감춰진 포악함을 무기로

주선생님의 심장에 맹폭을 했고

 

주선생님은 아름다운 피부 밑에 숨겨져있던,

니가 힘들다고 하면 어떡하냐고 욕 먹을까봐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있던 최근의 괴로움을 전면에 드러내며 맞섰습니다.

 

저는 36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극악무도한 행동으로 주선생님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고

 

주선생님은 심하게 몸떨기와

한번에 주름살 수백개씩 만들면서 얼굴 찌뿌리기로 대응했습니다.

 

전쟁은 마침 그 순간에 누가 누구한테 총을 쏴서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주선생님이 요새 다큐작업 마무리 하는데

임신, 출산이 핑계가 되선 안된다면서 몰두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고

저는 원래 제정신이 아닌데다, 오랜 육아로 지쳐 있었다는 점입니다.

 

주선생님은 워낙에 다큐 제작 막판에는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냅니다.

저는 원래 뭐든지 6개월 이상하면

얼굴에 짜증꽃이 핍니다.

 

전쟁은 핵무기 발사 직전에 종료됐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성의 힘이 파국을 막았습니다.

전쟁 발발 1시간 후의 일입니다.

 

두 사람은 일단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미루야, 미안해..."

 

미루를 재운 후

두 사람은 종전협상을 통해

평화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여

새로운 번영의 길로 도약할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주선생님이 요즘 많이 힘듭니다.

힘든데 힘들다고 못해서 더 힘듭니다.

 

사실 미루는 두 사람이 공평하게 보고 있는데

힘들다고 하면 남편이 애 다 보는데 니가 뭐가 힘드냐는 소리 들을까봐 말 못해서 더 힘듭니다.

 

덕분에 주선생님은 새벽부터 밤까지

다큐만들거나 미루 보거나 집안 일 하느라 쉬지를 못합니다.

 

주선생님한테 위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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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의 친구들

집 근처 사는

미루의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제는 서울 동쪽 끝에 살던

아루네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어제는 또 아파트 옆동에 사는

연우네 식구들이 저희집으로 놀러 오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마음 맞는 친구들이 사는 건

좋은 일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 중에는 두세식구가 소모임을 이뤄서

품맛이로 일주일에 며칠씩 서로 아이들을 봐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참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미루가 좀 크면

주선생님과 저도 이렇게 할까 생각 중입니다.

 

"어..그러고 보니까 우리 연우도 벼루할 때 '연'자니까 셋다 '루'자가 들어가네요..."

 

정말 그렇습니다.

미루, 아루, 벼루 다 '루'자 돌림입니다.

 

품앗이 육아를 고민하면서

마침 예전에 같이 살았던 친구네가 임신을 했는데 저희 집에 놀러왔길래

우리 동네로 이사오라고 권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뱃속에 있는 아이 이름도 같이 고민했었습니다.

"아루, 미루...니까 너네도 '루'자로 끝나게 이름 지어봐.."

 

"뭐가 좋을까?"

 

"나루 어때 나루?"

 

"배타는 데 같잖어.."

 

"노루? ...음..마루는 ?"

 

뾰족한 수가 없어하던 중에

저한테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일루 어때? 일루.."

한번 물꼬가 터지자 아이디어가 쏟아집니다.

 

"이루, 삼루, 만루...도루..."

쓸만한 게 없습니다.

 

아이 아빠가 얘기합니다.

"에이..그냥 외자 이름 지을래...대신 현숙이네 처럼 엄마성까지 같이 넣어서.."

 

"......"

 

엄마 성은 '조'씨입니다.

 

"안되겠다.."

 

그런데, 새로 생긴 아이네는

이쪽으로 이사를 안 온답니다. 회사가 너무 멀답니다.

 

그래도 나중에 품앗이 육아는 꼭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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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넘기

배밀이를 향해 급속도로 진보하던 미루가

드디어 배밀이는 안 하고, 뒤로만 갑니다.

 

물론 뒤로 갈 때도 배가 바닥에 밀리긴 합니다.

아까 봤더니 배 피부가 아주 거칠어져 있습니다.

 

어쨌거나 기동성이 확보가 되자

미루는 끊임없이 경계 밖으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첫 시도 장면이 목격됐습니다.

 

팔만 요 밖으로 쭈욱 내민 미루는

거실 바닥을 손으로 툭툭 쳐 봅니다.

한참을 칩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잔소리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두 번째 시도는 과감했습니다.

 

바닥의 재질을 이미 파악한 미루는

요와 바닥의 경계선에서 되뒤집기를 감행했습니다.

 

미루가 넘.어.갑.니.다.

 

"쿠웅..."

 

아, 이런

머리가 바닥에 그대로 떨어집니다.

저렇게 세게 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와 계시던 장모님이

셋 중에 가장 날렵하게 미루한테 달려가셨습니다.

 

전, 정지화면이 돼서 미루를 쳐다봤습니다.

주선생님은 막 웃습니다.

 

세번째 시도는 침대위에서 있었습니다.

 

졸려하는 것 같아서 눕혀 놨더니

곧바로 뒤집고, 맹렬하게 뒤로 갑니다.

침대와 벽 사이의 틈에 왼쪽다리와 왼쪽 팔이 빠졌습니다.

못 나옵니다.

 

번쩍 들어서 빼줬는데, 분한 얼굴입니다.

 

네번째 시도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습니다.

 

미루가 요 바로 옆쪽 바닥에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습니다.

근데 이번엔 쿵 소리가 안 난 게, 사뿐하게 착지했나 봅니다.

 

다섯번째부터는 기억도 안 납니다.

눈만 뜨면 요와 바닥의 경계를 배회하고,

침대 옆 벽을 발로 밀어내려고 낑낑거립니다.

 

엎드려 있을 때 다리쪽에 베개를 놓아주면

두 다리로 뻥뻥 차면서 후진을 합니다.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자~우리 미루 얼마나 빨리 가는 지 볼까?

자, 여기 베개...그럼 출발이다~~~미루야 달려~달려~"

 

주선생님이 엎드려 있는 미루 다리쪽으로 베개를 놓더니

얼마나 빨리 요 밖으로 나가나 시간을 잽니다.

 

"1초, 2초, 3초~더 빨리, 미루야~더 빨리~"

 

주선생님은 아이가 잘 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사상의 소유자입니다.

 

미루가 언제 앞으로 갈 지는 잘 모르겠지만

뒤로 가는 속도 만큼은 세계 최고가 돼가고 있습니다.

 

그 영광의 뒤엔 주코치님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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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분 보충

유명한 이유식 책에

모유 먹이는 아이는 6개월째에

바로 고기를 먹여야 된다고 써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내용이 모두

4개월째에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기준으로 되어 있어서

이것 저것 정확한 내용을 찾는 게 매우 어렵습니다.

 

"닭고기 언제부터 먹일까?"

"오늘 감자 먹였으니까, 내일 하루 더 먹여보고..모레부터 먹이자.."

 

어제 이런 대화를 나눴었는데

좀 있다가 그냥 오늘부터

먹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어휴..어지러워.."

"상구~왜 그래?"

"응...그냥 좀 어지러워서.."

 

안 그래도 부실한 몸.

요새 더 심해졌습니다.

앉았다 일어날 때 꼭 무릎을 한참 짚습니다.

 

"나도 철분이 부족한가봐..."

 

안 그래도 미루가 철분 보충을 위해 고기를 먹어야 하니까

그 덕에 나도 고기 좀 실컷 먹어서 철분을 보충해볼까 하는 생각을

얼마 전에 했었습니다.

그러다 말았습니다.

 

"자~철분 먹자~미루야~!!"

 

체에 잘 안 걸러지는 닭고기를

있는대로 힘을 줘서 갈았는데 보람이 있습니다.

입 속에 넣자 마자 꿀꺽꿀꺽 삼킵니다.

 

드디어 미루에게 철분이 공급된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됩니다.

 

자다가 깨자마자 바로 이유식을 줘서 잘 먹을까 싶었는데

이런 건 미루가 저를 닮았나 봅니다.

 

"어휴..누가 강상구 애 아니랄까봐 자다 일어나서 바로 밥먹는 거 좀 봐..."

 

미루는 이유식을 거의 잠결에 다 받아 먹더니

다 먹었을 때 쯤 완전히 잠이 깬 모양입니다. 

 

몸을 이리 저리 꿈틀 거리고

혀를 낼름거리면서 더 달라고 합니다.

없습니다.

 

좀 더 만들걸 그랬나 하고 생각하는데

주선생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인제 없어..니가 다 먹었잖아~

엄마는 한 입도 못 먹었어~~"

 

아...주선생님은 혹시 남을 지 모르는

이유식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아까 아침에 주선생님도 좀 어지럽다고 했었는데

저처럼 철분이 필요한 상태였나 봅니다.

 

우리는 철분부족가족입니다.

 

근데 닭죽을 먹여서 그런지

미루는 하루 종일 닭이 돼서

촐싹거리면서 다녔습니다.

 

소고기를 주면 어떻게 될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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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하루

어제 밤에 너무 일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양쪽 다리에

피곤이 1kg씩 매달려 있습니다.

 

"휴..죽겠다.."

 

아침을 준비하는데

며느리들은 아침 마다 이런 기분이겠다 싶어집니다.

 

주선생님은 새벽부터 비명을 질러대는 미루를

겨우 달래서 재우고 있습니다.

 

"조금만 쉬어야겠다..."

 

거실 바닥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얼마 안 있다 다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유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유식 준비가 끝날 때쯤

시간 맞춰 일어나는 미루.

 

피곤은 머리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이유식을 먹고 신이 난 미루는 계속 비명을 지릅니다.

누가 주리를 트는 모양입니다.

 

그러기를 3시간.

애가 목이 쉬었습니다.

다시 잘 때가 됐는데 안 잡니다.

 

너무 피곤하고 정신도 없어서

미루 옆에 누웠습니다.

 

머리가 점점 멍해집니다.

누군가 뇌를 랩으로 칭칭 감아놨나봅니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재워볼께..."

 

주선생님이 투입됐습니다.

저는 침대 밑으로 흘러 내려갔습니다.

 

요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는데

팔이 몸통에 깔려 불편합니다. 빼기도 귀찮습니다.

 

코에서 나온 숨이 얼굴을 한 번 휘감았다 빠져나갑니다.

몸은 점점 요로 변하고 있습니다.

 

"콜록, 콜록.."

"상구, 도라지 먹었어?"

"아니.."

"자꾸 기침하면서 목에 좋으라고 한 약인데 왜 안 먹어.."

 

괜히 혼났습니다.

정신이 들었습니다.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아질텐데

겨울이라 나갈 준비하는 게 복잡해서

잘 안 움직입니다.

 

덕분에 집에만 있으니까 사람이 점점 멍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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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죽을 먹다가

점심 때 쯤 근처 식당에서

단팥죽을 한 그릇 사왔습니다.

 

"있다 좀 출출할 때 먹어야지..."

 

좀 있으니까 미루가 깹니다.

젖을 먹였습니다. 잘 먹습니다.

 

표정이 아주 상큼합니다.

배부르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이유식을 좀 되게 했는데

잘 먹더니만, 젖도 잘 먹습니다.

 

이제부터 고난의 놀이시간. 

 

책을 있는대로 읽어주고,

장난감도 이것저것 줘봅니다.

힘듭니다.

 

"아차~단팥죽...!"

 

기저귀 갈아주다가 문득 식탁위의 단팥죽이 생각났습니다.

주선생님이 감춰놓은 만원짜리를 발견한 느낌입니다.

 

"히히~"

 

미루 옆에 가서 먹어야

미루가 안 보채고, 저도 편하게 먹을 것 같았습니다.

 

한 입 떴습니다.

달달하니 참 맛있습니다.

 

근데 갑자기 누워서 혼자 놀던 미루가

휙 엎드리더니 팔을 쭉 펴서 상체를 듭니다.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사상 최고의 환한 얼굴로 웃으면서

팔다리를 사정없이 흔듭니다.

 

다시 보니 제 입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입맛을 다십니다.

 

예전에도 뭐 먹을 때

미루가 입맛을 다시긴 했지만

이번 건 차원이 다릅니다.

 

입에 넣어주기만 하면

바로 넘기겠다는 표정입니다.

설명을 해줬습니다.

 

"미루야...이건 이유식이 아냐..."

 

계속 몸을 움직이더니

헉헉거리기까지 합니다.

 

"미루야..세월이 좀 더 흐르면 먹자..."

 

여전히 낑낑거립니다.

설마 정말 먹고 싶어서 그럴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미루 눈 앞에서 먹는 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되겠다."

 

등을 돌리고 먹었습니다.

더 보챕니다.

 

단팥죽을 한번 살짝 보여줘봤습니다.

다시 팔다리를 흔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졌습니다.

 

최대한 빨리 먹고 치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안 그러면 미루가 상처 받을 겁니다.

 

독한 맘 먹고 거실 구석에 가서 벽보고 앉았습니다.

울기 시작한 미루를 뒤로 하고

단팥죽을 마셔버렸습니다.

 

확실히 단팥죽은

맛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어야 맛있습니다.

 

한참 있다 주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큰일났다..미루가 입맛을 더 알기 전에

맛있는거 실컷 먹자..."

 

미루한테는 세상에 맛있는 게 참 많다는 걸

최대한 늦게 알려줄 생각입니다.

 

한 푼이라도 아낄려고 별 생각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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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자

병원에 들어가자 마자

간호사선생님한테 이 말을 들었습니다.

 

"미루는 갈수록 포동포동해 지는데

아빠는 갈수록 초췌해지시네요..."

 

때마침 저는 기침을 콜록콜록해서

초췌한 얼굴에 걸맞는 액션까지 선보였습니다.

 

육아에 들어오고 빠진 6kg이 회복이 안됩니다.

게다가 요새는 운동도 소홀히 하다 보니까

몸이 영 말이 아닙니다.

 

뭐 상관있겠나 생각하면서

미루를 안았습니다.

 

'투두둑..'

 

목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평소에 저런 소리 잘 안 납니다.

 

순간적으로 몸에 긴장이 쫙 흘렀습니다.

 

윤재맘님이 쓰러지셨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은게 얼마 전입니다.

 

미루를 내려놓고 긴급 요가를 실시했습니다.

'우두두두둑...' 척추가 맞춰지는 소리입니다.

 

미루랑 놀다놀다 할 게 없으면

가끔 일어나서 막춤을 췄습니다.

 

"운동도 되고 좋구만...아싸아~"

 

운동이 안됐습니다.

추다 말아서 그런가 봅니다.

아무래도 운동을 제대로 해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동네 수영장에 갔습니다.

아..벌써 몸이 가뿐합니다.

샤워를 하고 물속에 첨벙 뛰어들었습니다.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강습 들을 때 30바퀴, 40바퀴를 왔다갔다 했으니까

오늘은 가볍게 10바퀴 정도 해주자 마음 먹었습니다.

3바퀴 했습니다.

 

물 먹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팔 근육이 경직되고 숨도 잘 안쉬어집니다.

수영장에 죽으러 온 사람 같습니다.

 

인제 몸관리 철저히 하면서 미루를 키워야겠습니다.

 

안되면, 9.6kg 짜리가 하나 있으니까

그거라도 열심히 들었다 놨다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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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말

예방접종하러 병원에 갔다가

2개월된 애기를 만났습니다.

 

"어머..너무 예쁘다.."

"이야..정말 조그맣네...몇 달 됐어요?"

 

애기가 정말 작았습니다.

 

6개월된 아이 100명 중 10번째로 큰 아이는

키가 72cm, 몸무게 9.6kg이랍니다.

미루입니다.

 

이런 아이와 맨날 치고받고 하는 아빠 눈에

2개월된 애기는 정말 작아보였습니다.

 

짧은 순간

회상에 잠겼습니다.

 

미루가 2개월이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 6~7개월 된 아이들은

정말 다 컸다 싶었습니다.

 

애들 엄마는 또 왜 이렇게 부러운지

우리는 언제 저만큼 키울지

참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사지 강좌 갔다가

7개월 된 아이가 선생님이 뿌린

비누방울을 잡을려고 손을 뻗는 걸 보고

완전히 감동했었습니다.

그때 옆에 미루가 멀뚱멀뚱 누워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인제 처지가 바뀌었습니다.

2개월된 아이 엄마는 우리가 부러운 모양입니다.

 

말이 6개월이지

무성한 머리카락, 짙은 눈썹은

이미 청소년의 얼굴이라

2개월 아이하고 차이가 훨씬 많이 나보였습니다.

 

아이 엄마가

몇 번 미루를 쳐다 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어휴...우리 애기는 언제 크나..."

 

우리가 했던 말입니다.

 

그럴 때 마다 주변에 엄마들은 하나 같이

"금방 커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지만 금방 가니까 조금만 참아라'라는

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전혀 위로가 안됐습니다.

 

2달도 힘들어 죽겠구만,

6개월이 안 힘들리가 없었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나중에 갓난아이 키우는 엄마를 만나면 

우리는 진짜 위로가 될 말을 해주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근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겁니다.

이 엄마에게 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말을 해주자,

그래서 정말 위로를 받게 해주자 마음 먹었습니다.

 

이심전심인지 주선생님이 먼저 입을 뗍니다.

미루를 한번 추켜 안으면서

누구보다도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 해줍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금방 커요..."

 

우리도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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