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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미루가 7시쯤 잠이 들었는데

1시간도 안돼서 깨더니

막 악을 쓰면서 울어댑니다.

 

주선생님이 거실로 데리고 나와 달래는데

그치질 않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줄

코에서는 콧물이 줄줄줄

 

졸음이 그대로 눈꺼풀을 잡고 매달려 있어

눈도 잘 못 뜬채로 계속 웁니다.

 

"미루야, 왜 그래...괜찮아..응? 아빠야..."

 

제 목소리를 듣더니

미루는 눈을 크게 뜨고 절 바라봅니다.

더 크게 웁니다.

 

엄마가 품에 꼬옥 안아줘도 울고

얼러줘도 웁니다.

 

아빠가 달래주고,

다시는 안 추겠다고 맘먹었던 댄스를 보여줘도 웁니다.

 

아이들은 낮에 서운한 일이 있었으면

밤에 자다가 울기도 한다는데

그럴 만한 일도 없었습니다.

 

소고기미음이라면서 준 이유식에

소고기가 별로 없었다는 걸 알리도 없습니다.

 

한참 달래다 결국

주선생님이 얼굴로 할 수 있는 표정 천가지 중

20가지를 연속 동작으로 보여주자 겨우 울음이 그쳤습니다.

 

남은 울음 몇 마리가

코 끝하고 입 끝에 매달려 버티긴 하지만

이제 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아무래도 자다가 악몽을 꾼 것 같습니다.

 

"미루야..무슨 꿈 꿨어~? 얘기해봐..."

 

주선생님

미루한테 얼굴을 바짝 대고 얘기합니다.

 

미루는 그냥 멍하게 있습니다.

 

주선생님, 얼굴을 더 바짝대고

다시 물어봅니다.

 

"얘기해보라니까...응?"

 

또 악몽을 꿀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쨌든 미루는 주선생님과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꼬박 3시간 후에 잠이 들었습니다.

 

이게 몇일 전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처럼 또 오랫동안 고생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주선생님은 미루가 마구 울어대자 필사적으로 달래서 재우고

30분만에 한쪽 눈에 손을 대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상구, 나 눈 좀 봐줘...미루가 손가락으로 정통으로 찔렀어..."

 

오른쪽 안구가 왼쪽에 비해서

약간 흐리멍텅하고, 부풀어 오른 듯도 합니다.

 

악몽에 거친 행동까지.

미루 컨디션이 말이 아닙니다.

 

내일은 낮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해서

밤에 재미있는 꿈 꾸게 해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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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연습하는 미루

미루는 요즘 눈만 뜨면 엎드려서

앞으로 기려고 연습 중입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연습 또 연습입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발을 구릅니다.

 

한 차례 바닥을 제대로 밉니다.

몸이 앞으로 쭉 나가는데, 손은 제자리라서

상체가 앞으로 쿵 떨어집니다.

 

같은 짓을  몇 번을 반복합니다.

 

그 정도면 팔을 앞으로 움직일만도 한데

그렇게는 안하고 하여튼 무조건 열심히만 합니다.

 

미루 몸 속에 누가 건전지를 넣은 것 같습니다.

 

움직이다 지치면 되뒤집어서 누운채로 좀 헐떡거리다가

이내 뒤집고, 같은 동작을 다시 시작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땀까지 뻘뻘 흘립니다.

 

미루가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백만스물한번이 넘어서면 힘들어합니다.

 

팔을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쭉 뻗고

옆으로 누운 자세로 중심을 잡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엎드립니다. 하지만 정말 지치는 듯

고개를 요 위에 푹 파묻더니 설레설레 흔듭니다.

애가 벌써 좌절을 몸으로 표현하나 싶어 깜짝 놀랍니다.

 

고개를 다시 듭니다.

아, 그러나 다시 떨굽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미루선수

고개를 땅에 박은 상태에서 다리로 몸을 밀기 시작합니다.

 

다리를 쭉 뻗자 상체가 앞으로 밀립니다.

그러나 다시 바닥에 풀썩 떨어집니다.

 

"야~미루 봐봐..올림픽 레슬링 경기를 판토마임으로 하는 것 같지 않냐?"

 

딱히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저는 그냥 옆에서 적당히 관전평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걸 보면

미루는 곧 앞으로 길 것 같긴 한데

밤에 자러 들어가서도 연습하느라고 잠 안자는 건 정말 괴롭습니다.

 

7시에 자러 들어가서

10시에 잠이 듭니다.

3시간을 줄기차게 움직입니다.

 

옆에 저나 주선생님이 있으면 우리를 벽으로 여기고

발로 차면서 앞으로 가려고 합니다. 

 

"상구~나 도저히 못 재우겠어...몇 대를 맞았는지 몰라..."

 

"그래..교대하자..인제 내가 맞을께..."

 

대화를 나누다가 보니까

미루는 누워서 발가락을 빨고 있는데

"후루룩..쩝쩝.." 갈비 뜯는 소리가 납니다.

 

눈은 반짝 반짝 빛납니다.

아직 잘 때가 아니라는 눈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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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백일 이후 잘 안 자는 미루한테  효과가 있어서

매번 공갈젖꼭지를 사용했는데

 

요새 이게 미루한테 작은 것 같아서

좀 큰 걸 샀습니다.

 

"히히, 이건 타임캡슐에 넣어놔야지...'

 

주선생님이 더 이상 안 쓰는 공갈젖꼭지를 가지고

어디론가 신나게 갑니다.

 

집이 안 넓으니까

고개만 돌리면 어디 가는지 다 보입니다.

 

"근데, 타임캡슐이 뭐야?"

 

"응, 그런 게 있어~~~"

 

전 몰랐는데, 주선생님은 혼자서

박스 하나에 미루의 이것 저것을

모아 놓고 있었습니다.

 

타임캡슐이랍니다.

 

"어디 봐봐..."

 

박스 안에는 지난 번에 처음 깎았던

미루의 배냇머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뭘 이런 걸 다 모아놓냐고 구박했었는데

다시 보니까 반갑습니다.

 

타임캡슐 안에는 배냇머리보다

오래된 것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우선, 배꼽이 들어 있었습니다.

미루가 태어나서 한 동안 배에 달고 다녔던 배꼽입니다.

태어나자 마자 탯줄을 빨래집게 같은 걸로 잡아 누른 다음에

제가 가위로 잘랐었는데, 그 집게도 같이 달려 있습니다.

 

미루가 태어나고 바로 손목에 찬 띠도 들어 있습니다.

그 띠엔 '주현숙'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집게 다음으로 미루 몸에 닿은 물건입니다.

 

놀랍게도 그 보다 더욱 오래된 물건도 있었습니다.

띠나 집게 보다 10달은 더 오래전에 우리 손에 들어왔던 물건.

바로 임신테스트기입니다.

 

테스트 하기 전에 임신한 줄 모르고

엑스레이를 찍었었는데

 

그 것 때문에 주선생님은

산부인과 가서 의사선생님이 괜찮다고 하기 전까지

울고불고 그랬었습니다.

 

"이야~신난다~!!! 우리 인제 30년 후에 이거 보는 거야? .....그때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애..."

 

나중에 보면 너무 감동적일 것 같아서 눈물이 날 지도 몰랐고

아니면 그새 우리가 다 늙었겠구나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잊고 있었던 물건을 잘 간직해준 주선생님 마음 씀씀이 땜에 눈물이 울컥 했습니다.

 

"현숙아 우리 있잖아...만원 짜리도 몇 장 넣어놓자~열어 보고 기분 좋게~"

 

저는 괜히 흥분했고

주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하긴 했는데

잘 안 들렸습니다.

 

"이 타임캡슐 어디다 묻을거야? 요 앞 공원에 묻으까?"

 

"아, 묻긴 어디다 묻어~그냥 잘 보관하면 되지~!!"

 

"그래도, 타임캡슐인데 어디다 묻어야 되지 않으까?"

 

타임캡슐의 묘미는 중간에 한번도 안 열어봐서

뭐 들었는지 다 잊어먹고 있다가 깜짝 놀라는 데 있습니다.

 

땅 속이 아니면 어디 손 잘 안 닿는

깊은 구석이라도 찾아서 넣어놔야겠는데

주선생님이 그건 지나친 호들갑이야라고 지적하면

그냥 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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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다 상에서 일어나기

부모님이랑 같이 살 때

저는 큰 아들이라고

장남 대우 받는 데 익숙했습니다.

 

지금은 물론 많이 변했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에이...제육볶음 더 뎁혀야겠다.."

"괜찮어, 상구. 그냥 먹자..."

"아냐, 20초만 더 뎁히자..."

 

전날 먹고 남은 제육볶음을 뎁히기 위해서

저는 밥 먹다 말고 그릇을 들고 전자렌지로 갔습니다.

평소 같으면 거기서 기다릴텐데

너무 배가 고파서 그새 식탁으로 가서 한 숟갈을 입에 퍼넣었습니다.

 

"띠띠..."

"다 됐다~"

 

다시 전자렌지로 가서 그릇을 들고 식탁에 옵니다.

 

"국도 좀 차다. 그치?"

"응..."

"미안, 잠깐만 기다려..."

 

역시 전날 남았던 어묵국이 덜 뎁혀져서

전자렌지에 갔다 왔습니다.

 

"낑...끼잉..."

 

멀리서 미루가 우지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알았어~미루야, 기다려~~"

 

계속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거실로 가서 미루를 안고 옵니다.

 

"내가 안고 있을까?"

"아냐..현숙이 너 먼저 밥 먹어..그리고 교대하자.."

 

사실 이럴 땐 미루를 안고 있는 사람 보다

그 앞에서 밥 먹는 사람 마음이 더 급해지긴 하지만

기왕 제가 안고 온 거니까 그냥 주선생님한테 마저 밥 먹으라고 했습니다.

 

"다 먹었다..교대하자.."

"응..그래...자, 받아..."

"앗, 근데 물 안 마셨다.."

"물 갖다 주까?"

 

전 밥 먹기 시작하고

여섯번째로 자리에서 일어나

컵에 물을 따라왔습니다.

 

문득,

자꾸 왔다갔다 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평소엔 안 그러다가 이날 유난히

저만 혼자 왔다갔다 했는데

이런 것도 참 불편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옛날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식사 때마다

몇번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으셨다 하셨습니다.

 

그러셨다는 게 이제 겨우 생각납니다.

 

나머지 남자 4명은

거의 30년 동안 밥 먹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숫자가 손에 꼽습니다.

 

나중에 미루한테는

이런 작은 일부터 평등해야 한다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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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빠진 미루

"으앙~으아앙~"

 

밖에 데리고 나갔다 들어와서

바닥에 눕힐려고 했더니

미루가 완강히 거부합니다.

 

"미루야~아빠 힘들어..인제 좀 쉬자...응?"

 

미루는 아빠가 이렇게

좋은 말로 차분히 설명을 해주면

더 웁니다.

 

"으으아으아~으아앙~"

 

"알았어, 알았어...잠깐만 기다려~!!"

 

미루를 우는 대로 그냥 눕혀 놓고

재빨리 음악을 틀어 줍니다.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발라드가 흘러나오자

미루는 순식간에 눈을 크게 뜨고 울음을 뚝 그칩니다.

 

6개월 조금 넘은 아이한테

이런 고상한 취향이 있는지 몰랐는데

 

미루는 발라드만 틀어주면

하던 일을 다 그만두고 스피커쪽을 바라봅니다.

 

"어머...형부 감성을 닮았는가보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미루는 평소 제 분위기와 꼭 어울리는

부드럽고 유치한 노래들만 나오면

애가 달라집니다.

 

몸짓은 느려지거나 아예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 천천히 내려놨다 합니다.

무엇보다도 눈이 우수에 가득찹니다.

 

처음엔 너무 걱정했습니다.

6개월짜리가 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눈빛과 표정 때문에

애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습니다.

 

"괜찮을까?"

 

의사선생님한테 가서

"선생님 애가 발라드만 들으면 우수에 차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해서

주선생님한테 말했더니, 주선생님은 이런 대답을 저에게 건넸습니다.

 

"6개월쯤 되면 소리에 민감해져서 음악 틀어주면 좋대..."

 

약간 안심이 됐습니다.

그래도, 다른 노래도 많은데

왜 하필 발라드인지 완전히 걱정이 없어지진 않았습니다.

 

"동요 틀어주면 완전 무반응이잖아..."

"그렇긴 하지...진짜 너 닮아서 그런가?"

 

"쿵쿵짝 쿵짝 오~예...랩랩랩~"

 

집에 놀러온 친구가 저의 얘기를 듣더니

미루한테 발라드와는 다른 세상의 노래를 틀어줬습니다.

 

그랬더니 미루는 발라드를 들을 때와는 달리

더욱 우수어린 표정과 몸짓을 선보였습니다.

 

나중에 말귀 완전히 알아들을 때가 되면

그 표정은 아무때나 쓰는게 아니라고 알려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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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순하네

며칠 전에 처가집 식구들이 왕창 놀러와서

거실이 인파로 북적인 때가 있었습니다.

 

방문단 중에는 처제도 끼어 있었는데,

처제한테는 곧 한살 되는 딸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아영'입니다.

 

아영이는 참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입니다.

 

저희 집에 오면

별로 뽈뽈뽈 돌아다니지도 않고

그냥 얌전히 앉아서

웃기만 합니다.

 

얼마나 얌전한 지,

막 씩씩거려봐야 뒤로 밖에 못 가는 미루한테 가서도

살짝 건드려보는 거 말고 딴 짓은 안 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오면

미루 입에다 손가락도 넣어보고

때리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영이는 전혀 그런 게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이야...애 참 얌전하네..."

 

저도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정말 그러네.." "보리차 잘 마시는 거 봐"하면서 동의를 표합니다. 

 

처제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부드러운 목소리에 힘을 줘 외쳤습니다.

 

"얘 안 얌전해요~~!!"

 

그 말을 듣자 마자

제 입이 맞장구를 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애들은 엄마랑 혼자 있을 때는 안 그러면서 꼭 밖에만 나가면 얌전해지더라..그치?"

 

방금 전까지 속으로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그새 다른 말을 합니다.

 

역시 남들이 듣기 좋은 말하기 분야의

일인자답습니다.

이럴 땐 '입'이 '생각'보다 빠릅니다.

 

 

"맞아요, 아영이가 꼭 그래요..."

 

"나도 미루 어디 데려갔는데 사람들이 얌전하다고 하면 막 억울하다니까...이렇게 얌전한 애 키우니까 하나도 안 힘들겠다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다니까요, 억울해 죽겠어 아주..."

 

대화가 진행되면서

처제와 저 사이에는 점차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그럼, 그럼~' '맞아 맞아~' 같은 단어들이

거실에 가득 찼습니다.

 

듣고 있던 주선생님이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오호~두 사람 통하는 데...애 키우는 사람들이라 할 말이 많은가 보네~"

 

처제가 한 마디 더 했습니다.

 

"역시 형부가 애를 직접 키우니까 아는 거야...

미루 봐봐..아빠가 쳐다보기만 해도 활짝활짝 웃잖아..."

 

어느새 처제는 자기 남편 들으라고 얘기를 하더니,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남편에게 구박의 가랑비를 내려줬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영이 아빠는

놀러 왔다가 내내 싫은 소리만 듣고

나중엔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이 날의 대화로 '역시! 애 키우는 아빠'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이 좀 간사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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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

자고 일어난 주선생님이

얼굴을 꾸기면서 투덜거립니다.

 

"어휴...밤새 꿈에 시달렸어...피곤해.."

 

"안 좋은 꿈 꿨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근데 꿈에 누구 땜에 시달렸는 줄 알어?"

 

"누구? 나?..미루?"

 

"아니...다니엘 헤니.."

 

주선생님은 하루 종일 몸이 찌뿌둥하다면서

기분은 좋아라 했습니다.

 

미루랑 잠깐 나갔다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근데...꿈에 있잖아..."

 

하루 종일 꿈 얘기입니다.

 

"다니엘 헤니가 자꾸 나한테 와서 달콤한 말을 하는 거야..."

"돈 준다고 했냐?"

 

"걔가 꿈에서 무용하는 앤데..다른 애들은 막 질투하고...

나는 나 땜에 무용 못하면 어떡해..빨리 가..막  이랬어...히히"

 

"좋았겠네..시달렸다며?"

"아...시달려...이게 아니고, 호호 시달려라아~~이거였어...헤헤"

 

주선생님은 신나서 얘기하더니

"아..헤니 얘기를 하니까 기분이 업되네.."하면서

계속 혼자 주절거립니다.

 

"이야..단풍이 빨갛게 잘 들었네...있잖아, 우리도 미루한테 태몽 하나 만들어줄까?"

속으로 '시를 써라 시를...'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말을 걸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 누가 자기 애 한테 없는 태몽 만들어줬대?"

"아니, 그런 건 아니고...아무튼 우리가 산을 막 헤쳐나가는데 빨간 나무 밑에 호랑이가 눈을 꿈뻑거리고 앉아 있는거야...어때?"

 

왜 하필 호랑이냐고 묻는 것도 귀찮아서 가만히 있었더니

주선생님은 스토리를 하나 더 얘기했습니다.

말이 안되는 스토리입니다.

 

"그건 태몽으로서는 좀..."

 

주선생님은 제가 이런 반응을 보이자

더 이상 얘기를 안 꺼냈습니다.

 

이 정도로 끝낼 주선생님이 아닌데

두개 얘기하고 조용해진 것 보면

다시 헤니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가만히 보니까

남들은 거창한 태몽 하나씩 갖고 있던데

미루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미루가 자기 태몽이 뭐였냐고 물으면

그냥 호랑이 얘기라도 해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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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다

아이들한테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눈에 많이 띕니다.

 

유독 요즘 그런 일이 많은 건 아닐 겁니다.

미루 생기고 나서 주선생님과 제가 민감해진 겁니다.

 

어제 DVD를 빌려봤습니다.

르완다 인종학살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상구...봤어? 애기 젖 먹이는 장면?"

"응...너무 슬프다.."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장면이 계속 되는데

그 와중에 복도 한쪽에서 아이한테 젖 먹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화 속 그 복도에는 사람도 바글거렸고

젖먹이는 엄마는 화면의 구석에 있었는데도

그게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주선생님도 같은 걸 봤습니다.

 

"근데..저 상황에서는 긴장해서 젖도 안 나올 것 같애..."

"아냐, 나올거야..저런 상황일수록 엄마 몸이 더 반응하지 않을까..."

 

역시 젖먹이는 엄마한테는

제가 모르는 특별한 어떤 감성이 확실히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예전보다 더 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아이들

그 보다 더 안 좋은 일을 당한 아이들을 보면

아이고, 요샌 정말 못 견디겠습니다.

 

"흑흑..."

"현숙아, 왜 그래? 괜찮어..?"

 

같이 인터넷으로 어떤 불쌍한 아이한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내용을

읽고 있었고, 분위기가 아주 심각했었는데

주선생님이 갑자기 웁니다.

 

"예전에 상구가 미루 재운다고 ....40분 넘게 들었다 눕혔다 했던 적이 있었잖아..미루는 계속 울고..

그게 생각이 나서..."

 

"......"

 

"그때 미루도 너무 힘들어 하고, 상구도 힘들고...엉엉.."

 

잘 자던 미루가 갑자기 안 자기 시작하면서

한때 엄청 고생했었는데, 불쌍한 아이 이야기를 읽다가

그때 안쓰러웠던 감정이 살아난 모양입니다.

 

둘이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저는 그냥 호응해주느라고 부둥켜 안았던 건데

진짜 눈물이 납니다.

 

갑자기 방에서 자는 미루가 보고 싶어집니다.

 

"엉엉..미루가 보고 싶어..."

 

안 그래도 아까 침대 밑에 머리가 끼어서

낑낑대는 미루를 구해줬었는데

그 생각을 하니까 더 불쌍합니다.

 

"콜록 콜록..."

"상구, 왜 기침해..제발 도라지 다린 것 좀 먹어...엉엉"

 

분위기 심각한 데 도라지 먹으라고 하니까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알았어..흑흑"

"지금 먹어...엉엉..."

"알았어..."

 

울 땐 뭐 먹으라고 하지 말고

그냥 울게 놔뒀으면 좋겠습니다.

 

미루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도 그렇고

아무 사고 없이 잘 크는 것은

참 고마운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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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띠를 앞으로 멜까 뒤로 멜까

"미루야...너 요새 많이 힘드냐? 왜 이렇게 보채..."

 

요즘 미루가 컨디션이 별로입니다.

아기띠로 안아줍니다.

 

이렇게 안아주기만 하면 꼭 아기띠 어깨끈을 미루가 빨기 때문에

그 부분에 거즈를 대줍니다.

 

20분, 30분이 넘어가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등 안 힘든데가 없지만

미루가 안 우니까 마음은 평온합니다.

 

근데 앞으로 계속 안아주고 있으면

안 좋은 점이 꽤 있습니다.

 

집에만 있다 보니까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런지

요새 제가 자꾸 기침을 하는데

미루를 안고 있으면 미루는 제 콧바람으로 호흡을 하게 됩니다.

마스크를 씁니다.

 

배가 고파서 고구마라도 하나 먹을려면

미루는 꼭 애절한 눈빛을 보내서

그거 하나 먹는데 15분씩 걸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안일을 못합니다.

 

결국 뒤로 업기를 시도합니다.

 

혼자 있을 때 미루를 뒤로 업는 건

거의 묘기입니다.

 

아기띠를 침대위에 깔고 그 위에 미루를 눕힌 다음

뒤로 돌아서서 몸을 침대 쪽으로 눕듯이 하고

손으로 어깨띠를 당깁니다. 왼쪽 당기고, 오른쪽 당겨서 바짝 붙이면

미루가 제 등에 붙습니다.

 

이 짓을 쇼파에서도 가끔 합니다.

 

다 업고 나면 화장실로 가서

큰 거울에 비춰 봅니다.

 

'팔 다리는 제대로 나와 있고

미루 얼굴 보니까 불편하진 않은 것 같고..'

 

이렇게 하고 나면

전 자유입니다.

 

아이를 업고  저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도 보긴 했었습니다.

지난 주에 옆동에 사는 연우엄마가 놀러왔었는데

연우를 등에 업은 다음에 마치 애가 없는 것처럼

벽 앞쪽 방바닥에 철푸덕 앉았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진정 자유로운 사람의 몸짓이었습니다.

 

그 정도 자유로움에 비하면

제가 느끼는 자유는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참 좋습니다.

 

설거지도 하고, 목욕물도 받습니다.

가스렌지 불 때문에 신경 쓰이지만 요리도 가끔 합니다.

 

예전에 고모가 포대기 사다 준걸

요새 이런 걸 누가 쓰나 싶어서 아기띠로 바꿨었는데

포대기 그냥 쓸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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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예찬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육아 초기에 산모를

이래 저래 도울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생각나는 건 이런 것들입니다.

 

우선, 밥을 여유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여유있게 밥 먹기는

모든 산모들의 꿈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못합니다.

제때 먹기나 하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옆에 있으면 이게 됩니다.

한 명이 아이 보고, 한 명이 밥 먹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산모의 몸이 빨리 회복됩니다.

혼자서 애보고, 집안 일까지 다 하면 한 가지는 못합니다.

산후조리를 못한다는 겁니다.

 

남자가 붙어서 이것 저것 하다 보면

그때야 겨우 산후조리가 가능합니다.

 

주선생님은 건강이 완전해진 건 아니지만

진작에 예전 몸매로 돌아왔습니다.

 

셋째, 아이가 일찍부터 이뻐집니다.

요즘 이게 참 중요하구나 생각합니다.

 

뒤집기, 배밀이, 기어가기

 

이런 큰 변화들 말고

작은 변화들이 눈에 띕니다.

 

다른 사람은 못 보는 것들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처음엔 움직이지 않았던 눈동자가 움직입니다.

 

몇일에 걸쳐서 혀를 점점 길게 내밀더니, 

얼마 있으니까 사탕 먹듯이 입 안에서 굴립니다.

아랫입술을 쭉 내밀다가 이제는 윗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습니다.

 

손 전체를 움직이다가 두 손이 만납니다.

손목을 돌리고, 엎드려서는 두 손을 모읍니다.

 

다리를 들썩들썩하다가,

이제는 엉덩이 까지 한번에 듭니다.

힘이 아주 좋습니다.

 

고개에, 허리에, 등과 목에 점점 힘이 붙는게

매일매일 새롭게 느껴집니다.

 

뒤집은 상태에서 팔을 쭉 뻗어 상체를 일으키더니

어제부터는 배가 바닥에서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오늘은 그 상태에서 무릎을 세웠습니다.

 

얼마전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놀다가

제가 들어가면 알아보고 신나합니다.

 

혼자 키우면 6달이 지나도

애 이뻐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미루는 2달 지나면서부터 이뻐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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