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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2

오전 9시에 단수가 된다고 해서

아침부터 전 정신이 없고

주선생님은 방에서 미루를 보고 있었습니다.

 

심수봉 노래가 계속 들립니다.

주선생님이 평소에 부르는 노래들입니다.

 

그러다가,

노랫소리가 점점 기괴해집니다.

 

"남자는 남자는 다~우웩~모두 다 그렇게 다~꺼억~"

 

쫓아갔습니다.

 

"왜?"

"응...니가 실성한 것 같아서.."

"우히히..아냐 아냐...계속 일 해~"

 

갔다 온 게 효과가 있었는지

동요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정확한 가사 구사입니다.

좀 처럼 없는 일입니다.

 

미루의 정상적인 감성 발달을 위해서

주선생님이 마음을 잡았구나 생각했습니다.

 

한번 더 부릅니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싫어, 싫어~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몰라, 몰라~~"

 

어쩐 일로 정상적으로 부른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꽤 괜찮게 들립니다.

 

요새 교육당국의 무책임한 시장화 정책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신랄히 비판하는 가사입니다.

 

"그나저나 동요 CD는 왜 안 오는거야?"

 

주선생님이 3일 전에 주문한 CD가 아직 안 온다고 투덜거렸는데

오후 5시쯤 왔습니다.

 

노래가 꽤 좋습니다.

노래에 맞춰 사지를 흔드는 춤을 추니까

미루가 굉장히 좋아합니다. 풍류를 아는 아이입니다.  

 

익숙한 노래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이 노래는 마침 며칠 전에 주선생님이

예리한 감수성으로 가사 일부분을 바꿔부르면서 놀았던

바로 그 노래입니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댁에~"

 

"잉? 할머니가 왜 아저씨댁에 갔지? 음...이상해, 이상해..."

그러더니 가사를 바꿔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너 마을 남자친구 댁에~"

 

주선생님의 창조적 발상은 멈추지 않습니다.

미루가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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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하루 2

주선생님이 교육을 가고

미루는 한 시간 쯤 자다가 깼습니다.

 

평소 같으면 11시쯤 깨는 애가

7시에 깼습니다.

 

8시 30분에 다시 재웠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온갖 짓을 다 해서 재우긴 했는데

몸도 고달프고, 마음은 막 우울해지려고 합니다.

 

그래도, 얼마 전에

정말 최고로 우울했던 적에 비하면

오늘은 별 거 아닙니다.

 

그 날은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저 혼자서 미루를 봤습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제 성격은 지랄 같고

몸은 부실하기 이를 데 없어서

 

완전히 녹초가 됐습니다.

 

냉동실에 머리를 쳐박고

울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대신 7시도 되기 전에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서 잤습니다.

 

아무리 육아휴직이지만

하루에 한두시간은 책도 좀 읽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파악하고 그래야 하는데

 

생각만 그렇게 하고, 매번 잘 안되는 게 너무 짜증이 났습니다.

 

하물며, 공원에서 만난 동네 초등학생 애들도

긴박한 정세에 대한 자기 입장이 있었습니다.

 

"야~! 북한이 핵실험 했잖아...그것 땜에 죽겠어.."

"왜?"

"하루 종일 그거 뉴스하고 뭐하고 한다고, 오늘 짱구 안했다니까..."

"어제도 안 했어..어제는 반기문이 UN사무총장 됐다고 무슨 특집 프로 땜에 짱구 안 하더라.."

 

근데 전 그냥 미루 키우는 데 정신이 없습니다.

육아휴직 하면서 각오하긴 했는데, 쉽지 않습니다.

 

거실에 누워서,

주선생님한테, "나 힘들다~!!"는 시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근데, 자버렸습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집 거실은 반은 바닥이 따뜻하고

반은 보일러가 안 들어와서 차갑습니다.

 

따뜻한데서 자다가 땀이 나면

차가운 바닥으로 옮기는 식으로 하면서 잤습니다.

잘만 했습니다.

 

저녁 12시. 

몸을 벌떡 일으켰습니다.

침대에 가서 잤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둘이라서

매번 이러진 않습니다.

 

아이 혼자 키우는 다른 사람들은

7시부터 거실 바닥에 드러 누울 수도 없을테고

이 우울함을 대체 어떻게 푸는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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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생님 일하러 가다

주선생님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라서

누가 사무실 나가서 일해라 마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가 나가서 일하면 됩니다.

 

근데, 이 놈의 일이 일단 시작하면

마구 몸을 굴려야 되는 일이라

충분한 산후조리가 필요했습니다.

 

 

1. 한참 전에

 

3달을 좀 넘게 집에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상구~내가 아까 장 보러 갔다 오다가 생각했는데.."

 

계속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마을 버스에서 내려 오는 길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제 앞에서

정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 밤만은 그댈 위해서

분홍의 립스틱을 지우겠어요~~"

 

폴짝 폴짝 뛰고

몸은 좌우로 흔들면서

내용은 별로 좋지도 않은 노래를

가사를 계속 틀려가면서 부릅니다.

 

이럴 때 몸동작은

한때 한국사회를 주름잡던 대스타

이주일씨를 꼭 닮았습니다.

 

"근데 있잖아..

나는 왜 항상 가사가 생각 안 나지~?"

 

계속 가사가 기억 안 나서

립스틱만 3번 지웠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주선생님은 드디어 출근을 했습니다.

 

 

2. 오늘

 

오늘은 주선생님이

다큐멘터리 강좌를 하는 날입니다.

 

며칠 전부터 한번 잘 해볼라고

무지하게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오늘 낮에도 사무실에서 마지막 마무리 준비를 하고

오후 3시 30분쯤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4시에 저녁을 먹었습니다.

미루 목욕시키고 젖 먹일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오랜만에 하는 교육에

힘 딸리지 말라고

저는 특별히 그 동안 냉동실 깊은 곳에

고이 얼려두었던 등심을 꺼내서 구워줬습니다.

 

미루 나올려고 진통 시작했을 때도

힘 딸리지 말라고 먹었던 등심입니다.

 

이제 미루 목욕시키고 재우면 모든 준비는 끝입니다.

 

이렇게 마음 급한 날이면

미루는 꼭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합니다.

 

목욕을 거의 시켰을 무렵이었습니다.

"상구...똥 떴어..."

 

욕조 속에서 미루가 똥을 쌌습니다.

"하여튼, 이런 날에는 꼭 이래요..."

 

젖도 잘 안 먹었습니다.

 

5시 40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주선생님은 미루랑 30분을 옥신각신했습니다.

쉬운 게 없습니다. 

 

거의 잠들락 말락 하는 미루 옆에

제가 살짝 누웠습니다. 완전히 잠들 때까지 누워있을 작정입니다.

 

주선생님은 발밑에서

"화이팅~"을 외칩니다.

 

전, 입모양만으로 "조심해서 잘 갔다와~"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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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최근에 아이를 낳은 몇 사람으로부터

가끔씩 전화가 옵니다.

 

놀랍게도

저한테 상담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잠은, 자기 전에 하는 행동을 계속 다르게 하지 말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세요...운 좋으면 며칠만 하면 혼자 자기도 해요.."

 

"똥? 그거 며칠 안 싸도 걱정하지 마요, 변비 아니니까.."

 

안 그래도 미루가 3일째

똥을 안 싸고 있다는 얘기를 곁들였습니다.

 

"아..그리고, 어른들 하시는 얘기 중에

30년 전 얘기들도 많거든요? 그러니까, 무조건 다 듣진 마세요.."

 

"네..근데 며칠 전에도 전화 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구요.."

 

"그랬어요? 전화기를 어디다 버려두고 살아가지고,

제가 요새 전화 못 받을 때가 많아요.."

 

"애기가 20일이 넘었는데 배꼽이 안 떨어져서

걱정돼서 전화했었거든요.."

 

"지금은요?" "지금은 떨어졌어요..."

 

"아, 그리고 또 있잖아요...

그건 어떻게 하고 있어요..그 왜.. 온갖 잘난 체 주저리, 주저리.."

 

사람들이 전화가 오면

안 해도 되는 얘기까지 다 합니다.

 

혹시나 하고, 생각나는 얘기는

죄다 해댑니다.

 

괜히 걱정도 되고, 안쓰러움에, 염려에, 노파심 등등 때문에

하여튼 아는 건 다 얘기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만삭 임산부 배 위로 애기 발 튀어나오듯이 나옵니다.

 

"상구, 근데 그 분은 애기 분유 먹인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럼, 변비 신경 써야 돼..모유 먹는 애들이나 며칠씩 안 싸도 괜찮은거지.."

"앗. 그런가?"

 

 

...

 

 

오늘 아침,

거실에서 멍하게 있는데

침대에 있던 미루가 갑자기 기합 소리를 냅니다.

 

"으얏~"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어느새 몸은 침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뿌지지지직..."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저는 미루를 번쩍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안 그랬다가 똥이 새면

매트리스를 세탁기에 빨 수도 없고

아주 골치 아파집니다.

 

4일 숙성된 것이라 그런지

냄새가 아주 밀도가 있습니다.

 

"으...."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옆에 있던 주선생님은

"나는 아무래도 좀 쓰러져 있어야겠어..."하면서

냄새의 위력에 허물어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연출합니다.

 

미루는, 혀를 있는대로 내밀어서

입맛을 다십니다. 숨을 헐떡헐떡 거립니다.

 

"얘 이 와중에 이러고 싶을까?"

 

주선생님이 대답합니다.

"혀로 공기 중의 냄새를 감지하는 건 아닐까? 요새 뭐든지 일단 혀를 갖다 대잖아.."

 

"음...그건 혹시 코로 하는 건 아니고?"

 

아무튼, 미루가 냄새를 즐기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나 싶습니다.

아마 미루는 아직 이 냄새의 진실을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근데, 미루가 적당한 때

똥을 싸줘서

 

어제 변비 상담 잘 못 했던 게 생각 났습니다.

빨리 전화해서 바로 잡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저 때문에 남의 애기 변비 걸리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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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하루

"상구, 있잖아...인제 일주일에 하루를 '상구day'로 정하는 건 어때?"

"그게 뭔데?"

"응...일주일에 하루 미루 안 보고 나가서 실컷 놀다 오는 거야..좋지?"

 

우린 목요일을

'상구day'로 정했습니다.

 

오늘은 제1회 상구day였습니다.

 

오랜만에 이런 공식적인 휴가를 얻으니

날아갈 것 같습니다.

 

가끔 나갈 일이 있어도

항상 집일이 걱정 됐었는데

오늘은 그런 걱정 다 접고 실컷 놀아야겠다 맘먹었습니다.

 

바빠서 어제까지는 오늘 어딜 갈지 생각을 못하다가

오늘 아침 일어나서야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뭘 할까'

막상 고민을 하니

평일 낮에 불쑥 만날 사람도 없고

딱히 어딜 갈만 한 곳도 없습니다.

 

'에이..그냥 서점이나 가든가, 아니면 혼자 극장 가서 영화 봐야지...'

 

어쨌든 오늘은 아주 유쾌하게 시작했습니다.

 

원래 제 자유시간이 새벽 5~8시 사이인데

오늘만큼은 그 시간도 챙겨먹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소풍날엔 꼭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납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음..오늘 하루는 정말 매우 알차겠군...'

생각하면서 그 새벽부터 책을 읽었습니다.

 

미루는 6시 30분에 일어나더니

안 잡니다.

 

주선생님과 교대로

9시 40분까지 놀아줬습니다.

아침부터 좀 힘듭니다.

 

12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외출입니다.

근데 피곤이 목도리가 되어 뒷목을 감싸고 있습니다.

괜히 미적거렸습니다. 바깥 날씨도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혼자 생각했습니다.

'이런 날은 집에서 하루 푹 쉬고 잠이나 자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상구, 어디 안가~?!"

 

"나? 갈데 많지..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이렇게 멋지게 얘기해야 하는데,

갈 데는 생각 안 나고, 피곤은 더 엄습했습니다.

 

"어디 안가?"

 

계속해서 물어보는 주선생님을 쳐다보면서

저는 겨우 입을 뗐습니다.

 

"그냥 집에 있으면 안될까?"

 

"풋..."

 

"작은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쉬지, 뭐..."

 

마침 미루가 잘 시간이고 해서

옆에서 자장가를 불러줬습니다.

 

"정말 어디 안가? 미루는 내가 알아서 볼테니까 어디가서 영화라도 보고 와..."

 

아, 이젠 피곤이 공습을 합니다.

 

침대에 벌렁 누웠습니다.

 

"나 10분만 누워서 생각하고, 일어나서 나갈께..."

"그래, 그럼..."

 

그 짧은 순간에

정말 많은 꿈을 꿨습니다.

 

뭐하러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설쳤나 하는 생각을

자면서 계속 했습니다. 뒤척였습니다.

 

"상구, 상구~~!! 정말 안 나갈거야?"

"어? 어...나가야지..."

 

"지금까지 자면 어떡해..2시간도 훨씬 지났어.."

"장난하지만, 인제 정말 나갈거야.."

 

시계를 봤습니다. 오후 3시가 다 됐습니다.

외출마감 시간은 5시입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생각했지만, 그게 더 비참합니다.

 

"좀 깨우지..."

"너무 곤히 자더라구..."

 

짜증이 밀려 옵니다.

 

어느새 주선생님은 미루 기저귀를 갈다가 저를 부릅니다.

"상구~나 물티슈 좀..."

"왜 나 일 시켜~오늘 상구day인데..."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미안...공갈젖꼭지 좀 갖다줘..."

'오늘 상구 day란 말이야...' 이 말은 그냥 속으로 했습니다.

 

2회 상구day는 화려하게 보내리라 다짐합니다.

 

 

p.s

 

사실, 오늘 하루가 그냥 이렇게 끝날 수도 있었는데

 

로리님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저의 초췌한 모습을 목격하시고, 또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시더니

기꺼이 피자를 쏘시는 인류애를 발휘하셨습니다.

 

없는 살림에 3~4인분의 거대한 피자를 쾌척하신

로리님의 용단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하루, 그 마지막은 화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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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매트 냄새 빼기

미루가

그냥 누워 있을 때에도

쿵쾅쿵쾅 발을 구르는 데다

 

인제 굴러다니기 시작하면

지금 깔아 놓은 요 가지고는 안될 것 같아서

 

놀이매트를 하나 샀습니다.

 

주선생님이 몇날 며칠 시장조사를 해서

큼지막하고, 아주 두꺼워서 안심이 되는

그런 걸로 골랐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그날부터

매트가 빨리 오길 기다렸습니다.

 

"미루야 매트 오면, 그 위에서 마음껏 굴러라~"

 

주선생님은 매트 주문했다고

처제한테 전화로 얘기한 모양입니다.

 

"언니, 근데 있잖어...매트 있다고 안심하면 안돼..꼭 매트 밖에 나와서 넘어지거든.."

 

어쨌거나 우리는 기대가 컸습니다.

 

"이야~놀이매트 왔다~"

주선생님도 저도 아주 신이 났습니다.

 

박스를 풀고, 매트를 꺼냈습니다.

새 물건 특유의 냄새가 확 풍깁니다.

 

사용설명서에는

'매트에서 특유의 냄새가 날 수 있으나  2~3일 정도면 없어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거 베란다에 내놓을까?"

"그러자~ 2-3일이면 없어진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되겠네..."

 

제가 새가구 냄새, 새물건 냄새, 새집 냄새에 민감해서

뭐든지 새로 만든 물건이 많은 곳에 가면 컨디션이 확 나빠집니다.

 

미루가 절 닮았다면

이런 물건을 바로 쓰는 건

아주 안 좋을 겁니다.

 

오늘로

새 매트를 내놓은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베란다에 나가면

매트 냄새가 여전히 코를 찌릅니다.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 일주일 내놓으면 될까?"

"2-3일이면 된댔는데..."

 

"2-3일이면 사람이 적응을 한단 얘기겠지..."

주선생님, 특유의 예리한 분석을 내놓습니다.

 

"오~호~그런가?"

 

"어때? 나의 정곡을 찌르는 분석들..."

 

하나 분석해놓고

분석'들'이랍니다.

 

"난 항상 이래~

여러분~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느닷없이 있지도 않은 사람들한테 꾸벅꾸벅 인사를 합니다.

매트 냄새를 너무 많이 맡았나 봅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런 태도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예를 들어

비유하곤 했습니다.

 

속으로 그 비유를 되뇌었습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라..."

 

어쨌든 빨리 냄새가 빠졌으면 좋겠습니다.

새 물건 냄새, 너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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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랑 노는 건 정말 힘들다

"미루야~외출이다~"

 

주선생님은 5시쯤 집에 오니까

혼자서 한참을 미루랑 놀아줘야 합니다.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 한바퀴.

 

마침 잘 시간에 맞춰 나왔더니

미루는 금새 잠이 듭니다.

 

오후 1시.

막 점심이 끝난 시간이라서

공원에는 여기저기 유모차가 가득

있어야 하는데

한 대도 없습니다.

 

조금만 싸늘해도

애 데리고 나오기 무섭기도 하고

준비하는 것도 여름 보다 더 힘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미루도 두꺼운 옷 꺼내입히고

큰 수건을 이불처럼 덮어주고

거즈로, 얼굴을 가려 마스크 대신 쓰게 하고

그러고 나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재워보려고

유모차를 쉴 새 없이 흔들었습니다. 

흔들림이 있으면 애는 더 잘 잡니다.

평소보다 20분 더 잤습니다. 이것도 감지덕지.

 

집에 들어와서 해동한 젖을 다 먹더니

미루는 눈을 반짝거리며, 절 쳐다 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주기가 시작됩니다.

 

일단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약~~외로울 때며..어어어언~"

20년 전 윤복희 노래가 튀어 나옵니다.

 

노래는 한 3곡쯤 부르면 지칩니다.

체력 안배가 필요합니다.

 

노래가 멈추자

미루는 뒤집기를 시작했습니다.

'뒤집고 놀다 보채면 되뒤집기'를 한참 동안 했습니다.

 

이번엔

미루 소리 따라하기 입니다.

이건 한 10분 하니까 미루가 딴 데를 봅니다.

 

아..근데, 몸이 많이 피곤합니다.

외출해서 찬 바람 쑀던 게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옆에 있던 쿠션을 베고

미루 옆에 누웠습니다.

 

애벌레를 흔들어줬습니다.

미루는 좋아하는데, 누운 채로 팔을 들어 할려니까

이것도 못해먹겠습니다.

 

뭘 안 들고도 할 수 있는 '잼잼잼'을 선보였습니다.

손을 폈다 오무렸다 하면서 애들이랑 놀아주는

육아 세계의 오랜 놀이법입니다.

 

쿠션을 옆으로 베고 누운 상태라서

안경이 좀 불편했습니다.

안경을 벗었습니다. 미루가 관심을 보입니다.

 

이번엔 안경을 미루 얼굴 위로 가져가서

들고 보여줍니다.

 

"낑낑..."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잠깐 존 모양입니다.

 

미루는 안경이 자기 얼굴을 막 누르자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낑낑 거리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다시 번쩍 들었습니다.

다시 좁니다.

 

"이러면 안돼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제대로 놀아주자..."

 

모든 아이들이 열광하는 책

'달님아 안녕'을 꺼내들었습니다.

 

대화를 위해서는

달의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구름의 안타까운 운명을 그린 작품입니다.

 

열심히 읽어주는데

왼쪽 목이 뻐근합니다. 쿠션이 너무 높았습니다.

 

무표정한 달과 웃는 달 그림을

번갈아 가며 보여줬습니다.

 

미루가 무척 흥미있어합니다.

그만하니까 싫어합니다.

 

잘못 걸렸습니다.

15분 넘게 그 짓을 반복했습니다.

 

왼쪽 뒷목이 계속 땡기고, 두통도 오기 시작합니다.

쉬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왔습니다.

아기 체육관의 힘을 빌려야 겠습니다.

 

"미루야, 인제 이거 차면서 놀아~~"

 

미루는 아기 체육관에 흥미를 못 붙였습니다.

 

할 수 없이 주선생님 올 때 까지 미루랑 꼬박 놀아줬습니다.

혼자 놀면 좋겠고만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주선생님이 집에 왔습니다.

전 지쳐서 쇼파 위에  누워 있고

미루는 또 놀고 싶어합니다.

 

"아이고, 힘들어...계속 놀아줘야 하니까 죽겠다. 아주.."

 

"미루야~엄마, 아빠 밥 먹어야 하니까 이거 갖고 놀아~"

주선생님이 딸랑이를 하나 미루한테 들려줬습니다.

 

그렇게 보채던 미루는

딸랑이를 잡더니 흔들면서 놉니다.

게다가 손목만 이용해서 흔드는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아주 잘 놉니다.

 

휴...

진작 딸랑이 쥐어줄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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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초보

열심히 육아의 기술을 익혀도

미루가 계속 새로운 걸 들고 나오기 때문에

항상 적응하기 급급합니다.

 

육아하는 사람은

매일매일이 초보란 말이 맞습니다.

 

미루가 뒤집었던 날

다시 미루를 되뒤집어 놔야 하는데

 

그게 진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도, 뒤집은 아이

다시 뒤집는 방법을 본 적이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엎드린 상태에서

미루의 양어깨를 잡고

돌려봤습니다. 버팁니다.

 

그래도 돌렸습니다. 대강 바로 눕히는 데 성공.

 

미루가 다시 뒤집었습니다.

아까의 방법은 아무래도 좀 어설퍼서

좀 더 생각을 해봤습니다.

 

되뒤집을 때 두팔을 땅에 짚고 버티니까

그렇다면, 한 팔을 다리쪽으로 쭉 펴서 미루 몸통에 붙이면

몸이 그쪽으로 기울거고

그러면 돌리기 쉬울 것 같았습니다.

 

거의 바로 눕혔는데

아까 다리쪽으로 쭉 폈던 팔이

여전히 등과 가까운 쪽에 묻혀서

앞으로 안 빠져나옵니다.

 

"낑낑..." 미루가 고통을 호소합니다.

 

이 방법도 아닙니다.

 

'뭔가 자연스러운 방법을 찾자..'

 

하체를 잡고 살짝 비틀어서

옆으로 누운 자세를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미루가 알아서 상체를 돌려서 바로 눕습니다.

 

성공입니다.

이런 좋은 방법이 있다니,

이제 자신있게 이 방법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미루가 다시 뒤집었습니다.

이때를 기다렸습니다.

 

다리를 잡고 옆으로 틉니다.

미루가 힘을 줘서 버티지만, 어쨌든 옆으로 누운 자세만 만들면

나머지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할 겁니다.

 

힘껏 다리를 틀었습니다.

버티던 미루의 몸이 휙 돌아갑니다.

 

다리를 트니까

엉덩이는 다리 보다 더 큰 포물선을 그리며 돌아갔고

상체는 그 보다 더 큰 포물선을 그렸습니다.

 

팔은 아주 커다란 원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허공에서 빙글 돌더니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쿵"

 

발 앞에 제 심장이 떨어졌습니다.

미루는 울고 불고 난리가 났고

제 심장 떨어진 자리에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미루야, 미안해, 미안해...."

 

"어..괜찮아, 미루야.."

주선생님이 얼른 미루를 안았습니다.

근데, 정말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떡판이라

머리가 그런 식으로 떨어지면 바닥과 일체가 됩니다.

충격이 다른데로 분산도 안됩니다.

 

아무리 초보 아빠지만

이러다 애 잡겠다 싶었습니다.

 

미루를 한참 달래고

다른 날보다 훨씬 열심히 놀아줬습니다.

 

그리고, 목욕할 시간이 됐습니다.

 

"오늘은 정말 깨끗이 잘 씻겨줘야지.."

 

주선생님은 미루 옷을 벗기고 대기중이고

전 대야와 아기 욕조 두 곳에 물을 받았습니다.

 

"물 다 받았어..이리 오시오~~~"

"둘이 같이 씻길까?"

"그러자..가만있어봐..내가 대야 건너편으로 넘어갈께..."

 

좁은 화장실 바닥를 욕조와 대야가 가득 차지해서

전 대야를 넘어가서 반대편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대야를 넘어가면서

슬리퍼를 빠뜨리면 참 황당하겠다는 상상을 잠시 했습니다.

상상이 현실이 됐습니다.

 

주선생님은 추워할 지도 모르는 미루를 꼭 껴안고 퇴각했고,

저는 허겁지겁 물을 버리고 다시 받았습니다.

 

슬리퍼 담근 물을

다 마시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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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집다

미루가 일삼아 뒤집기를 시작한 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집니다.

 

언제나처럼 똥을 한 바가지 싸서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몸을 확 뒤집어버립니다.

유난히 액체형이었는데, 다른 곳으로 막 흐릅니다.

 

아예 뒤집어진 상태에서

똥을 싸기도 했습니다.

미루 입장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누워 있을 때 보다 뒤처리가 어렵습니다.

 

밤이 되어, 전 11시쯤 잠이 들었습니다.

 

"상구, 이거 봐~상구~상구~"

 

주선생님이 굉장히 놀란 얼굴로 절 깨워서 봤더니

미루가 두 손을 얼굴쪽으로 모아 놓고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주선생님은

미루가 그냥 누워서 자는 줄 알고

얼굴이나 한 번 볼려고 작은 불을 켰다가,

머리카락만 보여서 기절하는 줄 알았답니다.

 

"자다가 미루 낑낑 거리는 소리 못 들었어?"

"응..."

"나..너무 놀랬어..."

 

엎드려 자다가 숨막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무서웠나 봅니다.

 

"괜찮어..미루가 신생아도 아닌데, 뭘.."

 

주선생님은 새벽 2시 30분까지

미루가 낑낑거리기만 하면

침대 밑에서 몸을 세워 핸드폰 불빛으로 미루를 비춰봤습니다.

 

머리 풀어 헤친 여자가 침대 밑에서 계속 올라오는데

전, 그게 더 무서웠습니다. 

 

"내가 볼테니까 걱정말고 자..."

 

전, 뒤집은 미루를 몇 번이나 다시 뒤집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둥근해가 떴습니다.

 

주선생님,

머리는 헝클어지고

인상은 잔뜩 찌뿌린 상태로 일어납니다.

 

크게 놀랐던 게 밤새 남았던 모양입니다.

 

"머리 아퍼?"

"아니.....그냥 잠을 잘 못 자서..."

 

계속 이야기합니다.

 

"꿈에...도둑이 들었어...

...아빠가 도둑이랑 막 싸우는 거야...근데..전화를 해야 되잖아...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지?"

 

"112말하는 거야? 113인가?"

 

"응..그거, 그게 생각이 안 나서 한숨도 못 잤어..."

 

어제 밤에 충격이 컸었나 봅니다.

생각해 내서 신고했더라면 큰 일 날뻔했습니다.

 

"이거 단축키 어떻게 하더라?"

"뭐 하게?"

"신고 전화번호 핸드폰에 입력해 놓을려고..."

주선생님이 아직 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책상으로 가고

주선생님은 한참 더 꼼지락거렸습니다.

 

"저장했다~단축번호 000 번이야...

으...근데 너무 힘들어...딱 30분만 더 자야겠다...일단 엄마한테 전화 한방 하고 나서..."

 

주선생님이 미루 뒤집는 것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는 얘기를 들은 장모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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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맞다

누워서 젖을 먹이는 것 때문에

주선생님이 어쩔 수 없이

미루랑 딱 붙어 있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미루가 자꾸 아랫배를 발로 찹니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귀여워해주고

그 다음에는 은근과 끈기로 인내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진짜 아파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뭐, 그렇게 아플까..."

 

저도 예전에 미루 발에

얼굴을 한 방 맞은 적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전, 5개월된 아이한테 맞고서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 걸 보면

주선생님의 과장된 행동은 딱 연극 무대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선생님이 눈을 맞고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고 할 때도

그랬습니다.

 

오늘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퍽~!!"

 

이빨이 싸~합니다.

 

새벽에 한참 자고 있었는데, 뭔가가 날라와서

제 입을 뚫고 이빨을 강타했습니다.

 

"으..."

 

입 속에 뭐가 있어서

다른 말도 못하고

눈을 떴습니다.

 

미루 발이 제 입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이고...이건 진짜 아프다...현숙아..."

 

주선생님은 침대 밑에서 잘 자고 있습니다.

 

전 아프지만, 이 상황을 주선생님한테 얘기해주면 참 재밌어할 것 같아서

일부러 깨웠습니다. 안 일어납니다.

 

"에이..좀 일어나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7시 좀 넘어서 잠이 깰 때까지

저는 미루한테 계속 두드려 맞았습니다.

 

미루는 내일 격투기 대회 나가는 사람이

오늘 마지막 훈련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으로

저한테 발길질을 해댔습니다.

 

하루 종일

 

미루의 발길질을 피해 가며

어쨌든 즐거우면서 지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녁이 됐습니다.

 

"미루야~목욕하자..."

 

미루를 번쩍 안아 들었습니다.

 

"퍽~!!!"

 

아..이건 정말 심각하게 아픕니다.

별이 번쩍였습니다.

 

미루가 다리로

제 급소를 정통으로 찼습니다.

 

아니...명치 말하는 겁니다.

 

가슴에 블랙홀이 생기면서

갈비뼈랑, 폐, 심장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전 그 와중에도

미루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루 입장에서 이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래쪽 줄기를 도끼로 찍는 무모한 짓입니다.

 

"내가 넘어지면...너도 큰일 나...미루야.."

 

애 한테 별 소리를 다 했습니다. 

정말 아팠었나 봅니다.

 

주선생님 맷집 키워주는 데 찾으면

저도 따라다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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