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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게 많다

지난 번에 사준 세밀화 책을

미루가 좋아라하는 걸 보고

주선생님이 탄력을 받아서 3권을 또 샀습니다.

 

이번엔 물속에 사는 곤충, 채소, 산에서 사는 동물입니다.

 

"오늘 세밀화 와야 되는데..왜 안 오지...?"

 

주선생님은 세밀화가 굉장히 기다려지나 봅니다.

저도 기다려졌습니다.

 

세밀화 속의 곤충이나 동물들 하나하나가 재밌습니다. 

20대 때는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고 살았었는데

이제 와서 사람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이 갑니다. 미루 덕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세밀화가 왔습니다.

 

"물에서 사는 곤충! 미루야~엄마가 읽어줄께~"

 

도착하자 마자 한권을 쑥 빼더니 곧바로 첫 페이지를 폅니다.

'뭐 있나 한 번 쑥 훑어보기라도 하지' 하고 생각하다 하던 밥 준비를 했습니다.

 

"소. 금. 쟁. 이."

"현숙아~옛날에 소금쟁이 부럽지 않았냐?" "맞어, 디게 부러웠었어..."

 

"물. 방. 개."

"난, 물방개 한 번도 본 적 없어.."

"진짜? 현숙이 넌 도시에 살아서 그런가? 난 본 것 같애.."

 

"물. 자. 라."

갑자기 잘 모르는 곤충이 튀어나왔습니다.

둘 사이의 대화가 끊겼습니다.

슬쩍 보니까 주선생님은 곤충의 생김새를 살피고 있습니다.

 

"게.아.재.비"

들어보긴 했는데 역시 모르는 곤충입니다.

침묵이 흐릅니다.

 

"장구애비"

주선생님, 이번 곤충은 그냥 혼잣말로 읽습니다.

 

"송장헤엄치개"

과연 지구상의 생명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이름입니다.

 

밀과 보리, 조, 수수를 구분하게 됐을 때는 기뻤는데

이번엔 충격입니다.

 

"소금쟁이, 물방개...게아재비...송장.."

뭐하나 다시 슬쩍 봤습니다.

 

주선생님, 돌아누워서 혼자 곤충들을 외우고 있습니다.

미루는 혼자 놉니다.

 

한참이 흘렀습니다.

 

"이야~다 외웠다~!!"

 

다시 미루한테 곤충 이름을 말해줍니다.

 

책 맨 뒤편에는 이름없이 곤충 그림만 모여 있는 데

그걸 펴고 하나하나 이름을 댑니다.

 

"소.금.쟁.이.", "물.방.개."

아는 곤충 이름부터 자신있게 말합니다.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갑니다.

 

미루는 전혀 관심을 안 보이고 여전히 혼자 노는데

주선생님은 그 옆에서 겨우 곤충 이름을 다 댔습니다.

헉헉 댑니다.

 

"안되겠다.. 겨울 지나면 밖에 나가서 찾아 봐야지..."

 

인제 그림책 읽어주는 건데

공부할 게 참 많습니다.

 

나중에라도 혹시 모르는 걸 물어볼 때를 대비해서

미리 대답할 말을 생각해놨습니다.

 

"아..그거? 엄마한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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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 스폐셜

민소매옷을 머리에 뒤집어 쓴 미루
 
자고 일어나서 놀고 있는 미루
 
며칠 전에 머리깎기 직전의 모습
간지럼을 잘 탄다
 
살찐 미루
 
밥 먹다가...
 
아이고, 육아일기 쓰는 것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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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후유증

고생한 이유식 첫날의 후유증이 깁니다.

 

사실 어제 아침에 이유식 준비를 하기 전에

이미 전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놀던 미루가

똥을 푸지게 쌌습니다.

 

"너, 새벽에도 싸더니 또 싸네..."

 

한 손으로 미루 다리를 들고,

또 한 손으로 엉덩이를 닦아줬습니다.

 

"뿌지지직..."

 

이럴수가! 미루가 또 쌉니다.

댐보수공사 중에 홍수가 났습니다.

급히 물티슈로 막았지만, 이미 둑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넘쳐흐릅니다. 이대로 놔두면 요까지 버릴 수 있는 긴박한 상황!

 

전 뛰어난 순발력으로

그대로 미루를 요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미루를 끌어내는 중에 똥은 제 손을 넘쳐 흘렀고, 요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미루가 지나갔습니다.

 

"으악...현숙아~~~~"

 

미루의 해맑은 웃음 뒤로 머리부터 등까지

황토색 페인트가 칠해졌습니다. 끔찍했습니다.

 

아침부터 미루 목욕 시키고,

요 커버 빨고, 옷 빨고, 저도 목욕을 했습니다.

 

이미 지친 상황.

투혼을 발휘해서 이유식을 준비했습니다.

 

"상구 미루 잠들었으니까, 잠깐 눈 붙여...난 사무실 나갈께.."

 

너무 힘들었습니다.

좀 쉬어야 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서

거실 바닥에 벌렁 누웠습니다.

 

'따르릉...'

 

"상구, 있잖아..미루 보험 때문에 그러는데.."

 

5분만 더 있다 전화하지, 한참 꿀잠 자는 데 주선생님이 깨웠습니다.

시간을 보니까 미루가 잠든지 50분이 지났습니다.

 

"5분만 더 자고 일어나야지..미루도 곧 깨겠네.."

 

그 짧은 시간에

전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꿨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옆으로는 꽃도 날아다녔습니다.

 

작은 사이렌 소리도 들렸습니다.

어디서 불이 난 모양입니다.

불조심 해야지, 이런 좋은 세상에 불이 나면 안되지..요새 날이 건조해서 그래..

근데 사이렌 소리 정말 오래도 울린다..

 

...

 

몸을 벌떡 일으켰습니다.

잠은 안 깼는데, 막 뛰어가는 제 다리가 보입니다.

방문을 퍽 열었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미루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돼서 울고 있습니다. 아까 그 사이렌 소리입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은 벌겋고 눈두덩은 탱탱 부었습니다.

 

데려와 안아주고, 달래주고, 젖 먹여서 겨우 달랬습니다.

시간을 보니까, 아까 다시 잠들고 나서 거의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이고, 미쳤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배를 뚫고 나올려고 합니다.

 

자세히 보니까

코딱지가 볼 여기저기에 짖이겨져서 말라붙어 있습니다.

괴로워서 침대에 얼굴을 막 비볐나 봅니다.

 

자느라고 애를 방치하다니

아무래도 이유식 준비의 후유증입니다.

 

하루 자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늘 아침엔 쌀가루를 믹서로 20분 넘게 갈아서

바람에 날릴 정도로 만들어 놓고는

엎었습니다.

 

바닥에 뿌려진 쌀가루 중 일부를

티스푼으로 퍼서 오늘치 이유식을 했습니다.

 

미루는 그것도 모르고

오늘도 이유식을 잘 받아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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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시작

이유식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일찍부터 온갖 장비세척을 마치고

드디어 본격적인 조리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미루가 깼습니다. 생각보다 좀 빠른 시간이지만, 걱정 없습니다. 

쌀 20g과, 물 200cc를 이미 냄비에 부어놨습니다.

 

가스렌지 불을 켜자,

체해서 방에 누워있던 주선생님이 미루를 안고 나옵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이유식 준비되면, 그때 젖먹여...5분이면 돼.."

 

말에서 자신감이 묻어납니다.

모든 것이 준비됐을 때 구사할 수 있는 말투입니다.

 

"쌀 갈아서 끓여야 되는 거 아냐?"

 

깜빡했습니다. 쌀 갈려고 믹서기까지 씻어놓고

그냥 냄비에 부었습니다.

 

"익을 때까지 한참 걸릴텐데.."

"다시 할까?"

"그게 빠를 걸?"

 

순간, 초반 페이스가 흔들리는 걸 느꼈지만

금방 다시 하면 됩니다. 행주를 집었습니다.

 

미루가 보챕니다.

"미루야 조금만 기다려~"

 

"쿵...와당탕..으악~~~"

 

끓는 물이 싱크대로 쏟아지고,

쌀알이 여기 저기로 튀는 데, 몸을 날려 피했습니다.

 

행주를 냄비의 긴손잡이에 올려놨는데

그게 뭐 무겁다고 냄비가 뒤집어진겁니다.

 

오래된 싱크대의 주름살을 타고, 

뜨거운 물이 바닥으로 줄줄줄 떨어집니다.

 

"상구, 괜찮어?"

"어..나 괜찮아..큰 일 날 뻔했다..."

 

부엌이 난장판이 됐습니다.

쌀을 갈아야 합니다.

 

믹서 용기에 쌀을 다시 넣고 물을 부었습니다.

 

"물 너무 많으면 잘 안 갈아질텐데.."

"어..? 어..그러네..물 다시 덜어낼까?"

 

페이스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차라리 쌀을 더 부어.."

"그럴까?"

 

정신이 없습니다. 얼마나 더 부어야 할 지 계산이 안 됩니다. 

미루는 엄마가 옆에 있는 데도 더욱 보챕니다.

 

겨우 쌀을 갈았습니다.

냄비에 붓는데 용기에 붙어서 애를 먹입니다.

바닥은 흘러내린 물로 철벅철벅하고,

미루는 이제 배가 고파서 막 울어댑니다.

 

"그냥 젖 먹이자..."

 

오전 이유식은 포기하자는 말입니다.

 

그냥 어제 쌀가루 만들어 놓을 걸.

첫날이니까 잘 해줄려고 했다가, 애 굶게 생겼습니다.

젖 먹이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미루는 젖을 조금 먹더니,

입을 빼고 놀기 시작합니다.

 

"미루가 젖 더 안 먹네...이유식 먹을려고 그러나 보다.."

 

다시 희망이 보입니다.

그 사이 한번 끓여서, 약한 불로 바꾸고 쌀 미음을 젖고 있던 저는

이제 미음을 식히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좀 식었으면 좋겠구만, 잘 안 식습니다.

 

주선생님, 한 마디 하셨습니다.

"먹일만큼만 덜어서 식히는 건 어때..."

 

아, 그런 정교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두 숟갈을 퍼서 식혔습니다.

금방 식습니다. 

 

"미루야, 아~~~"

 

미루는 뭘 하자는 건지 몰라, 저를 멀뚱멀뚱 쳐다 보다가

숟가락을 입속에 넣어주자, 낼름 받아 먹습니다.

아주 잘 받아 먹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미루가 아니라 다른 걸 안고 있었으면 막 던지면서 파도타기를 했을 겁니다.

 

금방 네숟갈을 먹였습니다.

첫날은 한숟갈만 먹이라고 책에 되어 있는데

열광하다가 많이 먹였습니다.

 

이제 남은 미음만 처리하면 됩니다.

미루가 먹은 양의 100배쯤 되는 미음이 남았습니다.

 

"현숙아, 너 체한 거 좀 어때? 밥 먹지 말고 미음 먹을래?"

 

일석이조의 제안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확실히 정신이 든 모양입니다.

 

"싫어~나 밥 먹고 싶어.."

 

저는 밥 한 공기를 다 먹고 나서

미음 한공기를 또 다 먹었습니다.

양도 많은 게 맛도 밍밍해서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까 주선생님이 쌀 더 넣으라고 안 했으면 양이 좀 적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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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D-1

드디어 내일

이유식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뭘 먹을 때

미루가 입맛을 다신 지는 좀 됐는데

이제 미루도 같이 식탁에 앉게 된 겁니다.

 

낮에 찬바람을 뚫고

근처 유기농 농산물 판매점에 가서

쌀을 사왔습니다.

 

"상구 오늘 밤에 쌀 불려놓을 거지?"

"응~~~"

 

대답해 놓고 나서 책을 찾아보니까

쌀은 20분 불리면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내일은 첫날이니까

쌀미음 만들기 직전에 불리기로 맘 먹었습니다.

 

다른 장비 점검을 했습니다.

 

일단 불린 쌀을 갈 믹서기.

씽크대 문 네개를 열고 찾았습니다.

 

냄비는 그냥 평소 쓰던 걸 쓰면 될 것 같고,

 

쌀죽이 끓어오르면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면서 5분 끓이라는데

나무주걱이 마땅한 게 없습니다. 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죽이 다 끓으면 고운 체로 걸러줘야 한답니다.

체는 부엌에 여러개 걸려 있습니다.

 

미음을 담을 그릇과 숟가락은

한달 전부터 사다 놓고 잘 보관 중입니다.

 

일단 첫날 준비는 마쳤습니다.

 

내일 아침 10시에 엄마 젖을 조금 먹이고 나서

이유식을 먹이고, 다시 젖을 먹이는 식으로 할 생각입니다.

제 생각은 아니고 책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다른 준비들도 꽤 되어 있습니다.

 

진경이네 집에서 받아온 슬로우쿠커는

인류요리역사의 최대 발명품입니다.

 

그냥 재료만 넣어놓고 신경 안 쓰고 있으면 이유식이 된답니다.

신경 안 써도 밥이 자동으로 되는 게 얼마나 편한지는 남자들이 잘 압니다.

사실 남자들은 그게 편한 건지 어쩐건지도 잘 모릅니다.   

 

턱받이도 한 20개쯤 받았습니다.

처음 그 많은 턱받이를 보여주길래 물었습니다.

"애를 여럿 키우세요?" 

한 아이 한테 그 정도 필요하댑니다.

 

미루한테 컵 연습도 몇 차례 시켰습니다.

 

주선생님은 이유식 상황 기록을 위해

어디서 이쁜 수첩을 만들어 왔습니다.

혼자 방 구석에서 와브작와브작 수첩 만들었을 생각하니까

참 귀엽습니다.

 

미루는 일주일 전부터

입안에서 사탕 먹듯이 혀를 굴리더니,

이제는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서 오무리는 동작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유식을 대비한 준비운동이 틀림 없습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아까 사다 놓은 쌀을

다시 한번 쳐다봤습니다.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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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어도 쓸어도

아무리 매일 매일

방바닥, 거실바닥을 쓸어도

 

웬 머리카락이랑 먼지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봐, 이거 봐...어제 쓸었는데, 또 이래..."

 

주선생님이 거실 바닥을 쓸다 말고

저한테 머리카락과 먼지 버무림을 보여줍니다.

 

원래 바닥 청소는

주선생님 담당인데

 

어제는 제가 뒤따라가면서

걸레질을 했습니다.

 

"머리 카락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지?"

 

"머리 숱 많은 3명이 매일 머리카락을 뿌려대니 많을 수 밖에.."

 

제가 얘기했지만

참 적절한 표현입니다.

 

저와 주선생님은 머리 숱하면 정말 남부럽지 않습니다.

미루는 6개월 됐지만 머리는 6살보다 많습니다.

 

세사람한테서 빠지는 머리카락은

'뿌려댄다'고 하는 게 딱 맞습니다.

 

바닥을 다 쓸고 나서 주선생님은

문지방의 여닫이문 길도 청소해야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청소 안 한

미지의 세계인데

한번 쓱 보니 역시 먼지의 보고입니다.

 

오래된 먼지가 눌리고 쌓인 게 

책장 속 책 위에 쌓인 먼지보다 더합니다.

 

이걸 어떻게 청소해야 할 지

상상했습니다.

 

빗자루로는 잘 안 쓸릴 것 같습니다.

볼펜으로 긁어내기도 뭐 합니다.

손가락으로 파내는 건, 좀 구차해보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뭔가 그럴듯한 방법을 찾으면

역시 경지에 오른 주부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애서

열심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주선생님이 작은 방에 가더니 뭔가를 들고 나옵니다.

 

작은 진공청소기입니다.

우리집에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위잉~"

 

 

주둥이를, 큰 빨대 눌러놓은 것 같은 걸로 바꿔 끼우니까

볼펜이나 손가락 보다 훨씬 간편하게 청소를 해냅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전 고민하다가 틀림없이 그걸 손가락으로 파냈을 겁니다.

"콧구멍이냐? 손으로 파게?" 이런 소리 들을 뻔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청소 후 얼마 안 있다가

미루가 그 넓게 깔아 놓은 요를 탈출해서

맨바닥에 엎드려 있는 게 우리 눈에 띄었습니다.

 

그냥 놔뒀으면

방바닥 빨았을 겁니다.

 

인제부터는 청소가 진짜 중요합니다.

 

이 일은 주선생님 담당이고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저는 열심히 지켜봐줄 생각입니다.

 

참, 그건 그렇고

미루 머리가 하도 길어서

오늘 머리를 깎아줬습니다.

 

주선생님은 예전부터 제 머리를 공짜로 깎아준다고 해서

절대 안 된다고 버텨왔는데

결국 미루한테 자기 소원을 풀었습니다.

 

"상구, 비닐 좀 갖다 줘..."

 

근데 배냇머리를 깎는 거라서

좀 서운한 모양입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더니 그걸 비닐에 모아 둡니다.

언제까지 갈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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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D-3

모유 먹이는 아이는

6개월 첫날부터 이유식을 시작해야 된다고 했는데

인제 3일 남았습니다.

 

정확히 한달 전에

우리는 길가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모유 먹는 애들이 이유식 하기가 힘들데.."

 

"그래?"

 

"전쟁이래 전쟁, 왜 그러냐면, 먹는 건 그 동안 젖 밖에 없었잖아...

근데 입에 처음으로 이물질이 들어오는 거야...그래서 싫어한대..."

 

"그렇구나.."

 

"그래서 혀끝에 살짝 놓아서 직접 빨아 먹게 하거나

아니면 혀 중간에 놓아서 먹게 한대.."

 

"음...현숙이 너 연구 많이 했다.."

 

마지막 저의 말에

탄력을 받은 주선생님은

자기가 아는 걸 다 얘기했습니다.

 

"6개월부터는 꼭 먹여야 한대...그때 되면

엄마한테 받은 철분이 다 떨어지니까...특히 고기를 먹여야 한다더라..

안 그러면 발달이 늦게 되고, 그 이후 발달 전체가...재잘 재잘 ~짹짹짹"

 

"그렇구나.."

 

"숟가락은 오목한 거 말고 평평한 거 쓰래..그래야 애기가 먹지..이렇~게~"

 

혀모양까지 흉내내면서

참 많은 말을 쉬지 않고 합니다.

 

사실 이 대화를 할 때

날짜 계산을 헷갈려서

지금부터 한달 전이 6개월 첫날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인제 일이 늘겠구나 생각하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주선생님은 열심히 연구를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오늘부터 3일 후가 6개월 첫날입니다.

 

이거 가지고 의사선생님이랑

한참을 옥신각신했었습니다.

 

6개월이 육개월째인가 아니면 생후 육개월인가를 놓고

기나긴 논쟁 끝에 결국 이유식 개시일을 한달 늦췄습니다.

 

속으로 일거리 안 늘어서 신나했는데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정말 시작입니다.

 

주선생님은 그 사이에

또 어디서 뭘 봤는지

이유식 얘기를 몇 번 더 했었습니다.

 

"소고기 빨리 먹여야 하는데 걱정이다..적응하는 시기가 필요하다잖어.."

 

"걱정하지마,

너 임신했을 때 소고기만 좋아했잖아..

그거 미루가 먹은 거야..적응할 필요도 없을 걸?"

 

"근데 있잖아..6개월 이후에 먹이면,

애가 자기 목을 완전히 가눠서

먹기 싫으면 고개를 돌릴 수도 있잖아.."

 

"그렇지.."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어.."

 

"뭐가?"

 

"이유식이 먹기 싫을 때 애가 자기 목을 돌려서 거부할 수 있는 거...

싫으면 싫다는 의사를 직접 표현할 수 있게 됐을 때 이유식을 먹이는 게 참 좋아..미루의 권리잖아.."

 

미루의 인권, 이거 중요합니다.

주선생님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이유식 시작 3일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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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션, 연고

미루는 피부가 하도 예민해서

건조한 곳도 많고, 땀띠도 많습니다.

 

같은 다리인데

어디는 건조하고 어디는 땀띠 때문에 가려워 합니다.

우리 동네는 겨울인데 앞동네는 여름인거랑 비슷합니다.

 

피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동안 온갖 로션과 연고를 써왔습니다.

 

 

1.

 

일단 연고.

우선 얘들은 이름이 부담스럽습니다.

 

애 낳은 지 한달 이내의

아빠나 엄마한테 이렇게 물으면

아마 아무도 대답 못할 겁니다.

 

"그래서, 그 연고 이름이 뭐예요?"

 

우리도 이름 외우는 데

시간 꽤 걸렸습니다.

 

연고는 꼭 필요한 곳만

아주 적은 양을 발라왔습니다.

 

요즘은 무릎 뒷 부분에

몇 차례 발라줬습니다.

 

2.

 

진짜 부담스러운 건

로션입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로션이 있습니다.

인터넷 들어가면 화면 저 아래까지 정말 많기도 많습니다.

 

요즘 유행은

로션 이름에 '아토'를 집어 넣는 겁니다.

이래야 팔린답니다.

 

그 동안 썼던 로션은

잘 쓰긴 했는데

발목 건조한 건 해결이 안 됐습니다.

 

"더욱 열심히 발라줘야지~"

 

하루에 5~6번을 발라줘도

발목은 여전히 나무 껍질 같았습니다.

 

결국 주선생님과 저는 깊은 고민 끝에

아주 비싼 로션을 사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니까

다음날 바로 왔습니다.

떠먹는 요구르트 크기입니다.

 

숟가락으로 두 번 퍼 먹으면 없을 양인데

2만원 가까이 주고 샀습니다.

한 숟가락에 만원씩입니다.

 

제품 설명서에는 설명 안 해도 다 그렇게 할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국소부위에만 발라주세요..."

 

이 로션을 미루 발목에 발라준 지

2주 정도 됐습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 로션, 비싼 값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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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잇몸

"으...."

 

"왜 그래?"

 

"이빨이 아퍼...밥 안에 딱딱한 밥알이 있었나봐..."

 

순간 움찔했습니다.

 

어제 남은 밥을

오늘 아침에 지은 밥하고 섞었었는데

 

그 안에 딱딱하게 굳은 밥알이 있었나 봅니다.

 

산후조리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다짐으로

 

주선생님은

100일 되는 날까지

찬 음료수, 아이스크림 같은 건

일체 입에 안 댔었습니다.

 

저는 주선생님이 말로만 그러고

실제로는 몰래 아이스크림 사 먹을까봐

열심히 감시했습니다.

 

일찌기

제 육아 휴직의 최대 목적 중 하나로

주선생님 몸의 조기 정상화를 내건 바 있기 때문에

정말 신경 많이 썼습니다.

 

그러기를 6개월.

인제 몸이 거의 예전으로 돌아와서

잇몸은 아예 전혀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지난 주에 방심하다가 당했습니다.

 

제가 시골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홍어회를 싸 가지고 왔는데

주선생님이 이걸 좋다고 으드득 으드득 씹어 먹다가

잇몸에 이상이 생긴 겁니다.

 

미루 낳고 40일 동안

120끼 내내 각종 미역국을 해서 바치고는 뿌듯해 하다가

마사지 선생님이 그러다 요오드 중독 걸린다고 해서 상심한 이후로

두번째입니다.

 

이빨이 많이 시리답니다.

 

"으..."

 

"현숙아, 김치 찌개..이거 꽁다리..일부러 먹지는 마..남으면 그냥 버릴테니까.."

 

"이빨 아파서 못 먹어.."

 

밥 먹는 내내 신경이 쓰입니다.

혹시 또 딱딱한 반찬이 있나 식탁 위를 살폈습니다.

살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반찬 몇 개 없습니다.

 

"아야~"

 

아, 이런

또 딱딱한 걸 씹은 모양입니다.

 

이유식을 해서 주든가 해야지

오늘 왜 이러는 지 모르겠습니다.

 

"또 딱딱한 거 씹었어?"

 

주선생님은 온 얼굴을 다 구기면서 말했습니다.

 

"아니...혀 깨물었어.."

 

"히히히.."

 

그 새를 못 참고 웃었습니다.

참다가 밥알 튀는 것 보단 낫습니다.

 

"웃지마~~이빨 땜에 신경 쓰다가 깨문거야.."

 

제 웃음으로 인해

밥 먹는 내내 분위기는 냉랭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뜨거운 추어탕 국물에 잇몸이 익는 바람에

한참 이빨이 아팠던 경험이 있어서

주선생님의 고통을 잘 압니다.

 

잇몸약이라도 사든지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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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고 또 받고

어려운 육아 생활에

간간이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같은 분야의 선배들한테

각종 물건을 물려 받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남들한테

받아 먹기 좋아하는 우리에게

'물려 받기'는 참 뿌듯한 일입니다.

 

아기침대, 흔들침대, 아기띠, 유모차 등

육아의 기본 장비들은

모두 남한테 얻은 것들입니다.

 

하일라이트는 최근에

진경네 집에서 있었습니다.

 

"슬로우 쿠커 있어요?"

 

이 말은 나중에 보니까

"지금부터 필요한 것 다 줄께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이건 지금 때가 지나서..."

"아니, 아니예요~"

 

열덩어리 미루한테

민소매 옷, 반팔 옷은 사계절 필수품입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옷들을 챙겼습니다.

 

슬로우 쿠커는 당연히 받았고

이유식 보관용 팩도 받았습니다.

 

초기 이유식 만드는 법도 배웠는데

다 잊어먹었습니다. 나중에 전화하면 됩니다.

 

설명서를 보지 않고는

도저히 그 기능을 다 활용할 수 없는

최첨단의 아기띠도 받았습니다.

 

심지어 많으니까 가져가라면서 주는 물티슈

3통을 낼름 받았습니다.

집에 와보니까 물티슈가 10통도 넘게 쌓여 있습니다.

 

진경맘 님은

그대로 있었으면

자기 집을 넘겨줄 기세로 각종 물품을 넘기셨습니다.

 

우리도 뭘 줘야 할 것 같아서

미루를 선물하겠다고 했지만

진경맘님은 정중히 사양하셨습니다.

 

암튼 우리는 이 날

한몫 단단히 챙겼습니다.

 

너무 가져와서 좀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갈 때는 마음도 가볍게 갔는데

올 때는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주선생님은 그 날 입이 찢어졌습니다.

저는 슬로우쿠커로 이유식 할 꿈에 부풀었습니다. 

 

아름다운 풍습은

미루 다 클 때까지는 최소한

계속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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