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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인정 받다

육아휴직을 하고 애를 키운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신기한 일이고

처가집한테는 놀라운 일인데

저희 부모님들한테는 탐탁치 않은 일입니다.

 

1년 육아휴직을 했다는 말씀을 드리는 데도

거의 3개월 정도가 걸렸었는데

 

그 사실을 부모님이 실제로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따르르릉..."

 

주선생님이 얼른 뛰어가서 전화를 받습니다.

 

"상구는 나갔냐?"

"아니오 집에 있는데요.."

 

어머니나 아버지는

제가 뻔히 미루 키운다는 걸 아실텐데도

집에 전화하시면 꼭 '상구는 나갔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물으신 건 아닙니다.

 

"상구는 사무실 안 가냐?"

 

"현숙이 나갔으면...니가 지금 애 보겠네?"

 

가끔 밤에 전화 하시면

"상구는 들어왔냐?" 고 묻기도 하셨습니다.

항상 들어와 있는데요라고 주선생님이 대답하지 않은 건

참 현명한 행동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점점 상황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어느날부터인가

전화하실 때 마다 제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루는 자냐? "

"그럼...애 키우는 게 그게 쉬운 게 아냐.."

"애 낳고 키워보니까 부모 심정이 이해가 가지?"

 

그래도 부모님은 제가 계속 집에만 있다는 사실을

결코 본인들 입에 담지는 않으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담기는 했습니다.

 

"야...너 일주일에 몇일씩이라도 나가는 데 없냐?"

"너 불러주는 데 그래도 좀 있지 않어?"

 

그러는 사이에 벌써 7개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육아휴직 5개월 남았습니다.

 

5개월 후면 집에 더 이상 못 있습니다.

전 그 전에 부모님이 저의 육아휴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길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늘

그날이 왔습니다.

 

찬란한 환희의 역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미루 아팠다면서?"

"네..."

 

"어쩌다 그랬다냐.."

"사실은 제가 먼저 감기걸렸었는데요, 그게 옮았나봐요.."

 

"넌, 뭐 집에만 있는 애가 무슨 감기가 다 걸렸냐?"

 

순간 저는 집에만 있다 보니까

면역력이 떨어져서 더 쉽게 감기에 걸린 것 같다는

통찰력있는 분석을 제시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어머니의 제일 끝 발언의 역사적 의의를

놓치지 않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드디어

부모님께 제 육아휴직을 인정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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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

"상구~미루 좀 봐봐.."

 

주선생님이 재운다면서 미루를 데리고 들어가 놓고

한참 있다 저를 부릅니다.

 

"우바바바..우웨웨웨..버버버.."

"우히히, 얘봐....너무 웃겨~"

 

미루가 아랫턱을 쭉 내밀고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고,

 

옆에서 주선생님은

신기해 죽겠다면서 좋아하고 있습니다.

 

"근데, 상구 있잖아..이러는 게 미루가 이쁘긴 한데...눈물을 흘리네.."

 

그러더니 주선생님은

곧바로 결론을 내립니다.

 

"이빨 날려나 보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합니다.

 

저의 남은 역할은 호들갑을 떠는 겁니다.

"이야~정말? 우와~~!! 우리 미루 이빨 나는 거야?"

 

손을 혀밑으로 넣어서 만져보니까

왼쪽 앞니 한개가 벌써 나와 있습니다.

 

근데 너무 아파합니다.

치발기를 갖다 줬습니다.

주선생님은 걱정하는 저한테 설명을 해줍니다.

 

"생각해봐~7개월 동안 입 안에 아무것도 없다가 뭐 딱딱한 게 생긴다고 해봐...얼마나 당황스럽고 그렇겠어..."

 

"우바봐봐바..."

 

진지하게 설명하는 주선생님 옆에서

미루는 여전히 괴로운 표정입니다.

 

"게다가 살을 뚫고 나오니까 아프기도 할 거고...그지 미루야?"

 

"그렇군..."

 

"역시 미루는 엄마 맘을 참 잘 알아~그치?"

 

"엄마는 미루 맘을 참 잘 알아 아닌가?"

 

"음...그러네..."

 

하기야 내내 매끈했던 얼굴에서

뾰루지라도 하나 나면 가렵고 신경 쓰이는 데

하물며 이빨이 나는 거니 오죽하랴 싶습니다.

 

너무 멋없는 비유 입니다.

 

내내 매끈했던 등짝에서 처음 날개가 돋아날때

천사도 비슷한 당황스러움과 고통을 느낄 겁니다.

 

며칠 아프고 나면 꼭 이런 비유만 생각납니다.

 

오늘 몸이 좀 괜찮아지고 나서

육아 잡지를 봤는데,

거기에 치발기에 대해 나와 있었습니다.

 

치발기의 원래말은 '치아발육기'이고, 

치발기는 딱딱한 부분과 부드러운 부분이 있어서

이빨과 잇몸을 자극해서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미루가 처음에 아파할 때 옆에서 좋아했었습니다.

 

신경써서 치발기도 골라주고, 진작부터 잇몸살 없게 도와줄 걸 후회가 됩니다.

 

암튼 인제 미루도 이빨이 났습니다.

 

근데, 천사가 날개 돋을 때 가려우면

효자손 같은 걸 날개발육기로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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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픈 날

"현숙아...나 땜에 너 일도 못하고 미안해 죽겠다..

내가 오늘밤 안으로 꼭 다 나을께..."

 

"빨리 자.."

 

10시 30분에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를 잤을까 미루가 깨서 울고 있고

주선생님이 샤워하다 말고 뛰어들어옵니다.

 

다시 잠이 들었다가

빨래 돌아가는 소리에 잠이 깹니다. 12시

 

거실에 나가보니 집이 아주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주선생님은 쇼파에 앉아 있습니다.

 

"청소하느라고 고생했겠다..."

"상구..나도 감기 기운이 있어.."

 

아까 샤워하다가 뛰어 나왔을 때

찬 기운이 몸에 확 들어왔답니다.

 

12시 40분

미루가 다시 깨더니 엄청 크게 웁니다.

서러움이 북받친 울음입니다.

주선생님은 체온을 재고, 배 마사지를 해줍니다.

"상구는 어서 자...자꾸 깨지 말고..."

 

한참 뒤척이는 중에

주선생님이 계속 미루를 챙기는 게 느껴집니다.

"지금 몇 시야?"

"응...2시 45분"

 

"콜록, 콜록...케에엑...콜록.."

몸을 일으켜 미루를 봤는데

주선생님이 같이 일어납니다. 3시 20분.

"현숙아 나 몸이 굉장히 많이 좋아졌으니까 지금부터는 미루 내가 볼께..."

"괜찮아..빨리 자..."

 

4시 16분

다시 미루가 기침을 합니다.

"현숙아 진짜 내가 볼께..."

"그래..그럼.."

"콜록, 콜록..." 하필이면 꼭 그때 기침이 나옵니다.

"상구, 안되겠다. 내가 볼께..."

 

그러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유축기 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떠보니 5시.

 

조금있다가 주선생님이 침대에 돌아와 눕고

또 조금 있다가 미루가 발작적으로 웁니다.

 

"내가 볼께~"

 

벌떡 일어나 미루를 달랩니다. 5시 15분

잘 안 달래집니다.

"상구..미루 배마사지 해줘봐.." 배가 아주 딴딴합니다.

주선생님이 체온을 잽니다. 39도.

"안되겠다.."

 

미루를 데리고 나와서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어서 열을 내려줬습니다.

 

"아바바바..."

 

보행기에 태워 물도 좀 먹였습니다.

 

"우봐봐봐..으브으브..아바바"

 

그 와중에 미루는 계속 떠듭니다.

힘들어도 입은 살아 있는게

자기 엄마랑 비슷합니다.

 

"아이고...아픈 데 너 처럼 말 많은 애기는 첨 봤다...미루야."

 

최악의 컨디션인 건 주선생님도 마찬가지일텐데

목소리가 참 따뜻합니다.

 

'현숙아..너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니...'

이런 말은 속으로만 하고 말아야 그럴 듯해서

진짜 속으로만 했습니다.

 

이렇게 3명이 동시에 아팠던 첫째날이 시작되고

비슷한 상황이 4일쯤 계속됐습니다.

 

그 4일간 주선생님은 정말 끝내주게 우릴 간호했습니다.

인제 거의 다 살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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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는 사람이 아프면 누가 밥하나

며칠간 무리했는지

어제 저녁부터 몸이 안 좋더니

오늘 아침에 완전히 뻗어버렸습니다.

 

아침을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

 

"혹시 몸살 감기 아냐?"

"모르겠어...그냥 머리가 아파 죽겠다..."

"체온 한 번 재보자.."

 

주선생님이

침대에 쓰러져 있는 제 귀에

미루한테만 쓰던 체온계를 푹 집어넣었습니다.

 

"이거 봐...지금 체온이 39도야..."

 

어쩐지 두통도 아주 심하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처럼 욱신거렸었는데

몸살이 난 거였습니다.

 

"상구~쉰다면서...왜 자꾸 일 해..."

 

어제 밤에 몸이 안 좋다고

좀 쉬겠다고 해 놓고는

주선생님이 밥 차리는 동안

괜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미안해서

거실을 치우다가 구박을 받았었습니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어질러져 있는 것들을 보면

치워버려야지 하면서 손이 먼저 갑니다.

 

주선생님 말대로 그냥 쉴 걸

괜히 착한 척 하다가 제대로 아파버렸습니다.

 

도저히 아침밥 할 힘이 없습니다.

 

"일단 이거 해열제라도 좀 먹고 쉬어..."

 

약을 먹고 누워 있는데

온갖 생각이 다 듭니다.

 

내가 이렇게 아파 버리면

주선생님이 밥 해야 하는데

 

주선생님은 아침 일찍부터

위랑 장이 안 좋아서 힘들어했기 땜에

밥을 차릴 상황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다 아파 버리니 굶어야 할 판입니다.

아플 때는 밥이라도 잘 먹어야 하는데

심난합니다.

 

결국, 우리는 오늘

하루 종일 풀뿌리로 연명하다가

오후 늦게 밖에 나가서 뭘 좀 사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다시 아무렇게나 누워서 쉬고

주선생님은 미루를 봅니다.

 

"어이구, 우리 상구 아파서 어쩌냐...내다 버릴 수도 없고..."

"나 버리면 누가 밥해..."

 

예전에는 아프면 그냥 쉬면 됐고

특별히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었는데

 

이젠 아파서 누우면

밥을 어떻게 해야 할 지가

제일 큰 걱정입니다.

 

다른 집에서는

밥 하는 사람이 아프면 누가 밥하는지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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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취

"이야~신기하다.."

"뭐가?"

 

"상구한테서 미루 냄새가 나..."

 

주선생님이

바로 코 앞에 서 있다가 한 이야기입니다.

 

"그래? 신기하네.."

"그러게 정말 신기하다.."

 

"혹시 미루한테서 내 냄새가 나는 건 아니고?"

"헤헤~아니야..."

 

하루 종일 미루랑 붙어 있다 보니까

제 나쁜 냄새가 미루한테 옮겨갔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저한테서 미루 냄새가 나는 겁니다.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

 

사람이 붙어 있다 보면 표정이 닮아가고

성격이 닮아가고 말투가 닮아간다는데

아무래도 최고 경지는 체취가 닮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서 미루냄새가 난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 안했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한 보람이 있구만..'

또 오버한다고 할 까봐

혼자 생각만 하고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술담배 냄새에 찌들지도 않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서

미루 냄새가 옮겨 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습니다.

 

더욱 보람있습니다.

 

기쁜 마음을 안고 샤워를 했습니다.

수건을 들고 몸을 닦습니다.

 

며칠전에 인터넷에서 보니까

씻고 얼굴을 닦은 다음에 5초 내에

로션을 안 바르면 피부가 노화한다고 적혀 있어서

요새는 로션을 손에다 묻혀 놓은 다음에 얼굴을 닦습니다.

 

수건을 들고 얼굴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로션을 찾았습니다.

 

"아...내 로션 다 떨어졌지..."

 

할 수 없이 저쪽에 있는

아토마일드를 쭉 짜내서 발랐습니다.

 

"상구~~~~!!! 왜 미루 로션 바르고 그래~?"

"응? 어....내 로션이 다 떨어져서...이거 꽤 괜찮어.."

 

"냉장고에 남자용 로션 있다니까 그래...미루꺼 바른지 얼마나 됐는데?"

"응...며칠 됐어..."

 

"에잇~! 그럼 그렇지~그러니까 상구한테서 미루 냄새가 난 거였구만~!!"

 

주선생님이 저한테서 맡았던 미루의 체취는

바로 애기 로션 냄새였습니다.

 

애랑 어른 체취가 그렇게 쉽게 같아질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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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눈 온대..."

"진짜? 미루한테 보여주면 좋겠다"

 

정말 눈이 왔습니다.

저한테는 올해 첫눈이었고

미루한테는 난생 첫눈이었습니다.

 

눈 오는 데 심장이 벌렁거린 건

10대때 이후로 처음입니다.

 

전공이 집회와 시위가 되고 나서는

눈 오면 그것 땜에 불편한 사람들 생각부터 났었는데

참 오랜만입니다.

 

"현숙아~나와봐~~"

"왜?...우와~~~!!"

 

한밤 중인데

눈이 얼마난 내리는 지

밖이 죄다 하얗습니다.

 

중학교때 도서관 칸막이 책상에 앉아서

비듬 털어 모으는 게 취미였는데

그때 쏟아지던 것 보다 더 많이 내립니다.

 

어느새 동네 애들이 공원 운동장 바닥에

도널드 덕을 그리고 있습니다.

눈이랑 뭔 상관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쏟아지는 눈을 미루한테 보여줘야 하는데

미루는 잡니다.

 

"내일 꼭 보여주자..."

 

밤이 지나고 오늘 아침.

 

"좀 있다가 외출할까?"

"그러자~!!"

 

뭔가 자질구레한 일들로 오전을 다 보내고

1시가 넘어서 겨우 나갈 준비를 합니다.

 

주선생님은 밖이 얼마나 추운 지 보려고 나갔고

미루는 두꺼운 옷을 안 입을려고 필사적으로 버팁니다.

 

"안되겠다...춥다..바람도 많이 불어...."

 

혹시 미루한테 안 좋을까봐

아주 쉽게 외출을 포기하고 비디오를 빌리러

저 혼자 나갔습니다.

 

앞에 아이 둘이 큰 눈 뭉치를 안고 갑니다.

 

"병철아~밑에 좀 잘 보고 다녀...철퍽철퍽 그게 뭐야..."

"응?"

"밑에 좀 잘 보고 다니라고..."

"왜?"

"옷 다 버렸잖아...엄마가 꼭 이렇게 잡고 가야 돼?"

 

"근데 엄마...눈이 왜 이렇게 무거워?"

"니가 많이 뭉쳤으니까 그렇지.."

"작게 뭉치면 안 무거워?"

"아, 눈 좀 버려~집 앞에도 많이 있어..."

 

미루도 빨리 커서 저렇게 눈을 좋아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오전에 잠깐 베란다 쪽으로 가서 바깥을 보여줬는데

세상이 왜 하얀 색인지 통 관심이 없이 자꾸 몸만 뒤로 젖혀댔었습니다.

 

비디오를 빌려서 돌아오는 길.

공원에는 눈사람이 10명도 넘게 와서 쉬고 있습니다.

 

집 앞에서 나무가지 위에 있는 깨끗한 눈을 세 주먹 뭉쳐왔습니다.

옛날에는 맨손으로 눈싸움도 했었구만

이 짓도 손시려워서 못하겠습니다.

 

뭉친 눈은 락앤락에 넣어서

냉동실에 보관했습니다.

 

미루한테 보여주려고 한 건 데

잊어먹고 결국 오늘도 못 보여줬습니다.

 

내일 꼭 보여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냉동실에서 몇 달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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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짜 변비

옆집에 사는 연우네가 놀러왔는데

연우가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변비 때문이랍니다.

 

연우 엄마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어제까지 우리도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주선생님은 얼굴에 인상을 쓰다 못해

몸까지 비비 꼽니다.

 

"예전에도 관장했었는데 그때 연우가 너무 힘들어해서

오늘은 병원에 갔다가 약만 받아왔어요..."

 

그런데 우리가 딱 보니까

아무래도 이건 관장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연우 배를 만져봤더니

육체미 선수의 복근만큼 단단합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막 괴로워하는데

이건 분명, 똥을 밀어내는 장의 작용과 변비의 반작용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고통 때문입니다.

연우는 통증이 올 때면 허리도 못 펴고 웁니다.

 

어제 간호사선생님이 "이렇고 저렇고 할 때만 변비예요."라고 말했던

바로 그 상황입니다.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주선생님도 한번 이런 일을 겪었었는데

그때 병원 응급실에 가서 정말 굉장한 물질을

사투끝에 빼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물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줄의 균열도 없이

최고수준의 밀도를 자랑했다고, 화장실에서 나온 주선생님이

왼손으로 자기 오른팔 팔꿈치 부분을 잡고 팔뚝을 흔들어 보이면서

저한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때 '응급실에 이런 일로도 올 수 있는 거구나' 하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연우가 바로 그때 힘들어 하던 주선생님과 

똑같은 몸짓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관장해야 할 것 같애요..."

 

저와 주선생님은 한 마음 한 뜻으로

관장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저는 얼른 약국으로 달려갔습니다.

 

관장약을 사서 집에 와 보니

집이 난장판입니다.

 

연우가 오줌을 응접실 여기저기에 뿌려놨고

연우 엄마의 옷도 오줌으로 다 젖어 있습니다.

똥도 조금 나오긴 했는지 여기 저기 묻어 있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는

어지러진 집이 어울립니다.

 

연우 엄마가 관장약 주입 역할을 맡았습니다.

 

"아무래도 약이 잘 안들어갔나봐요..."

 

관장약을 넣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 반응이 없습니다.

1차 시기는 실패입니다.

 

2차 시기의 주자로 나선 것은 

주선생님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주선생님은 매우 단호하게 행동합니다.

 

주선생님은 관장기를 들고, 약을 깊이 주입할 자신이 있다면서

"이런 걸 항문에 대면 알아서 빨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평소에 많이 해본 것 같은 말투인데, 저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지어낸 것 같습니다.

 

암튼 주선생님은

관장기의 길게 나온 입 부분을 항문에 대더니

놀랍도록 익숙한 솜씨로 관장약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3~4분 후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가 열렸습니다.

무슨 돌덩어리 큰 거 하나가 툭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단단한 게 뱃속에 있었다는게 놀랍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연우 엄마, 아빠, 미루 엄마, 아빠 모두 기뻐했습니다.

 

주선생님은 그걸 들고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습니다.

냄새까지 맡을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연우는 조금 나아져서

하루 종일 밥도 안 먹던 아이가

밥도 좀 먹고, 저한테 윙크도 하면서

컨디션을 회복해갔습니다.

 

연우 엄마가 그러는데

집에 돌아가고 나서 똥을 두번 더 쌌답니다.

진정 개운합니다.

 

생각해보니까 어제 미루는 변비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평소랑 같은 똥에 전혀 딱딱하지도 않았습니다. 울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꽤 오랜만에 똥을 싼 겁니다.

우리가 또 호들갑 떨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해야 겠습니다.

 

변비, 참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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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 탈출

미루가 똥을 안 싼지

오늘이 6일째였습니다.

 

주선생님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런 종류의 고통은 저보다 주선생님이 잘 압니다.

 

"얘 봐...얼굴이 누래졌어..."

 

정말 미루 얼굴이 노랗습니다.

속은 얼마나 묵직하고 답답할까 싶습니다.

 

병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저, 미루 아빤데요...미루가 6일째 똥을 안 싸서요..."

"아, 네...보채나요?"

 

"아니요...많이 보채진 않구요, 잘 놀아요..."

"잘 놀면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예요..."

 

"그럼, 어떤 때 확실히 변비인 걸 알 수 있어요?"

"애가 배가 볼록 나오고요, 막 엄청 힘들어 할 때...그때 병원에 오시면 되요.."

 

애가 사경을 헤매기 시작하면 오라는 소리입니다.

 

"그럼 그때까지 기다려요?"

"아니면 아빠가 비닐 장갑 있잖아요, 그거 끼시고요..."

 

"...손가락 집어 넣어서 직접 빼내라고요?"

"아니요 배마사지 해주시라구요.."

 

비닐장갑끼고 배마사지 하라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저녁이 되어 주선생님이 퇴근을 했습니다.

 

"상구, 오늘 힘들었지..

내가 저녁밥 닭갈비 해줄테니까 오늘은 요리하지 말고 미루 옆에서 좀 쉬어.."

 

옳다구나 싶었지만

절제된 대사로 분위기를 유지했습니다.

"나 괜찮은데...너도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힘들잖아.."

 

요리를 시작하는 주선생님을 뒤로 하고

미루가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순간적으로

미루의 대장 속에 들어간 느낌이 확 들었습니다.

냄새가 모든 걸 압도합니다.

 

"현숙~미루 드디어 쌌어~~~~!!!"

 

기뻐하면서 열심히 물티슈로 닦아주는데

주선생님이 옆에서 말합니다.

 

"내가 아까 방에서 열심히 배마사지 해줬거든...

방구를 뿡뿡 뀌더라구..."

 

오늘이 있기까지 자신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는 발언입니다.

 

"그랬구나...잘했어, 현숙아.

나도 아까 낮에 내내 배 마사지 해줬는데..."

 

어쨌든 미루가 똥을 싸니까

두 사람 속이 다 시원합니다.

 

깨끗이 닦아주고, 기저귀도 치우고

이제 모든 게 말끔하고 개운해졌습니다.

 

"뿌지직~"

 

미루가 두번째 똥을 쌌습니다.

조금있다가 세번째 똥을 쌉니다.

처음 건, 병뚜껑이 열린 데 불과했습니다.

 

세번째 똥은 정말 냄새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자기 아이 똥은 하나도 안 더럽다고 하는데

그건 이유식 먹이기 전까지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완전 어른 똥입니다.

 

"어휴....흐..읍...진짜 안되겠다"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주선생님은 멀리 부엌에서 닭갈비 냄새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에이, 그냥 내가 닭갈비 할 걸..."

 

여유롭게 좀 쉴려고 했다가 고생만 합니다.

 

"상구, 그렇게 인상 쓰면서 하면 미루가 자기가 뭐 잘못한 줄 알 거 아냐...웃어..."

 

"웃으라고? "

 

"응..."

 

"알았어...

아이고 우리 미루...똥을 세번씩이나 싸고...잘 했어~아주 잘 했어~~"

 

미루가 잘한 건 맞습니다.

변비 탈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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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구 day

언제였는지 모르겠는데

일주일에 하루는 나가서 마음대로 노는 날을 정하고

'상구 day'라고 부르기로 했었습니다.

 

제1회 상구day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우울하게 보냈었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우울한 상구 day는 없었습니다.

 

상구day가 아예 없었습니다.

 

몇 번 '오늘 상구day 할래?'같은 대화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제가 어쩌다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그날을 그냥 상구day로 치기로 하는 둥 하다가

결국 유야무야됐습니다.

 

 

"상구~다큐멘터리 하나 보고 와~"

 

그래도 주선생님이 오늘은

저한테 서울독립영화제에 가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실감나게 고발하는 액션영화나

창조적 상상력을 높이는 데 그만인 공상과학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어 좋다고 했습니다.

 

'극장에 가다!'

 

산모한테는 꿈 같은 얘기입니다.

아이 키우는 아빠한테도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신나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리고 걸어서

극장에 도착했습니다.

 

매표소 앞은 평일인데도

죄다 2인 1조로 북적북적합니다.

 

번호표를 뽑으려고 갔는데

마침 기계가 고장입니다.

 

"현숙아~번호표 안 나와~!!"

 

이 상황에서는 이런 대사를 쳐줘야 하는데

주선생님은 집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사태를 어떻게 할 지

같이 온 사람과 토론을 벌입니다.

 

저는 그냥 괜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가

무표정해졌다가, 어디서 누가 기계 고치러 안 오는지 멀리 보는 척 하기도 합니다.

어색합니다. 

 

방금 전까지 들떠 있던 감정은

차분하게 가라 앉았습니다.

 

"놀라운 가족 한장 주세요..."

 

결국 표를 끊게는 됐는데

표 끊어주시는 여자분이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왜 그러시느냐고 눈으로 물어봤더니 묻습니다.

 

"두분이세요?"

 

"아니 혼잔데요..."

 

"맨 뒷자리로 드릴까요?"

 

매표원의 뜻은

'혼자 오셔서 다른 사람들 눈에 가련하게 보일거니까

맨 뒤에서 혼자 숨어서 보실래요?' 였습니다.

표정도 딱 그 표정입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감정이

살짝 떴습니다.

이대로 물러서면 안됩니다.

 

"아니요, 앞쪽 중간쯤으로 해서 주세요..."

 

영화는 조금 뒤에서 봐야 목이랑 눈이 편한데

덕분에 괜히 앞 자리 표를 받았습니다.

 

어쨌거나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좌석번호 'E8'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근데 'E8'에 앉는 건 어려웠습니다.

 

주변은 온통 빈 자린데

바로 옆 'E7'에 혼자 온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모니터로 E7 한자리가 발매된 걸 보고

E8을 끊어줬을 아까 그 분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 분은 끝까지 저를 배려해주신 겁니다.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비디오나 빌려볼 걸...'

 

결국 저는 E9에 앉아서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는 꽤 유쾌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습니다.

들어갈 땐 안 그랬는데 나올 때 기분은 괜찮았습니다.

 

오늘을 상구day로 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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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놀이

오늘

미루가 태어난 병원에서 하는

발달놀이 강좌에 갔습니다.

 

"이 분은 육아휴직 내시고, 부인 대신 아이 키우고 계세요..."

 

예전에 라마즈 분만법 수업도 해주셨던 선생님이,

다른 엄마들한테 저를 소개하셨습니다.

 

"이야~~"

 

함성과 박수가 터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습니다.

 

박수를 받으니까 우쭐해졌습니다.

지난 번 마사지 강좌까지는 쑥스럽고 그랬는데

인제는 그런 것도 없어졌습니다.

 

사실 발달놀이 강좌도

미루의 발달을 위해서인 것도 있지만

사람들 만나서 수다 떠는 게 좋아서 신청한 겁니다.

 

발달상황으로만 말하자면

미루는 좀 빠른 것도 있습니다.

 

특히 손으로 눈 찌르기는 정말 빠릅니다.

 

어제 밤에 눈을 찔린 주선생님이

오늘 안과에 갔다왔는데,

 

각막에 약간의 손상이 왔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선생님은 몇 일간

안구혈액공급약과 소염제를 먹어야 합니다.

 

"아야..."

 

약을 받아오면 뭐합니까 또 찔리는데.

 

"그러니까 조심 좀 하지..."

 

"조심했어~손으로 이렇게 가렸는데도 찌르는 걸 어떡해...으..아퍼..나, 헬멧 사줘..."

 

그 상황에서 오토바이 헬멧 사달라는 말을 합니다.

힘든 상황에서의 유모어는 유난히 빛을 발합니다.

아직 덜 찔렸습니다.

 

어쨌든 미루와 함께 한

오늘의 발달놀이는 참 즐거웠습니다.

 

스카프, 템버린 등 도구를 이용한 놀이

마사지가 가미된 놀이

노래와 다양한 동작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놀이들을 하다 보니까

 

어른들이 매우 즐거워했습니다.

 

특히, 연신 아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놀이는

어른들의 근력발달에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미루가 3일 째 똥을 안 싸고

강좌 내내 무소음의 유독가스를 허가 없이 배출해서

괴로웠던 것이 유일한 옥의티입니다.  

 

"미루야, 너 자꾸 왜 그러니..."

이런 말 하면 도리어 오해살까봐 가만히 있었는데

옆에 앉았던 분들한테 미안합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야, 인제 미루랑 놀 때 발달 놀이 시간에 배운 거 써먹어야겠다'고

혼자 생각했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처음 배워서 다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 잘 배워서 제대로 놀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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