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잔칫날 식당 잡기

지난 주 토요일날 식구들이 모여서

막내동생 딸의 백일잔치를 했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몇 년에 한번이나 갈까 말까한

한정식집에서 밥을 먹게 됐습니다. 출세했습니다.

 

품평이 이어집니다.

 

"야...난 니 차가 완전 시골로 들어오길래

식당이 있긴 있나 했는데..괜찮네.."

 

"요 앞에 오리구이집 있드만,

글로 우회전 하면 그냥 집에 갈라고 그랬다.."

 

예전에 미루 백일잔치날이 기억납니다.

 

식당 잡느라고 그 고생을 했는데

막상 식당에 가보니까 우리 예약석이

방이 아니라 넓은 좌식 홀이었습니다.

 

전 완전히 새파랗게 질렸고

대담한 주선생님은 "뭐, 어때~"라고 했습니다.

 

식구들은 그냥 묵묵히 밥을 먹었는데

반찬이 전반적으로 짜게 나와서

여기 저기서 투덜투덜 거렸습니다.

 

그때 마침 또 하나의 백일잔치 팀이 등장해서

그 식당에서 그런 식으로 백일잔치 많이 하는 듯한 인상이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바람에 잘 넘어가긴 했는데

 

아무튼, 손님 대접한다고 식당에서 밥 먹으니까

신경 쓰이는 게 참 많았습니다.

 

막내 동생은 기분 좋은 얼굴입니다.

 

"날 뭘로 보고~~!!!"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댓가지 쯤 나올 무렵

둘째 동생이 말합니다.

 

"갈비도 안 나오고 회도 안 나왔는데 인제 시작 아냐?"

 

순간 막내동생의 얼굴이 파래졌습니다.

코스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치 빠른 아버지가 진화에 나섰습니다.

 

"야! 한정식이 이 정도 나오면 잘 나온 거지, 뭘 더 바래~"

 

전 행동으로 막내 동생 편을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음식이 남으면

접시를 끌어다가 박박 긁어먹었습니다.

 

"아줌마, 아줌마...그 접시 가져가지 마세요, 요리가 남았네요.."

 

옆상에 남은 음식도 다 갖다 먹고

제일 끝에 나온 밥이며 반찬도 게걸스럽게 해치웠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먹어줘야

잔치의 주인장이 기뻐합니다.

 

근데

벌써부터 미루 돌잔치

식당 잡을 일이 걱정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실컷 안아주자

미루가 시도때도 없이 징징대서,

안아주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주선생님이 사온 호떡을 먹으면서

미루를 무릎에 앉혀 놨는데

 

방금 전까지 온갖 짜증을 부려놓고

꼼지락 꼼지락 잘 놉니다.

 

"에휴...언제 이렇게 안아보겠냐..."

 

문득 이렇게 안는 것도

미루가 크면 싫어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징징대서 안아주는 거지만

실컷 잘 안아줘야겠다 싶습니다.

 

앞에 있던 주선생님도

같은 생각인가 봅니다.

 

"나도 전에 그 생각했었는데.."

 

몸도 안 좋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미루를 안았었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조금 크면 싫다고 할 것 아냐..

그래서 지금 실컷 안아보자 그렇게 생각했지..."

 

저 어릴 때도 언제부턴가

부모님이 안아주는 게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이 기억은 꽤 나이를 먹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얘기입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저를 안고 주무셨었는데

그거 참는 게 진짜 힘들었었습니다.

 

아버지는 낮잠이 많으시고

저는 낮에는 잠 안 자는데

 

낮잠 주무실때 꼭 저를 오라고 해서

껴안고 주무셨습니다.

 

싫다고 하면 아버지가 서운해하실까봐

그냥 말도 못하고 오라면 갔는데

 

왜 꼭 머리통을 통째로 껴안으시는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눈앞으로 밀폐된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는 어른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 싫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른냄새는 담배냄새였습니다.

전 담배를 안 피우니까 미루를 중학교 때까지는 안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근데 말하고 나니까

미루가 안쓰러워집니다.

 

아기였을 때 안아주고 말아야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걱정

동화책을 얻어왔는데

작가 두 사람의 이력이 재밌습니다.

 

형은 어려서부터 동물과 놀기를 좋아했고

동생은 형과 노는 동물을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그 두 사람이 동화책을 낸 겁니다.

 

동화책은 온갖 동물과 곤충 이야기로 가득하고

글씨는 그 보다 더 가득해서 미루보다는 주선생님이 좋아합니다.

 

한참 책을 보던 주선생님이

저한테 이야기합니다.

 

"나..걱정되는 게 있어..."

 

언제나 그런 것처럼

별거 아닐 게 틀림 없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호응해줬습니다.

 

"뭔데?"

 

"미루가 나중에..집에 동물 사오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아..이 문제는 주선생님한테는 몰라도

저한테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 죽으나 사나

사람 사는 집엔 사람만 살자는 사상의 소유자입니다.

 

안 그래도 기관지도 안 좋은데

집에 동물털 날리는 건 싫습니다.

 

정색을 하고 얘기했습니다.

 

"안되지..내가 미루한테 잘 설명을 할 거야..."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그럼.."

 

주선생님도 저랑 같은 생각인가 봅니다.

다행입니다.

 

"미루가 개라도 사와 봐...이 좁은 데 어디다 키워.."

 

"맞아, 맞아..그리고 또 애들이 못 키우니까 어른이 키워야 돼..."

 

듣고보니 그 점도 문제입니다.

미루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또 뭘 더 키운다는 건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계속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병아리 같은 거 사오면 또 중간에 죽잖아...애들이 슬퍼하고.."

 

이 순간 주선생님

매우 진지하게 한 마디 하십니다.

 

"안 죽기도 해..."

 

"잉?"

 

"나 어릴 때 동생이 병아리 사왔었는데...한 마리가 안 죽고 닭이 됐어.."

 

아저씨 말만 믿고 병아리 사왔다가 죽으면

아이한테 정말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냥 사 온 병아리가 닭이 되면

그건 더 충격적일 것 같습니다.

 

문득 쇼파에 닭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주선생님은 그 닭이 계속 무럭무럭 크다가

어느날 홀연히 사라졌는데

 

닭의 행방은 장인어른만 안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어쨌든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리 집엔 사람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빨 자국

배를 먹고 있는데 미루가 기어오더니

관심을 보입니다.

 

항상 이렇지만

입에 대주면 안 먹습니다.

 

배를 입에 대줬습니다.

인상을 쓰면서 혀로 맛을 보더니

평소와 다르게 살짝 뭅니다.

 

"..."

 

3초 쯤이 흘렀습니다.

뭔가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스치는 소리였지만

분명히 들었습니다.

 

"앗!! 아무래도.."

 

배를 얼른 들어서

정밀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우하하하하~~!!!"

 

헛것을 들은 게 아니었습니다.

 

배 표면 한 부분에

갈갈이가 무우 갉아 놓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빨자국으로 길이 나 있고

그 끝에 벗겨진 배의 표면이 둥글게 말려 있습니다.

 

"이야~~~우리 미루 드디어 이빨을 썼구나~~!!!"

 

책에 보니까 이빨이 위아래로 다 나도

본격적으로 씹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미루처럼 갉을 수는 있습니다.

 

이 기쁜 일을 함께 나눠야 하는데

주선생님은 사무실에서 일을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주선생님은 그 날 밤

곧바로 같은 일을 체험합니다.

 

"아..!! 아야!"

 

미루가 자기 팔에 얼굴을 묻으니까

주선생님이 어이구, 어쩐 일로 나한테 이쁜 짓 해..하고 있는데

미루가 팔을 물었습니다.

 

"이거 봐~이거봐~히히.."

 

주선생님 팔뚝에 선명하게

두개의 이빨자국이 나 있습니다.

 

아주 정겨운 이빨자국입니다.

 

제가 물 땐 신경질 내더니

주선생님

아주 신이 났습니다.

 

미루는 이 날 이렇게

몸을 푼 다음에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과일을 갉아대기 시작했습니다.

 

과즙망에 넣어 사과를 주니까

삭삭삭 소리를 내며 갉습니다.

 

미루 입속에는 지금

이빨 두 개가 우쭐해서 서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소고기

이번 주 토요일은

제 막내동생 딸의 백일 잔치날입니다.

 

식구들이 토요일날 다

서울로 올라오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어머니, 아버지가 올라오시는 거라서

저희들은 한달 전에 딱 한번 죽는 소리를 했습니다.

 

"지난 번에 준 반찬 다 떨어졌어요..."

 

그날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아주 자주 전화를 하십니다.

 

"야..니네 깻잎도 다 먹었냐? "

 

"양구네 가게 옆에서 김 파는 데 진짜 맛있더라, 좀 사갈까?"

 

이제 전화는 매일 아침이면

어김 없이 옵니다.

 

"미루 자냐?"

 

"미루 뭐하냐?"

 

"어제 아버지가 안 좋은 꿈 꿨는데 미루 아프냐?"

 

반찬 얘기는 인제 더 안 하시고

매일 미루 얘기입니다.

 

처음에 임신했다고 전화로 말씀드렸을 때는

의외로 시큰둥하셨었는데

요새는 미루한테 거의 열광하십니다.

 

"음...상구.."

"왜?"

 

"미루, 그거 되겠다.."

"뭐가?"

 

예전에 아는 분이 가난하게 살면서

아이의 활약으로 부모님한테 용돈을 얻어썼다는 걸

주선생님이 기억해내셨습니다.

 

그때 그 분은

아이한테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를

연습시켜서, 결국 소고기값을 받아냈었답니다.

 

"어머니가 미루 저렇게 이뻐하시니까..통할 것 같애...

미루야~~!! 연습하자!!"

 

주선생님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아주 의욕적으로 외칩니다.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미루야 따라해!!"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

 

전 그 순간 뭔가 좀 고결함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아서

거실로 나왔습니다.

 

외침은 계속 들립니다.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

 

문득 구호가 바뀌었습니다.

길다고 느꼈나 봅니다.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전 책상에 앉아 있다가

나즈막히 되뇌었습니다.

 

"소고기..소고기..소고기.."

 

계속 연습시키다 보면

엄마, 아빠 보다 소고기를 먼저 말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구차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두 사람의 수난 2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안되서

저는 평소에

 

좀 덤벙덤벙거리는 걸로

인간미를 유지합니다.

 

이것 때문에

두 사람이 요새 고생이 많습니다.

 

1.

 

"상구 가만히 있어...내가 넘어갈께..."

 

미루를 목욕시키다가

힘이 딸려서

주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화장실이 좁아서

주선생님이 저를 돕기 위해서는

화장실 바닥에 놓은 미루 욕조를 넘어가야합니다.

 

"조심해..바닥 미끄러울 지도 모르니까..."

 

"응....아악.."

 

제가 미루 물비누를 바닥에 흘린 바람에

그거 신경쓰다가 주선생님은

화장실벽 수건걸이에 머리를 받아버렸습니다.

 

 

2.

 

"으....이건 진짜 아프다... 상구...왜 그랬어.."

 

주선생님이 설거지하는데

제가 싱크대 찬장에서 뭘 꺼내놓고

문을 안 닫았던 모양입니다.

 

주선생님은 설거지를 마치고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많이 미안했습니다.

 

저 때문에 날이 갈수록

주선생님 맷집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3.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엌 바닥을 걸레질하던 주선생님은

다시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악......."

 

"현숙..왜 그래?"

 

"누가 전자렌지 문 안 닫았어..너지~!!!"

 

주선생님은 진짜 화나면

저한테 너라고 합니다.

 

"아까 미루 줄 물 뎁히고 안 닫았나 보다.."

 

"이건 인재야 인재~~!!!"

 

인재란

홍수나 산사태 같은 게 났을때

대비를 소홀히 한 관계당국을 욕할 때 쓰는 말입니다.

 

 

4.

 

근데 이 정도 덤벙거리는 건

그나마 괜찮습니다.

 

오늘 새벽엔

제가 창문을 열어 놓고 자는 바람에

미루 몸이 불덩어리가 됐습니다.

 

감기 나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정말 어디가서 머리라고 박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6시쯤에 우는 아이 달래고

해열제 먹이고 재우느라 고생했습니다.

 

잘 때는 항상 창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선생님이

수도 없이 강조하는데

전 그때 뿐입니다.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사람이 인간미가 없어졌다는 얘기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덤벙 거리는 걸 고쳐야겠습니다.

 

될까 모르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낯 가리기

미루가 요새 낯을 가립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

일단 울고 시작합니다.

 

얼마 전에도

같은 동네에 사는 후배 집에 놀러갔다가

 

거실에 운집한 어른 7명을 보더니

다짜고짜 울어제꼈습니다.

 

한참 달래고

나쁜 사람들 아니니까 안심하라는 내용의

설명도 귀에 대고 해주니까

좀 괜찮아지더니, 나중에는 그 집 애를 막 때리고 놀았습니다.

 

아무튼 낯가리기는

요즘 나타난 현상입니다.

 

지난 주에는 주선생님이

저녁을 대접한다면서 집에 후배를

모시고 왔었습니다.

 

이 분은 집에 들어오시다가

제 깜찍한 헤어스타일을 보더니

첫마디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어머~! 머리 좀 정리하셔야겠어요.."

 

이 분은 원래 생각하는 게

곧바로 입으로 발사되는 스타일이랍니다.

 

무슨 말을 하든

진심이란 뜻입니다.

 

머리를 정리해야겠다는 말은

제게 큰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육아휴직 하고 나서

난생 처음으로 한 파마입니다.

 

"상구가 평생 언제 머리에 손대겠어..지금 하랄 때 해.."

 

이것이 주선생님이

저를 설득한 논리였고

 

하고 나서 어떤 사람들은

예전 보다 훨씬 부드러워 보인다고도 했습니다.

 

드러누웠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나 밥 안 해~~!!!"

 

후배는 제가 그러는 게 자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제 옆에 엎드려서 허우적 거리던 미루한테

이쁘다며 바짝 얼굴을 댔습니다.

 

미루, 곧바로 울기 시작합니다.

 

"어떡해, 어떡해..."

 

미루 얼굴을 만져도 막 울고

달래봐도 막 웁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남의 집에 왔다가

자기 때문에 애가 울면 참 난감할 듯합니다.

 

생각했습니다.

'고생 좀 해라...'

 

일부러 계속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다고 제 헤어스타일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속은 시원해졌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해서 후배를 당황시킨 후

전 미루를 안아 달랬습니다.

 

미루 낯가리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저도 집에만 있다 보니 속이 좁아지는 게

아무래도 사람 낯 가리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 날 저녁밥은

집에 있는 반찬 다 꺼내서

최대한 잘 차렸습니다.

 

속 좁은 거 알아차릴까봐

그랬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빨 닦기

미루 이빨이 난 다음에

며칠 지나고 나서

 

이빨을 닦아야 한다는 게 생각 났습니다.

 

책을 찾아봤더니

이유식을 먹인 다음에 물을 먹여서 헹구거나

거즈로 입 구석구석을 닦아 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숙~이빨 닦아야 한대..."

 

"어떻게?"

 

"거즈로..."

 

마침 이유식을 먹고 난 다음이라

바로 이빨닦기를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현숙..니가 닦아줘봐..."

 

뭐든지 신중하게 접근하는 저는

주선생님께 미루 이빨 처음으로 닦기 임무를 맡겼습니다.

 

주선생님은 평소 강력한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제가 뭐 한번 해보라고 하면

바로 합니다.

 

"미루야~이빨 닦자~~"

 

주선생님은 지체없이

손가락으로 거즈를 말아서

미루 입 속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옳지~우리 미루 잘 하네~~"

 

미루는 이빨을 닦는 걸 아는 지

입을 살짝 벌렸고, 주선생님은

입 속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합니다.

 

"아~!!! 아야 아야~!!"

 

미루가 주선생님을 물었습니다.

 

"아야..아야야~~!!"

 

계속 뭅니다.

아기라고 무시하면 안됩니다.

꽤 아파합니다.

 

주선생님

결국 한 마디 했습니다.

 

"맨날 이런 건 나 보고 먼저 하래..."

 

역시 저의 신중한 태도는

이럴 때 빛을 발합니다.

 

거즈로 이빨을 닦아줄 때

조심해야 할 점을 알았습니다.

 

온몸을 던져 거즈 이빨 닦기의 문제점을 찾아내신 주선생님은

참 훌륭하신 분입니다.

 

거즈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덧붙임>

 

다른 방법을 찾던 중

며칠 전 옆집 연우네에 놀러갔다가

아이용 칫솔을 얻었습니다.

 

미루는 밥 먹고

이 칫솔의 손잡이 부분을 자근자근 씹으면서

잘 놉니다.

 

옆집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지난 일요일에는

아침에 상 다 차려놓고 밥 푸려고 했다가

밥통에 밥이 없어서 결국 옆집에서 얻었는데

 

그 일요일날 새벽 10시 반에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밥을 한 공기 반이나 퍼주신

옆집의 자비로움에 역시 감사를 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년 결산

작년에도 했었는데 올해에도

주선생님과 둘이서 올 한해 10대 사건을 뽑았습니다.

 

오늘 정식으로 시간을 내서

할려고 했는데,

 

결국 한 명은 밥 먹고

한 명은 미루 달래면서 대충 했습니다.

 

1위. 미루 태어나다!

 

2위. 현숙 미루 순산하다!

 

3위. 상구 육아휴직하다!

 

4위. 미루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5위. 현숙, 출산 후 건강을 잘 회복하다!

 

6위. 상구, 육아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다!

 

쓰다 보니까 6위까지가 모두

미루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다른 중요한 일은 없었던가?"

"올해는 뭐 다른 건 별로 없었지..."

 

"그래도 다른 일도 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상구...그게 서운해? 잘 생각해봐..여기 써놓은 것 중 하나라도 잘 안됐어봐,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다들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지? 올해는 정말 중요한 한 해였어.."

 

계속 10대 사건을 뽑았습니다.

 

7위. 현숙 모유수유에 성공하다.

 

8위. 상구 육아일기를 쓰다.

 

결국 7, 8위도

육아 이야기입니다.

 

9위, 현숙 산후조리를 잘 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다.

 

10위, 상구 동생들이 결혼하고 애도 낳다.

 

9위까지 써놓고 보니까

올해에는 제 바로 밑에 동생이 결혼을 했고

막내 동생한테는 애가 생긴 게 생각납니다.

 

이건 10위 입니다.

 

확실히 2006년은

출산과 육아의 한 해였고

아이키우기를 통해 많은 걸 배운 한 해였습니다.

 

주선생님과 미루와 저에게

2006년은 아주 신나는 선물이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징어 땅콩 과자

제 시골집에는 12월 31일이 되면

모든 식구가 모여서 하는 조촐한 송년회 자리가 있습니다.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고

오는 해의 소원을 비는 그런 자리가 아니고

 

12시 땡 치면 보신각에서 종 33번 칠 때

한 사람이 '오징어땅콩' 한 봉지씩 잡고

 

종 한 번에 과자 하나, 또 한 번에 또 과자 하나

이런 식으로 과자를 33개 먹는 행사입니다.

 

이거 처음 한 게

80년대 중반쯤이었습니다.

 

"야~우리도 한 해를 보내면서 뭔가 함께 하는 일을 만들어보자~"

"맛있는 거 사 먹어요~~!!!"

 

"맛있는 거 뭐~~?"

"과자 같은 거...짜장면은 배달 안 할테니까.."

 

"과자? 어떤 거?"

 

그때 아버지와 우리 3형제가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하나씩 집어 먹기 편하고

한 10년이 지나도 안 없어질 것 같은 과자를 골랐습니다.

 

그게 '오징어땅콩'이었습니다.

 

이 과자 때문에

실제로 우리 식구는

다른 동네에 가서 살면서도

매년 마지막 날엔 꼭 모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모임은

우리 식구끼리의 굳은 약속 같은 게 됐습니다.

 

95년을 빼면

재작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95년엔 제가 학생운동 한다고 덤벙대다가

집에 갈 수 없게 됐었는데

나중에 6개월쯤 지나서 집에 가보니까

제 책상 위에 오징어땅콩 한 봉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야~!! 올해는 아예 내려 올 생각을 안 한 거냐?"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오늘이 12월 31일입니다.

 

육아휴직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까

휴일도 까먹고, 이제는 해 바뀌는 날도 생각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 진짜...너무 하는 거 아냐?"

 

"인제 혼자가 아니고 세명이라서 움직이기도 어렵고..."

 

"약속을 했으면 끝까지 지켜야지..."

 

그냥 웃으면서 통화하고 끊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아버지한테는 좀 서운한 일일 것 같긴 합니다.

 

결혼하고 미루도 생겨서

전혀 내려갈 생각을 안 했었습니다.

 

이제 혼자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오징어땅콩이 옛날처럼 맛있지도 않고 해서

별 의미를 안 뒀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옛날일이

생각납니다.

 

새해 첫날 0시가 지나면

우리 3형제는 막 이리저리 다니면서

'올해 처음!'을 외치곤 했었습니다.

 

"이야~내가 올해 처음으로 물 마셨다.."

"올해 처음으로 오줌 싼 건 나다~~!!"

"나는 문 열었다 닫았다~"

"나는 트림했다~~~!!"

 

이런 게 부모님한테는 모두

아이들과의 추억입니다.

 

이제 저한테는 미루가 생겨서

새롭게 아이와의 추억이 가능해졌고

 

부모님은 3형제가 모두 결혼해서

옛날같은 '아이들과의 추억'이 더는 없을 듯 합니다.

 

평소 저답지 않게

오늘 밤엔 생각이 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